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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화 구원자 (6) (236/241)
  • 236화 구원자 (6)

    페루는 헤이렌 백작, 청사기사단과 함께 라미아와의 전투를 시작했다. 라미아의 숫자가 100이 넘어가는 것에 비해 기사들은 50명밖에 없었다.

    “내가 잘 해야 해.”

    청사기사단이 라미아의 특성을 잘 알고 있다 해도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자신이 적재적소에 잘 나서야 한다.

    긴장으로 몸이 덜덜 떨렸지만, 혀를 깨물며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먼저 마비부터!’

    페루는 독공을 극성으로 운용하며 손가락을 비볐다. 그의 수투에서 라미아들의 이동속도와 공격속도를 늦추는 마비독이 흘러나왔다.

    마비독은 페루의 공력을 따라 오직 라미아만 중독 시켰다.

    “됐어!”

    라미아들에게 독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페루가 뒤로 빠지면서 공중으로 연막을 터트렸다.

    저 연막은 독이 아니라, 라미아 독에 저항력을 가지게 해주는 가루다.

    “공격 개시!”

    헤이렌 백작의 외침에 기사들이 창과 검을 들고 라미아에게 돌진했다.

    “속도가 느려!”

    “라미아들이 속도가 느려졌다!”

    “예정대로다. 빨리 잡아!”

    기사들은 라미아의 이동속도와 공격속도가 느려진 것을 알아차렸다. 영지에서 만나는 라미아의 움직임보다 훨씬 느렸기 때문에 전투가 훨씬 편하게 흘러갔다.

    “크흑!”

    그럼에도 라미아에게 물려서 독에 중독되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해독해드릴게요.”

    “가, 감사합니다.”

    페루는 자신의 앞에 있는 라미아를 중독시켜 쓰러뜨린 뒤 부상당한 기사의 독을 해독해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마지막 라미아를 잡았습니다!”

    “전투종료!”

    페루의 활약과 기사들의 능숙한 경험 덕분에 단 한 명의 사망자 없이 라미아들을 모두 잡을 수 있었다.

    “이보게.”

    페루가 마지막 부상자의 독을 해독해준 뒤 일어났을 때 헤이렌 백작이 그를 불렀다.

    “아, 백작님!”

    “자네 덕분에 어려운 전투가 쉽게 끝났네. 단 한 명의 사망자가 없다니 놀라울 정도야. 유렌 사령관님이 자네를 우리 쪽에게 넣어준 이유를 알겠군. 정말 고맙네!”

    “아, 아닙니다. 도움이 됐다니, 제가 영광입니다!”

    페루가 헤이렌 백작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하하! 겸손하긴. 진심일세. 자네의 도움이 정말 컸어. 치료까지 해주었지 않나.”

    “그, 그게...”

    “자, 다시 가야지. 모두 정렬하라!”

    헤이렌은 페루의 어깨를 두드린 후 전진하기 위해 기사들을 정렬시켰다.

    “아...”

    페루는 자신의 어깨를 만지며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저택 식당에서 일하며 하급 독이나 퍼뜨리던 자신이 고위 귀족에게 전투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칭찬을 받았고, 기사들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건 자신을 받아들여 준 유렌의 덕이다. 그에 대한 고마움이 정말 너무너무 크게 다가왔다. 목숨과 인생을 모두 바쳐도 갚지 못할 은혜다.

    ‘정말 감사합니다.’

    페루는 유렌을 다시 만나서 정말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겠다고 다짐 했다. 그는 유렌이 있을 곳을 쳐다 본 후 헤이렌 백작을 쫓아 앞을 향했다.

    **

    “러스트!”

    움브라의 그림자에 묶여 있는 건 필로세 숲으로 떠나기 직전에 만났던 러스트였다.

    “빽!”

    “왜? 왜 저 여자가 잡혀있는 거요!”

    “제기랄. 이 일은 일어나지 않길 빌었건만...”

    사실 필로세 숲으로 출발하기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러스트는 움브라의 뼈와 살, 즉 육신을 나누어 받아서 태어난 존재다. 그런 러스트가 이곳까지 와서 숲을 탐색하고 갔는데 움브라가 모른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젠장...”

    함정일 확률이 높은데도 필로세 숲을 공격한 이유는 시간을 끌수록 우리가 불리했기 때문이고, 럭스가 나타날 거라 믿기 때문이었다.

    만약 시간을 끌어도 상관없었다면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았을 거다.

    “네가 참지 못하고 공격을 할 거라 생각했다. 방법이 없었겠지. 큭큭.”

    움브라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소름을 돋게 만드는 웃음을 지었다.

    “이 아이가 왔다 간 것을 내가 모를 것 같았나? 너무 급했군. 유렌 록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움브라는 러스트의 정보라는 미끼로 날 끌어들인 것이다.

    “그녀를 어디서 잡은 거지?”

    “어디서 잡았냐고? 질문이 틀렸다. 이 아이가 정보를 얻으려고 이곳에 왔을 때부터 내 지배하에 있었다.”

    “뭐? 러스트에겐 그림자가 붙어있지 않았어!”

    “너에게 특별한 힘이 있는 걸 알면서도 멍청한 짓을 반복할 수는 없지. 큭큭.”

    설마 창조주의 눈이 있다는 걸 아는 건가?

    창조주의 눈인지 정확하게 모르는 것 같았지만, 움브라는 내게 상대의 정보를 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아이는 내 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내 그림자를 숨기는 건 일도 아니야.”

    “크윽...”

    움브라가 날 비웃으며 러스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내 힘을 가지고 태어난 주제에 내게 반항을 하려 한 것부터가 네 죄다. 넌 내게 받은 것을 돌려줄 뿐이니, 영광으로 알거라.”

    “흐으읍...”

    러스트가 반항을 하려는 것처럼 몸부림을 쳤지만 더욱 더 깊은 그림자 속으로 갇혀버렸다. 그림자의 압박 때문에 기절했는지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저 떨거지들은 왜 데려온 거지? 힘을 잃은 내 그릇 라시드, 한참 전에 버릴 말이었던 해골에 보잘 것 없는 정령수라. 큭큭.”

    움브라는 내 뒤에 있는 라시드와 포메라, 빽빽이를 비웃으며 손가락을 펼쳤다.

    우우웅.

    놈의 손가락에서 그림자의 원이 펼쳐지며 나와 움브라만을 가두는 벽이 생겨났다.

    화아아아.

    움브라가 자신의 본원의 힘을 개방하자, 포메라와 라시드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유렌 록스. 아니지. 이젠 제대로 불러줘야겠지. 박성우.”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박성우는 현실의 내 이름이다.

    가끔 잊어버리지 않게 혼자 중얼거렸지만, 남에게 듣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역시 네놈이었군. 나를 이 세계로 부른 망할 놈이.”

    “그래. 나다. 나 말고 누가 너를 이곳에 부를 수가 있겠느냐.”

    움브라, 아니 그림자라는 게 등장했을 때부터 저 놈이 나를 이 세계로 소환한 놈일 거라 추측했었는데 그 추측이 사실이 되었다.

    “왜지? 내 나를 이 곳으로 부른 거냐.”

    “네놈이 이 세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네놈 따위가! 아무 것도 아닌 인간 따위가!”

    움브라는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놈은 내게 상처를 입었을 때보다 더 큰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움브라는 단순히 날 소환한 게 아니었다. 내가 이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것을 알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이 세계가 완전히 멈춰버린 적이 있었다. 비가 멈추고, 파도가 멎었고, 바람이 굳어버렸다. 해가 뜨지 않고, 달이 사라지지 않았으며, 별빛이 정지됐다.”

    분명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다. 요정 여왕 렐리아가 세계가 멈췄다고 했을 때와 똑같은 소리였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신인데! 그 어떤 신보다 위에 있는 절대적인 신인데! 세계가 멈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움브라는 절규를 하듯이 손을 부르르 떨었다. 놈의 분노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세계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나와 동급의 신인 럭스조차 움직일 수 없었지. 내가 그림자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렐리아는 요정계에 있었기 때문에 천리안은 사용 할 수 있었지만 움직일 수는 없다고 했었다. 움브라만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난 왜 이 현상이 발생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내 모든 힘을 소모해서 세계의 역사를 홀로 거슬러 올라갔다.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 끝에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차원?”

    다른 차원이라는 소리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차원은 분명 내가 있는 현실일 것이다.

    “그 차원에서 네놈을 보았다. 이 세계를 만든 박성우. 네놈을!”

    “아...”

    “나의 세상이 인간 따위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게 이해가질 않았다. 어떻게 너 같은 놈에게서 내 세상이 태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움브라의 말을 들으며 몇 가지 생각난 것들이 있다. 움브라나 렐리아가 세상이 정지되었다고 했을 땐 내가 소설을 연중했을 때다.

    소설의 뒷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연중 공지를 올리고 한 달 넘게 글을 올리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움브라는 그 때의 나를 본 것이다.

    “비루하고도 비루한 모습이었다. 신도 아니었고, 특별한 인간도 아니었다. 넌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이 세상을 너 같은 인간이 만들었다 생각되니 말할 수 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난 평범하고 평범한 글쟁이일 뿐이지만, 글에는 내 모든 것을 담았다. 저 미친놈에게 저따위 말을 들을 세계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미친 짓을 벌인 거냐? 고작 그 이유로?”

    어이가 없다. 내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나만 건드리지, 죄 없는 이 세계를 왜 망가뜨리려 했단 말인가.

    “그래. 네놈이 만든 이 세상을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다시 세상이 움직이기 전에 럭스를 죽인 뒤 그녀의 힘을 흡수해서 시간을 되돌리고, 네 혼을 소환했지.”

    볼 것도, 물어 볼 것도 없다. 동료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했던 하얀방의 헬리나는 역시 럭스였다.

    “내 힘을 전부 써버렸기 때문에 네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라시드를 빼돌렸지. 네놈이 이 세계를 만들었으니, 이 세계의 이야기가 망가지지 않게 나설 거라 생각했다.”

    “하...”

    라시드가 사라지게 만들었을 때부터 에블린은 움브라에게 먹혀버린 상태였던 거다.

    “내 예상대로 처음부터 두각을 드러내더군. 유렌 록스라는 이름으로 말이야.”

    “너 이 자식...”

    “큭큭. 재밌는 사실을 알려줄까?”

    움브라가 나를 정면에서 쳐다보며 사악하기 그지없는 웃음을 지었다.

    “난 네놈이 유렌 록스의 몸에 들어갔다는 것을 한참 전에 알았다. 그런데 왜 놔뒀을까? 죽이려고 불렀는데 왜 더욱 강해지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쌓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놔뒀을까?”

    움브라의 눈동자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정신은 파괴되다 못해 분해 된 것 같았다.

    “지금! 바로 지금! 너의 세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다. 네가 이세계의 인물이 되어 수많은 인간에게 정을 붙이고, 이 세계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을 때 세계를 부숴버리기 위해서였다!”

    “이런 미친놈...”

    “크하하하! 그래. 미쳤지. 네놈 같은 놈이 창조주니, 미칠 만하지 않겠느냐!”

    움브라가 거대한 손을 펼쳤다. 놈의 그림자가 대지를 덮기 시작했다.

    “러스트의 파편을 흡수하는 것으로 나는 원래의 힘을 찾게 된다. 그 힘으로 이 세계를 멸망시킬 것이다. 네놈이 럭스의 힘을 가지고 있어도 소용없다. 죽은 럭스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 누구도 날 막지 못해!”

    움브라가 러스트를 다시 꺼내 그녀에게서 검은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젠장! 럭스!”

    럭스를 부르짖어보았지만, 파편의 힘은 발동되지 않았다. 대체 내 몸 어디에 파편의 힘이 박혀있는지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네가 만든 세계에 작별인사나 해라. 네 연인, 네 친구, 네 가족, 네 땅 모든 것이 찢겨 죽으리라.”

    “망할!”

    부서져라 이를 악물었다. 내가 참지 못하고 움브라에게 덤볐다가 잡힌다면 그대로 죽게 될 거다. 그럼 이 세계를 정말 끝이다.

    “아...”

    러스트의 입에서 움브라에게 흘러들어가는 검은 기운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움브라의 그림자가 세계를 덮을 것처럼 퍼져나갔고, 새벽과 밤 사이에 멈췄던 하늘이 밤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저 하늘이 완벽한 밤이 된다면 움브라가 모든 힘을 찾았다는 뜻이다.

    “젠장!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이대로 있어도 끝나고, 덤벼도 끝나면 발악이라도 하고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화아아악!

    무기를 들어올릴 때 움브라와 러스트 사이에서 광대한 태양빛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

    눈부신 태양이 솟아나 어두운 하늘의 절반을 찬란한 빛으로 바꾸어버렸다.

    태양신 럭스가 현세에 강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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