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대회 개최 (2)
“사람이 엄청 많군요.”
대회장엔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크라시스에 존재하는 모든 귀족과 기사들이 모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희가 인원제한을 걸어서 이정도입니다. 인원제한을 하지 않았다면 이 대회장의 5배 크기는 지었어야 관중들을 수용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 정도였나요?”
“관중만이 아니라, 참가자 자체도 역대급이었습니다. 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원한 무술 대회를 태어나서 처음 봤습니다.”
카이리오 자작은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지 참가자들의 숫자를 말하며 혀를 내둘렀다. 거의 질렸다는 표정이다.
“왕국마다 무술대회나 검술대회를 여는 경우는 꽤나 흔합니다. 다만 이정도로 많은 인원이 참가하고 구경을 하러 온 것은 대륙 전체에서 처음일 겁니다.”
“그렇군요.”
“유렌 후작님은 아직 본인의 능력이나 인지도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네?”
카이리오 자작은 갑자기 진지한 분위기를 내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 유렌님의 명성은 대륙최강이라는 제국의 소드마스터 쿤렌 공작조차 넘어서고 있습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이정도 참가자와 관중들이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음...”
“현재 대륙에서 유렌님보다 유명한 사람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륙 최강자를 유렌님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죠.”
카이리오는 민망할 정도로 나를 띄워주고 있었다. 난 낯이 뜨거워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돌렸다.
“음, 저는 어디로 가야하죠?”
“당연히 가장 잘 보이는 장소를 준비해 놨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카이리오의 안내를 따라 대회장의 3층으로 올라갔다. 내 자리는 왕족들의 자리 옆에 붙어 있었다.
원래 왕족들끼리만 앉지만, 대회에 내 이름이 붙다보니 같이 놓아둔 모양이다.
“왔나?”
“먼저 와계셨군요.”
“하하! 난 들러리인데, 주인공보다는 먼저 와 있어야하지 않겠나.”
자리에 앉아있던 일왕자가 웃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내게 다가오려던 일왕자는 곧이어 들어온 이왕자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아서.”
“빨리 오셨군요. 형님.”
“그래.”
이왕자는 빙긋 웃으며 일왕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내게 굴욕을 당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다만 입꼬리가 떨리고 있는 것을 보니, 속으로는 아직도 분노를 터트리고 있을 거다. 난 그를 비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국왕 폐하 납십니다!”
아래에서 국왕 수행관들의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국왕폐하를 뵙습니다!”
“국왕폐하를 뵙습니다!”
단상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관중 모두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모두 일어나도록!”
우리가 있는 단상으로 올라온 국왕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모두의 인사를 받았다.
“10년 만에 열리는 무술 대회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져줘서 정말 고맙소! 이번 대회는 우리의 영웅의 이름을 걸었으니,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소!”
“우와아아아아!”
“국왕 폐하 만세!”
“크라시스 왕국 만세!”
국왕의 말이 끝나자, 관중석에서 대회장이 떠나갈 정도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저 우렁찬 소리들만 들어도 국왕이 국민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이번 대회에는 주인공이 셋이오. 첫 번째는 이 멋진 대회를 보는 우리들, 두 번째는 이 대회에 참여한 무인들, 세 번째는 이 대회를 열 수 있게 도와준 유렌 록스 후작이오! 지금 그 세 번째 주인공을 소개해주겠소!”
국왕은 내 어깨를 격려하듯이 두드리며, 나를 앞으로 데리고 왔다.
“우와아아아아!”
“유렌 록스!”
“유렌 후작 만세!”
“크라시스의 영웅!”
내 얼굴을 본 관중들이 대기를 찢을 것처럼 환호를 질렀다. 국왕이 앞에 섰을 때보다 3배는 큰 함성이었다.
내가 있는 단상 바로 아래에 있는 일리아나 이레아, 로디엔들도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내 이름을 외쳤고, 아래에서 자리를 잡은 흑철기사단의 기사들도 손을 올리며 환호했다.
“흠...”
모두의 함성을 들으며 사람들의 기세를 읽어보았다. 대부분은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수는 살기를 띄고 있었다.
저들이 이번 대회에서 나를 노리는 놈일 것이다. 난 관중들을 보는 척하면서 내게 살기를 보낸 놈들을 기억해두었다.
놈들이 다가오기 쉽게 만들어줄까.
세피로스 놈들이 이곳을 공격할 것은 뻔하니, 다른 사람들이 도망치기 쉽게 내게 공격이 집중되게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대회 우승자에게 큰 상금과 왕실 근위 기사가 될 수 있는 혜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 거기에 두 가지를 추가하겠습니다.”
내 갑작스러운 발언에 관중들과 뒤의 귀족들이 깜짝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우승자에겐 제가 직접 지도대련을 해드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명검을 드리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유렌 후작님! 제가 우승하겠습니다!”
“웃기고 있네! 검은 내꺼야!”
관중들과 대회의 참가자들이 목이 찢어질 정도의 함성을 내질렀다.
“감사합니다!”
미소를 머금고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가 반응을 해주자, 관중들의 함성이 더욱 커졌다.
“허어, 국왕보다 인기 많은 후작이라니, 이거 무진장 질투가 나는데?”
“대회에 제 이름이 걸렸으니, 이 정도는 되어야죠.”
“크하하하하! 맞네. 자네가 주인공이니 그래야지! 암!”
국왕의 농담에 장단을 맞춰주자, 그는 마음에 든다는 듯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기분이 좋은지 홍조까지 띄고 있었다.
“자네는 내 부탁으로 참여한 일인데, 대련에 명검까지 준다니, 기사들이 더 열성적으로 참여하겠어. 정말 고맙네.”
국왕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내게 큰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뒤를 보니, 이왕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같은 표정이었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세피로스 놈들의 시선을 내 쪽으로 모으려던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고마워하다니 예상 외였다.
“대회를 시작하라!”
국왕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가 대회의 시작을 지시했다.
쩌어어엉!
“우와아아아아아!”
거대한 징이 대회의 시작을 알리자, 관중들이 손을 들어 올리고 함성을 질렀다.
국왕이 가운데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하고, 나도 내게 지정된 자리에 가서 앉았다.
쩌어어엉!
다시 징이 울리고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대결은 위빅 영지의 기사와 자유기사로 떠도는 검사의 대결이었다.
“자네 수준정도 되면 싸우기 전에도 누가 이길지도 알 수 있나?”
기사들의 대결 준비를 보고 있던 일왕자가 작게 속삭였다.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관심이 생겼는지 귀를 쫑긋 거렸다.
“대충은 보이죠.”
“정말인가? 그럼 저 둘 중에 누가 이길 것 같나?”
일왕자의 말을 들은 후 두 기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오러의 양 자체는 위빅 영지의 기사가 많았지만, 자유 기사의 오러가 좀 더 예리하게 단련되어 있었고, 실전 경험이 훨씬 뛰어났다. 이 대결은 자유기사의 승리다.
“오른쪽에 있는 자유기사가 이길 것 같군요.”
“오, 그런가?”
일왕자는 흥분되는지 주먹을 꽉 쥐고 대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말한 결과가 나올지 기대감을 가진 눈치다.
“유렌 후작도 틀릴 때가 있군.”
이왕자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재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쳐다보았다.
“응? 그게 무슨 소리냐?”
“왼쪽에 있는 기사는 위빅 영지의 부기사단장입니다. 이미 상급 기사 수준이지요. 그에 반해 오른쪽의 자유기사는 중급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국왕의 물음에 이왕자는 손가락까지 들어 올리며 기사들의 수준을 설명했다. 아까 내게 당한 것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 내게 망신을 주려하는 것 같았다.
기사들의 수준을 나누는 경계는 일반적으로 오러의 양이다. 이왕자의 말대로 왼쪽에 있는 기사의 오러가 더 많지만 기사들의 전투는 오러의 양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검술, 체력, 경험, 상대와의 상성 등 많은 것이 좌우한다.
저 대결은 볼 것도 없이 자유기사의 승리다.
“그런가? 그럼 누구의 의견이 맞을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겠어. 경기를 시작하라!”
경기장의 두 기사가 국왕에게 인사를 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캬앙!
위빅 영지의 기사가 많은 오러양을 바탕으로 자유기사를 압박했다. 자유기사는 강맹한 공격들을 경험으로 회피하며 수비적으로 움직였다.
“저 보십시오. 자유기사는 저렇게 밀리다가 아무 것도 못하고 그냥 끝날 겁니다.”
“흐음...”
이왕자는 나를 조롱하기로 마음먹었는지 목소리를 높여서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떠들었다.
이왕자에겐 시선도 보내지 않고, 대회장에만 시선만 주었다.
챵!
위빅 영지의 기사가 연속공격으로 기세를 잡은 뒤 마지막으로 찌르기를 사용했을 때 자유기사가 검을 세로로 틀어서 그의 공격을 정확하게 튕겨냈다.
“허억!”
검이 튕겨나간 위빅 영지의 기사가 당황할 때 자유기사는 어깨로 그를 밀쳐서 쓰러뜨린 뒤 목에 검을 겨누었다.
“크으윽... 졌소.”
“수고하셨소.”
경기 내내 밀어붙인 것은 위빅 영지의 기사지만, 마지막에 승리를 한 것은 내가 예측한대로 자유기사였다. 승리한 방식까지 내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역시 유렌 후작이군! 나도 위빅 영지의 기사가 이기리라 생각했는데. 이거 개안을 한 기분이야. 마스터가 보는 눈은 다른 모양이군.”
“저는 처음부터 유렌 후작을 믿었습니다. 하하하!”
“그러냐? 아주 좋겠구나. 크하하!”
국왕과 일왕자는 죽이 맞아서 서로 즐겁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런 축제에 어울리는 자세였다.
“크으...”
그에 반에 이왕자는 경기장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이를 악물었다. 물론 금방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지만.
원래 이왕자는 이렇게 앞으로 나서는 인물이 아니다. 경기장에 오기 전에 내게 한 번 털렸기 때문에 지금 멘탈이 무너진 상태라 나선 것이다.
“이왕자님. 이번에는 제 말이 맞았군요.”
가볍게 장난을 치는 얼굴로 이왕자에게 말을 걸었다.
“으...”
모두가 장난임을 알고, 웃음을 지을 때 이왕자는 겨우 만든 가면을 깨고, 악귀같은 표정을 지었다.
“음!”
자신의 실수를 알아챈 이왕자가 급히 표정을 바꿨지만 이미 모두가 그의 무서운 표정을 본 상태였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 분위기와 다르게 난 속으로 웃음이 터졌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늪으로 걸어 들어오니, 이왕자의 유리멘탈이 참으로 고마웠다.
아서 브라이어드. 너는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잃고 죽게 될 거다.
**
64강이었던 본선은 10일 동안 진행되었다.
첫 날 이후로 이왕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 일왕자는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드디어 결승전이로군.”
오늘이 바로 대회의 결승전 날이었다. 그 때문에 대회장은 첫날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발 디딜 틈도 없었다.
“흠...”
다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이 대회에 참여한 무인 중 단 한명도 세피로스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조용히 지나갈 리가 없었기 때문에 난 더욱 조심스럽게 주변을 관찰했다.
“드디어 오늘이 결승전입니다! 우승자는 상금과 왕실 근위 기사가 될 수 있는 자격, 유렌 후작님의 지도대련과 명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말 엄청난 보상입니다!”
“와아아아아!”
사회자가 분위기를 띄우자, 관중들이 흥분에 감겨 함성을 내질렀다. 마지막 경기다보니, 그 목소리는 최고조에 올라있었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상대를 제압하는 묵직한 대검의 검사! 크라시스 출신의 자유기사 라켄!”
저 라켄이라는 기사는 거의 아린 수준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열심히 수련을 한다면 마스터가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다음은 불리한 조건에서 극한의 투쟁심을 발휘해 결승전에 오른 투사! 아인스 제국 출신의 권사 우리반!”
우리반은 홀로 수련해서 강해진 권사였다. 지지 않겠다는 투쟁심과 적을 관찰하는 눈이 훌륭한 무인이었다.
다만 라켄과의 실력차이가 꽤 많이 나고 상성도 좋지 않아, 결승전에서는 이길 수가 없을 거다.
난 이미 우승자를 라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
두 무인들이 경기장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을 때 우리칸의 오러에서 뭔지 모를 변화가 느껴졌다.
이건 내가 현경에 올라 기를 세밀하게 살필 수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위화감이었다.
“설마...”
[창조주의 눈을 사용합니다.]
[이름: 크리티스 아케론]
[특성: 브리콜라카스, 신화의 위엄, 패도, 자각, 급속 재생lv5.]
[호감도: -100 (살심)]
세피로스의 최종 흑막 야왕 크리티스가 참가자로 위장을 한 채 경기장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