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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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시상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 밖에서도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오래간만에 하는 삼겹살 파티였다.

회귀 후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했던 삼겹살 파티가 떠올랐다.

그때는 무조건 직진이었다.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곶감 농사로 빚을 다 갚고 양봉을 시작했다. 그리고 첫 번째 결심을 맺었다.

여유롭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꿀 다 팔렸어.”

민석이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민석 옆에 있던 가희도 활짝 웃고 있었다.

아버지는 고기를 굽고 계셨다.

“아들,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어머니가 기분 좋은 말투로 말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이 많았다.

작년에 담근 매실주도 있었다.

“배고프지? 밥 먹자.”

아버지가 고기 한 점을 건넸다. 고기가 꿀보다 달았다.

삼겹살에 매실주를 한잔하니 피로가 한순간에 날아갔다.

즐거운 식사시간이었다. 힘들게 달려온 보람이 느껴졌다.

식사가 끝나고 함께 차를 마셨다.

난 부모님과 멤버들 앞에서 성과를 발표했다.

“3일 만에 3천 개의 꿀이 다 팔렸습니다. 다 함께 일궈낸 성과입니다.”

3천 개 중에 20병은 지장사에서 가져온 벌이 생산한 꿀이었다.

꿀 한 병당 20만 원에 판매했다. 지장사 꿀은 100만 원이었다.

신기하게도 지장사 꿀이 가장 빨리 팔렸다.

재벌 집 맏며느리가 사 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총매출은 6억 1천6백만 원이었다.

사업 예비비로 벌통을 분양받았다.

양봉에 들어가는 장비와 비용도 예비비로 충당했다.

양봉으로 얻은 매출이 순이익이나 마찬가지였다.

곶감 농사 때보다 이익이 많았다.

그때는 번 돈의 대부분을 빚을 갚는 데 썼다.

지금은 빚으로 나갈 돈은 없었다.

사업을 확장하고 앞으로 나갈 일만이 남은 것이다.

“지금까지 개인 사업자로 일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농업 법인으로 전환하려고 합니다.”

“농업 법인으로?”

“네. 농업 법인이요.”

아버지가 물었다.

충분한 자금이 모였다. 이제 농업 법인을 만들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돈을 관리하는 일도 주먹구구식으로 할 수 없었다.

월급과 자금 관리도 체계적으로 해야 했다.

“네 뜻은 알겠다만, 농사라는 게 돈을 벌 때랑 안 벌 때가 차이가 커서.”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돈을 만졌다고 사업을 확장하는 게 옳은 일이냐는 뜻이었다.

망해본 경험이 있기에 나올 수 있는 소리였다.

“그러게, 꿀도 벌써 다 팔았잖아?”

가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양봉도 일 년에 두 번이면 끝이다. 겨울에 곶감 농사가 있다고 해도 빠지는 날들이 존재했다.

또 장마 기간엔 벌들이 채밀을 하지 않는다.

모두가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 농사와 함께 지속 가능한 일을 병행할 생각입니다.”

“그게 무슨 일이냐?”

아버지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를 바라봤다.

“곧, 아시게 될 거예요”

두 가지 미션

“김덕명 씨.”

내 차례였다. 난 심사위원 앞에 섰다.

청년 농업인을 위한 지원 사업이다. 하동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시작했다.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 사무실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저리의 대출 등 금융 관련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연구 장비를 사용하는 일이다. 상품 개발에 필요한 연구 장비를 마음껏 쓸 수 있게 된다.

지원 사업에 선정이 되면 연구소 겸 법인 사무실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농업을 선택하셨네요? 농업 관련 학과를 전공하셨나요?”

“광고홍보를 전공했습니다.”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를 선택하셨네요?”

심사위원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농부가 잘 살아야 나라가 부강해진다고 말씀하셨죠.”

“아버지 말씀 때문에 농업을 선택하게 된 건가요?”

“아버지는 거액의 빚을 진 상태였습니다. 사업을 확장하는 가운데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게 발목을 잡았습니다.”

“저런...”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탄식했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의 짐을 덜어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전화위복이었습니다. 그 빚이 농업인으로 성장할 발판이 됐으니까요. 지역 주민과 함께 곶감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판매하는 과정에서 제가 전공한 마케팅의 기술을 이용했습니다.”

“김덕명 씨는 최악의 상황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네 명의 심사위원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여기 있는 모든 심사위원들이 김덕명 씨를 알고 있습니다.”

처음 전공을 물었던 인물이었다.

“방송을 통해 봤습니다. 천연 발효 곶감부터 토종꿀 토론을 벌였던 일까지. 하동에서 김덕명 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죠.”

“그렇군요.”

“오해는 마세요. 김덕명 씨에게 특혜를 주겠다는 소리는 아니니까요. 지원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허위로 농사를 짓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검증을 위해 사전에 저희는 조사를 합니다. 김덕명 씨에 대한 정보도 그때 알게 된 겁니다.”

사전 조사를 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말처럼 거짓으로 농사를 짓는 이들도 많았다.

투기 목적이나 가짜 농부로 특혜를 받기 위함이었다.

“저희들은 김덕명 씨의 비전이 궁금합니다. 농부 김덕명은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농부를 직업으로 선택하고, 농사의 매력을 알게 됐습니다. 농사는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양봉일도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제 꿈은 저와 같은 청년 농업인을 육성하고 조직하는 일입니다. 지금도 저와 함께 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게 저의 꿈입니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지금은 양봉과 곶감 농사를 짓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침묵하고 있던 여자 심사위원이 물었다.

“현재 계획 중인 일은 밀랍 양초 만드는 일입니다.”

“밀랍 양초요?”

심사위원들은 나를 주목했다.

“양봉 농사는 꿀만 따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벌들은 밀랍도 생산합니다. 전 밀랍을 이용해 양초를 만들 계획입니다.”

“밀랍 양초를 사는 사람이 있나요?”

여자 심사위원이 내 눈을 응시했다.

“제가 주목한 건 종교단체입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대부분의 종교 단체에서는 양초를 사용합니다. 일반인들이 특별한 목적으로 쓰는 것과 다르게 일상적으로 사용하죠. 좋은 제품을 만들면 판로가 개척될 거라고 믿습니다. 현재도 협의 중인 사찰이 하나 있습니다. 그곳을 기반으로 판로를 확장할 계획입니다.”

더는 질문이 없었다.

그들은 내가 가짜 농부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농업에 대한 비전도 확실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사업 모델에 가능성을 봤을 것이다.

무난한 통과가 예상됐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자 심사위원이 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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