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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화 라시드 (3) (226/241)

226화 라시드 (3)

-맞아. 내가 진짜 라시드다.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빨리 날 죽여라! 

에블린이 술수를 부리는 건지 의심해봤지만, 그녀는 내가 이곳에 나타날 거라곤 생각도 못했을 거다. 에블린의 예측에서 나는 크리티스에게 죽었거나 묶여 있어야 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아까 라시드의 정보창에서...” 

라시드의 정보창을 봤을 때 현재 기분이 판단 불가였던 것이 기억났다. 본래의 정신이 갇혀있었기 때문에 저런 정보가 뜬 것 같았다. 

-내가 몸을 막고 있을 때 내 목을 베라! 

즉,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진짜 라시드의 음성이분명했다. 

“네 몸은 누가 움직이고 있는 거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끄윽, 이 멍청한! 오래 버리지 못한 다고! 

“뭘 착각하고 있군.” 

-뭐? 

“네가 막아주지 않아도 난 네 몸을 막을 수 있다.” 

내력을 극성으로 휘돌렸다. 퍼져나가는 내력에 주변에 있던 돌조각들이 모조리 터지고, 나를 둘러싼 거대한 기류가 퍼져나갔다. 

콰아앙! 

라시드에게 접근해서 놈의 몸을 걷어차 벽에 박아버렸다. 

“...” 

여전히 라시드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고 큰 피해를 입지도 않았지만, 속에 갇힌 진짜 라시드의 반응이 변했다. 

-마, 말도 안 되는 힘이군. 역시 넌... 

“네 몸이 무슨 짓을 해도 난 막을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죽일 때 죽이더라도 라시드의 사정은 듣고 싶었다. 아니,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들어야 했다. 

-내가 내 몸을 죽이라고 한 것은 단순히 강해서가 아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지금 내 몸을 움직이는 건 에블린이라는 여자가 만들어낸 가짜 인격이다. 그 악마 같은 여자의 명령만을 듣는 거짓된 인격이지. 

에블린이 라시드를 세뇌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가짜 인격을 만들어서 조종하다니, 그녀가 대체 무엇을 노리는 건지 모르겠다. 

-난 그 여자에게 그릇이라고 불렸... 이, 이런 이제 막지 못한다. 

“그릇?” 

진짜 라시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 후 라시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진짜 라시드가 더 이상 몸을 막을 수 없는 모양이다. 

“네가 막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했지!” 

검환을 쓰고 달려드는 라시드에게 내가 먼저 접근했다. 

캬앙! 

오른손에 든 검으로 라시드의 검격을 튕겨내고, 왼손에 뇌기를 둘러 전뢰상권의 뇌폭을 펼쳤다. 

빠지지직! 

연타로 터지는 뇌기의 영향으로 라시드의 몸이 멈췄을 때 그의 전신을 두들겨서 다시 벽에 박아버렸다. 

콰아앙! 

다리와 팔을 부러뜨리려고 꽤나 힘을 줬지만 라시드는 몸에 힘을 빼서 타격을 흡수했다. 놈은 가짜임에도 라시드의 재능을 이용할 줄 알고 있었다. 

쾅! 쾅! 쾅! 

난 라시드를 벽에 박아놓고 주먹을 날려서 충격을 그대로 주었다. 

“됐지? 빨리 설명해.” 

난 단순히 라시드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라시드의 특성을 본 이후로 계속 등골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진짜 라시드가 마지막에 말했던 그릇과 그가 가진 그림자의 그릇이 분명 무슨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유렌 록스라고 해도 내 몸을 저리 쉽게 제압 할 줄은 몰랐군. 

“날 알고 있었나?” 

-이 안에 갇혀있다고 해도 몸이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너 같은 유명인을 모를 리가 없지. 예전에 직접 본 적도 있었다. 

언제 봤다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라시드와 내가 동시에 두통을 느꼈을 때일 거다. 

-너는 거침없이 악을 처단하는 대륙의 영웅이 아니던가? 왜 내 사연을 들으려고 하는 거냐. 난 많은 사람을 죽인 악인이다. 그냥 죽여라. 

“닥치고 말해. 이건 네 죽음으로 끝날 만큼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닐 거다.” 

지금 난 라시드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에블린의 계획을 부수기 위해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거다. 

에블린은 분명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을 거다. 

-하아... 알겠다. 간략하게 말해주마. 

라시드가 한숨을 내쉬고 자신의 사연을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어떻게 에블린에게 잡혔는지는 모른다. 정신이 드니, 이미 그녀에게 세뇌되어 있었지. 

그럴 거라 생각했다. 에블린은 소설의 첫 부분이 시작되기 전 라시드에게 아무 능력도 없을 때 납치를 했으니까. 

라시드는 에블린에게 인생을 강탈당한 포메라와 같은 경우다. 아니, 훨씬 심했다. 포메라와 달리 나에게 구해지지 못했으니까. 

만약에 내가 라시드를 일찍 구했다면 라시드는 내 부하가 되거나, 친구가 되어있었을 거다. 정말 아쉬운 일이다. 

-그 당시에도 내 몸을 조종할 수가 없었다. 가끔씩 몸의 통제권이 돌아오기 했지만, 시간이 짧아 아무 것도 하지 못했지. 

“그 가짜 인격은 언제 만들어진 거지?” 

-어느 순간 내 몸을 누군가 조종하기 시작했다. 그게 에블린이 만든 가짜 인격이지. 그 인격도 처음엔 여러 감정이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 가짜인격이 자신의 의지로 널 보러 간적도 있었다. 그 때도 아까처럼 두통이 있었는데... 

내 예상대로 나와 라시드가 두통을 공유했을 때가 맞았다. 

-어쨌든 얼마 전부터 에블린이 내 몸에 무언가를 먹이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가짜인격의 감정이 점점 사라지더니 결국엔 지금처럼 명령만 듣는 기계처럼 되어버렸다. 

“음...” 

-그날부터 에블린은 나를 그릇이라고 불렀다. 

“그릇?” 

-그래. 누군가의 그릇이라고 했지. 

에블린은 그 무언가를 먹여서 라시드의 몸에 그림자의 그릇이란 특성을 만들어 낸 것 같다. 

-그래서 날 죽이라는 거다. 에블린은 내 몸을 이용해서 무슨 짓을 벌이려고 할 거다. 

“이상한데...”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다 들었으면 빨리 날 죽여라. 분명 에블린이 이곳에 올 거다! 

너무 이상했다. 

누군가의 그릇이 될 라시드에게 회광반조라는 특성을 준다? 회광반조는 죽음으로 이루어지는 특성이기 때문에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거기다 에블린이 지금 나와 네가 만난 걸 모를 리가 없어.” 

-뭐? 

아까라면 모를까 내가 라시드와 만난 후 시간이 꽤나 지났기 때문에 에블린은 나와 라시드와 접촉한 것을 알았을 거다. 

내가 얼마나 강한지 알면서도 그렇게 애지중지하게 키워놓은 라시드를 방치한다니, 라시드가 죽길 바라지 않는 이상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랬군. 그 여자...” 

이제야 머리가 제대로 돌아갔다. 

저 그림자의 그릇이란 특성은 라시드가 죽어야 발동되는 특성일 거다. 

회광반조 때문에 죽든, 누군가에 당해서 죽든 라시드가 죽게 되면 그의 몸에 무언가가 일어날 거다. 

그림자의 그릇은 그러기 위한 특성이다. 

-왜 그러는 거냐? 모두 설명했으니, 날 죽여라! 

“미안하지만, 그건 힘들겠어.” 

-뭐? 너 대체...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내가 죽이지 않아도 라시드는 회광반조의 효과로 결국에 죽게 된다. 에블린에게 외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다니.” 

머리를 굴리며 입술을 깨물고 있을 때였다. 

화아악! 

팔찌 형태로 있는 아그네스에서 따스한 빛이 터져 나왔다. 따뜻한 이불에 몸이 감싸지는 느낌이었다. 

[아그네스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아그네스와 자신의 의지가 일치해 하나의 마음이 되었을 때 심의(心意)를 사용 할 수 있습니다.] 

빛이 그치고 아그네스가 깨어났다는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아그네스? 이제 깨어난 거야?”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 

아그네스의 목소리가 변했다. 예전이 소녀 같은 목소리였다면, 지금은 성숙한 여성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말투도 차분해진 것 같았다. 

“일어나자마자 미안한데 심의가 뭐지?” 

-여전히 급하네. 너와 내가 같은 뜻을 가져서 마음이 일치하면 그 무엇이라도 제거할 수 있어. 단순히 말하자면 의지를 가지는 것만으로 상대나 어떤 대상을 공격할 수 있는 거지. 

아그네스의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단어가 있었다. 

심검(心劍). 

의지를 가지는 것만으로 무엇이든 제거할 수 있는 검의 최고 경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사용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한 번 쓰면 한동안 못 쓰지만 엄청난 능력이지. 간신히 얻었어. 

“아그네스! 넌 천재야! 정말 잘했어!” 

-으, 응? 

심검이라면 라시드의 생명은 놔두고 그의 몸에서 타오르는 회광반조의 오러만 지워버릴 수 있을 거다. 아니, 그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주인공은 늦게 나타난다던데 딱 맞는 순간이다. 아그네스. 이번엔 네가 주인공이야!” 

-대체 너 뭔 소리를... 

어떻게 이렇게 그림 같은 상황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퍼즐을 짜 맞춘 느낌이다. 

“라시드!” 

-팔만 보고 중얼거리더니, 이제야 날 보는군. 이제 시간이 없다. 에블린이 곧 올 거다. 제발 날 죽여라! 

“아니, 에블린이 노리는 게 바로 네가 죽는 거다. 넌 살아줘야겠어.” 

-뭐? 

황당했는지 라시드의 입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들렸다. 

“설명하기 복잡해. 네 몸을 멈출 수 있겠어?” 

-자, 잠시라면 가능하다. 

“잠시가 아니라, 버텨야해.” 

-알겠다. 해보지. 

뿌드드득. 

계속 발광을 하던 라시드의 몸이 부들부들 떨며 멈췄다. 진짜 라시드가 몸을 멈춘 것이다. 

“아그네스. 저 놈의 심장 부근에 보이는 검은 오러 보여?” 

-그래. 보여. 

“저것만 제거해야해. 심장은 건드리지 말고.” 

-저것만? 방금 일어난 숙녀에게 너무 어려운 일을 시키네. 

“미안해.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 부탁할게.” 

-정말 주인 잘못 뒀다니까. 

툴툴 거리는 말과 다르게 아그네스는 이미 준비를 끝냈다. 

-빠, 빨리 해라. 

“견뎌.” 

-말은 참 쉽지... 

“가자. 아그네스.” 

-알겠어. 

아그네스는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한 비수로 변했다. 홀로 쓰는 심검이 아니기 때문에 아그네스와 내가 연결 될 수 있는 매개채로 비수의 형태가 필요했다. 

내가 보는 것은 라시드를 태우는 심장의 오러였다. 아그네스 역시 나와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두 가지 시야가 동시에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는 내 눈으로 보는 시야, 두 번째는 아그네스로 보는 시야였다. 

화아악. 

아그네스와 내 시야가 하나로 합쳐졌다. 나와 아그네스가 같은 의지를 가져 세 번째 마음의 눈을 연 것이다. 

마음의 시야에서 보이는 건 타오르는 검은 오러 뿐이었다. 

-지금이야. 던져! 

아그네스의 목소리와 함께 비수를 던졌다. 난 비수에 어떤 변화나 힘도 싣지 않았건만 비수는 이미 라시드의 오러에 닿아 있었다. 

생각을 하는 즉시 닿아버리는 심검 그 자체였다. 

털썩. 

라시드가 쓰러지고, 그의 몸을 관통한 아그네스가 다시 내 손으로 돌아왔다. 

“됐어!” 

라시드의 몸엔 그 어떤 오러도 존재하지 않았고 심장은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 

“하하하!” 

처음으로 시도한 심의가 완벽한 성공을 이룬 것이다. 

“아그네스! 네가 최고야. 진짜 대단했어!” 

-그걸 이제야 알았어? 

아그네스에게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싫어할 걸 알기에 그만두고 라시드에게 다가갔다. 

“크으으...” 

오러를 잃은 라시드는 몸을 단련한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라시드!” 

-어, 어떻게 심장에 있는 오러만 지운 거지? 대체 넌 뭐야... 

“몸의 지배권은 돌아오지 않은 건가?” 

-그래. 아쉽지만 내게 없다. 

라시드의 정보창을 다시 보았다. 

[이름: 라시드] 

[특성: 검신(劍神), 발전하는 재능, 마법저항lv5, 상태이상저항lv5, 그림자의 그릇.] 

라시드의 특성에서 회광반조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림자의 그릇은 그대로였다. 저게 있다면 아직 안심할 수가 없다. 

“방법이 있을 거야.” 

라시드를 제압해놓고 마법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이것저것들을 꺼내다가 내 손에 풀 같은 것이 잡혔다. 

“이건...” 

꺼내 보니, 풀이 아니라 요정의 숲에서 렐리아가 주었던 여섯 잎 클로버였다. 

“여섯 잎 클로버. 렐리아가 분명히 필요할 거라고 가져가라고 했지.” 

여섯 잎 클로버의 효과는 자신의 근원에 영향을 미치는 기적이다. 지금상황과 딱 들어맞는다. 

이게 바로 답이었다. 

“라시드!” 

-뭐, 뭐냐? 

“이거 보이지?” 

-크, 클로버인가? 잎이 좀 많군.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너에게 이걸 먹이는 순간 넌 처음 보는 장소에 가게 될 거고, 그곳엔 너와 다른 한 명이 있을 거다. 아마 네 몸을 조종하는 겉의 인격이겠지.” 

-저, 정말인가? 

“그래. 거기서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 네 몸을 차지하게 될 거다. 할 수 있겠나? 

라시드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죽어야 하는 놈이다. 너무 많은 짓을... 

“그래. 죽어. 하지만 네 똥은 치우고 나서 죽어라. 네 인생을 마음대로 조종한 에블린에게 엿은 먹이고 죽어야지. 그 이후에 죽고 싶다면 내가 죽여주마.” 

-큭큭. 그래. 맞아. 내 똥은 내가 치워야겠지. 알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기고 죽어주마.

“좋아. 그곳은 마음이 강할수록 강해지는 곳이다. 네 마음을 믿어라.” 

-알겠다. 

한숨을 한 번 쉰 다음 라시드의 입에 여섯 잎 클로버를 넣어주었다. 

“크으으...” 

반항하던 라시드는 여섯 잎 클로버를 억지로 삼키고선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 

-어떻게 될 거 같아? 

“모르겠어.” 

할 수 있는 건 그저 비는 수밖에 없었다. 

“음?” 

2분정도가 지난 후 라시드의 몸이 부르르 떨렸고 그가 눈을 떴다.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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