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지장사에서 가희와 면화 스님이 단둘이 방에 앉아 있었다.
그녀들은 아랫목에 앉아 군밤을 까먹고 있었다.
“그런데 다들 어디에 간 거야?”
가희가 군밤을 먹으며 면화 스님에게 물었다.
“오늘 수행하는 날이에요. 아마 새벽까지 할걸요.”
“참 스님도 힘든 직업이다. 그런데 너는 안 가?”
“전 아직 배움이 부족하대요.”
가희와 면화 스님은 지장사의 룸메이트였다. 지장사 최연소자이자 출가 한지 몇 해 안 된 면화와 가희를 짝지어 준 것이다.
가희는 면화 스님을 통해 지장사의 모든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면화 스님은 군밤을 먹다 가희에게 물었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녀가 덕명의 이야기를 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척했다. 걱정돼 미치겠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괜한 자존심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 동굴에 가면 사람들이 다들 미쳐 나온다고 했어요.”
가희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덕명을 뜯어말리려고도 했다. 하지만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게 더 짜증 나고 힘들었다. 지장사에 처음 왔을 땐, 교도소에 갇힌 기분이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이 떠오를 정도였다.
탈출해서 자유의 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차츰 사찰의 생활이 익숙해졌다. 비누와 양초를 만들며 재미까지 느끼고 있었다.
문제는 김덕명이었다. 아니 매화였다. 가르쳐 줄 거면 곱게 가르쳐 줄 것이지, 호러영화에 등장하는 동굴로 떠나라고 한 것이다.
“언니는 걱정이 하나도 안 되나 봐요. 덕명이 오빠랑 가까운 사이잖아요?”
“걱정은 무슨 걱정. 동굴에서 얼어 죽든 말든 난 관심 없어.”
“난 둘이 사귀는 줄 알았는데.”
“사귄다고? 누가 그런 말을 해?”
가희가 버럭하는 순간이었다. 문이 열리고 주지인 연화가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그녀는 가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가희 씨.”
“네?”
가희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혹시 덕명 씨에게 연락 온 거 없나요?”
“아니요. 연락 없었는데 왜 그러시죠?”
“아니네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지 연화는 한숨을 쉬고 밖으로 나갔다.
면화는 주지가 나간 것을 확인하고 가희에게 얼굴을 돌렸다.
“무슨 일이 생겼나요?”
가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 *
난 핸드폰의 보조 배터리를 뺐다 끼우기를 반복했다. 분명 올 때 충전을 다 해서 온 것들이었다.
지금은 켜지지도 않았다. 추위 때문인지 완전히 방전된 모양이었다.
‘주지 스님하고 한 약속 지키기는 다 틀렸네.’
약속을 떠나 통신이 완전히 끊겼다. 이렇게 되면 2박 3일 동안 고립된 상태로 있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난 침낭으로 들어갔다.
산속에서 비박을 하는 건, 군대 이후로 처음이었다.
침낭 속에서 밀랍 양초가 타들어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밤에도 벌통에서 벌이 나와 볼일을 보기도 했다.
순번을 정해 화장실을 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확실히 다른 곤충에 비해 영민하고 청결했다.
그 모습을 보다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벌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양봉은 다른 축산업과 확실히 결이 달랐다.
아버지가 소를 키웠기에 더 피부로 느껴졌다.
소를 키운다는 건, 식용의 가축을 키운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축들을 가두고 통제하는 것이다. 심지어 출산에 관한 것까지 인간이 개입했다.
벌을 소나 돼지처럼 키워서 먹지 않는다. 그들의 노동력으로 채취한 꿀과 기타 부산물을 채취할 뿐이다.
그것도 일정 부분만 채취해야 했다. 꿀은 벌의 식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정 부분을 남겨 두지 않으면 벌은 굶어 죽는다.
양봉을 한다는 건, 벌과 공생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었다.
가두고 키우는 가축과 완벽하게 달랐다.
매화가 벌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작은 미물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면 키울 수 없었다.
생각의 끝에 스르르 눈이 감겼다.
‘이런 곳에서도 잠은 오는구나.’
순식간에 깊은 잠이 들었다.
* * *
몸을 뒤척이다 눈을 떴다.
아직 밀랍 양초가 타고 있었다.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포착됐다.
동굴 안에 벌이 가득했다.
벌통에서 전부 빠져나온 것 같았다.
소름이 돋았다.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수만 어쩌면 수백만 마리의 벌이 날 응시하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 왜 밖으로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녀석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가 싶더니 눈덩이처럼 뭉치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어떤 형상을 만들어냈다.
기이했다.
‘사람의 모습이다.’
처음엔 경황이 없어서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벌떼가 부유하며 만들어 낸 것은 분명 사람의 형상이었다.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낸 것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사람처럼 걷기도 했다.
그것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밀랍 양초가 타들어 갔다.
노란 불빛에 비친 모습이 괴기스러워 보였다.
점점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였다.
그때 매화 스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벌이 밖으로 나와도 절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허구와 실화 사이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벌을 몸에 뒤집어쓴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기네스북에 도전한다거나, 기상천외한 이벤트로 벌이는 일종의 쇼였다.
지금 내가 그 쇼맨이 됐다.
사람 형상의 벌떼가 내 몸과 하나가 됐다.
내 몸이 완전히 점령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얼굴을 스멀스멀 기어다는 벌들이 눈코입까지 덮어버렸으니 말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몸부림치는 게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매화 스님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벌이 밖으로 나와도 절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녀도 나와 같은 일을 겪었는지 몰랐다. 자세한 내용을 말하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이 연출될지 알고 있었기에 내게 귀띔을 했다고 여겼다.
난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기본적으로 꿀벌은 말벌과 달리 공격적인 성향을 갖지 않는다. 독침은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침을 쏘는 순간 내장 기관이 빠져나와 사망한다. 벌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다만, 벌들이 피부를 타고 이동하는 촉감은 좋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것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이런 난감한 일도 참고 견디면 익숙해지는 모양이다.
이대로 잠들어도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시험이 기다릴 줄은 예상 못 했지만, 가볍게 넘길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때였다.
‘이게 뭐지?’
그 순간 머릿속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뭐지? 나잖아.’
분명 눈을 감고 있었다. 스크린에 불이 들어오듯 내 얼굴이 보였다.
회귀 전 내 모습이었다.
과거의 모습을 마주하자 정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난 실패한 아버지를 바라보며 원망하고 있었다. 광고주들의 비위를 맞추지 못해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였다.
최악의 상황에서 허덕이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미쳐버렸구나.’
주지의 말을 떠올렸다.
폐인이 되거나 미쳐버렸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수행하는 비구니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을 터였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자신의 과거를 다시 보는 순간 미쳐 버린 것이다.
이 동굴엔 사람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어떤 힘이 존재했다.
벌은 그 힘에 이용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리산의 신령한 기운이 사람의 마음을 들쑤시는 것인지, 동굴 자체에 기괴한 힘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상대의 가장 약한 고리를 노리고 있다는 점이다.
‘볼수록 재미난 곳이네.’
눈앞에서 끊임없이 내 과거가 투영되고 있었다.
난 영화처럼 보이는 과거의 장면을 조용히 응시했다.
크게 동요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과거는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나간 일일 뿐이었다.
내가 개척해 나갈 미래만이 의미가 있었다.
점점 따분해 지고 있었다.
‘그만해라.’
날 둘러싸고 있는 기운도 내 마음을 읽었던 것 같다. 음습한 기운이 주변을 휘감았다.
전업 투자자의 주식 창처럼, 수많은 화면이 나의 실패담을 방영했다.
혼을 뺄 작정인 것 같았다.
난 혼이 빠지기는 고사하고 하품이 절로 나왔다.
크게 하품을 하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온몸에 가득했던 벌들이 보이지 않았다. 요사스러운 화면도 사라지고 없었다.
찬란한 빛이 날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벌써 날이 밝았다고?’
동굴 안에 아침 햇살이 가득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벌통을 향해 다가갔다.
지금은 장비를 착용할 마음이 없었다.
허구인지 실화인지 모르겠지만, 방금 전까지 벌에 둘러싸여 있었다.
경험은 두려움을 잊게 만든다.
난 거침없이 벌통의 뚜껑을 열었다. 벌들은 벌통 안에 얌전히 있었다.
동그랗게 뭉쳐서 잠을 자는 듯 보였다.
온순한 강아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잘도 자네.”
벌들은 쿨쿨 자고 있었지만, 나의 하루는 이제 시작됐다.
‘이제 귀신을 만나도 무섭지 않겠어.’
난 벌통 주변을 청소하면서 생각했다. 벌이 나에게 해코지를 했다고 여기지 않았다.
초자연적인 힘이 사람을 농락한다고 생각했다.
말로만 듣던, 기가 센 공간 같았다.
오래전 무당들이 신을 찾던 곳인지도 몰랐다.
‘이 정도면 아주 깨끗해.’
벌은 청결한 곤충이었다. 주변 환경도 신경 써주고 싶었다.
동굴 청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밤새 뒤척였더니 배가 고팠다.
샘터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청소하며 품에 넣어 두었던 주먹밥이었다. 깡깡 얼었던 것이 체온에 녹아 먹기 좋게 변해 있었다.
밥을 먹고 물을 떠서 동굴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함박꽃처럼 커다란 눈덩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