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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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초 학교를 나오는 순간, 전화가 왔다.

박문호였다.

“자네가 우리 건물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네.”

“그렇지 않아도 전화를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기다리겠네.”

양초 학교 용무가 끝나면, 방문할 계획이었다.

박문호의 사무실은 활짝 열려있었다.

“어서 오게.”

“제가 양초 학교에 온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난 인사를 하며 물었다.

“비밀 소식통이 있다네.”

박문호가 양초 학교 아이들을 잘 챙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양초 학교에 귀여운 스파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 기사를 보고 좀 서운했네.”

“제가 먼저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난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말을 아꼈다.

“자네가 아이들을 이용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니까. 나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던 게 서운했을 뿐이네.”

박문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 말해보게.”

“양초 학교 아이들에게 양봉 교육을 시키고 싶습니다.”

“나도 자네와 그 문제를 상의하고 싶었네.”

박문호가 직접 아이들에게 양봉 교육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장소는 건물 옥상에 있는 양봉장이었다.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구상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 기다렸다고 하소연했다.

부탁을 하고 말 것도 없었다.

그와 첫 만남에서 얼굴을 붉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누구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 * *

2주 뒤, 지리산 농부들의 두 번째 양초 공장이 세워졌다.

한기탁이 발로 뛴 결과물이었다.

공장부지는 하동 농업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았다.

가동을 멈춘 식품 가공 공장을 저렴한 임대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양초 제작 형틀과 포장 설비를 갖췄다.

하문 초등학교에 세운 1호 양초 공장이 가내 수공업이었다면, 2호는 말 그대로 공장이었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대량의 양초를 생산할 수 있었다.

우린 공장 운영방식에 대해서 논의했다.

지리산 농부들의 공식 회의였다.

“하문 초등학교는 지금처럼 운영했으면 좋겠어요.”

민석이 나와 기탁에게 말했다.

그가 그런 말을 하는 까닭을 알고 있었다.

공장이 세워졌다고 할머니들을 내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상징적인 의미도 있으니 유지하는 건 동의합니다. 다만, 인력을 감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두 곳을 동시에 운영해야 하니까요. 비용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합니다.”

한기탁이 민석과 나를 보며 말했다.

민석은 고민하고 있었다.

“저도 하문 초등학교 양초 공장은 최대한 유지했으면 합니다. 하지만 경영지원팀장님의 말대로 비용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겠죠. 최대한 일자리는 보장하고, 근무시간을 나누는 방식으로 하면 어떨까요?”

난 근무시간을 나눌 것을 제안했다. 할머니들은 곶감 농사 때부터 나와 손발을 맞춘 분들이셨다.

2호 공장이 세워졌다고, 함부로 내칠 수 없었다.

돌아오는 곶감 철에도 함께할 사람들이었다.

“그런 정도면 대안이 되겠네요. 대표님의 말대로 최대한 일자리를 지켜보겠습니다.”

한기탁의 말에 민석의 표정이 밝아졌다.

민석은 지역 할머니들을 가족처럼 여기고 있었다.

착한 인성에 무료로 컴퓨터 교육까지 했던 친구다.

할머니들의 일자리를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읽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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