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아에게 전화가 온 것은 기사가 나가고 나흘 뒤였다.
나흘이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최초 보도 후엔 매화 스님이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관심에 반응하지 않았다. 취재도 거부했다.
기자들은 곧 화제를 지장사의 비구니로 전환했다.
지장사 사람들의 동안 외모를 집중 보도한 것이다.
기자들은 젊음의 비결이 꿀이라고 콕 집어 말했다.
지장사 양봉 기술로 만든 꿀이 동안의 비결이란 소리였다.
그 기사가 나가자, 지장사 주지는 기자들의 사찰 출입을 금했다.
취재가 금지당하자 사람들은 지장사의 꿀에 더 관심을 보였다.
화제는 매화 스님에게서 지장사의 비구니들로, 그리고 지장사의 꿀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장사 꿀이 화제의 중심이 됐지만, 사람들은 꿀은 고사하고 벌통 한 번 구경하지 못했다.
배선아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원하는 만큼 취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지장사 사무국의 비구니로부터 김덕명이란 이름을 듣고 말았다.
사무국 직원은 김덕명이라는 사람이 지장사 양봉을 전수 받았노라 말했다.
배선아는 그가 자신이 아는 김덕명일 거라고 확신했다.
지장사에서 하동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녀는 곧장 김덕명에게 전화를 했다.
“저, 기억하세요? 예전에 곶감 농사 취재 나왔던 배선아입니다.”
“네 기자님, 무슨 일이세요?”
“제가 취재 도중에 김덕명 씨 이름을 듣게 돼서요.”
“어디서 제 이름을 들었나요?”
“지장사에서요. 김덕명 씨가 지장사 양봉을 전수받은 농부라고 하던데. 맞나요?”
“맞습니다.”
곧 취재 요청이 올 거라고 예측은 하고 있었다.
다만, 곶감 농사 때 봤던 그 배선아를 다시 볼 줄은 몰랐다.
“혹시, 지금 볼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요.”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기다리죠.”
* * *
배선아 기자가 도착하려면 아직 시간이 있었다.
난 민석과 함께 최종 점검을 했다.
‘지리산 농부들’ 사이트엔 공지를 걸어 놓은 상태였다.
조만간 꿀을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브랜드와 가격은 밝히지 않은 상태였다.
“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너답지 않게.”
“이제 곧 팔게 될 거야. 너무 조급해하지 마.”
민석은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었다.
“너 뭔가 있는 거지?”
민석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있긴, 뭐가 있다고 그래.”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배선아였다.
“민석아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손님이 왔어.”
난 그녀를 반갑게 맞았다.
“오랜만이네요.”
“기자님은 여전하시네요.”
우린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정말 사실인가요?”
그녀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양봉을 한다는 게 사실인지 궁금해서요. 덕명 씨는 곶감 농사를 짓던 사람이잖아요.”
“농부가 곶감 농사만 지으라는 법이 있나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 갑작스러워서요.”
“도시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농부의 관점에서 보면 뭐가 다른가요?”
“곶감 농사를 지을 때도 느꼈지만, 우리 마을은 밀원이 풍부합니다.”
“밀원이 뭐죠?”
“벌이 꿀을 빨아오는 원천을 말합니다. 과일나무에 개화한 꽃부터 야생화까지 밀원이 풍부하죠.”
“그렇게 연결이 되는 거군요. 하동의 풍부한 밀원을 이용해 양봉을 한다. 곶감 농사와 함께할 수 있는 최적의 농사이기도 하네요.”
배선아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풍광을 본 뒤에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내가 왜 양봉을 시작했는지 알겠다는 눈빛이었다.
“그건 알겠는데, 지장사는 어떻게 가게 된 거죠? 혹시, 김꽃님 할머니의 약과를 드신 건 아니겠죠?”
배선아는 두 눈을 모으고 물었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표정이었다.
“말씀대로 김꽃님 할머니의 약과를 먹었습니다.”
“잠시만요. 약과를 먹고 매화 스님을 알게 된 거 아니겠죠?”
“기자 안 하고 점쟁이 해도 먹고 살겠어요. 전부 맞추셨네요.”
“그게 정말 사실인가요? 신기하네요.”
물론, 계획적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양봉을 배우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지만.
“김덕명 씨가 지장사 양봉의 유일한 전수자라고 들었어요.”
“종교인이 아닌 사람 중에서겠죠. 제가 양봉을 배우기 전까지 매화 스님이 유일한 전수자였습니다.”
“네,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에요.”
배선아는 웃으며 답했다. 그녀는 수첩을 꺼내 메모한 내용을 살폈다.
“지장사 벌도 소유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정보도 얻으셨군요. 맞습니다.”
“그 과정을 알 수 있을까요? 덕명 씨가 지장사에서 양봉을 배우게 된 모든 과정을요.”
기자에게 지장사에 들어간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했다.
불필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동굴에서의 며칠은 말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꼭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지장사 이야기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양봉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다고요?”
배선아의 눈이 번쩍였다. 그녀는 곶감을 만들 때도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네, 마을 사람들에게 벌통을 분양했습니다. 과일나무 수분도 돕고, 토종벌도 살리는 일입니다.”
그녀가 관심을 보였다.
지장사의 양봉을 전수 받은 사람이 마을 사람들과 합심해 벌을 키운다는 이야기에 솔깃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벌을 키우는지 구경할 수 있나요?”
“따라오시죠.”
난 그녀와 함께 마을 한 바퀴 돌았다.
집집마다 벌통이 놓여 있었다. 벌들이 나무에 핀 꽃을 옮겨 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연신 셔터를 눌렀다.
나와 인사를 나누는 마을 사람들도 사진에 담았다.
“김덕명 씨, 정말 대단하네요. 곶감 농사를 할 때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에요. 동네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고 그렇고.”
“그때와 특별히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일이 하나 더 늘어난 것뿐입니다.”
“혹시, 꿀도 생산하셨나요?”
“네, 얼마 전에 수확했습니다.”
“제품을 볼 수 있나요?”
“얼마든지요.”
난 그녀와 함께 창고로 이동했다. 곶감 농사를 지을 때 썼던 창고였다.
“이게 다 몇 개인가요?”
“3000개 정도 됩니다.”
“어마어마한 양이네요.”
꿀 병에 지장사 꿀이란 라벨이 붙어 있었다.
“이름이 지장사 꿀이네요.”
“지장사에 허락을 받았습니다.”
정확한 이름은 지장사 양봉 전수자의 꿀이었다.
줄어서 지장사 꿀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건 이름이 좀 다르네요.”
지장사에서 가져온 벌통에서 딴 꿀이었다.
정확히 스무 병이 나왔다.
그것엔 지장사 감로꿀이란 이름을 달았다.
“이것들도 전부 찍어도 되나요?”
“네, 좋을 대로 하시죠.”
사진을 다 찍고 난 뒤, 배선아 기자가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뭐가 이상하죠?”
“아직 판매를 안 한 것 같아서요.”
“곧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었습니다.”
“지금 지장사 꿀을 노리는 사람들 많은 거 아시죠?”
그녀가 여우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시겠어요?”
어떤 뜻으로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제품 홍보라도 해주시겠단 말입니까?”
“기사가 도움이 된다면 홍보가 될 수 있겠죠.”
그녀의 말대로였다.
난 지장사의 꿀이 대중에 알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행동을 개시하려던 순간이었다.
우연찮게도 그녀가 먼저 날 찾아왔다.
선물이라도 하나 줘야 할 것 같았다.
“배 기자님은 저에게 원하는 게 있습니까?”
“기삿거리가 있으면 항상 저에게 먼저.”
“그런 일이야 얼마든지요.”
다음 날 아침 신문에 기사가 났다.
지장사의 양봉 전수자 김덕명에 관한 것이었다.
기사가 난 뒤에 취재 요청이 쇄도했다.
지장사와 비구니들로 향하던 화제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벌을 키우는 김덕명으로 바뀌어 있었다.
꿀을 팔기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모험 없이는 성장도 없다
“덕명아, 신문 봤니?”
아버지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난 아버지가 보고 있는 신문을 들여다보았다.
지장사 양봉 전수자 김덕명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곶감 농부에서 양봉가로 변신한 이야기가 한 면을 장식했다.
마을 사람과 함께 협력해 양봉을 하는 모습은 상세하게 보도했다.
지장사 양봉을 배운 유일한 농부이자, 마을 살리는 청년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다.
“신문마다 네 이야기가 다 실렸구나.”
아버지는 다른 신문을 펼치며 이야기했다.
부모님에게 보도가 나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예고를 했음에도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