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산 과수원의 대표를 찾아갔다. 그는 도매상에게 과일을 넘기는 중이었다. 배와 사과를 실은 트럭이 먼지를 날리며 떠났다.
그제야 정길산 대표와 마주할 수 있었다. 난 과수원 한구석에 방치된 박스를 미리 봐두었다.
모두 흠집이 난 과일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네.”
“혹시 이게 전부인가요?”
생각보다 물건이 적었다. 그는 내 태도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올해는 생각보다 흠집 난 물건이 적었네.”
“대략 얼마에 넘기시나요?”
해마다 가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올해는 10kg 기준으로 3만원이네.”
어림잡아 말하는 가격이었다. 정확한 가격은 아니었다. 그도 최종 소비자에게 갔을 땐 얼마가 될지 알지 못했다.
그만큼 농산물은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도매로 팔리는 과일의 가격은 그때그때 달랐다. 중간 상인의 입맛에 따라 가격이 변동하는 것이다.
시장엔 땀 흘린 농부보다 더 높은 마진을 먹는 비열한 중간 상인도 있었다.
인터넷을 통한 직거래는 중간 상인의 폭리가 적용되지 않았다.
흠집이 있음에도 도매로 파는 과일보다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저도 그 가격에 팔아드리죠.”
“그게 정말인가?”
그는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가져가는 중개료는 순수익에서 20프로입니다.”
“알고 있네.”
삼만 원짜리 과일 한 박스면 육천 원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었다.
사과와 배를 합쳐도 이백 박스가 조금 넘어 보였다.
생각보다 물건이 적어서 실망했다.
난 정길산에게 배송에 따른 절차를 알려주었다. 당장 사이트를 개설하면 속도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게 신속하게 처리돼야 했다.
“제가 우체국 택배를 뚫어 놨습니다. 정해진 날 물건을 수거하러 올 겁니다. 포장 작업을 할 수 있게 대표님께서 준비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 정도 노동은 각오하고 있었다. 얌체처럼 물건만 팔아줄 수도 있었다.
단기적으로 좋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자네가 그렇게 해준다면 나도 좋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난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정길산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 보였다.
나가 길에 가희와 마주쳤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것 같았다.
“김덕명. 너 나 좀 봐.”
그녀는 내 손목을 잡더니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심통이 난 표정이었지만, 반갑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이제 이거 놓고 말해.”
그녀는 잡았던 손목을 풀었다.
“너 서울에서 내려온 거 언제야?”
“하루 이틀 지났나?”
알지만 모른 척했다.
“벌써 보름이나 지났다고.”
“시간 참 빠르구나.”
그녀는 부릅뜬 눈으로 날 째려보았다. 마침 그녀에게도 용건이 있었다. 이제 정길산 과수원의 딸도 나서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안 그래도 너에게 할 말 있는데.”
그녀의 눈에서 이채가 돌았다.
“뭔데?”
“곧 있으면 바빠질 거야. 그때 나 좀 도와주라. 정길산 과수원 일이기도 하고.”
“네! 네! 분부대로 하죠.”
그녀는 과장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맘에 안 든다는 얼굴이었지만 승낙은 승낙이었다.
과일을 포장할 때 일손이 필요했다. 당장 오늘 밤부터 그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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