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난 방송국 스튜디오를 찾았다.
최한별 작가는 나에게 안경을 쓴 마른 남자를 소개했다.
“이쪽은 홍병수 피디님이세요.”
“반갑습니다. 김덕명이라고 합니다.”
“출연 협조 감사드립니다. 작가님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 네.”
난 대답과 동시에 최한별 작가를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사인을 보냈다. 피디에게도 공유가 된 모양이었다.
방송 준비는 이제 끝났다.
“곧, 촬영 들어갑니다.”
조연출이 주변을 정리했다. 스튜디오 안에 테이블이 설치돼 있었다. 그 테이블에 출연자들이 앉아 토론을 벌이는 형식이었다.
대부분 식품에 관련한 전문가들이었다. 그중에 바람잡이 연예인도 한 명 끼어 있었다. 메인 엠씨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걸 은연중에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피디의 큐사인이 들어오고 엠씨가 입을 열었다.
“민족의 명절 설날이 다가오고 있죠. 설날 하면 빠질 수 없는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곶감입니다. 오늘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곶감이었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다. 곶감에서 검출되는 이산화황이 문제인 것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곶감에서 이산화황이 검출됐다.
엠씨는 자료 화면을 보며 이산화황 문제를 거론했다.
“이 정도는 인체에 문제가 없다고 말은 하지만 그래도 꺼려지네요.”
바람잡이 연예인이 말했다.
전문가와 바람잡이가 문제에 불을 지폈다.
“유황오리는 몸에 좋잖아요. 그것도 황이잖아요. 그건 문제가 없는 건가요?”
“오리에게 황 성분이 들어간 사료를 주는 겁니다. 먹고 소화되는 과정에서 황 성분이 사라지죠. 곶감은 황을 태워서 훈증하는 거고요. 엄연히 다른 거죠.”
“아. 그런 차이가 있는 거군요.”
“그런데 그런 황 처리 없이도 곶감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아니 그런 분이 계세요?”
그때 엠씨가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이기도 하죠. 청년 농부 김덕명 씨 모시겠습니다.”
내 차례였다. 나도 카메라 앵글 안에 들어왔다. 곧 피디가 엠씨에게 사인을 줬다.
“이렇게 젊은 농부가 있는 게 놀랍습니다.”
어딜 가든 자기소개의 과정은 있게 마련이다. 엠씨가 나 대신 소개해 주었다. 포장도 아주 그럴싸했다.
소개가 끝나고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출연자들이 나에게 묻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유황훈증을 하는 농가들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출연자 중 바람잡이가 물었다.
그건 네 생각이 문제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는 사물의 단면만 보고 아무렇게 말을 내뱉는 인간이었다.
내가 방송에 출연하고 싶었던 것도 이런 종류의 인간 때문이었다.
“그분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가 아니라고요?”
그는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책의 문제입니다. 이산화황의 기준치가 유럽보다 100배나 높습니다. 지금이라도 바꿔야 할 문제입니다.”
“당장 바꾸기엔 시간과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겠죠.”
엠씨가 받아치는 멘트를 했다. 이 대목에서 내 이야기를 하겠다고 주문을 했다. 작가도 내게 사인을 보냈다.
“저에게 그 대안이 있습니다.”
“대안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죠?”
난 카메라를 정면을 바라보고 말했다.
“전 곶감의 명인 황유신 선생님에게 곶감을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방법을 사람들과 공유하려 합니다.”
“아니 그게 사실입니까?”
사회자는 놀란 표정으로 대꾸했다. 엠씨는 리액션이 좋았다. 그 덕에 시청률이 높았다.
“배움을 원하는 농부들이 있다면 공평하게 기회를 줄 계획입니다.”
“그렇게 되면 너도나도 그 방법으로 곶감을 만들 텐데. 그래도 될까요?”
“그게 좋은 거 아닌가요?”
난 출연자들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손해를 보는 거잖아요.”
바람잡이 연예인이 식상한 답을 내놓았다. 내가 원하던 답변이기도 했다.
“제 손해를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소비자들의 손해를 말하는 건가요?”
“그거야 그쪽이 손해죠. 좋은 제품을 만들어 놓고 비법까지 공개한다니.”
“전 모든 제품을 소비자의 입장에서 만듭니다. 저 비법이 널리 퍼져 나간다면, 곶감에 이산화황이 들어갈 이유도 없게 되겠죠. 그건 누구의 손해도 아닙니다.”
바람잡이 연예인이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다른 패널들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때 엠씨가 센스 좋게 나섰다.
“정말 소비자를 위하는 마음이네요.”
“네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씀하시죠?”
“김덕명 씨의 곶감은 언제 맛볼 수 있을까요?”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대목에 이르렀다.
“다음 주부터 인터넷을 통해 판매할 계획입니다. 아마도 이 방송이 나가는 시점이겠네요.”
“정말 기대가 큽니다. 저도 그 맛을 보고 싶습니다.”
패널들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본격적인 판매에 앞서 준비 작업이 모두 끝났다.
이제 곶감을 판매하는 일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