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 (69/205)

평일에도 양초 학교가 운영되고 있었다.

양초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다. 평일엔 아이들의 학습을 돕고 있었다.

가희의 제안이었다. 전공을 살려 아이들에게 국어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다.

박문호는 양초를 만드는 공간 말고도,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무상으로 내줬다.

협회 사람들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양초 학교에서는 서양벌 협회 회원들이 제공하는 밀랍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지리산 농부들이 협회 회원들의 밀랍을 전량 구입했다.

양초 학교에 도착했을 때, 가희가 교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양초만 만드는 게 아니라, 선생님 일도 하다니 대단해.”

“어쩐 일이야? 사무실 일도 바쁠 텐데.”

“일 잘하고 있나 감시하러 왔지.”

장난스런 말에 가희가 미소로 답했다.

그녀는 양초 학교를 전담하고 있었다.

양초 학교로 일터를 옮기기 전,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정가희가 맡고 있던 일 때문이었다. 그녀는 하문 초등학교로 출퇴근을 하며 양초 생산의 책임을 맡고 있었다.

각자 맡고 있던 일들이 많았기에 그녀의 부재를 염려했다.

나 역시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다.

가희는 양초 학교에서 공부방을 운영할 것을 먼저 제안했다. 그리고 그곳을 전담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그녀는 하동을 떠나기 전, 준비 작업을 철저히 했다. 자신이 없어도 생산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정예의 요원을 키운 것이다.

그중 한 명이 김꽃님 할머니였다. 매화 스님이 지장사로 돌아간 뒤 할머니는 적적해하셨다.

그리움을 담아 시를 썼듯이 이번엔 밀랍 양초에 심혈을 기울였다. 동료들도 김꽃님 할머니의 기술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물밑 작업을 끝내고, 가희는 양초 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양초 학교 교장이란 타이틀을 주려고 했지만, 그녀가 거부했다.

그저 양초 학교 선생님이란 직함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녀와 오랜만에 차를 마셨다.

“양초 학교 선생님은 몇 명이나 돼?”

“나 빼고 8명 정도.”

시작할 땐 3명 정도라고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원이 늘어 있었다.

“가희 네가 데리고 온 사람들?”

“대학 동창들이야. 선생님을 꿈꾸던 친구들.”

오랜만에 그녀와 마주하니 옛 추억이 떠올랐다.

지장사에 함께 들어가 온갖 고생을 다 하던 기억이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양초를 만든 것도 지장사였다.

지금은 양초 학교의 선생님이 돼 있었다.

“아영이는 어때?”

서울로 올라온 목적이기도 했다. 남아영의 근황이 궁금했다.

가희는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는 좀 특별한 거 같아.”

“특별하다니, 뭐가?”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기대됐다.

가희는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작은 밀랍 양초였다.

“이건 양초 아니야?”

“그냥 양초가 아니라 생일 양초야.”

“생일 양초?”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양초였다. 모양이 독특했다.

“생긴 모양이 좀 독특하지? 꽈배기 생일 양초야.”

“꽈배기 생일 양초?”

“그 양초를 개발한 사람이 바로 남아영이고.”

“아영이 만든 양초라고?”

양초 학교에서 남아영은 유명 인사라고 했다.

매스컴의 영향 때문이 아니었다. 양초를 만드는 데 탁월한 기량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가희의 책상 서랍에서 갖가지 모양의 양초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양이 모양의 양초부터 사람의 형상을 한 양초도 있었다.

기발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양초들이었다.

하동에서 생산하는 제품과 결이 달랐다. 하동에선 가장 기본적인 몇 가지 디자인만을 생산하고 있었다.

“아영이는 아이디어가 넘치는 아이야. 한 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끝까지 해내는 집념도 대단하고.”

“이게 다 아영이가 만든 거라고?”

어떤 면에서는 가희가 만든 양초보다 더 뛰어나다는 느낌이 들었다.

“능력이 뛰어나서, 보조 교사로 채용했어.”

이 정도 실력이면 그럴 만도 했다.

가희와 이야기를 마치고, 작업장 안으로 들어갔다.

남아영이 아이들에게 양초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앳된 얼굴이지만, 전문가 못지않아 보였다.

아영이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웃는 모습은 영락없는 소녀였다.

난 작업이 끝나길 기다렸다. 돌아가지 전에 아영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우린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양봉장을 꾸며 놓고 있었다.

벌들이 옥상에 있는 꽃밭에서 꿀을 따고 있었다.

남아영은 맑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저 나중에 벌 키우고 싶어요.”

그녀는 하늘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벌은 왜?”

“대단하잖아요. 꿀도 만들고, 밀랍도 만들고.”

하늘을 바라보던 아영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저도 양봉을 배우고 싶어요.”

“양봉을?”

“저만 양봉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에요. 다른 아이들도 관심이 많아요. 밀랍 양초를 만들다 보니, 벌에 대한 궁금증도 생긴 거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관심을 보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양봉 선생님도 정했어요.”

“누구야?”

“김덕명이라고 하동에서 농사짓는 분이예요.”

아영의 말에 모처럼 크게 웃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