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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화 라시드 (2) (225/241)

225화 라시드 (2)

콰아아아! 

크리티스의 전신에서 회색 아우라가 솟아올랐다. 놈의 아우라는 흡사 불에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신화의 위엄이군.” 

저 회색 아우라는 크리티스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 신화의 위엄이다. 

신화의 위엄은 오러 블레이드도 깨부술 수 있는 마나의 칼날을 전신에 두른 것보다 더 강한 위력과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 

“저걸 부시려면 강환 정도는 써야겠지만, 난 그럴 필요가 없지.” 

“크아아아아!” 

크리티스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선 내게 돌진했다. 신화의 위엄을 사용한 크리티스의 속도는 내 상상이상이었지만, 내력을 개방한 내 속도 역시 놈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나와 크리티스가 중앙에서 충돌하자, 대지가 뒤집어지고, 경기장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뿌드드득. 

크리티스가 모든 것을 찢어발길 손톱을 휘둘렀지만, 비수를 들고 있는 내 힘이 오히려 놈을 밀어내고 있었다. 

“이, 이 무슨!” 

크리티스가 태어난 이후로 정면에서 밀리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놈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크아아아!” 

크리티스는 멈추지 않고, 분노를 살기로 바꿔 나를 더욱 압박하려 들었지만 먹히지 않았다. 

“살기만 높여서 뭐하게? 힘을 더 써봐.” 

“닥쳐라!” 

“힘으로 밀리니까 당황스럽나?” 

“으아아아!” 

크리티스가 뒤로 한 번 물러난 뒤 추진력을 받아 다시 돌진했다. 

파아아앙! 

추진력을 얻은 크리티스의 속도가 처음보다 훨씬 빨라졌다. 칼날의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찌지지직! 

공간이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내게 접근한 크리티스가 양 손톱을 X자로 휘두른 것이다. 

콰아아아앙! 

양손에 흑철의 비수를 세워 놈의 공격을 막았다. 흑철의 비수엔 회색 아우라에 맞서는 흰색 강기가 폭발하고 있었다. 

뿌드드득! 

비수에 완벽에 이른 강기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나와 크리티스는 서로 밀어내는 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으으윽...” 

“이런 상황은 생각해보지 않아서 당황스럽겠지.” 

“네놈이...” 

난 크리티스가 굉장히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크리티스도 내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자신과 정면으로 붙어서 밀리지 않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 거다. 

여기서 나와 크리티스의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넌 여기까지다.” 

“닥치라고 했지!” 

콰과과과! 

크리티스가 손톱을 휘둘러 창같이 예리한 오러를 비처럼 쏟아냈다. 대지가 젤리라도 된 것처럼 푹푹 파여 나갔다. 

빠지지직! 

난 놈의 공격이 쏟아지기 전에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형환위를 사용해서 놈의 뒤로 이동한 것이다. 

“두 번 속지는 않는다!” 

내가 자신의 뒤로 향한 것을 알아차린 크리티스가 발에 신화의 위엄을 집중해 내리 찍었다. 놈의 발이 거인의 발처럼 거대해졌다. 

챠아앙! 

귀왕살을 뽑아서 크리티스의 거대한 발에 찔러 넣었다. 

푸아악! 

신화의 위엄이란 압도적인 특성이 귀왕살 앞에서 두부처럼 뚫려버렸다. 

찌지지직! 

귀왕살은 신화의 위엄을 모조리 찢어발기고 크리티스의 가죽을 사정없이 베어버렸다. 

“크아악!” 

크리티스가 비명을 내지르며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나를 쳐다보는 놈의 표정에 경악과 혼란이 담겼다. 

“대, 대체 뭐야!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어떻게 이런...” 

크리티스는 귀왕살이 아니라,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무기가 존재하리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뭐긴 뭐야. 너 같이 잘난 놈 때려잡는 몽둥이지.” 

“뭐? 설마 그 무기가...” 

크리티스는 이제야 내 손에 들린 귀왕살에 시선을 주었다. 

귀왕살과 기라녹스가 만들어준 신살 무기들은 크리티스가 가진 힘과 완전히 상극이다. 

놈이 가진 신화의 위엄은 완숙에 이른 오러 블레이드도 견딜 수 있지만 신살의 특성을 가진 귀왕살에겐 종이처럼 찢어진다. 내게는 최고의 상성이었다. 

“그렇다고 억울해하진 말고, 그냥도 때려잡을 수 있으니까.” 

크리티스와 힘을 겨뤄봐서 알 수 있다. 현경에 오른 내 수준은 놈과 정면으로 싸워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상황이 상황이라 빨리 끝내기 위해 신살의 무기를 쓰는 것이다.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 끝내자고.” 

크리티스에게 신살의 천판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몬스터들에게 독도 뿌려놨기 때문에 놈을 제거하고, 카이젤과 싸우는 악마만 처리하면 이곳은 정리 될 것이다. 

“그럼...” 

신살의 천판을 꺼내려 할 때 앞에 처음 보는 창이 떠올랐다. 

띵! 

[그웬 브라이어드가 당신을 소환하고자 합니다. 응하시겠습니까?] 

“그웬이라고?” 

그웬 브라이어드는 일왕자고, 이 알림은 내가 그에게 주었던 소환의 팔찌의 능력이다. 

“이게 나왔다는 건...” 

난 일왕자에게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만 소환의 팔찌를 사용하라고 말했었다. 

그의 성격상 웬만한 일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을 텐데 이게 발동했다면 지금 굉장히 위급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이왕자가 무슨 술수를 부린 것이 확실했다. 

“젠장...” 

당장 가고 싶지만, 내가 가게 되면 크리티스를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신화의 위엄을 두른 크리티스는 드래곤인 카이젤도 이길 수 없다. 

내가 돌아오기 전에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죽을 거다. 

그렇지만 방법은 있었다. 

“분신소환.” 

분신을 쓰겠다고 생각을 하자, 눈앞에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분신을 소환합니다.] 

[소혼보주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순간 당천위를 불러야 할 지 고민이 되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사용하지 않는다.”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내 몸이 두 개로 갈라졌다. 

“뭐, 뭐야! 왜 두 명이!” 

“내가 직접 때려잡고 싶다만, 어쩔 수 없군. 부탁한다.” 

내 말에 분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녀석에게 귀왕살을 넘겨주고 바로 일왕자의 소환을 받아들였다. 

화아악! 

푸른빛이 내 몸을 둘러쌌다. 푸른빛 속에서 어떤 검사가 알포스 후작의 목을 베려는 장면이 보였다. 

캬아아앙! 

전력으로 빛을 뚫고 나가서 알포스 후작의 목을 가르려던 검을 막았다. 

타앙! 

검사의 검에 실린 힘이 강맹했지만 지금 난 모든 내력을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그 검을 튕겨낼 수 있었다. 

“유렌!” 

“유렌 후작!” 

뒤에 있던 국왕과 일왕자가 울컥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왕족들과 기사들을 안심 시킨 뒤 앞으로 쳐다보니, 전신을 부들부들 떠는 이왕자가 보였다. 

“으으...” 

그의 표정은 귀신을 본 것처럼 파랗게 질려있었다. 

“역시 저질렀군. 아서 브라이어드.” 

“유렌 록스. 네, 네가 어떻게 여기에...” 

“흐음...”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왕자가 사람들을 이곳으로 유도 한 뒤 에블린과 함께 인륜에 어긋나는 짓을 하려 했을 게 뻔하다. 

“내가 분명히 말했지. 앞으로 조용히 살라고.” 

“크으윽...” 

“기회를 줘도 걷어차는구나. 이제 네게 남은 기회는 없어.” 

이왕자는 내 기세에 밀려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씹고 있었다. 놈은 겁에 질려 팔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라시드. 뭐하는 거야! 저놈을 빨리 죽여!” 

“라, 라시드?” 

이왕자가 외친 라시드라는 이름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속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꽉 조여진 것처럼 답답해졌다. 

“아...” 

고개를 들어 올리는 검사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움직임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릿하게 느껴졌다. 

검게 물든 머리카락에 코는 베일 것처럼 높았고, 눈동자는 빨려 들어갈 것처럼 어두웠다. 내가 소설을 쓰며 그려왔던 주인공 라시드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다른 점은 얼굴빛이 시체처럼 창백하고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라시드!” 

“...” 

라시드와 만났지만 지난번처럼 머리가 아픈 현상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눈빛엔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허무 그 자체였다. 

캬앙! 

라시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내게 검을 겨누었다. 

“으...” 

속이 갑갑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이렇게까지 방치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기도 했고,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묻고 싶기도 했고, 정신을 차리라고 호통을 치고 싶기도 했다. 

“...” 

하지만 내 입에선 아무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지금의 그에겐 어떤 말도 통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고오오오. 

라시드의 기세가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알포스 후작을 상대할 때 전력을 쓴 게 아니었는지 그의 힘이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었다. 

부아아아앙! 

라시드의 검과 몸에서 지독할 정도의 패기를 담은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오러를 전력으로 개방한 라시드는 머뭇거리지 않고 그대로 내게 돌진했다. 

콰아아앙! 

검을 뽑아서 라시드의 검격을 막았다. 놈의 무력은 크리티스보다도 더 강한 것 같았다. 아니, 지금 이순간은 확실히 라시드가 크리티스보다 강했다. 

쿠구구구. 

라시드의 검압에 공기가 떨리는 것 같았다. 

“라시드. 잠깐만!” 

“...” 

내가 말을 걸어도 라시드는 멈추지 않았다. 방을 모조리 깨부수며 나를 공격했다. 나를 죽이는 것 외엔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큭! 일왕자 저하 이곳은 제가 막을 테니, 폐하를 모시고 나가세요!” 

“아, 알겠다. 모두 문을 부숴라!” 

라시드의 눈빛엔 허무만이 가득했다. 인간이라기 보단 기계와 같은 느낌이다. 대화나 전투보다 일단 사람들을 피신시키기로 했다. 

캬갸갸갸걍! 

연위결로 십이비도를 사용해서 라시드를 밀어낸 후 혼연적마와 절맹귀산을 뿌렸다. 최상급 독에도 라시드는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대체 왜 이렇게 강해진 거지? 

원작 소설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라시드는 이렇게 강할 수가 없다. 분명 에블린이 무슨 짓을 했을 거다. 

[창조주의 눈을 사용합니다.] 

[이름: 라시드] 

[특성: 검신(劍神), 발전하는 재능, 마법저항lv5, 상태이상저항lv5, 그림자의 그릇, 회광반조.] 

[호감도: 0 (중립) ] 

[현재 기분: 판단불가.] 

라시드의 특성 중에 검신과 발전하는 재능은 그대로였지만 그림자의 그릇과 회광반조는 처음 보는 특성이었다. 

그림자의 그릇이라는 것을 보니, 칠죄종과 연관된 그림자의 신이 생각났다. 하지만 세피로스는 칠죄종과 적이면 적이지 절대 같은 편이 될 수 없는 놈들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회광반조라니... 

회광반조는 꺼지기 전에 촛불이 더 화려하게 타오른다는 뜻이다. 그 의미를 해석해보면 지금의 라시드는 자신의 생명을 불살라 저 무지막지한 힘을 뿜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파아앙! 

강기를 담은 비수로 라시드를 견제하며 놈의 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의 심장어림에 있는 오러가 마지막 생명을 불태울 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런...” 

저 오러가 전부 타오르면 라시드는 무조건 죽는다. 지금도 속에선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끼고 있을 거다. 

“에블린. 정말이지 엿 같은 여자야. 빠드득...” 

에블린은 라시드의 재능과 생명을 불태워 저런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이런 일을 벌인 그 악마 같은 여자를 당장 때려죽이고 싶었다. 

“라시드!” 

“...” 

여전히 대답도 없고, 눈빛도 죽어있다. 

그에겐 특수상태저항이 있어서 독도 통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라시드를 내 손으로 죽이거나, 그가 생명을 다 쓸 때까지 싸워주는 것밖에 없었다. 

“유렌! 우리 먼저 빠져나가겠네.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벽을 무너뜨린 일왕자와 기사들이 국왕을 데리고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이 안전하게 나갈 수 있게 라시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제기랄...” 

난 결국 결정을 내렸다. 저렇게 고통 받는 것을 보느니, 내 손으로 라시드를 죽이기로. 

화아악! 

천판을 띄우는 손끝이 떨렸지만 꾹 참았다. 내 주인공이니, 내가 보내 줘야한다. 

화아악! 

만천화우는 이미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다. 비수를 던지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발동할 수 있었다. 

“만천화우 광화!” 

만천화우가 라시드에게 떨어지는 순간 놈의 오러의 질이 변했다. 진화를 한 것처럼 전혀 다른 기세와 힘을 발동시켰다. 

키이이잉! 

라시드의 검을 감싼 오러에서 원을 그리는 회전이 생겨났다. 내가 사용하는 강환과 완전히 똑같은 방식이었다. 

콰과과과광! 

라시드는 검에 단긴 강환을 넓게 펼친 후 채찍처럼 휘둘러 자신에게 떨어져 내리는 천개의 광화를 모조리 날려버렸다. 

“음...” 

라시드가 강환을 사용해서 광화를 깰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지금 라시드는 생명과 재능을 소모하면서 싸우고 있다. 그가 강환을 따라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파아앙! 

라시드는 한 번 털어낸 검을 들어 올려서 나를 겨누었다. 그의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캬갸갸걍! 

전력의 만천화우를 사용하기 위해 천판을 회수하며 라시드에게 백광환과 혈화접을 날렸다. 

“크으윽...” 

혈화접이 라시드의 검에 닿았을 때 갑자기 머리에 극심한 두통이 느껴졌다. 이전 라시드와 마주쳤을 때와 똑같은 고통이었다. 

“...” 

그때와 달리라시드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계속 무표정이었다. 

-뭐하는 거야! 

“응?” 

갑자기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였다. 

“크아악!” 

그 목소리와 함께 라시드가 자신의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지금이다. 빨리 죽여라! 

“너는 대체?” 

-내가 이 몸의 원래 주인이다. 시간이 없어! 지금 목을 베어야 한다! 넌 할 수 있잖아! 

“라시드? 네가 라시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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