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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화 구원자 (231/241)

231화 구원자

촤아아악!

파편의 힘이 깨어나자, 검환으로도 베어지지 않았던 그림자의 팔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키아아아아!”

그림자에게서 고막을 터트릴 것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놈은 잘려나간 자신의 팔뚝을 부여잡고 미친 듯이 흔들었다.

“그림자가 흩어지고 있어.”

그림자 투견 때와 비슷하게 놈의 잘려나간 팔에서 그림자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그림자의 표정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네, 네놈이 어떻게 그 힘을! 크아아악!”

그림자는 맹수처럼 입을 벌리며 절규어린 비명을 질렀다. 놈이 굉장히 당황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찌 네놈이!”

그림자는 내가 자신을 베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놈이 계획했던 일이 깨져버린 것 같았다.

저 반응은 뭐지?

그림자는 방금 내가 붉은 파편을 흡수하는 것을 봐놓고도 저런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설마 내가 파편을 얻은 것을 모르는 건가?

그러고 보니 그림자와 처음으로 마주쳤을 때 그림자는 내게 들어온 파편을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에게 향한 검은빛만 흡수한 뒤 사라졌던 게 생각났다.

그때와 지금 상황을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저 그림자는 내가 파편을 흡수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즉, 저 놈에게 지금 이 상황이 완전히 계산 밖의 일이라는 거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허리에 끼고 있던 비수를 전부 꺼내서 그림자를 향해 날렸다.

파아앙!

바람의 흐름을 따라 수십 줄기의 비수가 그림자의 전신을 노리고 날아갔다. 비수에는 내력과 파편의 힘이 가득 담겨 있었다.

“크으윽.”

그림자는 내 검에 베였기 때문에 지금까지와 달리 비수를 피하려고 몸을 움직였다.

“소용없다.”

그림자는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지만, 연위결이 연결 된 내 비수는 놈의 움직임을 그대로 쫓아갔다.

“가라!”

그림자는 자신의 기운을 담은 그림자 창을 만들어 내가 날린 비수들을 향해 뿌렸다.

챠쟈쟈장!

놈의 그림자 창과 내 비수에 실린 힘은 동급이었기 때문에 내 비수는 땅으로 떨어졌고, 그림자 창은 소멸되었다.

“걸렸어.”

내 공격을 막아낸 그림자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노리던 순간이었다.

난 저 비수들을 날리면서 보이지 않는 공격을 준비했다.

“끄아아아악!”

그림자가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놈의 왼쪽 가슴엔 붉은 칼날이 솟아나와 있었다.

“직접 싸워보지 않아서 그런가? 단순하군.”

그림자의 가슴을 뚫어버린 붉은 칼날은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 귀왕살이다. 비수를 날리며 분신이 가지고 있던 귀왕살을 연위결로 움직여서 그림자의 뒤를 공격한 거다.

“끄으윽...커헉!”

귀왕살은 그림자의 가슴을 완전히 관통해버린 후 내 손으로 돌아왔다.

“핵은 아니었군.”

그림자는 연기처럼 일렁거리고 있었지만, 인간의 실루엣을 가지고 있어서 왼쪽 심장을 노린 건데, 핵을 뚫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핵이 없거나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크으으으...”

그림자가 자신의 가슴에 난 구멍을 막으려 했지만, 구멍 사이로 그림자들이 밀려나오고 있었다.

“끝을 내자.”

조금 차올랐던 내력은 방금 공격으로 모두 사용했다. 주머니에서 투명한 유리병을 꺼내들었다. 제국에서 얻었던 엘릭서다.

이 싸움이 분명 내 마지막 싸움이다. 엘릭서는 하나뿐이지만, 아까워 할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을 써서 저 놈을 죽여야 한다.

“말도 안 돼!”

엘릭서의 뚜껑을 열려고 할 때 그림자가 하늘로 손을 뻗었다. 놈의 전신이 번쩍이더니, 어두운 하늘과 동화되어 아예 사라져버렸다.

“젠장.”

눈을 감고 기감을 가늘게 펼쳐 봐도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느껴지는 거 없어?”

“사, 사라진 것 같아요. 확실히 근처에는 없어요. 하아...”

러스트 역시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입에서 거친 한숨이 흘러나왔다.

“끄응...”

“오늘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군.”

“너무 무서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그림자에게 압박을 받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던 사람들이 천천히 일어났다. 놈이 사라져서 압박이 풀린 것이다.

“대체 무슨 이유지?”

지금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은 대륙 전체로 따져도 수위에 드는 강력한 무력을 가진 사람들인데도 그림자에게 반항은커녕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윽, 내가 이런 꼴을...”

민망한 표정으로 일어나는 드래곤인 카이젤도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그림자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음...”

옆에 있는 러스트를 보았다.

그녀가 강한 힘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알지만, 카이젤조차 견디지 못한 그림자의 압박을 아무렇지 않게 버틴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러스트의 몸에 있을 파편의 힘이 그림자로부터 그녀를 버티게 해줬을 거다.

“분명 둘은 관계가 있어...”

분명 칠죄종과 그림자는 어떤 관계가 있을 거다.

“러스트. 그림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나?”

“알 거 같네요.”

“안다고? 정말?”

“네. 확실하진 않지만...”

러스트가 그림자가 사라진 허공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그래. 네가 가이린에서 열린 축제에 찾아왔잖아. 그땐 깜짝 놀랐지.”

“당신과 만났을 때 저는 저와 다른 칠죄종을 그림자로부터 태어났다고 했었죠.”

“어...”

러스트의 말을 듣자, 그날 밤이 생각났다. 분명히 러스트는 자신이 그림자에게서 태어났다는 말을 했었다.

당시엔 러스트가 나타났다는 것에 놀라서 별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들으니 바로 거기서부터 힌트가 있었다.

“칠죄종의 탄생...”

칠죄종의 설정을 짤 때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가 만들고 이런 것에 대해선 딱히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세계가 당위성을 가지기 위해 설정을 짜 맞춰버렸던 것 같다.

“기억나시나요?”

“그래. 확실히 그런 말을 했지.”

“지금은 잊혀져버린 두 명의 고대신이 있었어요. 서로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두 명의 신. 럭스와 움브라. 우리가 본 건 그림자의 신 움브라일거에요.”

“움브라.”

예전에도 말했지만 고대신은 나중에 쓸 일이 생길지도 몰라서 설정만 해두었고 이름조차 정해두지 않았다.

움브라와 럭스라는 이름이 알아서 정해지고 활동까지 하는 것을 보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그리고 럭스.”

이젠 럭스가 누구인지도 알 것 같았다.

“가봐야겠어요.”

러스트는 움브라가 사라진 허공을 올려보며 눈을 반짝였다.

“뭐? 가긴 어딜까. 그림자가 노리는 건 내가 아니라, 너다. 혼자 돌아다니다가 잡히면 답이 없어!”

“지금 움브라는 당신에게 큰 상처를 입어서 회복하느라 저를 찾을 여유가 없을 거예요.”

“그렇다고 해도 너무 위험해.”

“저를 만든 게 움브라와 럭스라고 해도 제가 그들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없어요.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해요.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 저밖에 없구요.”

러스트의 눈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자신이 사는 것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 혹시 저에게 다른 감정이라도 생기신 건가요? 잘생긴 남자가 걱정해주는 기분이 나쁘진 않지만 할 일은 해야죠.”

“그럴 리가 있냐! 난 단지 네가 잡히면...”

“그렇게 노골차게 거부 할 필요는 없잖아요. 어쨌든 걱정하지 마세요. 움브라와 럭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뒤 찾아 갈게요. 그를 이길 수 있는 건 당신밖에 없으니까.”

러스트가 단호한 눈빛을 한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가진 특성을 이용하면 움브라에 대해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아, 어쩔 수 없군. 놈이 근처에 있다싶으면 절대로 접근하지 마.”

“물론이죠. 그럼 또 봐요.”

러스트는 그 어떤 때와도 다른 어색한 미소를 짓고서 사라졌다.

“유렌.”

일리아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나도 지금은 모르겠어.”

“하늘은 대체 어떻게 된 거고.”

일리아는 아직도 어두워져 있는 하늘을 보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것도 모르겠어.”

움브라가 다시 나타났을 때부터 검게 물들 하늘은 지금도 어두운 상태였다. 분명 태양이 비치고 있음에도 흡사 새벽이 된 것처럼 어둑했다.

“후...”

답답함으로 가득 차 있는 한숨을 내뱉었다.

원작의 이야기는 프라이드가 죽은 순간 끝나 버렸다. 앞으로의 일들은 작가인 나조차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내가 네비게이션을 끼고 달려왔다면, 앞으로는 지도조차 없이 길을 걸어야 한다. 걱정이 되지 않느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해야겠지.”

그렇다고 뒤로 물러 설 수도 없다. 내 뒤에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응?”

다시 다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아까 잘려나간 움브라의 팔이 보였다.

그 팔은 여전히 그림자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내가 그 팔을 지워버리려고 다가갈 때 팔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팔이 작은 빛으로 변하더니 나를 향해 날아왔다. 공격인 줄 알고 막으려 했지만, 그림자엔 어떤 살기나 감정도 들어있지 않았다.

이름 잃은 자의 파편이 다가올 때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설마. 이것도 흡수 할 수 있는 건가?”

난 거부하지 않고, 검은빛을 내 몸에 받아들였다.

[정화된 움브라의 파편을 얻으셨습니다.]

정화된?

이름 잃은 자의 파편의 힘으로 놈의 팔을 잘랐기 때문에 놈의 기운이 정화 된 것 같다.

“이것도 이유가 있을 거야.”

이 힘은 분명히 내게 도움이 될 것이다.

**

밤보다는 밝고, 새벽보다는 어두워 꼭 흐린 그림자에 물든 것 같은 세상이 된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유렌님! 놈들이 또 오고 있습니다.”

“알겠다.”

페루의 다급한 말에 방 밖으로 나간 뒤 벽 위로 올라갔다.

콰과과과.

눈이 검게 물든 다양한 해양 몬스터들이 바다를 가르며 내가 있는 성벽을 향해 헤엄쳐 오고 있었다.

“오늘은 좀 많네. 700마리는 넘겠어.”

“종류도 다양합니다.”

바다에서 보이는 몬스터는 볼라크, 샤크라이, 타이쿤, 만타르에 씨 서펜트까지 있었다.

하늘이 어두워진 이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라면 저렇게 몬스터들이 공격적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지금 시기는 몬스터들이 많은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가 한 달 동안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내가 있는 가이린과 록스만이 아니다.

온 대륙의 몬스터들이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공격하기 때문에 지금 전 대륙에 비상이 걸려있는 상태였다.

“움브라. 이 망할 놈이.”

몬스터들의 눈에 일렁거리고 있는 검은 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더러운 짓거리는 움브라의 짓이다. 놈이 자신의 회복시간을 벌기 위해 술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끼이익!

아래에서 문이 열리는 거친 쇳소리가 들렸다.

“공격하라!”

“공격하라!”

아린이 이끄는 흑철기사단과 병사들이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향해 돌진했다.

“이제 아린님도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네요.”

“그러네. 많이 변했지.”

아린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지금도 무표정일 때가 많지만, 기사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어떤 땐 밝게 웃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고.”

아린의 오른쪽, 왼쪽에 선 크라이드와 브리카도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크라이드는 쫓겨날 수련기사였고, 브리카는 동네 양아치였지만, 지금은 어디 내놔도 걱정 없는 최상급의 기사가 되었다.

“나도 변했을 테지.”

옛 생각에 피식 웃으며 천판을 꺼내 들었다.

“어? 오늘은 직접 나서시게요?”

“그래. 기사들과 병사들이 며칠간 쉬지도 못했고, 몬스터들의 숫자도 많아서 그냥 놔뒀다간 사상자가 나올 거야.”

아린이 기사들을 잘 이끌고 있지만, 피곤한 기사와 병사들로 저 몬스터를 상대하기는 힘들다. 분명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나올 거다.

“이런데서 죽으라고 기사들을 키운 게 아니거든.”

거의 땅에 도달한 몬스터들을 향해 만천화우를 사용했다.

콰과과과광!

강기의 힘이 실려 있는 만천화우가 몬스터들을 폭풍처럼 몰아쳤다. 샤크라이는커녕 씨 서펜트 조차 내 만천화우를 견디지 못하고 숨이 끊어져버렸다.

쿠구구구구.

열심히 달려 온 수백 마리의 해양 몬스터가 육지도 제대로 밟아보지 못하고, 모조리 바닥에 몸을 뉘였다.

“우와아아아아!”

“유렌님이다!”

“후작님. 만세!”

“만천화우! 만세!”

내가 만천화우를 쓴 것을 본 기사와 병사들이 손을 들어 올리며 환호를 질렀다.

아린과 크라이드, 브리카가 웃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모두 들어와서 쉬도록.”

기사와 병사들에게 손을 흔들어 성으로 들어라 지시 한 뒤 내 방으로 향했다.

“음?”

분명 문을 닫고 갔건만, 문틈이 살짝 벌어져있었다. 누가 들어갔는지 알 것 같아서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왔군. 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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