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대회 개최
왕궁으로 가기 전날 기라녹스가 찾아왔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처럼 볼이 홀쭉했고,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와 있었다.
“기라녹스. 고, 고생을 좀 많이 한 거 같은데...”
기라녹스의 얼굴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피곤해보였다.
“네. 죽을 뻔 했습니다.”
기라녹스는 마른 강물처럼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그의 눈빛은 보름달이 뜬 날 밤의 호수를 보는 듯 맑고 깊었다.
육체와 달리 그의 정신과 재능은 또 한 번의 성장을 이룬 것이다. 이제 기라녹스는 자신의 스승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장인이 되어 있었다.
“유렌님이 지시하신 천판입니다.”
기라녹스는 앞으로 다가와서 책상 위에 검붉은 색의 판을 올려놓았다. 신살수의 송곳니로 만든 새로운 천판이다.
“아...”
천판을 보고 있자,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신살의 천판]
대륙 장인에 이름이 올라도 손색이 없는 장인 기라녹스가 제작한 무기다. 신살수의 송곳니로 만들어 신마요선의 속성을 가진 존재에게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장인의 잠재된 재능이 모두 사용되어 특별한 속성이 만들어졌다.
특성: 신살, 치명타, 신속, 파쇄
신살의 천판엔 특성이 네 개나 붙어있었다. 이 특성들만 봐도 기라녹스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
특성을 읽어보던 내 눈에 한 곳에서 멈췄다.
파쇄?
신살은 신마의 속성을 가진 존재에게 치명적인 효과를 내는 것을 뜻하고, 치명타는 아무 곳이나 때려도 급소를 맞은 효과를 낸다. 신속은 내가 사용한 것 이상으로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다만 마지막에 적혀있는 파쇄는 처음 보는 특성이었다.
[파쇄]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무기를 파괴해서 적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의 충격을 준다. 파쇄의 위력은 무기의 수준과 사용자의 능력에 비례해서 강해진다.
“허!”
파쇄의 위력은 무기의 수준과 내 능력에 따라 강해진다고 적혀있었다. 신살의 천판과 현경에 오른 내가 파쇄를 쓰게 된다면 상상 할 수도 없는 위력이 터질 것이다.
다만 무기가 파괴되는 단점이 너무 컸다. 그냥 천판도 아니고, 신살의 천판이니 평생 쓸 일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비밀병기를 하나 얻은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해졌다.
“정말 고맙다.”
내가 너무 말이 없어서 기라녹스는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진심을 담아서 고맙다고 하자, 녀석의 표정이 풀렸다.
“천판을 보기만 해도 네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것 같아. 고맙고, 수고 많았다.”
“아, 아닙니다. 저를 믿고 그런 희귀한 재료를 맡겨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천판을 만드는 시간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하하!”
자신의 말이 진심임을 증명하듯 기라녹스는 구김없는 미소를 지었다. 나도 그를 마주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여주었다.
“아, 또 있습니다!”
기라녹스는 등에 매고 있던 봇짐을 풀어서 그 안에 있던 것들도 천판 옆에 올려놓았다.
“혈화접, 백광환, 투척 단검, 비수, 비도, 철추...”
기라녹스가 책상에 올려놓은 것들은 내가 자주 사용하는 암기들이었다. 천판을 만들고 남은 송곳니로 제작한 것 같다.
“...”
천판이라는 희대의 장비를 만들면서도 이런 암기들을 제작하다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그의 얼굴에 피로가 가득 쌓인 이유가 있었다.
“음...”
기라녹스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정말 고맙다. 기라녹스.”
“아닙니다. 잘 써주시면 그걸로 됩니다.”
기라녹스는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뭔가 원하는 것은 없어?”
“원하는 것이요?”
“그래. 돈이라던가? 뭐 필요한 물건이 라던가 없어? 고향이라도 다녀올래? 거의 세 달 동안 공방에서 살았잖아.”
“지금 감이 번쩍이고 있을 때 입니다. 이럴 때 일을 더 해야죠. 그리고 돈은 충분합니다.”
뒷골목의 작은 대장간에서 기라녹스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난다. 그의 열정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에겐 고마운 마음뿐이다.
“그래도 며칠은 쉬어. 그러다 훅 간다.”
“그래야죠. 삼일 정도는 쉴 생각입니다.”
“그래. 가서 쉬어.”
“알겠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왕궁에 다녀온 뒤 기라녹스에게 내 나름대로의 선물을 줘야 할 것 같다. 그냥 급여만 주는 것으론 너무 미안하다.
“아!”
집무실을 나가던 기라녹스가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원하는 거 딱 하나 있습니다.”
“뭐든 말해.”
“지지 않는 것. 제가 드린 무기로 누구에게도 꺾이시지 않는 겁니다.”
기라녹스 다운 말이다. 그에게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으며 천판을 들어올렸다.
“맹세하마. 네 무기가 패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
기라녹스에게 무기를 받은 다음날 흑철기사단과 함께 왕궁으로 워프했다. 왕궁에서 마법사를 보내줬기 때문에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오셨군요!”
워프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카이리오 자작이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당연히 와야죠.”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제 기사들에게 쉴 곳을 마련해주시겠습니까?”
“당연히 준비해 두었습니다.”
카이리오 자작은 시종들을 시켜 기사단에게 숙소를 배정해주고, 나를 국왕이 있는 알현실로 안내했다.
“크하하하! 크라시스의 영웅 유렌 록스 후작! 어서 오게나!”
요새 영웅 소리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국왕에게 들으니 신기한 기분이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우리사이에 무슨 그런 인사를 하는 가. 일어나게!”
국왕은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하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나를 귀한 보석을 만지듯이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었다.
“자네 이름으로 대회를 열 수 있게 해줘서 고맙네.”
“크라시스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맞네. 지금 자네의 이름은 대륙을 울리고 있어. 이럴 때 유렌 록스의 이름으로 대회를 개최하면 왕국의 이름도 알리고 왕국에 도움이 될 훌륭한 기사들을 발굴 할 수 있을 걸세.”
역시 국왕은 국가에 이득이 된다는 생각하나로 이 대회를 열었을 거다. 그에게 다른 목적 따위는 없었다.
“이번 일은 이왕자와 카렌스 백작이 발안했다네. 아주 머리를 잘 썼어. 하하하!”
국왕은 오른쪽에 서있는 이왕자와 카렌스를 가리켰다. 이왕자는 아무 의도도 없다는 듯 순수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이왕자와 카렌스 백작에게 비웃음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들은 국왕과 달리 내게 극심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이왕자의 호감도는 -99였다. 나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인데 저렇게 순수한 표정이라니, 저놈도 난 놈은 난놈이다.
이왕자 옆에는 일왕자가 진정으로 반가운 손짓을 하고 있었다. 난 그들과 한 번씩 눈을 마주친 후 국왕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일부터 대회 본선이네. 개회 때 얼굴을 비춰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그러기 위해 왔으니까요.”
“하하하! 고맙네.”
내 명성 자체가 대륙 전체에 퍼질 정도가 되다보니, 국왕은 예전과 달리 나를 굉장히 조심스럽게 대해주고 있었다. 거의 다른 나라의 왕족을 대우하는 것 같았다.
“폐하.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주셔도 됩니다. 전 변하지 않았습니다.”
국왕에게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말했다.
국왕은 초기부터 나에게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다. 보고를 열어주었고, 그 안에서 두 가지 보물을 가져 갈 수 있게 해주었으며 여러 가지 혜택을 주었다.
국왕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
“유렌. 자네...”
국왕은 감격을 했는지 내 앞으로 다가와서 손을 잡았다. 그의 노회한 눈은 감동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정말 고맙네.”
“아닙니다.”
고맙다는 한 단어에서 국왕이 보내는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씩 웃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 내일 사람을 보내겠네.”
“알겠습니다.”
난 국왕에게 예를 취한 뒤 알현실을 나갔다. 내가 나온 뒤 곧바로 일왕자가 따라 나왔다.
“자네 숙소는 내가 안내해주겠네.”
일왕자는 내 어깨를 잡으며 나를 숙소로 이끌었다.
“왕족의 안내를 다 받고, 저도 많이 컸네요.”
“하하하! 자네에겐 왕족이 아니라, 황제가 안내해도 아깝지 않지!”
일왕자와 나는 가벼운 안부를 물으며 내게 배정된 숙소로 향했다. 내 숙소로 들어오자마자 일왕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서 녀석이 이런 대회를 그냥 열자고 했을 리가 없네. 내 개인적인 바람은 자네가 참가하지 않는 거였는데...”
지금 상황이 걱정되는지 일왕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난 웃으며 그에게 의자를 꺼내주었다.
“일단 앉으세요.”
“하, 자네는 걱정되지도 않는 건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무언가 알고 계시는 게 있나 보군요.”
“크흠...”
일왕자는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을 내뱉었다.
“힘만 쎄진게 아니라, 눈치도 좋아졌나보군. 맞네. 아서 녀석이 이왕자 궁에 암살자들을 모으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네.”
“암살자라...”
암살자정도는 몇 백이 몰려와도 상대할 수 있다. 이왕자가 고작 암살자만 가지고 내게 덤빌 리가 없다.
“예전에 이왕자의 방에 어떤 여자가 있었다고 하셨죠?”
“그래. 내 세작의 말에 의하면 그 이후에도 몇 번 나타났다고 하네. 그 목소리를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방문을 열고 들어갈 것 같아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고 했어.”
“아!”
매혹의 목소리!
그건 에블린이 가지고 있는 특성 매혹의 목소리다. 매혹의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에게 호감을 주어서 마약처럼 빠져들게 만드는 지독한 능력이다.
나 때문에 갈라졌던 세피로스와 이왕자가 다시 손을 잡은 것이 확실했다.
이유는 뻔하다. 나의 죽음과 이왕자의 왕위계승.
그럴리는 없지만 만약 이왕자가 왕위를 계승해도 에블린의 매혹의 목소리에 중독 되서 세피로스의 꼭두각시가 될 거다.
“누군지 알겠나?”
“예상가는 사람은 있네요.”
“저, 정말인가?”
“네. 다만...”
나와의 전부는 세피로스에게 맞겨도 될 텐데, 이왕자가 왜 암살자를 준비했는지는 모르겠다.
이왕자 그놈 설마...
나와 세피로스가 싸우게 해놓고, 누가 남던 상관없이 암살자로 뒤통수를 때릴 준비를 하려 한 건가?
“큭큭...”
너무 찌질한 방식이라 코웃음이 나왔다. 역시 이왕자는 그릇이 작다 못해 간장종지 만도 못한 놈이다.
난 분명히 이왕자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조용히 있었다면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겠지만 그는 내가 정한 선을 넘어버렸다.
그것으로 이왕자의 운명은 죽음으로 결정되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가?”
답답해하는 일왕자의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세피로스는 기억하고 계시죠?”
“물론이네. 리자드맨 킹 토벌전에서 나와 자네를 노린 놈들 아닌가.”
“이왕자가 다시 그들과 손을 잡은 것 같습니다.”
“헉! 그놈들이...”
일왕자는 그때의 기억이 생각난 듯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결승전 날...”
**
똑똑.
다음날 정오. 문에서 일정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카이리오 자작의 노크소리다.
“가실 시간입니다.”
“제 담당은 항상 자작님이시군요.”
“어제는 뺏겼지만요. 후후.”
카이리오는 일왕자에게 안내역을 빼앗긴 것을 말하고 있었다.
“왕족에게 길안내를 받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라 좋았네요.”
“하하, 저도 언젠간 받아보고 싶군요.”
매번 카이리오와 만나다보니, 이젠 꽤나 친해졌다. 그와 담소를 나누며 왕궁 연무장에 만들어 놓은 대회장으로 향했다.
“음...”
대회장으로 가는 도중 갈림길에서 이왕자와 그의 부하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이왕자 저하를 뵙습니다.”
“좋은 아침...이라기엔 조금 늦은 시간인가요? 하하!”
이왕자는 우리의 인사를 받으며 쓸데없는 농담을 던졌다. 겉으로 보이는 그의 표정은 순수 그 자체였다.
“유렌 후작께서는 이왕자 저하께 감사인사를 하시었습니까?”
“감사 인사? 그게 무슨 말이오?”
이왕자 뒤에 있던 카렌스 백작이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이왕자 저하께선 유렌 후작의 명성을 올려주기 위해 이런 대회를 개최하지 않았소. 그에 대한 감사인사를 했는지 물은 거요.”
“카렌스 백작. 그게 무슨 말인가! 이번 대회는 우리가 유렌 후작의 명성을 빌리는 것이야! 당장 사과하게!”
이왕자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 상황은 내 성질을 건드리기 위해 저 놈이 짜놓은 연극이었다. 역시나 그릇이 작은 놈이다.
“하지만 왕자님. 왕자님이 이 대회를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셨는지...”
“그만하래도!”
“크흠...”
이왕자의 제지에 카렌스 백작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이왕자가 카렌스를 막았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뭐라 말하기엔 애매하다. 거기다 옆에는 왕족이 있고, 이곳은 왕궁이다.
이왕자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나서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이런 더럽게 재미없는 연극을 짰을 거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잘못 보고 있다.
지금의 난 어떤 제약도 벗어날 수 있는 무력을 가지고 있다.
고오오오오.
내 기세를 거침없이 흩뿌렸다. 따뜻하고 가볍던 공기가 북해 온 것처럼 무겁고 싸늘하게 변했다.
“크흑...”
“컥...”
“아...”
앞에 있던 이왕자의 부하들은 내 기세에 짓눌려 말 한마디조차 뱉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끄으으윽...”
카렌스 백작 앞으로 걸어갔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 기세에 직접 노출된 카렌스 백작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윽...”
카렌스 옆에 있던 이왕자는 내 힘을 아주 조금 느낀 것만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카렌스 백작. 하던 말 계속해봐.”
“커헉...”
“찌질하게 남의 뒤에 숨지 말고 앞에 나와서 하고 싶은 말 해보라고.”
내 말은 카렌스 백작에게 향했지만 내가 진짜 말하는 대상은 이왕자다. 머저리 같은 연극을 하며 찌질하게 굴지말고 앞으로 나오라는 뜻이다.
“끄으윽...”
“사람이 물으면 말을 하지?”
카렌스 백작은 내 기세 때문에 말은커녕 숨도 쉬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이대로 5초만 있으면 카렌스 백작은 심장이 멈출 것이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그, 그만! 내가 사과하겠네! 그만 하게!”
카렌스가 숨이 넘어가기 직전 이왕자가 일어서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일부러 그에게 향하는 기세를 낮췄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왕자를 한 번 쳐다본 후 기세를 풀어버렸다. 카렌스는 기절하듯 쓰러졌고, 이왕자와 그의 부하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죄송합니다. 제 스승이 모욕을 참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고 하셔서요.”
이왕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당천위가 해주었던 말을 했다. 이왕자의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변하고, 호감도가 -99에서 -100이 되었다.
“카렌스 백작.”
“허억! 네!”
죽음의 공포를 느낀 카렌스는 내 부름에 벌떡 일어나서 차려 자세를 취했다.
“오늘 일이 억울하면 영지 전을 신청해도 좋네. 얼마든지 받아주지.”
“아, 아닙니다! 절대. 절대 신청하지 않겠습니다!”
카렌스 백작은 귀신들린 사람처럼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옆에 이왕자도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처럼 대했다.
“이왕자 저하. 실례했습니다. 카렌스 백작과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으니, 먼저 가보겠습니다.”
난 일부러 이왕자를 비꼬듯이 아주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렇게 하게.”
이왕자는 이를 잘게 갈면서 대답했다.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카이리오를 데리고 대회장으로 향했다.
원래부터 날 죽일 생각이었겠지만, 이왕자는 이번 일로 나를 어떻게 해서든 죽여야겠다고 생각했을 거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회가 이왕자의 마지막 행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