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한 곳은 하문 초등학교였다.
지리산 농부들이 처음으로 뭉쳤던 곳이다.
지금은 농촌체험학습장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곳의 운영자인 이춘배 어르신을 찾았다.
마침, 그는 분양받은 벌통을 살피고 있었다.
“벌써 왔군. 잠시만 기다리게.”
그는 방충복을 벗고 나를 반겼다.
“커피 한잔할 텐가?”
“좋습니다.”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내오셨다. 그와 난 평상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그는 커피를 마시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난 이곳이 밀랍 양초 만들 최적의 장소라고 여겼다.
기본적으로 제품 생산을 맡은 가희의 집과 가까웠다.
오래된 초등학교치고는 규모가 있었다. 큰 창고도 두 개나 있었다.
여러 가지로 조건이 좋았다.
그에게도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내 조건을 듣자마자 이춘배는 반색했다. 최근에 농촌체험을 오지 않아 힘들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가볍게 승낙할 줄 알았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
“혹시, 돈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니야. 그 정도면 분에 넘치는 돈이네.”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럼 고민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실은 내가 이 학교 출신이라네.”
“그러셨군요.”
“퇴직금 받은 돈으로 이곳을 인수했네.”
그는 학교 숙직실에서 홀로 지내고 있었다.
재정 상태가 말이 아니라, 내 제안에 따르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늙어서 주책이네.”
“혹시, 운전하십니까?”
“시골에 살려면 운전은 필수 아닌가? 자랑은 아니지만, 버스 기사 경력도 있다네.”
“마침 잘됐네요.”
“뭐가 잘 됐다는 말인가?”
“셔틀버스를 몰 기사분이 필요했거든요. 이곳에서 일할 사람을 데려다주실 기사님이요. 선생님이 맡아줄 수 있겠습니까?”
이춘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곧,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로써 밀랍 양초를 생산할 장소가 확정됐다.
* * *
난 곧장 효민사로 향했다.
지장사 주지 스님이 추천해준 사찰이었다.
이곳을 시작으로, 더 많은 곳에 밀랍 양초를 공급할 계획이었다.
효민사는 지장사와 달리 산 입구에 있었다.
한결 수월했다. 남자 스님도 반가웠다.
사무국부터 들렀다.
귀여운 동자 스님이 주지 스님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효민사 주지는 원명 스님이었다.
후덕한 인상에 기분파라는 소문이 있었다.
“김덕명이라고 합니다.”
“원명이라고 합니다.”
“지장사 스님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했다.
“밀랍 양초를 가져오셨다고요?”
그가 내가 들고 온 종이백을 보며 물었다.
난 종이백에서 밀랍 양초를 꺼냈다.
동자 스님의 형상을 한 밀랍 양초였다.
“양초가 아니라 예술 작품 같습니다.”
주지 스님은 밀랍 양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불을 붙여 봐도 될까요?”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마든지 피워보시지요.”
그는 서랍에서 성냥을 꺼냈다.
고급스러운 재질의 성냥이었다.
밀랍 양초에 불을 붙였다.
그는 놀란 눈으로 밀랍 양초를 바라보았다.
“정말 그을음이 없습니다.”
“네, 잘 알고 계시네요.”
“비염에도 좋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정신을 맑게 해주기도 하죠. 명상하실 때 쓰면 도움이 될 겁니다.”
“정말 그런지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편하실 대로 하시지요.”
그는 밀랍 양초를 들고 어딘가로 향했다.
십 분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그가 나타났다.
“정말 효과가 있습니다."
그는 밀랍 양초에 푹 빠진 사람 같았다.
원명 스님은 밀랍 양초를 공급받고 싶다고 했다.
그가 받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