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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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양대호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토종벌 협회 회장이란 명패가 눈에 들어왔다.

“어서 오게.”

양대호는 기분 좋은 얼굴로 반겼다.

“벌통을 200개나 분양받았다고 들었네.”

“맞습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대단하구먼.”

“그때 말씀드린 친환경 인증을 시험적으로 하는 중입니다.”

“아니 벌써 그 일을 시작했다는 말인가?”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추진력 한번 대단하네.”

“현재 친환경으로 벌을 키우는 농가가 100가구 정도 됩니다.”

“100가구나 된다니, 대단하네.”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늘려야겠죠.”

“적극 찬성하네.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게 토종벌을 살리고, 환경도 살리는 일이니 말이야.”

양대호 다운 답변이었다. 벌을 이용해 꿀만 딴다고 했다면, 그는 협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봉과 자연을 살리는 내용이 결합됐기에 지지하고 나섰다.

난 그처럼 환경운동가는 아니었다. 친환경은 광고 기획자의 관점에서 시작되었다.

농업으로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친환경은 필수였다.

“그때도 말했지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돕겠네.”

양대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무슨 일인가? 말만 하게.”

“분봉을 도와주십시오.”

“분봉?”

분봉은 꿀의 채밀이 왕성한 봄에 이뤄진다. 동면하던 벌들이 꿀을 채밀하기 시작하면서, 여왕벌이 낳는 일벌의 양도 늘어난다.

많을 땐, 하루에 3,000개를 산란하기도 한다. 식구들이 늘면 벌통이 좁아진다.

집이 비좁아지면 일벌들은 이사를 결심한다. 무작정 떠나는 것은 아니다.

로열젤리를 생산해 차기 여왕벌을 키우고, 이 차기 여왕벌이 깨어나기 전에 기존의 여왕벌과 함께 이사를 간다.

분봉을 한 후엔 일시적으로 일벌의 양이 줄지만, 곧 여왕벌의 엄청난 산란으로 안정을 찾게 된다.

벌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개체를 두 배로 늘린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분봉이라고 부른다.

“분봉을 돕다니,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게.”

“제가 토종벌을 분양한 농가는 100가구입니다. 벌통을 가져가는 대가로 농약을 사용하지 않기로 약조했습니다. 전 그들에게 벌통을 하나씩 선물할까 합니다”

양대호의 눈이 반짝였다. 내 마음을 읽은 눈빛이었다.

“분봉을 통해 벌통을 늘리고 토종벌을 선물할 생각이군.”

“정확하십니다.”

“그런 일이라면 내가 얼마든지 도울 수 있네. 손이 많이 갈 수도 있니 사람들을 모아 보겠네.”

“그래 주신다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양대호는 그냥 명인이 된 사람이 아니었다.

황유신에게 곶감 발효기술이 있듯이 그에겐 분봉의 기술이 있었다.

분봉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자연 분봉과 인공 분봉이다.

자연 분봉은 벌들이 스스로 분봉을 하는 것을 말한다.

벌들이 스스로 이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인간의 개입은 최소화하는 것이다.

분봉을 나온 벌들은 새로운 집을 찾는 과정에서 나뭇가지에 뭉쳐 있다. 그때 인간이 부드러운 솔 등을 이용해 벌들을 새집에 넣는다.

이 자연 분봉은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아무리 새집에 벌들을 넣어 줬다고 해도 도망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인공 분봉은 자연 분봉에 비해 성공 확률이 높았다.

분봉 과정에서 처음부터 인간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양대호는 인공 분봉의 대가였다.

그는 인공적으로 벌을 분봉한 뒤, 회귀 본능을 없애는 법을 알고 있었다.

벌들이 새롭게 이주한 공간에 미세한 충격을 주어 회귀 본능을 없애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일이었다.

양대호의 도움이 필요했다.

“분봉을 통해 벌을 선물하다니 좋은 아이디어야.”

양대호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가 큰일을 하는데 그냥 볼 수는 없지. 벌통은 협회 차원에서 제공을 하겠네.”

“아닙니다.”

“이건 회장으로서 하는 말일세. 거절하지 말게.”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시험적으로 벌통을 나눠준 농가에선 내 벌통을 관리하고 있었다.

분봉을 통해 그들에게 벌을 나눠주는 건, 동기부여 차원이었다.

들어가는 비용은 벌통을 사는 것밖에 없었다.

그 비용조차 들어가지 않게 생겼다.

생각도 못 한 행운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양대호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양대호는 주저하고 있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지장사에서 가져온 벌을 내가 직접 분봉해도 되겠나?”

간절한 눈빛이었다.

“문제없습니다. 선생님께서 분봉을 맡아 주십시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말했다.

“오해는 말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분봉을 했다고, 한통 달라는 소리는 아니란 말일세.”

그의 마음을 읽었다.

“내년이면 어떻습니까?”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게 빨리 괜찮겠나?”

지장사 벌을 독점하는 기간은 올해까지면 충분했다.

난 꿀만 생산할 계획은 없었다. 가공 상품을 만들 계획이었다.

꿀과 갖가지 부산물이 더 필요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를 위한 포석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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