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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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양대호가 마을에 방문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엔 열 명이 넘는 제자들이 있었다. 모두 그에게 양봉을 배운 전문가들이었다.

트럭에 빈 벌통이 가득했다.

양대호는 분봉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가져왔다.

“서로 인사들 하지.”

협회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만났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얼굴이 해맑았다.

양대호처럼 순박한 마음의 소유자들 같았다.

“그럼 작업을 시작해 봅시다.”

그들은 벌통을 관리 중인 농가를 다니며 분봉 작업을 했고, 양대호는 나의 양봉장으로 왔다.

“순수한 토종벌이 살아있다니, 다시 봐도 감회가 새롭네.”

그는 지장사 벌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양대호가 인공 분봉을 할 때, 부모님을 포함해 모든 멤버들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매화 스님도 있었다. 큰 스님은 인공 분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도 처음 접하는 일이었다.

“인공 분봉을 하는 과정에서 벌의 상태를 잘 봐야 한다네. 사람도 집을 옮기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나. 벌들도 마찬가지라네. 최대한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네.”

그는 새로운 벌통에 벌 무리를 넣었다. 그리고 벌통에 미세한 충격을 주었다.

벌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켜보는 우리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벌들은 벌통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회귀 본능이 사라진 듯 보였다.

“지장사 벌은 더 온순한 것 같네.”

양대호가 웃으며 말했다.

분봉 작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매화 스님도 그가 벌을 다루는 모습에 감명을 받은 듯 보였다.

양대호의 제자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분봉 작업만 하지 않았다.

토종벌을 키우는 농가에게 중요한 팁들을 알려주었다.

내가 요청한 사항이기도 했다.

부모님을 포함한 멤버들은 매화 스님에게 교육을 받았다. 벌통을 분양한 농가에겐 자세한 내용을 공유하기 힘들었다.

매화 스님에게 그것까지 부탁할 수 없었다. 수화 통역이란 한계도 있었다.

나 또한 아직 누구를 가르칠 실력은 아니었다.

양대호의 제자들이 그 일을 대신해 주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양대호의 제자들에게 양봉 기술을 배웠다.

벌통을 관리하는 요령과 꿀을 채취하는 법도 배웠다.

“분봉 작업이 모두 끝났습니다.”

양대호의 제자들이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우리 집을 찾았다.

하문 초등학교 자리에서 농촌체험학습장을 운영하는 이춘배 어른이 내게 유리병을 건넸다.

“이거 별거 아니지만 받게.”

이춘배 어르신은 직접 담그신 매실 발효액을 내게 건넸다.

“이걸 왜?”

“받기만 할 수 없지 않는가?”

“괜찮습니다.”

“사양하지 말게.”

다른 사람들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며, 집에서 직접 만든 효소들이며 갖가지 농산물을 들고 들락거렸다.

“정말, 벌통을 받게 될 줄은 몰랐네.”

고맙다는 인사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내 벌통도 생겼으니 더 열심히 벌을 키워 보겠네.”

듣고 싶던 말이었다.

자신의 벌통이 생기는 것만큼 확실한 동기부여는 없었다.

자신의 벌통이니만큼, 전보다 애정을 갖고 벌들을 키우게 될 것이다.

물론 그중 하나인 내 것도 잘 관리해줄 것이고.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다.

* * *

“덕명아, 손님들 모시고 오거라.”

어머니가 아까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계셨다.

곶감 이후에 오랜만에 많은 인원이 모였다.

진수성찬이었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차린 게 없습니다.”

아버지가 양대호에게 말했다.

“차린 게 없다니요. 이렇게 훌륭한 식탁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양대호가 제자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가족과 멤버들도 함께였다.

기분 좋은 저녁 시간이었다.

양대호는 식사를 하며 반주를 들었다. 아버지에게 나에 대한 칭찬을 하며 기분 좋게 웃었다.

제자들에게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회장 직함이 어울리는 남자였다.

그의 얼굴에 홍조가 돌 즈음이었다.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네.”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요청으로 벌을 받은 농가에 양봉 지식을 전해 주었네.”

제자들은 말로만 교육을 한 것이 아니었다. 관련한 내용을 프린트로 나눠주기도 했다.

“꿀을 따는 법을 자세히 알려달라고 해서 그리했네. 그런데 그게 좀 이상해서 말일세.”

“어떤 점이 말입니까?”

“아직 꿀을 따는 시기가 아니지 않은가?

“조만간 꿀을 딸 생각입니다.”

양대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제자들도 모두 얼굴이 굳었다.

“아직 자네가 초보라서 모르나 본데. 토종벌은 일 년에 한 번 밖에 꿀을 따지 못하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토종벌은 서양벌과 달리 일 년에 한 번 밖에 꿀을 따지 못합니다. 긴 장마 기간을 버티기 위해서 식량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꿀을 두 번이나 따겠다는 것인가?”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대체 무슨 방법인가?”

“지장사에서 내려오는 특별한 비법이죠.”

“그런 방법이 있단 말인가?”

양대호의 눈에서 이채가 돌았다. 그의 제자들도 깜짝 놀라 내 입을 주목하고 있었다.

브랜드를 사다

비밀은 ‘벌 밥’에 있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벌을 살리기 위한 방법이었다.

내가 키우는 벌들에게도 벌 밥을 먹일 계획이었다.

지장사 큰 스님이 개발한 벌 밥이었다. 그리하면 수확량이 적은 토종벌이라고 해도 일 년에 두 번 꿀을 딸 수 있었다.

양대호에게 벌 밥을 만들어 꿀을 두 번 수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벌 밥은 지장사에서 내려오는 고유한 비법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무척이나 궁금한 눈치였다. 하지만, 노하우를 쉽게 공개할 순 없었다.

지장사에서 어렵게 얻어온 정보였다.

부모님을 포함한 멤버들에게도 벌 밥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말 것을 당부했다.

독점해야 할 정보였다.

양대호는 마음을 읽었는지, 더 캐묻지는 않았다. 명인다운 태도였다. 그와 함께 온 제자들도 스승의 뜻에 따랐다.

각자의 노하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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