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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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서 어머니와 마주쳤다

“이 시간까지 어디 있다 오는 거냐?”

어머니가 나를 보자 대뜸 물었다.

“산책 다녀왔죠.”

“아버지가 너 기다리다 목이 빠지셨어.”

“그래요?”

아버지는 앞마당 평상에 앉아 있었다. 삼겹살과 목살, 각종 채소까지 푸짐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어딜 다녀온 거냐? 전화도 안 받고. 빨리 앉아라.”

어머니도 내 등을 떠밀었다. 상에 앉자 아버지가 아끼는 송이주도 보였다. 최상품 송이로 담근 술이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난 노릇노릇 익어가는 삼겹살을 보며 물었다.

“가족이 뭉치는 날이지.”

엄마가 기분 좋게 말했다. 실로 오랜만에 하는 가족 만찬이었다. 오늘은 간만에 기분을 내고 싶었다.

난 삼겹살에 송이주를 기분 좋게 마셨다. 솔잎 향이 콧속에서 은은하게 맴돌았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엄마도 아셔야 하는 문제인데. 우리 집 상황이 좀 안 좋아요.”

“아버지에게 들었다.”

“아버지가 앞뒤 다 자르고 말했을 텐데.”

“네가 농사를 짓겠다는 말도 들었어.”

엄마는 나에게 고기가 가득한 쌈을 건넸다. 더 말해 봤자 잔소리란 의미 같았다.

“그런데 무슨 농사를 지을 생각이냐?”

아버지가 물었다. 정말 궁금하다는 눈빛이었다. 엄마도 나를 쳐다봤다.

“우리 동네에 있는 감을 팔 생각이에요.”

“먹는 감 말이냐?”

“네. 하동 명물 대봉감이요.”

두 분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

“동네에 있는 감을 최대한 많이 구매할 생각이에요.”

“무슨 계획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엔 그럴 돈이 없다.”

“당장 돈은 필요하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이냐?”

“신용거래를 하면 되니까요.”

두 분 다 내 말에 기겁했다. 빌린 돈도 갚지 못하는 상황에서 빚을 더 늘린다니 놀랄 만도 했다.

“감 값은 후하게 쳐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감을 산다고 쳐도 돈을 벌지는 못할 거다. 도매가가 낮아서.”

“가공을 해서 팔 계획이에요.”

“가공을 한다고?”

“그래야 이윤을 남길 수 있으니까요. 최소 5배는 생각하고 있어요. 급한 불을 끌 돈은 될 거예요.”

“홍시로는 그렇게 남길 수 없을 텐데?”

“아니요. 곶감으로 만들 계획이에요.”

내가 곶감이라고 말하자 놀란 듯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봉감은 곶감을 만들지 않았다. 적합하지 않은 품종이라고 여겼다.

모르는 말씀이었다. 상주 곶감보다 더 뛰어난 상품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올해 곶감 농사는 생각지도 못한 이변과 마주하게 된다.

이상고온과 잦은 비로 곶감 농사가 망하는 것이다. 상주 등의 곶감의 주요생산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결국, 생산량이 급감하고 곶감 가격은 끝도 없이 올랐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부른다.

곶감은 명절 때 빠지지 않는 식품이었다.

‘설날 곶감을 사고 싶은 이들이 모두 내 물건을 찾게 만든다.’

나에겐 최고의 곶감을 만들 계획이 있었다.

명인의 명품

우리 집도 대봉감을 재배했다. 축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감나무밭이 있었다.

아버지가 한우 사업에 뛰어들면서 순위에서 멀어졌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의 주 수입원이기도 했다.

대봉감은 하동의 특산물이다. 끝이 둥근 상주 감과 달리 크고 끝이 뾰족한 게 특징이다.

대봉감은 대개 홍시로 만들어 먹었다. 곶감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워낙 물기가 많고 크기가 커서 곶감으로 만들기 어려운 까닭이었다.

떫은맛의 원인인 타닌 성분이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깎아 놓으면 빨리 썩거나 색이 까맣게 변해 상품성이 떨어졌다.

아버지도 해마다 곶감을 만들었다. 집에서 키운 대봉감이 아니라 시장에서 사 온 감을 갖고 만들었다. 작은 끝이 둥근 둥시였다.

판매용이 아니라 설날 제사상에 올릴 목적이었다. 동네 사람 누구도 대봉감으로 곶감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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