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 (13/205)

아침밥을 먹자마자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아버지의 차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아버지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설득했어야 하는 건데.”

“괜찮아요. 아버지. 다 잘 될 거예요.”

가희네 아버지와 거래를 한 게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 삼아 농산품을 판매할 좋은 기회였다.

부모님에게도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머릿속에 내가 겪은 수많은 개발자가 떠올랐다. 이때 당시 혼자 사이트를 구축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외주 개발사에도 그 정도 실력자는 드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이 중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한 명뿐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낸 친구였다. 불행한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전도유망한 프로그래머이기도 했다.

지금도 신림동 옥탑방에서 혼자 살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를 만나야 할 시간이었다.

프로그래머

백민석, 그는 고등학교 시절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그 시절, 우린 게임에 푹 빠져 살았다. 다만 즐기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내가 플레이어라면 그는 평론가처럼 행동했다.

민석은 게임을 분석하고 직접 설계하는 걸 좋아했다. 그는 다음 스테이지를 공략하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면 될지 연구했다.

그가 절묘한 공략 방법을 이야기할 때마다 난 환호성을 질렀다.

“백민석, 넌 게임 천재구나.”

메뚜기도 한철이었다. 난 입시를 앞두고 게임을 접었다. 프로게이머가 될 실력도 아니었다. 하지만 민석은 집요하게도 게임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난 그가 게임을 좋아해서 그러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공으로 컴퓨터공학을 선택하고 싶다는 말도 했기에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대학을 진학한 뒤 그와 자주 만나지 못했다. 눈에서 멀어지자 마음에서도 멀어졌다. 바쁜 대학 생활 때문에 그와의 만남도 점점 뜸해졌다.

“민석아, 잘 지내?”

“김덕명 이게 얼마 만이야?”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건, 광고 대행사에 취직하고 난 뒤였다. 업무상 외주 용역을 써야 하는 일이 많았다.

광고주는 단가를 낮추려 하고 외주를 하는 업체는 저항이 심했다. 난감한 일을 맡아 고생할 때, 그가 생각났다.

“너 대학 때 컴퓨터 프로그래밍 부분에서 상도 받았다며, 혹시 사이트도 만들 줄 아냐?”

“뭐 스펙에 따라 다르지.”

그는 이미 학부생 때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사이트를 구축하는 일은 혼자서도 가능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등록금을 보탰다고 했다.

그는 취업하기보다 자유로운 프리랜서가 편하다고 했다. 나도 프리로 일하는 그를 상대하기가 편했다. 그 후로 우린 몇 차례 같이 일했다.

예전 단짝답게 손발이 제법 잘 맞았다.

민석과 일 년 정도 같이 일했던 것 같다. 그리고 느닷없이 소식 끊겼다. 그의 집으로 찾아간 뒤에야 불행한 사건이 벌어진 걸 알게 되었다.

난 주인집 아주머니의 입을 통해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들어야 했다. 그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도 사망한 후에야 알았다.

민석은 오랫동안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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