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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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왔다. 양봉 교육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엔 벌을 무서워했던 어머니도 이젠 익숙한 솜씨로 벌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전부 매화 스님의 교육 덕분이었다.

교육을 마치고 난 민석과 이야기를 나눴다.

“민석아, 지금부터는 교육 일정을 잡지 말아줘.”

“준비하고 있었지. 오늘부로 모든 교육은 종료될 예정이야.”

지장사로 떠나기 전에 이미 부탁했던 말이기도 했다. 그가 잊지 않고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할 일은 뭐야?”

“토종벌 협회 사이트를 개설하는 일이야.”

사이트를 만든다고 해도 모든 걸 한꺼번에 할 순 없었다.

토종벌을 이용해 친환경 인증 시스템은 아직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토종벌 농가를 한데 묶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했다.

“커뮤니티 개념의 사이트라고 생각하고 작업하면 될 거야. 토종벌 농가를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사이트.”

“결제 시스템은 없는 거지?”

‘지리산 농부들’ 사이트를 개설할 때도 애를 먹었던 지점이었다.

대형 쇼핑몰에서도 처리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때 그는 그걸 혼자 감당했다.

“아직은 필요 없어. 그리고 나중에 일이 커지면 개발자를 하나 더 구해줄게.”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리고, 이것도 사이트 안에 올려줘.”

난 민석에게 노트를 건넸다. 그는 노트를 보자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이런 걸 언제 다 기록한 거야?”

노트 안에는 토종벌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양봉 교육을 하며 기록한 내용이었다. 그 역시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봉 등 아직 배우지 않은 것도 많았다.

양대호에게 받은 자료를 취합한 것이었다.

“양봉 전문가에게 의견을 좀 구했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아. 업데이트할 공간을 남겨줘.”

국내에는 아직 양봉에 대한 자료가 부족했다. 사이트는 커뮤니티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전문 지식의 교류가 이뤄져야 힘이 더 커질 수 있었다.

“좋아. 그런데 이건 뭐야?”

모든 자료를 한꺼번에 공개할 생각은 없었다. 특히, 매화 스님의 비법은 우리만의 고유 기술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건 공개하지 말아야 할 내용이야.”

난 매스컴을 통해 황유신의 곶감 기술을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고 바로 곶감 발효액을 만드는 법을 공개한 것은 아니었다.

황유신 선생의 교육을 통해 공개한다고 말했다. 시간을 번 것이다.

매화 스님의 비법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공개할 내용은 아니었다.

민석은 내가 어떤 뜻으로 이야기했는지 이해했다.

“좋아, 바로 작업에 들어갈게.”

민석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그날 저녁 양대호에게 연락이 왔다.

“이틀 뒤에 모임을 갖기로 했네. 하루라도 빨라야 하는데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네.”

“늦긴요. 기대한 것보다 훨씬 빠르십니다.”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일 처리가 빠른 사람이었다.

* * *

이틀 뒤, 양대호의 토종벌 농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모두 양대호에게 예의를 갖췄다.

그가 토종벌 농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음이 잘 느껴졌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인근에 있는 큰 식당을 잡았다.

50명이 넘는 농부들이 식당을 가득 메웠다.

양대호 선생이 앞으로 나갔다.

“오늘 여러분을 모신 건, 이 친구를 소개하고 싶어서입니다.”

양대호가 나를 불렀다. 난 사람들의 앞에 섰다.

“청년 농부 김덕명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처럼 토종벌을 키웁니다.”

양대호는 자리로 돌아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선 건, 여러분과 힘을 합치기 위해서입니다. 토종벌을 키우는 농가의 상황은 열악합니다. 심지어 토종꿀이란 말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마땅한 기준이 없어서입니다. 관련 기관이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나서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말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가장 힘든 점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토종벌 농가의 모임은 인터넷 카페 수준이었다. 조직화 되지 않은 상태였다.

토종벌을 키우는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 있었다.

“토종벌 협회에서 시작해 영농조합으로 가야 합니다.”

농부들은 내 말을 경청했다. 토종벌 협회를 구성해 토종꿀을 인증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방안을 이야기했다.

“말은 좋은데 그걸 다 누가 한단 말입니까?”

농부 중 하나 나에게 물었다.

“그 일은 제가 합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흩어져 있는 토종벌 농가를 하나로 모으는 일이었다.

난 사이트를 개설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방안에 대해서 말했다.

협회를 만들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교육과 정보의 교류 그리고 토종벌을 분양하는 일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그런 큰 뜻이 있다면 우리도 돕겠습니다.”

나에게 질문을 했던 남자가 말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농부들과 하나로 연결되길 희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의 벌을 분양받고 싶습니다. 한통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얼마든지 분양해 드리겠습니다.”

모두 한 입으로 말했다.

계획했던 벌통을 모두 확보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양봉장에 벌통이 모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던 건, 민석의 업무처리 능력 때문이었다.

사이트를 부탁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윤곽이 드러났다.

“진도 한번 빠르다.”

“지리산 농부들 사이트보다 스펙이 작으니까.”

민석이 웃으며 말했다. 나에게 가장 급한 건, 벌집을 분양받는 일이었다.

토종꿀인증과 판매 등의 민감한 부분은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벌통 분양은 곧장 실행할 수 있었다.

토종벌 농가도 이익이 되는 일이었다. 한 통에 15만 원이었다. 100통이면 1500만 원이다.

곶감 농사 때 비축해둔 여유자금이 있었다. 충분히 감당할 수준이었다.

“오늘은 몇 통이라고 했지?”

“다 합치면 서른 개를 좀 넘을 거야.”

“많기도 하다.”

“차량은 준비됐지?”

“당장 출발할 수도 있어.”

지장사에도 무진동 차를 이용해 벌통을 운반했다. 그때는 워낙 소량이라 승합차면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규모가 커졌다.

이번에 준비한 무진동 차는 경주마도 이동시킬 수 있는 트럭이었다.

수송 작전이나 다름없었다. 토종벌들은 서양벌에 비해 민감한 편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도망치기도 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동을 해야 했다.

오늘 옮겨야 할 벌통도 무사히 양봉장에 도착했다.

100통에 가까운 벌통이 양봉장을 가득 채울 무렵이었다.

난 벌통으로 가득 찬 양봉장을 보며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뭘 그렇게 보고 있냐?”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였다.

“네가 일을 크게 벌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벌통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때문에 더 일만 늘었죠?”

최근엔 부모님과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다. 꽃피는 봄이 오기 전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야. 내 인생에 이렇게 행복한 적도 없다.”

흐뭇한 표정에 진심이 느껴졌다. 곶감 농사를 지을 때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던 아버지였다.

“올해 농사 계획은 어떠세요?”

“그러고 보니 너에게 말을 안 했구나. 올해 농사 계획을 수정했다.”

“계획을 수정하셨다고요?”

아버지는 미소를 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양봉을 배우면서 재미를 느꼈다.”

아버지는 나에게 농사 계획을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상의한 일이라고 했다.

원래 계획했던 양상추 농사는 보류하고 양봉 일을 돕겠다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엔 양봉을 하고, 겨울엔 곶감 농사를 짓는 계획이었다.

내가 원하던 그림이었다.

강요할 수 없는 일이기에 말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아버지는 가족이 하나로 뭉치길 원했다.

나 역시 그랬다.

“무슨 말을 그리 정답게 해요?”

어머니였다. 뒤에 가희와 민석도 있었다.

우린 평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머니의 바구니에서 찐빵과 식혜가 나왔다.

“우리도 좀 끼워 달라고.”

어머니가 찐빵을 주며 말했다.

가족과 보내는 즐거운 한때였다.

“그런데 매화 스님은?”

난 가희를 보며 물었다.

“오늘은 지장사에 간다고 했어. 민석이 입구까지 데려다 줬고.”

“오늘이 그날이구나.”

그녀는 틈틈이 지장사에 올라 자신의 벌을 돌보고 있었다.

“이제 끝난 거지?”

민석이 양봉장 가득한 벌통을 보며 물었다. 벌통을 옮기는 일은 거의 내가 담당했다.

그와 다른 사람들도 나를 도왔다.

고생 좀 했다는 얼굴이다.

“좀 더 분양을 받을 생각이야.”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더 놓을 자리도 없는데.”

민석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도 매화 스님에게 배웠잖아? 토종벌은 자리를 좀 띄워 줘야 한다는 거. 다닥다닥 붙여 놓으면 안 된다고.”

토종벌의 배타적인 성향 때문에 가까이 붙여 둬선 안 됐다.

그의 말대로 양봉장엔 벌통을 더 놓을 자리도 없었다.

“몇 통을 더 놓을 생각이냐?”

아버지가 물었다. 다들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백통 더.”

사람들의 얼굴이 찐빵처럼 하얗게 변했다.

단순한 욕심이 아니었다. 필요에 따른 일이었다.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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