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을 먹고 감나무밭으로 가기로 했다.
“감을 따는 일부터 시작하지.”
황유신은 곶감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난 작업복을 입고 그의 뒤를 따랐다.
감나무밭에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상주감과 대봉감이 섞여 있었다.
일을 시작하려는 순간 황유신이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두 사람이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한 사람은 황유신의 누이동생 황정아였다. 옆에 있는 사람은 커다란 밀짚모자를 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나와 황유신 앞에 섰다. 밀짚모자를 쓴 이가 모자를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
정가희였다. 그녀가 미소 지으며 황유신 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도 같이 곶감 기술 배워도 될까요?”
황유신 선생은 인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정가희, 그녀가 마음을 바꿔먹었다.
황유신 선생은 기분 좋게 그녀를 받아줬다.
“무슨 바람이 분 거야?”
“친구가 외로울까 봐.”
그녀는 내 눈을 피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한가하게 노닥거릴 거면 여기서 끝내고.”
황유신 선생의 불호령에 우린 후다닥 장비를 챙겼다. 감을 따기 전에도 준비할 게 많았다.
우리 집도 감을 키우기에 따 본 경험이 있었다. 과수원집 딸인 정가희도 마찬가지였다. 고향에서는 감나무 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감이 다칠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너무 팽팽하게 묶진 말고.”
여기에선 감나무 밑에 그물망을 묶었다. 감나무 밑에 거대한 그물망이 설치됐다. 공중 곡예사들을 위한 안전망 같았다.
“감나무는 타 봤나?”
“네.”
나무에서 떨어진 바보라는 말이 있다. 그 나무가 바로 감나무다. 감나무에서 감을 털다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던 것이다.
난 능숙하게 나무에 올랐다. 손으로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우두둑. 우두둑.
감이 바닥에 떨어졌다. 가희는 떨어진 감을 수거했다. 황유신은 말없이 우리를 지켜보았다.
“이 나무 바닥엔 이걸 깔아야 해.”
그는 고장 난 매트리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물망 설치보다 덜 까다로웠지만 수고스럽다는 생각은 떨칠 수 없었다.
노란색 바구니에 감이 가득 찼을 무렵이었다.
“감을 따는 것부터 잘해야 좋은 곶감을 만들 수 있지.”
황유신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솔직히 이렇게 감을 따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아직 감을 딸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먹을 수도 없고, 곶감을 만들기도 적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농사를 망쳐가면서 우리에게 경험을 시키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그에게 일부러 감을 딸 것까지 없다고 말했다.
“기본을 모르고 어떻게 좋은 곶감을 만들 수 있나?”
“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딴 감들은 다 쓸데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감을 버릴 것 같았다.
곧장 유황훈증을 하지 않고 곶감을 만드는 비법을 알고 싶었다. 그 방법만 알면 나머지는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황유신 선생의 행동을 보며 나도 마음을 바꿔먹었다. 속성으로 배움을 요청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는 내 부탁을 받아주었고, 자신의 농사까지 망쳐가면서 기술을 알려주고 있었다.
몇 번 해보니 그물망과 매트리스를 바꿔주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감나무의 상태, 열매가 달린 개수에 따라 바닥에 깔 물건들을 바꿔준 것이다.
그렇게 수확한 감들은 상처가 거의 없었다.
트럭에 감을 실었다. 가희도 군소리 없이 일했다. 생각보다 각오를 단단히 한 얼굴이었다.
“감을 다 실었으면 작업장으로 가지.”
우린 감을 가공하는 창고로 이동했다. 곶감을 만드는 덕장이었다.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가져온 감들은 전부 깎을 거야. 그전에 이것들부터 전부 닦고.”
황유신은 나에게 박스를 건넸다. 그 안에 말로만 듣던 곶감 걸이가 있었다. 양쪽에 감을 걸어 말릴 수 있게 만든 작은 걸이였다.
옷걸이처럼 윗부분에 연결 고리가 있어서 다른 걸이와 연결할 수 있었다. 작은 옷걸이 같았다.
“그 작은 걸이에 감을 걸어서 말린다네. 예전에 실을 이용했지만, 지금은 그걸 사용하고 있지.”
“선생님은 전통방식을 선호하실 줄 알았습니다.”
“실로 감을 엮으면 중간에 감끼리 달라붙을 수도 있어. 금속으로 만든 걸이를 사용한 적도 있네만. 녹이 슬어서 곶감을 망치기도 했지.”
“플라스틱은 그런 일이 없겠네요.”
“전통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건 아니야.”
그는 생각보다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다.
“이게 전부 몇 갠가요?”
“한 1만 개 정도 될 거야.”
우린 1만 개의 곶감 걸이 하나하나를 칫솔로 닦아야 했다.
마치 군대 때 위생검열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그녀와 마주 앉아 칫솔질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왜 다시 온 거야?”
난 칫솔질하며 그녀에게 슬쩍 물었다.
“아까 말했잖아. 친구가 외로울까 봐 왔다고.”
“그게 다야?”
“그럼 솔직하게 말해 줄까?”
“ 직한 게 좋지.”
그녀는 고개를 돌려 황유신을 살폈다. 그는 곶감 건조장에서 뭔가를 살피고 있었다.
“나도 너처럼 부자가 되고 싶어.”
그녀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의문이 남았다. 그녀는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과수원집 딸내미였다.
유복한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사람이었다.
“왜 안 믿겨?”
“돈 벌어서 어디다 쓰게?”
“집 사려고. 내 집.”
“집이라···.”
왜 무슨 이유로 집을 갖고 싶은지는 묻지 않았다. 다만, 그녀에게도 목적이 있다는 게 좋았다.
막연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시작하면 쉽게 질리기 때문이다.
우린 밥 먹는 시간에도 쉬지 못했다. 황유신은 첫날부터 무리하게 일을 시켰다. 일부러 그런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내가 원한 속성 과정이었기에 불만은 없었다.
“곶감은 그냥 말린다고 되는 게 아니야.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해.”
곶감 걸이를 가지고 건조장에 가는 순간에도 황유신의 가르침이 이어졌다.
그가 말하는 건, 곶감을 만들기 위한 황금 비율이 있었다.
겨울날 감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숙성이 된다고 말했다.
‘숙성 과정이 곶감의 맛을 좌우한다.’
난 곶감 걸이를 기둥에 걸며 속으로 되뇌었다.
곶감 걸이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쌓아가는 구조였다. 전부 연결하자 길게 뻗은 나무처럼 보였다. 앙상한 가지엔 감이 달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 걸이마다 싱싱한 감을 달아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감부터 깎아야 했다.
황유신은 우리에게 장갑을 나눠주었다.
“체온이 감에 전해지면 상할 수도 있어. 장갑을 꼭 끼고 감을 깎아야 해.”
장갑을 끼는 이유는 위생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체온으로 물건이 상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감은 날씨와 온도에 민감했다.
“상한 감은 다른 것에도 영향을 주지. 하나가 전부를 썩게 만들 수도 있어.”
그는 바구니에서 감을 하나 들었다. 감 깎는 시험을 보이려는 것 같았다.
그는 칼이 아니라 기계를 사용했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 감의 꼭지를 기계에 넣었다 뺐다.
꼭지 부분만 남고 윗면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말로만 듣던 감박피기였다.
윗면이 절단된 감을 다시 감박피기에 꽂았다.
칼이 사방으로 돌아가면 감 껍질을 깎았다.
몇 초 걸리지 않아 깨끗한 모습의 감이 나왔다.
“감을 깎는 것도 전통 방식이 아니네요.”
손이 아닌 기계라서 좋았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당장 깎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너희들은 손으로 깎아야 해. 이건 샘플이야. 이 모양하고 똑같이 깎아야 한다.”
“네?”
“왜 손으로 깎는 게 어려워?”
“아니요. 선생님은 방금 기계로 깎으셨잖아요. 손으로 깎는 이유가 있나요?”
“손은 기계보다 느리니까.”
난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가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동의한다는 얼굴이었다.
“분명 손은 기계보다 느리지. 하지만 손에는 감각이 남아. 감을 깎는 감각이 손에 남는 거야. 그런 감각도 없이 곶감을 만드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
머리로는 그의 말이 이해 갔다. 하지만 손이 남아나지 않았다.
장갑을 낀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기계를 이용하면 깎으면 하루 3,000개까지 깎을 수 있다. 하지만 손으로 깎으면 500개도 깎기 힘들었다.
우리 해가 지기 전까지 감을 깎았다.
황유신이 곶감 건조장으로 돌아왔을 땐, 채반 위에 껍질을 벗은 주황색의 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제 곶감 걸이에 감을 걸 차례군.”
황유신은 내게 다가왔다.
“처음 나에게 왔을 때, 유황훈증을 하지 않고 곶감을 만드는 법을 물었지?”
“맞습니다.”
“곶감 걸이에 감을 모두 걸면 곧 유황훈증 과정을 거친다네. 그 상태에서 곶감이 되길 기다리는 거지.”
“곶감의 색은 예쁘게 유지되지만, 방부제 역할을 하는 이산화황이 곶감에 남게 되겠죠.”
“맞네. 한국은 이산화황 잔류 기준은 서구보다 100배나 높지. 이 지역의 농가들은 그 기준에 맞춰서 유황훈증 작업을 하고 있어.”
“선생님은 유황훈증 작업을 하지 않으시죠.”
황유신은 빙그레 웃으며 선반에 있는 커다란 물통을 꺼냈다. 그리곤 양동이에 통에 있던 액체를 부었다. 물통에서 탁한 색의 액체가 흘러나왔다.
“이걸 발라서 걸면 유황 훈증을 하지 않아도 되지.”
“이건 뭔가요?”
난 양동이에 든 액체를 보며 물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발효액이네. 이게 내 곶감의 비결이라네.”
코로 양동이에 든 발효액의 냄새를 맡았다. 시큼한 냄새가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난생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그는 위생 장갑을 끼고, 깎은 감을 발효액에 담갔다. 나도 그를 쫓아 발효액을 발랐다.
감에 발효액을 바르자 표면에 끈적끈적한 액체가 코팅되듯 달라붙었다.
우린 감꼭지에 시옷 모양의 걸개를 끼우고 곶감 걸이에 걸었다.
난 황유신 선생이 하는 대로 똑같이 따라 했다.
그는 감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걸었다.
감들을 전부 걸이에 걸었을 때 황유신이 말했다.
“이제 전부 떼어 내게.”
“네?”
“걸어 놓는다고 해도 곶감이 될 수 없는 놈들이야. 서리도 맞지 않은 감이고. 먹을 수도 없는 놈들이지. 게다가 곶감은 일교차가 큰 계절에 말려야 해.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계절이 적기지. 지금 저대로 뒀다간 전부 썩거나 곰팡이 피어날 거야.”
“그럼 어쩌시게요?”
애써 걸어 놨는데, 곶감이 되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떼어 내는 게 아쉬웠다.
“모두 항아리에 넣어.”
황유신은 창고 바깥에 있는 항아리를 가리켰다.
“항아리에 넣으면 어찌 되는 거죠?”
정가희가 황유신에게 물었다.
“감식초로 만들 생각이야.”
“감식초요?”
“자네들이 딴 감은 곶감이 될 수 없는 것들이야. 하지만 식초가 될 수는 있지. 원래는 소량을 만들어 내가 사용했네. 다음 해는 내다 팔 정도로 충분한 양이 되겠군.”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감의 용도가 다양함을 느꼈다. 항아리에 널어 두었던 감을 넣었다.
곶감 명인 황유신을 다시 보는 순간이었다. 우리에게 곶감을 만드는 과정을 알려주며 동시에 감식초 작업을 하고 있었다.
황유신은 자신의 물건을 절대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가지.”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끝났다는 말을 듣자 피로가 몰려왔다.
집에 도착했을 때, 저녁 밥상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반찬 중에 곶감으로 만든 장아찌도 있었다. 곶감을 고추장과 간장 양념으로 버무려 만든 음식이었다.
황유신의 누이동생 황정아의 작품, 그녀의 솜씨도 보통은 아니었다.
“맛있어요.”
가희는 곶감 장아찌를 먹고 감탄했다.
“이것도 한 잔씩 들어 보게.”
황유신은 기분 좋은 얼굴로 주전자를 들었다. 당연히 술일 거라고 생각했다.
술 냄새가 아니었다.
“감식초라네. 피로를 풀어 줄 거야.”
잔 속에 진한 갈색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내가 신기한 눈으로 식초를 보고 있자 황정아 여사가 웃으며 말했다.
“오빠가 어릴 때부터 천식을 앓았어요. 지금은 천식 기운이 거의 없답니다. 모두 저 감식초 덕이죠.”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난 잔에 든 감식초를 마셨다.
신맛이 강했지만 목에서 넘어가는 느낌은 부드러웠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달콤함이 피로를 풀어주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난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우린 일주일간 같은 일을 반복했다.
나와 가희는 매일 5백 개씩 감을 따고 가공했다.
자리에 누우면 그대로 뻗는 게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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