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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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상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가는 길에 생각해보니, 그와 단둘이 대면한 적이 거의 없었다. 스승과 제자의 오붓한 만남을 예상했다.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난 음료수 박스를 황정아 여사에게 전했다.

그녀는 특유의 미소로 날 반겼다.

“이걸 어쩌나 오빠가 전화기를 놓고 나가서.”

“제가 나가서 찾아보겠습니다.”

황유신은 언제나 바빴다. 감나무밭을 지나 곶감 덕장까지 갔지만 보이지 않았다.

산나물을 캐던 언덕에 올라가서야 그와 마주칠 수 있었다.

“선생님 저 왔어요.”

그가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네가 여기까지 오다니. 이번엔 나에게서 뭘 또 빼가려는 거냐?”

그는 호랑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빼가다니요?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우린 집까지 함께 걸었다. 올해 전국적으로 곶감 농사가 잘 안 된 이야기며 최근 근황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집에 도착했다.

황정아 여사님은 우릴 보자 차를 준비했다.

“그나저나 넌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 정보가 있으면 나에게도 귀띔을 해줬어야지.”

“그러다 농사 망치면 저만 원망하셨을 거잖아요.”

“그건 그때 가서 하는 거고요. 이놈아.”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제자와의 재회가 무척 반가운 것 같았다.

“그래, 상의할 게 뭐냐?”

“저 내일 방송에 나갑니다.”

“역시 재주가 좋구나. 방송까지 나가고 말이다. 좋은 일이야.”

“꼭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제가 만든 곶감이 너무 좋은 평가를 받게 되니까요.”

“좋은 평가를 받으면 좋은 게 아니냐?”

“전국의 곶감 농부들을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난 그에게 <식품 검증단>이란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했다. 유황훈증을 안 한 내 곶감은 다른 것들에 비해 월등하다는 평을 받게 될 사실을 말했다.

“네가 원하는 게 뭐냐?”

황유신은 이해력이 빠른 사람이었다. 내가 어떤 의미로 말하고 있는지 간파하고 있는 듯했다.

이럴 땐 돌직구를 던지라고 스승에게 배웠다.

“선생님의 비법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황유신의 방법은 무조건 옳았다. 그렇다고 다른 농가가 다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식약청이 정한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잘못됐다고 말하는 프로그램이 이상한 것이다.

난 이 무모한 싸움의 소모품이 되고 싶지 않았다.

기왕 방송 출연을 할 거면 차라리 하나의 상징이 되고 싶었다.

소비자를 위하는 진정한 농부가 되는 것이다.

성공의 발판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공유한다는 게 무슨 뜻이냐?”

황유신 선생은 진지하게 물었다.

“방송에 나가 선생님의 비법을 함부로 공개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전 교육 시스템을 만들고 싶습니다.”

“교육?”

“지식을 전수받기 원하는 사람에게 기술을 알려 주고 싶습니다. 제가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것처럼.”

“그 교육이란 건 누가 한다는 거냐?”

“그걸 선생님께 상의드리려고 합니다.”

“혹시 그 사람이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 아니더냐?”

“아마 그럴 겁니다.”

“상주 사는 황유신이란 사람 같은데. 혹시 그 사람이 아니니?”

“선생님 말씀대로 그분이 맞습니다.”

“맹랑한 놈 같으니라고.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그날 밤까지 난 선생님을 설득했다. 황유신은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치는 구석이 있었다.

말로는 거절했지만, 마음에서 갈등하고 있음이 얼굴로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난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그는 이번 한 번뿐이라고 말했지만, 이 일에 애정을 갖고 임할 게 느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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