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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화 구원자 (7) (237/241)

237화 구원자 (7)

“이런 씨 발라먹을 해골 자식아!”

이레아는 지옥의 불검을 휘두르는 데스나이트에게 신성력이 가득 담겨있는 주먹을 날렸다.

이레아의 주먹에 깃든 신성력이 거칠게 회전하면서 데스나이트의 불검을 밀어내버렸다.

“이...게...대체...”

데스나이트의 안광이 터질 것처럼 타올랐다. 작은 여자의 주먹에 자신의 불검이 밀려나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치이이익!

물을 부은 것처럼, 신성력에 닿은 데스나이트의 불이 사이라들기 시작했다.

“어...떻게...이런 일이...”

자신의 검이 쪼그라드는 것을 본 데스나이트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골통을 빠개주마!”

이레아는 평소처럼 험한 말을 내던지며 데스나이트의 전신을 폭풍처럼 두들겼다. 그녀의 주먹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데스나이트의 손이 어지러워졌다.

뿌드드득.

결국 데스나이트의 불검은 이레아의 연타를 견디지 못하고 반으로 뚝 부러졌다.

“이...익...!”

검이 반으로 조각나서 당황한 데스나이트를 향해 이레아의 강권이 날아갔다. 신성력으로 둘러싸인 주먹 앞에서 데스나이트의 갑옷은 종이처럼 찢겨져 나갔다.

“끄아아아아아....”

이레아의 주먹에 직격당한 데스나이트의 팔이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그녀는 데스나이트의 허리를 껴안은 뒤 스플랙스를 사용해서 척추를 반으로 뚝 부러뜨려 버렸다.

“끄으으....”

데스나이트는 비명도 다 지르지 못하고, 몸이 반으로 나뉜 채로 소멸되었다.

“후...”

이레아는 손을 털고 뒤를 돌아보았다. 일리아가 금색의 데스나이트를 처리하고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성녀님. 대충 정리가 끝났어요.”

일리아가 주변을 돌아보며 손바닥을 털었다. 신관들과 성기사들 위주로 배치됐기 때문에 언데드들을 빠르게 정리 할 수 있었다.

“다시 출발하죠. 깊은 숲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네. 빨리 그분을 도와드리러 가야죠.”

“모두 정렬!”

일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들을 모으려고 할 때였다. 시간이 돌아가는 것처럼 하늘의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아...”

하늘을 본 일리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숨이 막히고, 손발이 덜덜 떨렸다. 저 멀리, 유렌이 있을 곳에서 막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아아악....”

“크헉!”

“흐으윽...”

일리아만이 아니다. 이레아를 포함한 모든 기사와 성기사들, 신관들이 땅에 머리를 박고 벌벌 떨고 있었다.

“끼기기기...”

“크르르륵!”

그와 반대로 몬스터들은 어두워지는 하늘에서 힘을 얻었다. 숨어 있던 몬스터들과 언데드들은 눈에 마기를 담은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으윽...”

몬스터들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일리아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저 이 공포가, 이 압박이 빨리 사라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스르릉.

해골 전사의 칼이 이레아의 목에 떨어지기 직전 하늘에 광대한 빛이 떠올랐다.

화아아악!

찬란한 빛은 하늘을 가리고 있던 어둠의 절반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샤악!

일리아는 몸에 힘이 돌아오자마자, 검을 날려서 해골전사를 반으로 베어버렸다.

“모두 검을 들어라!”

일리아의 말에 정신을 차린 기사들이 바로 검을 들고 코앞까지 다가온 몬스터들과 전투를 시작했다.

일리아는 몬스터들과 전투를 하면서도 앞에 있을 유렌이 걱정되었다.

이 먼 거리에서도 이런 엄청난 압박을 느끼는데, 저 곳에 있을 유렌이 어떤 상태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유렌...”

**

“크아아아!”

럭스의 빛에 닿은 움브라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눈을 가렸다. 러스트를 잡고 있던 움브라의 그림자가 지워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지금이 아니라면 러스트를 구할 기회는 없다. 럭스가 만들어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바로 내력은 극성으로 운용했다.

빠지지직!

뇌인신법을 사용해서 움브라의 손에서 러스트를 뺏은 후에 뒤로 물러났다.

“크으윽, 럭스!”

움브라는 그림자의 막을 세워서 럭스가 뿌리는 태양빛을 막아냈다.

“움브라.”

움브라를 부르는 럭스의 목소리는 지독하리만큼 차가웠다. 태양의 신이 아니라, 얼음의 여신 같은 목소리였다.

“내 손으로 내년을 죽였는데, 대체 어떻게!”

럭스를 가리키는 움브라의 손과 눈은 쉴새없이 떨리고 있었다.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멈췄을 때 너처럼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생각은 할 수 있었다.”

“뭐?”

“사라졌다가 나타났을 때 넌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더군. 네가 살기를 띄는 것을 보고 나도 대비를 해두었다. 내 힘을 남기고 혼만 빠져나갈 준비를.”

럭스는 차가운 미소로 움브라를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넌 내 힘을 빨아대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더군. 그 덕에 네게서 도망칠 수 있었지.”

럭스의 말에 움브라가 눈을 부릅떴다. 설마 저런 방식으로 빠져나갔을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네 모든 힘을 모조리 버리면서 말이냐?”

“어차피 혼을 잃으면 힘도 모조리 잃는다. 멍청하게 힘에 집착할 필요가 없지.”

럭스의 말에 움브라가 이를 악물었다. 놈의 그림자를 헤치고 악마같은 표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 짧은 시간에 어떻게 힘을 회복한 거지? 이건 말이 되지 않아!”

“너와 정반대다. 네가 이 세계를 망치며 힘을 쌓았듯이, 난 세계를 되돌리려 하며 힘을 쌓았다. 저 분께서 정말 큰 도움을 주셨지.”

럭스는 고개를 돌려서 내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 모습을 본 움브라의 눈에 시꺼먼 어둠이 타올랐다.

“넌 모른다. 저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저 인간은...”

“알고 있다.”

“뭐?”

“네가 말하지 않았느냐. 이 세계를 만든 분이라고.”

“그런데 왜 저 인간의 편을 드는 거냐! 고작 인간이 이 세계를 만들었단 말이야! 넌 참을 수 있느냐!”

움브라는 럭스가 나를 감싸는 모습을 보고 악을 내질렀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뭐?”

“넌 여전히 신이 인간의 위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그 아집 된 성격이 결국 이런 사태를 만들었어.”

럭스가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움브라를 쳐다보았다.

“네가 뭐가 그리 대단하지? 우린 위대한 일을 이뤄낸 게 아니라, 태어났을 때부터 신이었을 뿐이다. 우리가 잘난 게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았던 거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난 모든 그림자의 신이자, 이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다! 위대한 존재란 말이다!”

“한심해서 말도 나오지 않는군.”

“나, 날 그렇게 보지 마라!”

럭스가 움브라를 지그시 응시하자, 놈은 인상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났다.

움브라가 나를 인간 따위라고 부를 때부터 느꼈다. 저 놈은 모든 존재를 자신의 아래로 보고 있고, 자신이 절대적인 존재라고 믿고 있다.

절대적인 존재여야 하는 자신이 인간에게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해 미쳐 날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날 먼저 공격한 건 너다. 이제 머리까지 망가졌구나. 움브라.”

“크으으...음?”

럭스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움브라의 입가에 갑작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큭, 크하하하하!”

움브라는 허리까지 제쳐가며 광소를 터트렸다. 난 긴장을 늦추지 않은 상태로 러스트를 꽉 잡았다.

“네년이 힘을 전부 회복했을 리가 없지. 큭큭”

움브라가 럭스의 치맛자락을 가리키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녀의 옷과 신체는 움브라와 달리, 반투명한 상태였다.

“럭스. 허세만 떨고 있었지. 현세에 강림 할 힘을 회복한 게 아니로군.”

“음...”

거침없이 말하던 럭스의 입이 열리지 않았다. 움브라의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중간에 뺏기긴 했지만, 난 거의 모든 힘을 회복했다. 너희 둘이 무슨 짓을 해도 날 막을 수는 없어.”

움브라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밤하늘 그 자체가 움브라에게 내려온 느낌이었다.

“이 세상의 운명은 멸망으로 결정되었다.”

움브라의 몸으로 하늘의 어둠이 모여들어 뭉치기 시작했다. 도자기가 조형되는 것처럼 놈의 몸에서 어둠이 꿀렁거렸다.

“그건 네 생각일 뿐이야.”

럭스는 움브라에게서 물러나 내 앞에 섰다.

“움브라의 말이 맞아요. 전 아직 힘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정말 세계가 무너질 거예요. 그래서 당신에게 걸겠습니다.”

럭스의 손끝을 따라 러스트의 몸에서 파란색 빛이 흘러나왔다. 파란빛은 내 손으로 날아와 내 몸속으로 들어갔다.

화아아악.

마지막 남은 이름 잃은 자의 파편이 내게 흡수되었다.

[이름 잃은 자의 파편을 획득하셨습니다.]

[이름 잃은 자의 파편 일곱 개가 모두 모였습니다.]

[이름 잃은 자의 파편이 럭스의 파편으로 변화됩니다.]

역시 이름 잃은 자는 자신의 힘을 잃어버린 럭스를 뜻하고 있었다. 드디어 럭스가 자신의 이름을 찾은 것이다.

후우우웅.

럭스의 손에서 태양빛이 번쩍였다. 그녀는 여태까지 모아왔던 자신의 기운까지 내게 전해주고 있었다.

가을의 태양빛처럼 기분 좋은 따스함이 내 몸속에 새겨졌다.

“제 힘을 받아도 움브라가 가진 힘을 이길 순 없을 거예요. 그래서 당신이 여태까지 쌓아온 힘과 경험이 필요해요. 부탁드릴게요.”

“걱정 마시오. 어떻게든 해내겠소.”

“믿고 있을 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럭스가 환한 웃음을 짓고서 러스트를 데리고 사라졌다.

지지지직.

거친 스파크와 함께 러스트에 힘을 완벽하게 흡수한 움브라가 변신을 마쳤다. 일러거리던 놈의 그림자가 응집되어 인간의 외형과 비슷하게 변했다.

놈에게서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존재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꿇려버릴 정도의 힘이었다.

[우오오오오오오!]

움브라의 입에서 한 줄기 포효가 터져 나왔다. 놈의 포효만으로 주변의 모든 것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삭제되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압도하는 절대적인 기세가 놈에게서 느껴졌다.

이를 악물고 버티지 않으면 나조차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개방.”

난 주먹을 꽉 쥔 채로 럭스의 힘을 개방했다.

[럭스의 파편이 개방 됩니다.]

[럭스의 파편이 만독자전신기에 녹아듭니다.]

내 몸 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모든 파편의 힘이 깨어났다. 일곱 개로 나뉘어 있던 럭스의 파편이 하나로 모인 후 만독자전신기와 합쳐졌다.

쿠구구구.

럭스의 파편과 합쳐진 만독자전신기의 내력이 대자연의 기운을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대자연의 기운은 흡수되는 족족 만독자전신기의 내력으로 변해서 내 몸에 쌓였다.

단전화 된 전신이 순식간에 만독자전의 내력으로 가득 차버렸다.

“아...”

천하만물, 모든 것이 내 손아귀에 잡혀 있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내가 배워왔던 기술들, 경험해왔던 모든 능력들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기세는 신의 힘을 되찾은 움브라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놈과 제대로 싸울 수 있다.

“인간 따위...”

움브라가 악귀같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아직이다.”

손을 저으며 분신을 사용했다.

[분신을 소환합니다.]

[소혼보주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사실 소혼보주는 나중에 혼자 있을 때 쓰고 싶었다. 당천위와 다시는 만나지 못 할 테니, 술이라도 한 잔하고 헤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가릴 때가 아니다. 쓸 수 있는 건 모두 써야한다.

“사용한다.”

심장 근처에 있던 구슬이 완전히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소호보주가 발동합니다.]

[연혼 대상이 소혼을 받아들입니다.]

[연혼0/3]

[마지막 소혼을 사용하셨습니다.]

[소혼대상 천수암왕 당천위]

콰아앙!

하늘의 어둠을 가르고 분신의 머리위로 거대한 빛의 기둥이 떨어져 내렸다. 당천위가 내 분신의 몸 속에 강림했다.

“유렌?”

당천위는 움브라 앞에서도 당당하게 서있었다. 내 가설이 맞았다. 당천위는 이 세계의 인물이 아니기에 움브라의 압박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 몸은 뭐지?”

“제 분신입니다.”

“분신? 하하! 이젠 별 재주를 다부리는구나. 현경의 벽도 뚫은 것 같고. 그런데...”

당천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독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움브라를 올려봤다.

“저 괴물은 뭐냐? 아예 말이 나오질 않는군...”

움브라의 힘은 당천위조차 경악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보았다.

“세계의 신인 주제에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는 미친놈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만, 미친놈이라는 거지?”

“맞습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저 놈에게 나오는 파장 때문인지 정상은 아니다. 본 실력의 반도 내지 못할 것 같군.”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싸울 수 있는 게 어디인가. 당천위의 절반의 실력이면 충분한 도움이 된다.

“제가 싸울 테니, 뒤에서 보조를 부탁합니다.”

“이 당천위에게 보조를 하라고? 많이 컸군.”

“네. 많이 컸죠.”

내가 당천위를 보며 웃자, 그가 마주 미소를 지어주었다. 제자를 보는 듯 뿌듯함과 대견함이 담긴 표정이다.

“좋다. 가라. 뒤는 막아주마.”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섰다.

이게 내 마지막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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