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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화 야왕 크리티스 (2) (223/241)

223화 야왕 크리티스 (2)

“유렌 록스!”

크리티스의 얼굴에는 분노, 당황, 살의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놈이 기대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당황한 표정보다 본인이 더욱 놀란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거하곤 잘 놀았어?”

“크윽...”

손가락으로 크리티스의 뒤에 있던 내 잔상을 가리켰다. 내 모습을 하고 있던 잔상은 안개처럼 희미해지다가 사라졌다.

“설마, 그게 네 분신이었나?”

“그럴 리가 있나.”

내 모습을 하고 있던 잔상은 경신법의 최고 경지 중 하나인 이형환위(移形換位)다.

사실 크리티스 정도면 내 이형환위를 알아차렸어야 했지만, 놈은 나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완전히 매몰 돼서 내가 이형환위를 쓴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대체 뭐가 일어 난 거야?”

“모, 모르겠어. 우리반이 유렌 후작님의 위치에 서 있고, 유렌 후작님이 갑자기 둘이 되어 버렸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 확실한데 정확히는...”

관중들은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경기장을 둘러싼 기사들마저 나와 크리티스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해서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크르르르...”

크리티스의 입에서 인간을 벗어난 으르렁거림이 흘러나왔다. 그 음성과 함께 놈의 몸이 인간의 껍질을 벗기 시작했다.

찌지지직!

크리티스는 자신이 입고 있는 가죽을 찢어버리고, 우리반보다 2배는 거대한 자신의 원래 몸을 세상에 드러냈다.

“크오오오오!”

크리티스는 괴이한 울음을 내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놈의 전신에 회색털이 솟아오르고 이빨과 손톱이 튀어나왔다.

놈은 순식간에 3m가 넘는 신화 속 늑대인간 브리콜라카스로 변신했다.

퍼어엉!

크리티스가 바람처럼 쇄도해서 내게 손톱을 찔러넣었다. 놈이 빠른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예상보다 2배는 빨랐다. 그야말로 회색의 빛살 같았다.

뿌드드득.

크리티스가 휘두르는 손톱 사이에 귀왕살을 끼워 넣어 놈의 공격을 막았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면 놈의 손톱에 내 심장이 뜯겨나갔을 거다.

“저, 저게 뭐야!”

“우리반이 왜 저러 모습으로...”

“라, 라이칸이다! 저 놈 인간이 아니었어!”

“라이칸이라니! 설마 유렌님께 복수를 하려 온 건가?”

관중들이 크리티스의 본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당황하고 있을 때 그들의 머리위로 경기장만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쿠구구구구.

마법진에선 불길할 정도의 검은 아우라가 뿜어지고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흘러나오듯 마법진에서 끈적거리는 몬스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캬앙!

마법진을 확인한 나는 크리티스를 뒤로 밀어버렸다.

“에블린의 대량전송마법! 역시 준비해놨군!”

크리티스가 실패한 것을 본 에블린이 기다리지 않고, 다음 단계를 진행한 것이다.

라이칸과 다크엘프들이 가운데 마법진에서 나타났고, 오우거와 트롤 같은 중대형 몬스터들이 외부 마법진에서 튀어나왔다.

왕궁에는 전송마법을 방해하는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지만, 에블린은 자신의 능력으로 방어 마법진을 뚫어버린 것이다.

“아아악! 저, 저...”

“모, 모두 피해라! 몬스터들이다!”

“괴물들이야!”

“여기서 빨리 나가! 도망쳐!”

경기장 안에는 기사나 용병, 권사같이 강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고블린 한 마리 잡을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저대로 몬스터들이 떨어져 내리면 거의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것이다.

“포메라! 지금이다!”

경기장이 떠내려갈 정도로 포메라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쿠구구구구.

내 부름에 응답하듯 경기장 전체에서 거대한 진동이 일었다.

콰과과과과!

지진이 몰아치는 것 같은 진동 후에 사람들의 머리 위로 새하얀 뼈의 벽이 솟아올랐다. 포메라가 소환한 프로텍트 본 월이다.

8서클에 오른 포메라는 새로 배운 프로텍트 본 월을 사용해서 경기장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했다. 다만 몬스터들의 수준이 높고, 숫자가 많다보니,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다.

콰아아앙!

경기장 뒤편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빠져나갈 길이 만들어졌다. 포메라가 대지조작을 사용해서 경기장을 관통하는 길을 만든 것이다.

“지금이다! 전부 지시대로 움직여!”

내 목소리를 들은 흑철기사단과 일리아, 이레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람들을 경기장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보호를 하며 앞에 나타난 몬스터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기사들과 무인들은 경기장 주변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하라!”

경기장 근처에 있는 기사들과 무인들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그들은 당황한 와중에도 내 지시에 따라 자리를 움직이고 전투를 위한 자세를 잡았다.

“모두 경기장을 빠져나가라! 어서!”

“폐하! 지금 가셔야 합니다!”

“아버지! 일단 밖으로 가셔야 해요!”

“가긴 어딜 가! 지금 저 아래에 내 백성이...”

“죄송합니다. 이 무례는 나중에 꾸짖으시길!”

단상 위를 보니, 국왕이 관중들에게 도망가라 소리치다가 일왕자와 근위기사단장에게 잡혀서 끌려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국왕이 이 전투에 나설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근위기사단장인 알포스 후작과 일왕자가 제때 움직여주었다.

“...이것까지 알고 있었나?”

“물론이다.”

크리티스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을 생각해보니, 잘 하면 놈을 더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이 정보를 어떻게 알았을 것 같나?”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크리티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이 계획을 짠 건 에블린이니, 지금 놈이 의심할 사람은 그녀밖에 없다.

“너는 에블린에게 속은 거다. 나와 그녀는...”

-유렌 록스의 말을 듣지 마세요!

크리티스를 좀 더 자극하려고 할 때 에블린의 음성이 들려왔다.

-제가 당신을 속일 이유가 없잖아요. 저 놈의 말에 넘어가지 마세요!

에블린의 음성을 들은 크리티스가 표정을 굳혔다. 조금만 더 자극했으면 내게 속아서 쉬운 싸움이 되었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콰아앙!

분노를 한 크리티스가 자신의 힘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 여파만으로 경기장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저 놈의 기세에 노출된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것처럼 전신을 떨었다.

고오오오.

내력개방으로 크리티스의 기세를 밀어버려서 사람들의 부담을 없애주었다.

“일이 틀어져서 바쁠 텐데, 여기까지 보고 계셨나? 에블린.”

크리티스와 기세 싸움을 벌이며 이곳을 보고 있는 에블린을 조롱했다.

-유렌 록스! 네놈이 정말...

에블린의 목소리가 쇠가 부딪친 것처럼 갈려나왔다. 차분해야할 원래 모습과 다르게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네가 계획한 모든 것이 항상 내 앞에서 무너지는 게 어때? 재밌지않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매번 네게 당할 것 같으냐!

에블린은 그 좋아하는 존댓말까지 때려치우고 내게 소리를 질렀다.

지이이잉!

하늘 위에 거대 마법진이 몇 개 더 생성되었다. 마법진 안에서 대형 드래이크와 코카트리스, 키메라, 미노타우르스에 바실리스크까지 나타났다.

한 마리만 나타나도 한 영지를 위험할 수 있는 초대형 몬스터들이 한 번에 나타난 것이다. 저런 몬스터들이 나타날 줄은 몰랐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와라!”

목걸이에 내력을 집어넣으며 내가 소환하고 싶은 대상을 생각하자 목걸이에서 노란빛이 터져 나왔다.

콰르르릉!

목걸이에서 나온 빛은 하늘로 솟아올랐다. 노란빛은 허공에 생겨난 에블린의 마법진을 꿰뚫고 거대한 번개의 구슬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빠지지직!

세상 모든 것을 태울 뇌기의 구슬 속에서 태양보다 밝은 빛을 뿌리는 기린이 등장했다.

-유렌! 오랜만이로군. 그 동안 잘...

“미안한데, 인사는 나중에 하고 저것들 좀 처리해줘.”

-이 자식! 여자들도 있는데 나도 폼 좀 잡자!

“빨리!”

-에휴, 알겠다! 내가 어쩌다 저런 놈에게 잡혀서...

기린은 내 욕을 중얼거리며 날아가 몬스터들에게 우레를 뿌리기 시작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최선을 다해서 움직여주고 있었다.

-네게 기린이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에블린은 기린의 등장에도 별로 놀란 느낌이 아니었다.

-네게 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 이번엔 나도 새로운 패를 가지고 왔지.

“뭐?”

에블린의 말이 끝나는 순간, 다시 한 번 대지가 울기 시작했다. 포메라가 사용했던 프로텍트 본 월과 다르게 속이 거북할 정도의 사악함이 대지에서 밀려나오고 있었다.

위이이잉.

톱날로 살을 갈아버리는 것 같은 이질적인 소리와 함께 붉은 마법진이 크리티스의 뒤에 생성되었다. 마법진을 감싸고 있는 붉은 아우라가 살아있는 것처럼 일렁거렸다.

찌지지직!

붉은 마법진이 찢어지고 그 안에서 처음 보는 무언가가 걸어 나왔다.

저벅.

네 개의 휘어진 뿔, 검은 피부, 붉은 색만 가득한 안구를 가진 기괴한 존재였다. 다만 난 저 존재와 비슷한 놈들을 본 적이 있다.

“마검 속에 있던...”

마법진에서 나타난 놈은 마검에 봉인되었던 하르바스와 비슷한 외모와 분위기를 풍겼다.

다만 그 악마들과 다르게 무기에 봉인되지 않고, 자신의 힘을 그대로 발휘할 수 있는 진정한 악마다.

“후우우욱...”

악마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나왔다. 그 모습에 사람들의 몸이 바위처럼 굳어버렸다.

무력 자체는 크리티스가 더 강하지만, 악마들에겐 인간의 정신력을 좀 먹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저 놈은 빠르게 제거해야 할 거 같다.

“악마인가?”

-알고 있나? 네놈을 확실히 죽이기 위해 숨기고 있던 패다.

“확실히 대단하긴 하네.”

봉인되지 않은 악마는 원작에서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에블린이 악마를 소환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확실히 예상외지만 난 저것을 해결할 카드가 있었다.

“그거 알아? 저런 악마가 나타나면 해결해주는 해결사가 있다는 거?”

-설마 드래곤을 말하는 거냐? 확실히 그놈들은 악마를 싫어하지. 그래서 마기를 지우는 방법으로 소환했지!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너와 네 부하들의 목숨은 여기서 끝이다!

“내가 인맥이 좀... 아니지, 용맥이 좀 되거든.”

-뭐?

퍼어엉!

크리티스와 신경전을 유지한 채로 자괴연을 퍼뜨렸다.

크리티스와 악마, 에블린 모두가 날 잠시 놓쳤을 때 목에 걸린 두 번째 목걸이를 잡아서 그 안에 내력을 쏟아 부었다.

화아아악!

목걸이의 달린 보석에서 하늘을 덮을 것 같은 푸른빛이 뿌려졌다. 푸른빛은 원형으로 모여들어 번쩍거리는 차원의 문을 만들었다.

치이이잉!

차원의 문이 반으로 뚝 갈라지며, 그 안에서 두 남자가 걸어 나왔다.

“와, 아주 난리네요.”

“흐음...”

앞에 선 남자는 장난기어린 웃음을 짓고 있는 도둑 무음의 제니스였다. 그 뒤엔 보는 것만으로 눈이 호강하는 것 같은 미청년이 술병을 들고 있었다.

“카이젤!”

그가 바로 내가 소환한 대상인 블루 드래곤 카이젤이다. 왜인지 모르지만 제니스와 같이 소환 되었다.

“유렌님!”

“유렌! 이곳에 시궁창 냄새가 나는군. 아주 잘 불렀다.”

제니스는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고, 카이젤은 입에 문 술을 뱉어버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온 것이냐. 추잡하고 더러운 존재여.”

“드래곤인가?”

-드, 드래곤이라고? 말도 안 돼!

악마의 목소리에 에블린이 경악을 하고 비명을 질렀다. 내가 드래곤까지 불러올 줄은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몰랐을 거다.

“들러리나 설줄 알았는데, 도마뱀새끼가 나타나다니, 이거 재밌겠어.”

“지랄 났군. 다시 지하 밑구멍으로 쳐 박아주마.”

악마가 날개를 퍼덕이며 공중을 떠올랐고, 카이젤 역시 분노를 터트리며 날아올랐다.

“제니스! 사람들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줘!”

“알겠습니다. 제가 구멍 하나는 잘 찾지 않습니까! 전부 구해내겠습니다!”

제니스는 방긋 웃고 나서 순식간에 경기장에서 사라졌다. 이런 순간에 긴장하나 하지 않다니, 카이젤과 놀면서 간이 커진 모양이다.

-드래곤과 연결되어 있었다니! 너는 진즉에 죽였어야 했어!

“이제 와서 후회해도 늦었지.”

-으으윽...

“큭큭큭!”

이를 가는 에블린과 다르게 크리티스는 자신의 입을 잡고 킥킥거렸다.

“드래곤이라, 좋아. 아주 좋아! 대단해!”

크리티스는 악마와 싸우고 있는 카이젤을 보며 이를 드러내며 매서운 미소를 지었다.

“인간 중 최고의 무인에, 블루 드래곤까지! 이곳은 나에게 축제와도 같군.”

“뭐?”

“처음부터 네놈을 기습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었다. 이제야 내 마음에 쏙 드는 상황이 펼쳐졌구나. 큭큭큭”

크리티스의 눈빛이 허무한 회색으로 물들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브리콜라카스가 가진 진정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모조리 죽여주마!”

크리티스는 진심으로 나와 카이젤을 동시에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놈에게서 흐르는 살기에 주변이 쥐죽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콰아아아아!

구성에 이른 만독자전신기의 내력을 전력으로 개방했다.

내가 뿌린 기세만으로 경기장을 덮은 마기가 쓸려나가고, 몬스터들이 겁에 질려 무릎을 꿇었다.

공중에서 싸우고 있는 악마와 카이젤이 전율하며 전투를 멈췄고, 각성 중이던 크리티스가 경악하여 입을 벌렸다.

“해봐. 할 수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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