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당장 곶감 장인 황유신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배낭에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챙겼다. 최소 며칠은 그의 밑에서 곶감 기술을 배울 작정이었다.
황유신은 광고 기획자 시절 섭외에 실패한 인물이었다. 유명 백화점에서 대신 물건을 팔아주고 광고까지 해주겠다는 데 거절한 인간이었다.
그때 난 삼고초려를 하듯 그를 찾아가 설득했다. 광고주인 백화점 측에서 황유신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관련한 내용을 전부 뒤져서 보기도 했다. 신문이며 잡지에 인터뷰했던 글까지 모조리 찾았다.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기대와 달리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때는 도통 알 수 없었다.
그저 꽉 막힌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가 왜 거절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땐 내 태도와 방식이 틀렸다. 장사꾼의 입장에서 접근해서는 안 됐다.
난 그의 마음과 기술을 얻고, 거기에 명성까지 얹어서 상품을 팔 것을 다짐했다.
“가방에 뭐가 그리 많아?”
엄마는 빵빵한 배낭을 보며 말했다.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어서요.”
“안 된다고 하면 바로 오고. 괜한 객기 부리지 말고.”
“네.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되는 표정이었다. 난 웃으며 엄마의 마음을 달랬다.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다 줄까?”
아버지가 불쑥 나타나 물었다.
“아니요. 좀 걷고 싶어요.”
“이건 여비로 써라.”
아버지가 봉투를 내밀었다. 오늘은 거절하지 않았다.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왔다.
마을 떠나기 전에 고향 친구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태워다 주겠다는 아버지의 말을 거절한 이유기도 했다.
정가희의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다.
빵. 빵.
뒤에서 경적이 울렸다.
“배낭은 뭐야? 어디 가려고?”
때마침 그녀가 빨간색 자동차를 몰고 나타났다.
“너 차 있었어?”
“몰랐어? 대학교 때부터 몰고 다녔어. 그런데 어디가?”
“나 상주.”
“우선 타. 내가 정류장까지 태워다 줄게.”
난 얼떨결에 그녀의 차에 탔다.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정가희 차를 다 타보고.”
“차 없는 네가 더 이상하다. 시골에선 차가 필수잖아.”
그녀의 말이 맞았다. 시골에선 좋든 나쁘든 차가 필수였다.
돈을 벌면 차부터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상주에 무슨 볼일이 있는 거야?”
“곶감 기술 배우러 가는 길이야.”
“곶감 기술?”
“그거 배워서 어디다 쓰려고?”
“어디에 쓰긴 곶감 농사지어야지.”
정가희는 한 번 호기심이 발동하면 끝장을 봐야 했다. 예전 같았다면 그녀가 뭐라고 하건, 용건만 간단히 했을 것이다.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말이 끊이질 않고 나왔다. 스스로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집안에 찾아온 위기며 대봉감으로 곶감을 만들 계획까지, 모든 사실을 전했다. 다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했다.
그녀는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었다.
자동차가 톨게이트에 진입하고 있었다.
“정가희, 너 지금 고속도로 들어왔어.”
“알아.”
상주까지 차로 3시간 거리였다. 그녀의 볼이 붉게 변해 있었다. 감정이 격해지기 직전의 얼굴 같았다.
“설마 상주까지 가려고?”
“왜, 싫어?”
“나야 좋지.”
“간만에 친구랑 드라이브나 하려고. 어려운 친구 돕기고 하고.”
“지금 나 동정하는 거야?”
“친구끼리 동정하는 거 아니야. 그냥 돕는 거지.”
“고맙다. 친구야.”
그녀는 생각보다 의리가 있었다. 친구로 지내자고 한 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돌이켜 보면 언제 깨질지 모르는 연인보다 오래가는 친구가 더 나았다.
“그런데 받아 줄까?”
그녀가 나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뜻이야?”
“그 곶감 명인이라는 분이 널 제자로 받아 줄지 궁금하다고.”
그녀에게 곶감 명인 황유신에 대해서도 말했다. 독신에 제자 따윈 두지 않는 고집불통 영감이란 말이 걸린 것 같았다.
“네 느낌은 어때?”
난 장난치듯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도 돼?”
“솔직한 게 좋지.”
“음. 내 생각엔 불가능할 거 같아.”
“응원은 못 할망정 초를 치는 건가?”
“네가 솔직한 게 좋다며.”
“알겠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알 수 있을까?”
“우리도 시골에서 자랐지만, 같은 지역 사람이 아니면 배척하려는 경향이 강하잖아. 아무런 연고도 인연도 없는 사람이 찾아가면 환영받지 못할 거야.”
“이유가 그것 그뿐이야?”
“게다가 이건 고유한 기술을 배우는 일이잖아.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알아낸 방법일 거야. 힘들게 알아낸 비법을 쉽게 알려줄 사람이 있을까?”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안 된다.”
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희야. 나랑 내기 하나 할래?”
“무슨 내기?”
“소원 들어주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곶감 명인의 제자가 되면 내 소원 들어주고. 만약 제자가 안 되면 네 소원을 들어주는 내기.”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니야?”
“꿍꿍이 따윈 없어. 무조건 실현 가능한 소원을 하나 들어주는 거야. 뭐 사소한 것도 좋고.”
“그렇다면 나도 좋아. 너 약속 꼭 지켜라. 한 입으로 두말하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그녀는 곧 반응했다. 표정만 봐도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이길 거라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내기까지 하니 흥미진진해졌다.
난 내기에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곶감 명인 황유신의 약점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때처럼 광고 기획자의 입장에서 접근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청년 농부의 입장에서 접근하면 쉽게 풀릴 문제였다.
장사치가 아닌 농부 대 농부로 풀면 답이 나올 일이었다. 간단한 공략법이지만 소신과 포부를 보여줘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난 부자 농부가 된다.’
회귀 후 가족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다짐했을 때의 마음이었다.
난 황유신 선생에게 내 마음을 온전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자동차가 상주 톨게이트를 지났다. 우린 곧 상주에 도착했다. 상주에서 황유신 선생의 집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집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
“몰라. 느낌이 별로야.”
황유신의 집은 종갓집처럼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차를 세우고 그녀와 밖으로 나왔다.
멀리서 감색 개량한복을 입은 남자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황유신, 그였다.
기억대로라면 그는 커다란 풍채에 호랑이 눈썹을 가진 남자였다.
호랑이를 닮은 명인이 만드는 곶감. 광고주들이 그를 바랐던 이유기도 했다.
가희가 그 남자를 바라보며 나에게 물었다.
“저분은 누구지?”
“내가 말한 곶감 명인이야.”
그녀는 긴장한 듯 보였다. 그를 함께 볼 거라고는 예상 못 한 얼굴이었다.
“누구요?”
황유신이 우리를 보고 물었다.
“하동에선 온 김덕명이라고 합니다.”
난 한 발짝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부자 농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었다.
인연은 스스로 만드는 것
난 곶감의 명인에게 먼저 예를 갖췄다. 곧 나의 스승이 될 사람이었다.
황유신은 공손히 인사하는 청년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건가?”
“선생님께 곶감 기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내가 곶감이란 단어를 꺼내자 황유신의 얼굴이 굳었다.
“감을 말리면 곶감이 되네. 기술 따윈 필요 없는 일이지.”
“유황훈증을 하지 않고 곶감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황을 태우면 이산화황이 발생한다. 그 연기로 곶감을 훈증하는 과정을 유황훈증이라고 부른다.
유황훈증을 한 곶감은 색이 변하지 않는다. 과일 껍질을 깎아두면 표면의 색이 변하기 마련인데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이산화황은 강력한 방부제이자 인체에 유해한 독이기도 했다. 유황훈증한 곶감을 먹는다는 건, 미량의 독을 먹는 것을 의미한다.
황유신이 곶감의 명인이 된 건, 유황훈증 없이 곶감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만의 독특한 비법이 있었다.
“유황훈증을 싫어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라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비법을 알려 줄 순 없네. 그만 돌아가게.”
“전 청년 농부입니다. 올해 대학을 졸업했고, 부모님과 함께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계획입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선생님은 한 입으로 두말하는 분이시군요.”
황유신은 얼굴에 노기를 드러냈다. 호랑이 눈썹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옆에 있던 가희가 내 팔목을 슬쩍 잡았다.
“대체 무슨 소린가?”
“오늘의 농부에서 인터뷰한 기사를 봤습니다. 선생님은 젊은 청년들이 농촌에서 희망을 찾기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청년들을 있다면 발 벗고 나서겠다는 말씀도 하셨고요.”
“내가 그런 말을 하긴 했지.”
그는 무안하다는 듯이 헛기침을 했다. 말은 그리했지만 그만의 비법을 알려주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몸짓 같았다.
“그래서 자네가 내가 말한 청년이라는 건가?”
“맞습니다.”
황유신은 내 눈을 한참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지.”
“예. 그러죠.”
“동행한 처자도 같이 들어오게.”
“네?”
당황한 가희가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결과는 보고 가야지?”
“아무리 그래도….”
그녀는 마지못해 나를 쫓았다. 우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고풍스러운 한옥이 눈앞에 펼쳐졌다.
“누구?”
마당에서 빨래를 널던 중년 여성이 황유신에게 물었다.
“손님. 차 좀 내와.”
우린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웃는 인상이 매력적이었다. 큰 체구와 얼굴 윤곽이 황유신과 무척 닮아 보였다.
황유신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서 은은한 편백 향이 났다. 나와 가희가 자리를 잡자 황유신이 입을 열었다.
“자네는 농촌에서 뭘 찾을 생각인가?”
“돈을 찾을 생각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가 보군. 곶감도 돈벌이로 하는 거고.”
“한마디로 말하면 부자가 될 계획입니다.”
“난 부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네. 자네처럼 돈을 밝히지도 않았지.”
“선생님이 돈 욕심 없이 사셨다는 걸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곶감도 항상 정량만을 판매하시죠. 돈은 필요한 만큼만 번다. 이런 말씀도 하셨죠.”
“나에 대해 잘 알고 있고만.”
황유신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자네는 내가 생각한 청년이 아니네.”
“혹시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걸 꼭 말해야 알겠나?”
“선생님을 만나러 먼 길을 왔습니다. 솔직한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가감 없이 말하지. 농촌에서 희망을 찾겠다는 사람이 돈부터 말하는 게 틀렸지 않나. 그리고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이라면 도시로 가는 게 나을 걸세.”
그때 문이 열리고 마당에서 마주쳤던 여성이 들어왔다.
“수정과입니다.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수정과 안에 곶감이 들어 있었다. 은은한 계피 향이 침샘을 자극했다.
“잘 먹겠습니다.”
나와 가희는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먼 길 왔으니. 그거 마시고 돌아가네.”
황유신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선생님 가기 전에 질문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게.”
“선생님은 청년들이 왜 도시로 떠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나랑 장난하나?”
“청년들이 도시로 떠나는 건, 농촌에 비전이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전 돈을 벌고 싶습니다.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농촌에서도 도시 못지않게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황유신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을 느꼈다. 그는 제법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자네가 부자가 되면 농촌이 달라진다는 뜻인가?”
“선생님은 청년들이 농촌에서 희망을 찾기를 바란다고 하셨죠. 선생님의 생각과 행동은 이율배반적입니다. 생계가 어려운 사람에게 희망은 사치입니다.”
“풍요로운 환경에서만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은퇴한 사람이나 기다리는 농촌은 희망이 없습니다. 억대 연봉의 청년 농부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상황은 달라질 겁니다.”
“부유한 농촌에 청년이 몰린다.”
황유신은 그 말을 하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눈에서 이채가 돌았다.
“부자라는 건,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게 자네 생각이군.”
“정직하게 일해서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농부로 성공할 계획입니다.”
설전을 벌이고 나니 목이 탔다. 난 앞에 놓인 수정과를 한 모금 마셨다. 계피와 곶감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달고 입맛을 당기는 맛이 났다.
“부자 농부가 된 뒤에 계획도 있나?”
“사업 분야를 확장하고 청년들을 시골로 끌어모을 계획입니다. 도시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던 사업을 벌일 작정입니다.”
황유신은 표정이 그제야 완전히 풀어졌다. 그는 여유 있게 수정과를 마셨다.
“나보다 낫구만. 내가 말로만 떠들었다면, 자네는 몸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거니까. 미약한 실력이지만 자네를 돕겠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난 당장 일어나 절을 했다.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가희도 같이 일어나 절을 했다.
“절은 무슨. 편하게 있게.”
표정을 바꾼 황유신은 인상 좋은 할아버지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곶감을 만들 때가 아니라네. 다음 달에 찾아오게.”
“지금 당장 배울 수 없을까요?”
“뭐가 그리 급한가?”
“당장 감이 나오기 시작하면, 동네에서 곶감을 만들 생각입니다. 대봉감으로 만든 곶감을요.”
“대봉감으로 곶감을 만들겠다고?”
“전 하동 출신입니다. 제 고향에서는 대봉감이 유명하죠.”
“알고 있네. 그런데 하필이면 대봉감인가?”
“상품성이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상품성이라니 의외군.”
“감이 크고 육질이 홍시처럼 연합니다. 당도도 다른 품종에 비해 높고요.”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서 말하는구만.”
“선생님도 저와 같은 생각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난 앞에 있던 수정과 그릇을 들었다.
“이 안에 대봉감으로 만든 곶감이 있으니까요.”
황유신은 그 말을 듣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나? 혹시 먹어본 적이 있나?”
“먹어본 적은 없지만, 보통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실은 오래전에 먹어봤다. 그가 만든 곶감이었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야.”
그때까지 수정과에 손도 안 대고 있던 가희도 그제야 수정과를 한 모금 마셨다.
“죄송하지만 저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가급적이면 속성으로 배우고 싶습니다.”
난 그에게 자세한 사연을 말했다. 당장 막아야 할 빚과 부모님과 약속한 사실도 이야기했다. 이럴 땐 솔직한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이 들어맞았다.
“좋네. 그리하지. 제자로 받아 주겠네.”
“감사합니다.”
“당분간 여기서 머물러도 좋네.”
“준비는 돼 있습니다.”
“처자도 같이 배울 생각인가?”
수정과를 마시던 가희가 화들짝 놀랐다. 그녀와 함께 이곳에 온 건 계획하지 않은 일이었다. 황유신에게 허락을 얻은 지금, 시험해 보고 싶은 일이 생겼다.
“선생님 잠시 이야기 좀 나누고 와도 되겠습니까?”
“좋을 대로 하게.”
“가희야. 잠깐 나와 볼래?”
난 그녀와 밖으로 나갔다.
“네 생각은 어때?”
“생각이라니?”
그녀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것 같았다.
“나랑 같이 여기서 곶감 배우자는 뜻이야.”
“내가 왜?”
“너희 집은 하동에서 가장 큰 감나무밭을 갖고 있으니까. 과수원집 셋째 딸이 배울 만한 일이잖아.”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말은 그리했지만 억지였다.
그런데도 그녀를 설득해 보고 싶었다.
그녀를 볼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인연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내년 여름 서울에서 첫 번째 결혼을 했다.
그녀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는 없었지만, 사소하게라도 변화를 주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이게 내 소원이야.”
내기를 한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녀는 당장 싫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갈등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네 말 인상적이었어.”
그녀가 나를 보고 말했다.
“부자 농부가 돼서 사람들을 불러들이겠다는 말. 난 그저 부모님 빚 때문에 이런 거라고 생각했거든.”
난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난 너 같은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
느낌이 좋지 않았다.
“네가 잘되길 기도할게.”
거절이었다. 여기서 더 붙잡을 생각은 없었다.
“그럼 아직 소원은 쓴 게 아니네.”
“언제든지 말해도 좋아. 물론 실현 가능한 거로.”
황유신의 제자가 됐지만, 그녀는 보내게 생겼다.
‘둘 다 얻는 건, 내 욕심이었나?’
우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난 황유신에게 홀로 곶감 기술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황유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는 수정과를 내왔던 중년의 여자를 불렀다.
“이 친구, 당분간 우리 집에 묵을 거야. 방 좀 안내해 줘.”
그녀는 황유신의 누이동생이었다.
“황정아라고 해요. 앞으로 잘 지내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커다란 한옥에 방들이 많았다. 바깥채에 있는 사랑방을 배정받았다.
가희는 하동으로 떠났다. 난 말 없이 그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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