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 (24/205)

12월 초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맘때면 이미 덕장에 말리고 있어야 했다. 우리 물건은 말리기는커녕 껍질도 까지 않고 있었다.

가희는 매일 나에게 감을 깎아야 할 때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같았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그럼 대체 언제 만들 건데?”

“때가 되면.”

25만 대군이 창고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것들이 빛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곶감을 만들지 않는 까닭은 곧 닥칠 이상기온 때문이었다.

올해 감 농사는 전국적으로 풍년이었다. 하지만 곶감은 그렇지 못하다.

12월에 중순에 닥친 이상기온 때문이었다. 겨울인지 봄인지 모르는 날씨 때문에 덕장에 걸어둔 곶감이 모두 썩었다.

지금 껍질을 까면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다.

12월 중순이 되기도 전에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날씨가 너무 이상하지 않냐?”

얇은 잠바를 입은 민석에 나에게 물었다.

“겨울이 아니라 봄 같아.”

“한낮엔 초여름같이 따뜻하다니까.”

예상대로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운명의 수레바퀴

본격적인 이상기온 현상이 나타났다.

“전국적으로 기온이...”

뉴스에선 온통 날씨 이야기뿐이었다. 한낮에 외투를 벗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기도 했다.

기온이 높을 뿐만 아니라 비가 자주 내렸다. 한여름 장맛비 같았다.

정상적인 겨울 날씨가 아니었다. 따뜻한 겨울이 연일 계속되자 곶감 농가에선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덕장에 매달아 놓은 곶감에 이상이 생기고 있었다.

간혹 따뜻한 기온을 받는 건, 맛있는 곶감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을 높은 기온에서 말리게 되면 녹아내리고 만다.

거기에 비까지 내리면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다. 곰팡이가 피고 썩는 것이다.

“곶감을 말렸으면 우리도 큰일 날 뻔했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뉴스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어떻게 안 거야?”

민석은 뉴스를 보다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동안 나의 독단적인 결정에 감을 냉동 창고에 고이 모셔두고 있었다.

난 곧 곶감 작업을 할 테니, 대기하라는 말만 했을 뿐이다.

그때 민석은 내 말에 순순히 따랐다.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궁금함을 표현했다.

“자료를 바탕으로 예측했어.”

“그게 가능해? 기상학자도 맞추지 못했는데.”

“기록들을 분석하면서 유효한 데이터를 얻었어.”

난 서랍에 있던 노트를 꺼냈다. 민석은 내가 내놓은 자료를 한참을 살펴보았다.

“정말 그러네, 해마다 12월 기온이 들쑥날쑥하고 있었어.”

“네 말처럼 난 기상학자가 아니야. 하지만 겨울 날씨에 민감한 농부이기도 해. 미세하지만 기온이 올라갈 확률이 더 높았을 뿐이야.”

“너 농사 천재구나.”

물론, 기상이변이 일어날 것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료를 꼼꼼히 분석했다. 분석 결과 기상이변을 예측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보면 기상청의 무능이 농부들을 죽인 사건이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평년 기온이 평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민석은 뉴스를 보자마자 나에게 달려왔다.

“덕명아, 집 나간 겨울이 다시 돌아오고 있어.”

민석은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곶감을 만들 때가 됐네.”

말은 그리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곶감을 만드는 시기가 늦은 것이다. 곶감은 시효성이 명확한 물건이었다.

다가올 설날에 모두 팔아야 했다.

황유신 선생님의 말씀처럼 간식으로 곶감을 찾는 사람은 드물었다. 곶감은 명절에 나가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그때를 노리지 못하면 내후년을 기약해야 했다.

가희도 내가 어떤 걱정을 하는지 아는 것 같았다.

“저 많은 걸 언제 다 깎지?”

그녀도 나와 함께 황유신 선생님에게 곶감 기술을 배운 수제자였다. 곶감을 만드는 과정 중 가장 까다로운 일이 껍질을 벗기는 작업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무려 25만개의 감이었다. 마을 사람들을 전부 동원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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