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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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트럭에 박스를 싣고 정길산 과수원으로 갔다. 내가 디자인한 문구가 새겨진 박스였다.

모든 일에 내가 관여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트 설계부터 디자인은 기본이고 배송까지 내 손이 닿아야 했다.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다. 그렇기에 믿을 만한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중 한 명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창고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가희가 보자마자 투덜거렸다.

“뭐야? 한밤에 사람 부르고?”

“당장 내일부터 배송이 시작되는 거라. 어쩔 수 없어.”

그녀는 잠시 싫은 내색을 했을 뿐, 곧 일에 집중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리산 농부는 신뢰할 수 있습니다.”

가희는 박스에 적힌 문구를 읽으며 웃었다.

“이 문구 네가 만든 거야?”

“맞아. 그리고 이건 내일 배송 보낼 목록들이야. 맞게 포장해야 해.”

난 그녀에게 목록을 주었다. 우체국 택배는 물건만 받아 갈 뿐이었다. 그럼에도 우체국이 비교적 낫다고 판단했다.

아직 대형 배송업체들이 작은 업체의 물건을 받지 않았다. 최대한 안전하게 배송하기 위해 우체국을 택배를 골랐다.

“벌써 이렇게 많이 팔렸다고?”

“고작 50박스야.”

“고작이라니. 오픈하자마자 주문을 받은 거잖아.”

그녀의 말처럼 고작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섣부른 자만은 금물이었다.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었다.

우린 박스에 과일을 넣고 포장을 했다.

모두 손으로 하는 수작업이었다.

“참 그리고 돈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만 해. 일하는 거 다 계산하고 있으니까.”

“계산?”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난 누구에게든 공짜노동을 바라지 않았다. 나와 일했던 모두에게 그에 상응하는 돈을 줄 생각이었다. 이것이 내가 부자 농부가 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 사실을 처음으로 그녀에게 전달했다.

“우선은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정산할 거야. 그전에 돈이 필요하면 말해. 언제든 줄 테니까.”

“너 꼭 사장 같다. 그것도 사악한 악덕 업주.”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 일은 일이니까.”

아무리 친구지만 지킬 건 지키고 싶었다. 민석이 일한 날과 시간도 빠짐없이 기록해두고 있었다. 그들의 몫을 챙기는 것도 내 일이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포장작업은 수월하게 끝났다. 이제 내일 택배 차량이 수거해가는 일만이 남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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