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구원자 (8)
“그럼 ‘그걸’ 부탁하겠습니다.”
“걱정 말고 전투에나 신경 써.”
고개를 끄덕이고 암기를 꺼내들었다.
스릉.
내 첫 번째 공격은 언제나 그렇듯 흑철의 비수다. 완성에 이른 만독자전신기의 기운이 비수에 깃들었다.
찌이이잉!
한줄기 빛살이 된 비수가 대기를 찢어발기며 움브라의 정수리로 날아갔다.
파가각!
움브라는 마기로 둘러싸인 주먹을 휘둘러 내가 던진 비수를 조각내 버렸다.
움브라가 방어를 했다는 건, 지금 내 공격이 놈에게 통한다는 증거다. 만약 내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면 저 놈은 주먹을 들어 올리지도 않았을 거다.
이제 진정한 싸움의 시작이다.
양손에 붉은 구슬을 끼우고 연위결로 열두 개의 비도를 띄웠다. 백광환과 십이비도의 연계 공격이다.
말이 연계지, 실제로는 동시 공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속도였다.
파아아앙!
백광환이 붉은 빛의 고리를 남기며 움브라의 머리와 심장을 노렸고, 십이비도는 회피하기 어려운 놈의 하체를 찔렀다.
“소용없다.”
움브라의 몸을 태우던 마기가 산처럼 솟아올라 놈의 몸 전체를 가리는 방패를 만들었다. 방패는 늪지처럼 꿀렁거리고 있었다.
투드드득.
비수와 백광환이 마기의 방패에 쳐 박혔다. 하지만 밀려나지는 않았다. 내가 전사경을 사용해 방패를 뚫어버리려 했기 때문이다.
“아그네스.”
아그네스를 묵봉으로 변화시켰다. 묵봉을 날리자 수천 마리의 벌떼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음!”
움브라는 묵봉의 소음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마기의 방패를 믿었는지 다른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
샤악!
묵봉의 숨겨진 칼날이 시원한 절삭음을 내며 움브라의 방패를 베어버리고 놈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움브라는 당황하지 않고, 손등에 그림자의 칼날을 만들어 묵봉을 조각내 버렸다.
빠지지직.
움브라가 방어를 하는 순간 극성의 뇌익을 사용해서 놈에게로 돌진했다. 볼카누이스에게 받은 흑왕검을 사용해서 놈의 머리를 내리쳤다.
콰아앙!
내 검격을 막은 움브라의 마기에서 경악할만한 반발력이 전해졌다. 힘이 풀린 것처럼 손이 덜덜 떨리고, 몸 전체에 진동이 왔다. 정신을 놓으면 바로 찌부러 질 것 같았다.
쿠구구구.
가까이서 상대하는 움브라의 무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았다. 힘만큼은 신이라는 이름에 모자라지 않았다.
“그래도!”
그래도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힘을 가해서 놈을 밀어붙였다. 놈과 나의 힘이 충돌하면서 싱크홀이 터진 것처럼 대지가 주저앉아버렸고, 주변으로 거대한 마나의 폭풍이 생성되었다.
뒤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포메라, 라시드, 빽빽이가 폭풍에 견디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
당천위만 만근추를 사용해서 겨우 버티고 있었다.
후우우웅.
흑왕검을 회전시키며 위로 올려쳤다. 동시에 이기어검을 사용해서 귀왕살을 조종했다.
파아아아!
움브라의 손에서 절대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만독자전신기의 내력을 모조리 검에 쑤셔 넣었다.
콰아아앙!
대륙 자체가 내리누르는 것처럼 견디기 버거울 정도의 압박이 느껴졌다.
하지만 밀려나지 않았다.
어금니를 부서져라 깨물고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갔다.
“음!”
움브라의 눈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내가 자신의 마기를 버티는 걸 모자라 앞으로 나갈 거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네놈...큭!”
이기어검으로 날린 귀왕살이 움브라의 왼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심장을 노렸건만 자동으로 발동 된 놈의 마기가 귀왕살을 막아냈다.
지금이다.
검술을 발동할 기회를 잡아, 첫 번째 제왕검 마왕을 펼쳤다.
파아아아.
움브라의 마기만큼이나 어두운 기운이 흑왕검에 내려앉았다. 마왕의 일격이 사선으로 그어져 움브라의 절반을 갈라버렸다.
쿠와아앙!
움브라의 양손에서 마기의 구슬이 솟아나 마왕의 검격을 막아냈다. 나와 놈이 밟고 있는 대지가 조각나 갈라졌고, 두 힘이 날아간 천공에 구멍이 뚫렸다.
“큭...”
밟고 있을 공간이 없어 허공답보를 사용해서 뒤로 물러났다.
“직접적으로 부딪치면 네 손해다. 저 놈이 가진 기운이 너보다 훨씬 많아. 그야말로 파멸적이다.”
“방금 겨뤄봐서 알고 있습니다.”
당천위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정면대결은 거의 자살 행위였다. 갑자기 발동한 힘으로 마왕을 완벽하게 막아냈으니, 놈의 힘 자체는 말이 필요 없다.
“다만 싸움을 많이 해본 것 같지는 않다.”
“역시 경험으로 압도해야겠네요.”
지난번에도 느꼈고, 오늘도 느꼈다. 움브라의 힘 자체는 하늘에 닿아있지만, 실제로 많은 전투를 겪지 않았다.
손가락만 튕기면 다 죽는데 싸울 일이 뭐가 있겠는가. 내가 유리한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
“고작 그 정도인가? 이 정도 상처는 금방 회복할 수 있다.”
움브라가 왼팔의 상처를 마기로 덮었다. 하지만 난 마기로 덮기 전의 상처를 볼 수 있었다. 썩은 것처럼 갈라져있었다.
역시 신살은 통해.
귀왕살에 담겨 있는 신살의 특성과 회복 방지의 특성이 먹혀든 거다. 마기를 사용해서 감췄지만, 움브라는 확실하게 부상을 입었다.
“미친놈에겐 매가 약이지. 경험의 차이가 뭔지 보여주마.”
주머니를 털어 모든 무기들을 꺼낸 뒤 연위결을 사용해서 공중에 띄웠다. 뒤를 돌아 당천위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가 피식 웃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헛짓거리를 해도 소용없다.”
움브라의 손끝에서 검은 광선이 쏘아졌다. 급히 철판교를 사용해서 놈의 광선을 피해냈다.
쿠와아아아앙!
한 줄기 광선에 뒤에 있던 언덕이 아예 사라져버렸다. 언던 자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빠지지직!
극성으로 뇌인신법을 사용해서 움직였다. 움브라가 광선을 쏘아냈지만 보법의 다양하고 변칙적인 움직임으로 놈의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캬앙!
움브라의 공격을 회피하면서 연위결을 사용해 놈에게 암기들을 날렸다. 연위결은 이미 극성에 이르러 손으로 던지는 것 이상으로 암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놈이 마기의 벽을 만들어 암기들을 내리 눌렀지만, 연위결을 쓸 수 있는 건 나만이 아니다.
쾅! 쾅! 쾅!
당천위가 연속으로 광뢰를 날려 움브라의 마기의 벽을 깨뜨려버렸다.
빠지지직!
바로 그 순간 난 귀왕살을 잡아 한 줄기 뇌전으로 바꿨다. 뇌신의 번개 광뢰가 내 손에서 번쩍였다.
움브라는 다시 마기의 광선을 만들어 귀왕살을 막으려 했지만, 광뢰는 이미 놈의 어깨에 닿아 있었다.
치이이잉!
귀왕살이 놈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움브라가 아주 잠시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른 신살의 무기들을 동시에 쏟아 부었다.
혈화접이 태풍을 벗 삼아 날아갔고, 백광환이 마기를 뚫었으며, 신살의 비수는 놈의 심장을 향했다.
“크아아아!”
움브라가 손을 양쪽으로 뻗었다. 그러자 놈을 향해 날아가던 암기들이 전부 허공에서 격타당해 떨어졌다. 허공을 터트려버리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이다.
무공으로 저런 걸 하려면 수많은 수련이 필요한데 의지만으로 바로 사용하다니, 지랄 맞은 능력이다.
“후욱...”
움브라의 이빨이 톱날처럼 돋아 올랐다. 놈은 신이 아니라, 악마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우우우웅.
놈이 손짓을 하자, 수십 줄기의 마기가 일어나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크윽!”
뇌인신법 뇌편을 펼쳐서 놈의 마기를 모조리 피해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리고, 바닥에 수십 개의 포탄이 터진 것처럼 무너졌다.
콰아앙!
놈이 나를 찾을 때 뒤에서 접근해 놈의 얼굴에 뇌격장을 날렸다. 놈의 목을 부러뜨릴 정도로 쳤건만 오히려 내 손이 아릿했다.
“그 정도는...”
“알아.”
조용히 중얼거리며 왼손에 준비했던 광뢰포를 날렸다. 광대한 빛이 뇌기가 마기를 뚫어버리고 놈의 복부에 큼지막한 구멍을 만들었다.
“크헉!”
놈이 상처를 메꾸기 전에 혈련화를 날려 상처를 찢어버렸다. 움브라의 입에서 처음으로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렸다.
쿠구구구.
움브라가 마기의 벽을 세워 날 밀어낸 후 손을 들어올렸다. 놈의 손을 따라 대지가 솟아올랐다.
“미친...”
놈의 손짓에 따라 집채만 한 바위 수백 개가 나와 당천위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내가 암기를 쓰는 것처럼 놈은 바위를 이용한 거다.
“후우...”
다급하게 보법을 밟으면서 메테오처럼 날아오는 바위들을 피해냈다. 당천위도 뒤로 물러나며 움브라의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파아앙!
움브라는 연위결을 익히고 있는 것처럼 바위를 조종하면서도 마기의 줄기를 날려 왔고, 접근하면 거대한 마기를 터트려 근접하기도 힘들게 만들었다.
“후우...”
난 기회를 노리며 움브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공격을 피하면서도 암기와 이기어검을 날리며 놈을 견제했다.
퍼어어엉!
움브라가 다시 허공을 격타해서 내 암기들을 날려버렸을 때 공중에 준비해두었던 만천화우를 쏟아 부었다.
“알고 있었다.”
움브라의 왼손에서 응집된 마기가 우산처럼 솟아올라 만천화우를 모조리 깨뜨려버렸다.
걸렸다.
저 만천화우는 내가 던진 미끼였다. 진짜는 땅 속에 있었다.
퍼어억!
움브라라가 밟고 있는 땅 속에서 내가 미리 준비해둔 토룡수가 튀어나와 놈의 다리를 꿰뚫어버렸다.
“크허헉!”
토룡수는 앞부분이 드릴처럼 꼬여있는 형태의 암기로 땅으로 보내 상대의 발을 뚫어버리는 능력이 있다.
정확하게 쓰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는데, 연위결을 쓰는 내겐 단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끄으으...”
움브라의 다리에서 검은 피가 터져 나왔다. 놈은 잠시 비틀거렸지만, 다시 자세를 잡았다.
아쉽게도 토룡수는 신살의 무기가 아니었다. 그저 상처를 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네 몸을 통째로 터트려주마. 커헉!”
마기를 원형으로 만들어 나를 가두려던 움브라가 갑자기 입에서 피를 토했다. 검은 피가 아니라, 붉은 피였다.
“무, 무슨...”
움브라는 자신의 입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후우, 이제야 통했네요.”
“그래. 지독한 놈이다.”
한숨으로 탁기를 털어버리고 당천위를 쳐다보았다. 그가 질렸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가십독 중 최강 무형지독을 이 정도까지 버텨내다니...”
“먹히는 게 어딥니까.”
전투에 나서며 당천위에게 부탁한 건 하나였다. 내가 하독한 무형지독을 놈의 주변에서 퍼져나가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내 만독자전신기의 내력엔 럭스의 힘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독도 움브라에게 통한다.
괜히 어설픈 독을 썼다가 놈이 경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난 처음부터 당가십독 중 무형지독을 사용했다.
“크으으...”
움브라는 현재 무형지독에 중독 된 상태다. 지금도 지독한 고통이 그의 몸을 잠시하고 있을 거다.
“이제 끝을 내야지.”
흑왕검을 아래로 세운 채로 돌진했다. 제왕검의 두 번째 마신의 발동이다. 그림자의 신을 물어 죽일 어둠의 신이 흑왕검에 강림했다.
“크아아!”
움브라가 마기를 터트렸지만 무형지독의 영향으로 제대로 된 힘을 사용하지 못했다.
콰아아아아아!
천지를 가르는 검이 움브라의 마기를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놈의 양팔을 뜯어버렸다.
“끄아아아악!”
움브라는 팔에서 검은 피를 흘리며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끝없이 뒤로 물러났다.
“으으...”
움브라의 눈은 지진 난 대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지금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이다.”
아껴둔 신살의 천판을 하늘로 띄웠다. 마지막 만천화우로 놈을 죽이려고 했다.
스으으윽.
광화를 개화하려 할 때 갑자기 검은 덩어리들이 움브라를 향해 미친 듯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건...”
검은 덩어리는 그림자였다.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그림자들이 놈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림자들은 놈을 감싸서 둥글고 검은 원을 만들었다.
흡사 검은 알 같은 모양이었다.
“유렌! 지금 공격해야 한다!”
대답할 여유도 없었다. 그대로 신살의 천판을 개방해 전력의 만천화우를 날렸다.
“만천화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