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초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장학금도 받을 수 있다는 광고를 했다.
반응이 좋았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양초 학교를 찾았다.
박문호도 주말 양초 학교에 관심을 보였다.
손녀와 함께 양초 학교를 찾기도 했다.
주말이면 하동에서 서울로 양초 선생님이 방문했다.
가희를 포함한 양초를 만드는 할머니들이 아이들에게 비법을 전수했다.
이춘배 어르신은 주말에도 쉬지 않고 셔틀버스를 운전했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났다.
어디서 본 듯한 소녀가 양초 학교를 찾았다.
뉴스에 출연했던 그 아이였다.
동생에 주려 빵을 훔쳤던 소녀.
“저도 양초를 만들 수 있을까요?”
기적의 마케팅
“저도 양초를 만들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소녀의 이름은 남아영이다. 남동생과 함께 양초 학교를 찾았다.
그녀가 양초 학교를 찾을 거라고 알고 있었다.
배선아 기자를 통해 아이가 사는 동네를 알아냈다. 재개발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곳이었다. 지역은 황폐해지고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난 전공을 살려 지역에 광고를 했다. 주민 센터의 허락을 받은 공식적인 광고들이었다.
누구나 양초 학교의 장학생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소녀가 분명 양초 학교를 찾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정말, 양초를 만들면 장학금을 주나요?”
“그럼, 당연하지.”
“생활비로 써도 되는 건가요?”
소녀의 질문에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에게 노동을 시킬 마음은 없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양초가 불을 밝히듯, 양초를 만드는 아이들도 빛나길 바랐다.
“당연하지. 필요한 곳에 얼마든지 써도 좋아.”
“양초를 많이 만들면 장학금도 많이 주나요?”
“여긴 일하는 곳이 아니야. 취미 활동을 한다고 생각해. 그래도 부모님 허락은 받아야겠지. 부모님도 아영이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
“허락이요?”
장학금을 준다고 해도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그냥...양초만 만들면 안 될까요?”
아영이는 동생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몇 번을 더 설득했지만, 아영이는 단호했다. 서류엔 아버지가 있다고 적었다.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난 가희에게 아이들을 맡겼다. 우선 양초 만드는 체험을 하고,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했다.
아영이는 양초 교실로 들어가는 순간에도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녀가 교실로 들어간 뒤에 난 밖으로 나왔다.
손에는 아영의 집 주소가 있었다.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곳에 도착했다.
아영의 집 앞에 섰다. 반지하였다. 초인종은 없었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문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었다. 그냥 돌아가려는 찰나에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기침소리였다.
난 현관문을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잠겨있지 않았다.
“실례하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단칸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곰팡이가 가득한 벽 옆으로 아이들 교복과 옷가지가 제멋대로 걸려 있다.
먹다 남은 김치통과 물통이 놓인 밥상 옆에 한 사내가 누워 있었다. 아버지인 것 같았다.
“아버님, 괜찮으세요?”
가까이 다가가자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남자 옆에 성인용 기저귀가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말하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난 당장 팔을 걷어붙였다. 봉사활동으로 장애인을 돌봤던 경험이 있었다.
눈빛으로 안심시키고 물 한 모금을 드렸다.
나를 사회봉사 요원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리를 마쳤을 무렵이었다.
등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아영이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눈 뒤 이불을 추슬렀다.
“계속 여기에 있을 거예요?”
아영을 따라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나왔다.
그녀가 당황한 얼굴로 무섭게 날 노려보았다.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와서 뭐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영과 눈을 마주쳤다.
“동정하는 거면 그냥 가세요. 장학금 같은 거 다 필요 없으니까!”
“동정하는 거 아니야. 너를 돕고 싶을 뿐이야.”
“왜요? 왜 날 돕고 싶은 건데요?”
날 선 눈빛이었다.
난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돌아서서 떠나려 했다.
“실패한 인생이었으니까. 너무 힘들어서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어.”
아영이 고개를 돌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일이 꼬이고, 삶이 버거워지더라. 나도 금방 죽는 줄 알았어.”
“지금은 어떻게?”
“어쩌다 보니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어.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거든.”
“새로운 인생이요? 기회?”
“아영에게도 그 행운을 나눠주려고.”
“저에게도요?”
아영인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 맑게 느껴졌다.
우린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세상을 등졌다고 했다. 아버지는 두 자식을 키우기 위해 일을 가리지 않았다.
건축일, 청소, 배달,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했던 아영의 아버지는 건축 현장에서 추락했다.
전신 마비가 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일용직이었던 그는 그렇게 주저앉아 버렸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일정 금액의 돈을 지원받았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아버지 약값이 더 들었다. 빵을 훔친 것도 동생이었다. 그녀가 동생 대신 자신이 한 짓이라 자백을 한 것이다.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동정하지 않겠다고. 양초도 누구보다 잘 만들게요.”
“내가 원하던 바야.”
“그런데, 아영아?”
“네?”
아영은 보통 아이들보다 성숙했다. 그녀에게 양초 학교의 마케팅을 맡기고 싶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은 아이들을 양초 학교로 모으는 일이었다.
“그런 일을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누구보다 잘할 거라 생각해.”
“그럼, 한번 해볼게요.”
“좋아.”
아영이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아버지에게 양초 학교에 대해 설명을 했다.
몸은 굳어 있었지만, 표정은 읽을 수 있었다.
허락한다는 얼굴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