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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화 야왕 크리티스 (222/241)
  • 222화 야왕 크리티스

    어떻게 한 거지?

    대회 참가자가 있는 대기실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주변에도 많은 기사들이 있는데, 어떻게 우리반의 모습으로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걸 알아보는 건 나중이고 일단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으로 이왕자와 세피로스가 손을 잡은 것이 확실해졌다.

    결승전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조금의 시간이 있었다. 일왕자에게 이 사실을 전하기로 했다.

    -일왕자 저하. 조금 있다가 밖으로 나와 주십시오.

    내 전음을 들은 일왕자는 잠시 어깨를 움찔 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대회장에 시선을 고정했다.

    밖에 나가서 잠시 기다리자, 일왕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따라 나왔다. 기막을 설치해서 우리의 말소리가 빠져나가지 않게 만들었다.

    “무, 무슨 일인가?”

    “전에 제가 말씀드린 상황이 왔습니다.”

    “결국 세피로스 놈들이 온 건가?”

    “그렇습니다. 놈이 결승전 무대에 있는 우리반으로 변신했더군요.”

    “그 변신했다는 놈이 설마...”

    “네. 전에 말해드렸던 세피로스의 대장격인 크리티스라는 놈입니다.”

    “으음...”

    일왕자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의 얼굴을 보니, 내심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한 나라의 왕자로써 당연한 모습이지만, 이왕자는 그와 정반대로 나라를 망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일왕자가 대단해보였다.

    “라이칸의 상위 종족이라는 브리콜라카스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 놈이 노리는 건 자네인가?”

    “지금 나타난 것을 보면 그 이유가 확실합니다. 수상식 때 저를 공격을 하려하겠죠. 그 혼란을 틈타 다른 일들도 벌일 겁니다.”

    “그럼 자네가 이미 알고 있으니...”

    “놈이 저를 공격하려 할 때 제가 역습을 할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후우...”

    일왕자가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른 생각이 났는지 급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지금 아버님께 말씀을 드려서 놈을 잡는 게 좋지 않겠나? 이곳은 완전히 적진이지 않나.”

    “아뇨. 이곳은 놈들의 적진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크리티스말고 에블린이라는 여자도 있습니다.”

    “아서 녀석이 만났다는 그 여자 말인가?”

    “그녀에겐 대량 전송 마법이 있습니다. 언제라도 이곳을 자신의 부하들로 덮어버릴 수 있습니다.”

    에블린은 엘프들이 가지고 있는 이동 마법을 개량한 대량 전송마법이 있다. 그녀가 손가락만 튕기면 이곳은 라이칸과 다크엘프, 몬스터들로 뒤덮일 거다.

    거기다 크리티스가 발광을 시작하면 사람들을 지키기 힘드니, 놈이 날 공격하기 기다리고 있다가 이쪽에서 역습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

    “놈들이 가장 방심하는 순간은 저를 공격할 때일 겁니다. 모든 시선이 제게 집중 될 테니까요. 그때를 노려서 방어태세를 갖출 겁니다.”

    크리티스가 나를 찌르는 순간 에블린이 부하들을 소환할 거다. 그 전에 대비를 해놔야 한다.

    “알겠네. 그럼 내가 나서서 사람들을...”

    “아뇨. 왕자님은 따로 하실 일이 있으십니다. 가장 중요한 일.”

    “내가 중요한 일을? 그게 뭐지?”

    “폐하를 보호하셔야지요.”

    “폐하 옆엔 마스터인 근위기사단장이 있네. 내가 없어도 될 거야.”

    일왕자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의 말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일은 그리 쉽게 풀리지 않을 거다.

    “에블린이 몬스터들을 소환하면 국왕 폐하를 비롯한 왕족들이 왕궁으로 도망칠 겁니다. 그때 이왕자가 분명 무슨 짓을 할 겁니다. 그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무조건 막으셔야 합니다.”

    “아!”

    일왕자는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박수를 쳤다. 그가 감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맞아! 아서 그 놈은 분명 무슨 짓을 저지를 거야. 그런 것까지 예측하다니, 자네는 대체 어떻게 된 사람인가. 허어, 무력만이 아니라 심기도 장난이 아니로군.”

    “왕자님은 폐하만 잘 모시면 됩니다. 대회장 쪽은 미리 준비를 해놓을 테니, 저를 믿으세요.”

    “물론. 당연히 믿네.”

    “그럼 이제 올라가시죠. 더 시간을 끌면 이왕자가 의심할 겁니다.”

    일왕자는 굳은 의지를 담은 미소를 짓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잠시 시간을 보낸 뒤 내 자리로 돌아갔다.

    “마지막 결승전! 시작하겠습니다!”

    쩌어어엉!

    마지막 징소리가 귀를 때리고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원래라면 우리반이 라켄을 이길 수 없지만, 저건 우리반이 아니라 크리티스다. 라켄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크리티스를 이길 수 없다.

    쿠구구.

    라켄은 묵중한 기세를 유지한 채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크리티스는 양 주먹을 말아 올리며 라켄에게 접근했다.

    “저놈...”

    대충 때려눕힐 거라 생각했는데 크리티스는 우리반의 자세를 따라하며 라켄을 견제했다. 내가 보고 있기 때문에 나를 속이기 위해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쩌어엉!

    크리티스가 라켄의 검면에 주먹을 날렸다. 묵직한 소리가 났지만 크리티스의 주먹도, 라켄의 검도 아무 이상이 없어보였다.

    다만 보는 것과는 달리 라켄의 검은 내부에서 금이 간 상태였다.

    쩡!

    쾅!

    크리티스는 좌우로 재빠르게 움직이며 라켄을 전신을 두드렸다. 라켄은 바위라도 된 것처럼 가운데서 그 모든 공격을 받아냈다.

    스윽.

    크리티스의 공격을 모두 파악했다고 생각한 라켄이 자세를 바꿨다. 이제 자신이 공격할 차례라고 생각한 거다.

    “흐아압!”

    라켄이 검을 상단으로 올린 후 앞으로 돌진했다. 크리티스는 오른 주먹을 내민 채 달려드는 라켄을 보고 있었다.

    콰앙!

    라켄이 검을 내려칠 때 크리티스는 옆으로 빠진 뒤 그의 검에 주먹을 날렸다.

    쩌저적!

    라켄의 검이 반으로 뚝 부러졌다.

    “크아악!”

    이 상황을 미리 예측했던 크리티스는 바로 달려들어서 라켄의 턱을 날렸다.

    퍽! 퍽!

    크리티스는 뒤로 날아가는 라켄을 부여잡고, 주먹으로 그의 전신을 폭풍처럼 두드렸다. 라켄은 크리티스의 첫 주먹을 맞은 순간 바로 기절해버렸다.

    “스, 승자! 우리반!”

    심판과 사회자가 나와서 크리티스를 말렸다. 원래 우리반은 저런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거다.

    “우와아아아아!”

    “우리반! 우리반!”

    “네가 권사의 희망이다!”

    관중들이 우리반의 이름을 환호하며 거대한 함성을 내질렀다.

    “무술 대회의 최종 승자는 투사 우리반입니다! 권사인 우리반이 모든 기사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사회자가 우리반의 손을 들어 올리며 대회의 종료를 알렸다. 다시 한 번 큰 함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우리반의 모습을 한 크리티스와 눈을 마주쳤다. 놈은 기대감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나를 존경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날 죽이는 것을 기대하는 눈빛이다.

    “후후.”

    나도 놈에게 작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30분 뒤 시상식이 있겠습니다. 시상식은 유렌 록스 후작님께서 직접 진행하시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을 들은 후 밖으로 나가서 귀족들이 있는 단상으로 향했다.

    “유렌!”

    “유렌님!”

    자리에 앉아 있던 일리아와 이레아, 로디엔 등이 다가왔다.

    “경기 봤어? 난 우리반이 이길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맞아요. 실력 차가 좀 나보였는데...”

    “그래? 재밌었나 보네.”

    -세피로스 놈들이 나타났어. 내가 말했던 대로 준비를 해줘. 먼저...

    겉으로는 대회에 대한 대화를 하는 척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지를 전음으로 말해주었다.

    이들에겐 이전부터 미리 경고를 해놓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만 알려주면 대비를 할 수 있다.

    이왕자의 끈이 어디까지 연결 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려줄 수 없는 게 아쉬웠다.

    아래로 내려가서 아린과 내 기사들에게도 지시를 내린 뒤 대회장을 몰래 빠져나와서 포메라를 소환했다.

    “주인. 놈들이 온 거요?”

    “그래. 해줄 일이 있어.”

    “기다리고 있었소.”

    포메라가 자신감 넘치는 불꽃을 태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만 하시오. 놈들에게 이 8서클 마법사님의 힘을 보여주겠소.”

    **

    크리티스는 자신에게 지정된 대기실로 들어갔다.

    우우웅.

    크리티스가 대기실 문을 넘는 순간 밝은 대기실이 어두운 방으로 바뀌었다. 바뀐 방에는 사람들의 시체가 널려있었다.

    원래 이 대회의 주인공이 되었어야 할 우리반 역시 그곳에 죽어있었다.

    “수고하셨어요.”

    에블린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크리티스를 맞이했다.

    “큭큭큭. 이런 것도 나름 재미있군. 진즉에 이렇게 움직일 것을 그랬어.”

    “그런가요?”

    “그래. 환호하던 인간들의 표정이 30분후 공포로 질릴 것을 생각하니, 아주 기대가 돼. 크흐흐.”

    동감한다는 듯 에블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장소에 있는 인간들 대부분은 공포에 미치다가 죽게 될 것이다.

    “유렌 록스와 눈을 마주쳤다.”

    “그 놈은... 어땠나요?”

    “강해. 아주 강하더군. 거의 자연체를 이뤘어. 놈이 인간 중에 가장 강할 거다.”

    크리티스는 붉은 혓바닥으로 자신의 새하얀 이를 훑었다. 잠시 뒤 유렌의 심장을 뜯어먹을 생각을 하니, 약을 먹은 것처럼 흥분되었다.

    “아쉬운 점은 놈과 제대로 붙지 못한 다는 거지. 기습으로 심장을 물어뜯을 게 아니라, 제대로 죽이고 싶단 말이야.”

    “죄송해요. 하지만 이 나라를 먹어치우기 위해선 그 놈이 그렇게 죽어야 해요.”

    “아니, 그저 아쉬울 뿐이다. 그 쥐새끼 같은 놈에게 속는다는 것의 더러움을 알려줘야지. 큭큭.”

    크리티스는 유렌의 속임수와 기습에 당해서 많은 부하들을 잃어버렸다. 그는 유렌에게도 똑같은 분노를 느끼게 하고 싶어서 인간의 가죽을 입고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인간의 거죽도 더럽게 답답하군.”

    “30분만 참으시면 되요.”

    “준비는 모두 끝났나?”

    “네. 모두 제 마법진 안에서 대기하고 있어요. 전송이 끝나면 언데드들도 소환할 겁니다.”

    “네가 아끼고 아끼는 그 비밀병기는 어쩌고 있지?”

    크리티스가 말하는 에블린의 비밀병기는 유렌이 찾고 찾던 라시드다.

    “그쪽도 준비가 끝났어요.”

    “못 본지 꽤 됐는데, 강해졌나?”

    “네. 많이 강해졌죠.”

    “후후, 기대되는 군.”

    에블린은 자신의 마지막 말을 속으로 삼켰다.

    당신보다도 강할 거라는 말을...

    **

    “지금부터 시상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이번 대회의 우승자 우리반! 경기장으로 올라와 주십시오!”

    “와아아아!”

    “우리반!”

    “최강의 권사. 우리반!”

    크리티스가 웃음을 머금고 경기장 위로 올라갔다. 그를 따라 사람들의 환호가 꼬리를 문 듯 이어졌다.

    우리반으로 변한 크리티스는 경기장의 중앙에서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너무 밝아서 잔인해 보일정도의 미소였다.

    “이제 유렌 록스 후작님의 상패와 상금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유렌 록스!”

    “대륙 최고의 마스터!”

    “와아아아아!”

    유렌이 사회자의 말을 듣고 경기장으로 걸어갔다. 우리반이 나왔을 때보다 더욱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큭큭큭...”

    유렌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는 크리티스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잠시 뒤 이곳의 유렌이 죽었을 때 이곳의 인간들이 지을 표정이 기대되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저건 필요 없지.”

    유렌의 뒤로 상패와 상금을 들고 있는 기사가 따라왔는데 전혀 의미가 없다. 저것을 받아야 하는 인간은 이미 죽어서 가죽만 남았으니.

    “우승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오.”

    유렌이 크리티스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목소리엔 축하한다는 하나의 감정만 담겨있었다.

    “감사합니다.”

    크리티스는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 역시나 놈은 자신이 변한 것을 전혀 알아 치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의 대련은 언제라도 찾아와도 좋소.”

    “곧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크리티스는‘너는 이세상에 없겠지만.’이라는 뒷말을 삼켰다.

    “유렌 후작님께선 우승자 우리반에게 상패와 상금을 전달해주시기 바랍니다.”

    유렌이 상패를 들기 위해 등을 돌렸을 때 크리티스의 눈이 번쩍였다.

    “끝이다! 유렌 록스!”

    크리티스의 손날이 마스터조차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유렌의 심장을 찔렀다.

    “무, 무슨!”

    크리티스는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감각을 느꼈다. 인간의 살이 뚫리는 시원한 감각이 아니라, 허공을 찌른 듯 것처럼 허무한 느낌이었다.

    “크아아악!”

    오히려 공격을 한 크리티스의 오른쪽 어깨에 붉은빛의 귀왕살이 박혀있었다.

    “끝은 무슨. 네 삶이 끝이겠지.”

    “크으윽!”

    크리티스가 어깨의 단검을 뽑아버리고 유렌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자신의 손에 뚫려 죽었어야 할 유렌이 건들거리며 서 있었다.

    “연기가 너무 허접해서 하품이 다 나왔다. 나한테 좀 배워야 쓰겄는데?”

    “네...네놈이...”

    유렌이 땅에 떨어진 귀왕살을 불러와서 손에 쥐었다.

    “뒤질 준비는 하고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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