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송이 나가고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다.
온통 꿀을 사겠다는 문의였다.
기존의 회원부터 외부의 사람들까지 구매 의사가 넘쳐났다.
개인 구매자뿐만 아니라, 단체들도 많았다.
환경단체부터 친환경 연구모임까지, 생각도 못 한 곳에서 문의가 들어오고 있었다.
반응이 뜨거웠다.
이틀 뒤, 민석과 가희에게 맡긴 작업이 끝났다.
난 ‘지리산 농부들’ 사이트의 문을 열었다.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꿀 판매에 돌입했다.
지속 가능한 일
꿀은 무서운 속도로 팔렸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꿀만 사 가는 게 아니었다.
‘지리산 농부들’ 사이트에는 리뷰뿐만 아니라 응원의 메시지가 가득했다.
-토종벌을 살리는 지리산 농부들 멋있다.
-설날에 이곳에서 곶감도 샀는데, 토종꿀도 구입했어요. 번창하세요.
-좋은 환경에서 딴 토종꿀을 구입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지리산 농부들 파이팅!
* * *
곶감 때와 달리 꿀 판매는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준이었다.
꿀은 곶감보다 손이 덜 갔다.
곶감은 하나하나 포장을 해야 했으며, 박스도 크기에 따라 달랐다.
꿀은 수확할 때부터 유리병에 담았다.
한 병에 1킬로그램으로 모두 규격화돼 있었다.
브랜드를 얻은 뒤, 라벨 작업도 끝난 상태였다.
제품을 포장할 상자도 미리 준비해 두었다.
가희가 만든 밀랍 양초를 넣고 상자에 넣으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양초의 달인이 된 것 같았다.
사은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도 아주 좋았다.
-밀랍 양초가 선물이었다니, 정말 감동입니다.
-꿀보다 더 비싸 보여서 놀랐어요.
-밀랍 양초는 따로 안 파나요?
밀랍 양초를 사겠다는 말까지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뜨거워질 줄은 몰랐다.
민석이 만든 툴로 방문자들의 로그 기록도 분석했다.
분석을 해보니 재미있는 현상을 하나 발견했다.
구입과 상관없이 응원만을 위해 방문한 사람도 있었다.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창고에 쌓아둔 꿀 병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이면 물건이 다 떨어지겠어.”
가희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고작 3일밖에 안 됐는데...”
민석이 말했다. 그 역시 아쉽다는 얼굴이었다.
3일의 기적이었다.
곶감보다 빨리 팔렸다.
기록적인 판매 시간이다.
오후가 지나면 남은 꿀이 모두 소진될 것 같았다.
“모두 수고했어. 저녁에 뭉치자.”
멤버들에게 말한 뒤 외출 준비를 했다.
“어디 가려고?”
3일 내내 함께 작업을 한 터라, 갑작스러운 외출이 궁금할 만도 했다.
“토종벌 협회에 잠시 들를 일이 있어. 양 선생님의 특별 부탁이기도 하고.”
양대호 선생의 이름이 나오자 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양대호에게 도움을 받은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3일 동안 부모님께서도 함께 작업했다.
부모님은 곶감을 할 때보다 더 열심히 일하셨다.
물건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마무리는 우리가 하겠노라며 두 분께 잠시 쉬시라 말씀드렸다.
곶감 때와 달리 흔쾌히 응하셨다.
젊은 우리야 상관없지만, 두 분의 체력은 한계가 있었다.
나와 멤버들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은 얼굴이었다.
꿀을 팔며 가장 기분이 좋은 순간이었다.
“저녁에 다 같이 모이는 거지?”
어머니가 물었다.
“네, 토종벌 협회 일만 마치면 곧장 집으로 올 거예요.”
“차 조심하고.”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부모님의 여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난 차를 타고 모임 장소로 이동했다.
* * *
양대호는 오늘 모임에 내가 빠지지 않기를 당부했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방송 출연이 끝나고 꿀을 파는 데 여념이 없었다.
토종벌 협회와 관련한 소식은 들은 바가 없었다.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여겼다.
모임은 토종벌 협회를 결성하자고 뜻을 모았던 식당에서 이뤄졌다.
“덕명이 왔는가?”
양대호가 나를 반겼다. 소규모 모임일 거라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식당 안에 사람들로 가득했다.
처음 모임을 결성했을 때보다 많은 것 같았다.
그때는 대략 5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두 배는 많아 보였다.
분봉의 마술이 이곳에서도 일어난 모양이었다.
양대호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자리를 잡고 입을 열었다.
“우리 협회가 만들어 진지 오랜 시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이 있었죠. 그 중심에 한 청년이 있습니다. 오늘 모임은 그 청년의 노고를 칭찬하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김덕명 씨, 앞으로 나와 주세요.”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그저 의논을 위한 자리라고만 여겼다. 이런 이벤트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놀란 표정으로 일어서니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보내주었다.
“협회에서 최초로 주는 상입니다. 받으세요.”
양대호는 나에게 상장과 상금을 건넸다.
“제가 무슨 일을 했다고.”
난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양대호는 크게 웃었다.
“여러분 김덕명 씨가 묻네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나고.”
양대호의 말에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저 대신 김덕명 씨에게 설명해 줄 사람 있습니까?”
자리에서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김덕명 씨 때문에 며칠 동안 우리가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난 그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물었다. 진지한 내 모습에 다시 웃음 폭탄이 터졌다.
“김덕명 씨가 방송에서 토종꿀의 우수성을 말하는 바람에 꿀이 다 팔렸지 뭡니까? 묵혀 두었던 꿀까지 전부 나갔어요.”
남자의 말에 식당에 있던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방송의 힘은 무서웠다.
온라인 ‘지리산 농부들’에도 주문이 엄청났지만, 오프라인으로 직접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토종꿀 협회를 통해 농가에 직접 연락을 해 구매를 하기도 한 것이다.
그런 소비자들을 협회 소속의 토종꿀 농가들이 모두 흡수했다. 토종꿀을 만드는 농가들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난 상장을 다시 확인했다.
상 이름이 귀여웠다.
‘꿀벌상’이었다.
꿀벌처럼 열심히 일한 노고를 치하한다고 적혀 있었다.
긴장이 풀리자 내 입에도 미소가 번졌다.
“다들 조용히 하십시다. 꿀벌상의 주인공에게 한 말씀 들어야지요.”
묵혀 뒀던 꿀까지 전부 팔았다는 농부가 말했다.
“갑작스럽게 상을 받게 돼서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묵혀 두었던 이야기를 할 기회였다.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수상 소감을 준비 못 한 관계로 다른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모두가 나를 주목했다.
“제가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혹시, 꿀 말고 다른 부산물도 소화하셨습니까?”
“밀랍이나 화분, 뭐 그런 거 말하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프로폴리스와 로열젤리도 있죠.”
“그건 꿀만큼 인기가 있는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을 저에게 파시겠습니까?”
“산다면 당장 드리지요.”
너도 나도 한목소리로 말했다.
“꿀은 인기가 좋으니, 다른 물건을 제가 사겠습니다.”
“상 받았다고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닌가?”
다들 껄껄거리며 웃었다. 양대호도 특유의 너털웃음을 보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나에게도 때마침 좋은 기회가 되었다.
편안한 분위기에 기분 좋게 물건을 확보할 기회였다.
지금이 아니라고 해도 조만간 할 일이었다.
“제 말은 진심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물건을 다 사고 싶습니다.”
내 말이 농담이 아닌 걸 알고 놀란 이도 있었다.
“물건은 언제든지 말만 하라고요.”
그렇게 이야기를 마쳤을 무렵이었다.
‘꿀벌상’ 만큼이나 놀랄 일이 벌어졌다.
박문호가 등장한 것이다.
그는 몇몇의 일행과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불렀네. 긴장할 거 없어.”
양대호는 토종벌 협회 회원들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웃으며 박문호를 반겼다.
박문호는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적대적인 마음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아시다시피 여기 박회장은 서양벌을 키우고 있습니다.”
양대호가 긴장할 것 없다고 말했지만, 토종벌 협회 회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 방송이 나간 뒤로 박회장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동안 오해도 많고, 묵은 감정이 있는 걸 서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돕기로 했습니다.”
난 박문호를 다시 봤다. 방송국에서 봤을 땐, 속으로 좁쌀 같다고 여겼다.
“박문호 회장님도 토종꿀 인증에 도움을 주시기로 했습니다.”
그제야 긴장했던 회원들의 얼굴이 펴졌다.
“한 말씀 하시죠.”
양대호가 박문호에게 말했다.
“박문호입니다. 그동안 제가 속이 좁았습니다. 토종벌과 토종꿀에 대해서 함부로 한 것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토종벌 협회와 함께 힘을 합치겠습니다.”
회원들의 박수와 갈채가 이어졌다.
“제가 이런 마음을 먹은 이유는 바로 저 친구 때문입니다.”
박문호는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김덕명이라는 농부가 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독일에 보냈던 성분 분석표도 다시 확인했습니다. 모든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박문호는 알려진 사실과 다르게 대인배였다.
이번에 내가 먼저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우리 둘은 사람들 앞에서 손을 잡았다.
모두가 일어나 손뼉을 쳤다.
엄청난 순간을 기리는 모습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