주말에 남아영과 이야기를 하며,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이영호의 마음을 사로잡고, 지리산 농부들과 함께 하는 모든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아이디어였다.
이영호가 카페 게시판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몸담고 있던 에코컴퍼니를 떠나, 외국으로 떠날 때 쓴 글이었다.
외국으로 떠나게 된 사정과 그동안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적었다.
소심하고 사람을 상대하는데 미숙한 자신을 따뜻하게 받아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에 자신의 꿈을 적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회원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꿈은 극장을 갖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던 꿈이라고 했다.
내성적이고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탓에 영화에 빠져들었다고 고백했다.
극장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같은 화면을 보며 웃고 울고 할 때가 행복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회원들에게 지금까지 배려해 준 것에 감사하다며 인사를 마쳤다.
불행하게도 그의 꿈을 이뤄지지 않았다.
외국으로 떠나는 순간 불행한 사고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꿈이 이뤄지고, 불행도 막는다.’
이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하문 초등학교는 야외극장을 만들기 아주 좋은 조건을 갖고 있었다.
관람객 걱정도 없었다. 양초 공장에 일하시는 어르신들에게 매주 무료로 영화를 상영할 수 있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영호를 만나러 서울로 갔다.
* * *
그는 만남을 주저했다. 난 오늘은 전혀 다른 용건이니 편하게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다른 용건이란 말에 호기심을 나타났다.
얼핏 영화에 관련한 일이라고 힌트를 줬다. 당연하게도 관심을 보였다.
카페에서 만났을 때도 용건이 궁금한지, 내 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씀처럼 오늘은 다른 용건으로 왔습니다.”
“영화와 관련한 일이라고요?”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수줍은 많은 이영호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늘 특별한 영화제가 있습니다.”
“특별한 영화제요?”
난 티켓을 내밀었다.
“지리산 영화제요?”
“네, 지리산 영화제요.”
함께 가자는 말에 그는 잠시 주저했다.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차가 없는 그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집까지는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단순히 영화 상영이 아니었다. 동료들과 난 작은 축제를 기획했다.
영화도 보는 김에 ‘지리산 농부들’과 함께 하는 모든 분과 축제를 벌이자고 제안했다.
한기탁의 아이디어였다. 극장 일엔 손도 안 대겠다는 사람이 솔선수범했다.
영화를 보며 먹을 간식은 물론, 저녁 식사까지 알아서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민석도 함께 돕겠다고 나섰다.
난 서울에서 함께 할 연구원을 모시고 오겠다고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화제만 참석하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이영호가 차에 타기 전 말했다.
우린 서울에서 하동을 향해 달렸다. 함께 하동으로 내려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일과 관련한 이야기는 일체 꺼내지 않았다.
모두 영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가 카페 게시판에 썼던 글에 관한 것들이었다. 대부분 영화평들이었다.
그는 그저 취미 수준이라고 말했지만, 전문가 못지않았다.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광 다웠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기 전, 우린 하동에 도착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