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 (61/205)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과 민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식탁에 앉았다.

민석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오늘 간 일, 잘 안됐어?”

“아니.”

“얼굴에 다 쓰여 있는 데.”

“정말 다 보였어?”

“그럼, 다 보이지. 넌 원래 실망하는 법이 없으니까.”

그의 말에 기운이 솟았다. 갑자기 밥맛이 돌았다.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어머니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티브이에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사건의 주인공은 초등학생이었다.

“아이고,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어머니는 뉴스를 보며 탄식했다.

나도 숟가락을 놓고 화면을 바라봤다.

고등학교 1학년 소녀가 빵을 훔친 사건이었다.

빵을 훔친 아이는 메모를 남겼다.

[죄송합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반드시 갚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빵 가게 주인은 그 소녀를 찾아냈다.

도둑질을 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동생의 생일이었다고 했다. 나쁜 짓인지 알지만, 동생이 좋아하는 빵을 주고 싶었다며 용서를 빌었다고 했다.

“아직도 저런 아이들이 있다니...”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뉴스는 이미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 있었다.

난 자리에 벌떡 일어섰다.

“왜 그래? 밥 먹다 말고.”

민석이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잠깐 나갔다 올게.”

“이 저녁에 어딜 가려고?”

“잠깐 전화 좀 하려고요.”

“밥 먹고 해.”

“잠깐이면 돼요.”

모자이크에 가려진 아이의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미카엘 신부님이 했던 말도 오버랩 되었다.

당장 계획을 실천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수화기를 들었다.

신호음이 끝나고 걸쭉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김덕명!”

“네, 박문호 회장님. 김덕명입니다.”

서양벌 협회의 박문호였다. 함께 손을 잡은 뒤로 연락을 한 적은 없었다.

“자네가 나에게 전화를 할 줄 몰랐네. 무슨 용건인가?”

“혹시, 내일 뵐 수 있을까요?”

“내가 하동까지 내려가야 하는 일인가?”

“아닙니다. 제가 서울로 올라가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군.”

“찾아뵙고 의논 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자네라면 언제나 환영이네.”

“감사합니다.”

* * *

다음날, 난 새벽부터 서둘렀다.

동료들에게도 서울 출장을 알렸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녀온 후에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방문하는 서울이었다. 서울은 여전히 바쁘고 분주했다.

박문호의 사무실은 종로에 있었다.

규모가 제법 컸다. 토종벌을 키우는 사람보다 서양벌을 키우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니 당연히 협회도 컸다.

난 벌집 모양의 건물로 들어갔다.

안내데스크 여자가 날 알아봤다.

그녀는 날 박문호에게 안내했다.

“먼 곳 오느라 고생했네.”

“아닙니다.”

“앉게.”

사무실이 제법 컸다. 양봉과 관련한 여러 서적들이 눈에 띄었다. 모두 해외 영문 원서들이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어젯밤 잠까지 설쳤다니까.”

그가 웃으며 말했다.

“협회에서 이 건물을 쓰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건물이야, 오래전부터 쓰고 있지.”

“임대 사업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건물이 커서 빌려주기도 한다네.”

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눈치를 챘다는 눈빛이었다.

“얼굴에 우리 건물이 필요하다고 쓰여 있네. 맞는가?”

“맞습니다.”

“무슨 꿍꿍인지 말해보게.”

그는 턱을 괴고 말했다. 무슨 목적으로 공간이 필요한지 궁금한 눈빛이었다.

“이곳에 청소년 양초 학교를 만들고 싶습니다.”

“청소년 양초 학교?”

“전 하동에서 밀랍 양초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양초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하동에서 하던 일을 왜 여기서 하려는가?”

“이곳에서 미래의 양봉가들을 키울 생각입니다.”

미래의 양봉가라는 말에 박문호의 눈이 빛났다.

“그럼, 양봉이지 왜 양초 학교인가?”

“청소년들이 만든 양초를 판매할 생각입니다. 판매 수익을 장학금으로 줄 수 있죠.”

“일종의 장학재단이군.”

“맞습니다. 우선 주말을 이용해 운영하면 어떨까 합니다.”

“아이들을 이용해 장사를 하려는 것은 아닌가?”

그는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모든 수익을 장학 재단에 넣을 생각입니다.”

“그게 진심인가?”

난 박문호와 눈을 마주쳤다.

“진심이구먼. 그런 생각을 한 이유를 말해주겠나?”

“전 이것이 자선 사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틀림없이 농업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당장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회장님을 찾았습니다.”

박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공간을 무상으로 빌려주겠네.”

“감사합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