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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화 제국 보고 (215/241)

215화 제국 보고

“크긴 크네.”

눈앞에서 본 황궁의 크기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크라시스 왕궁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유렌 후작님!”

“유렌 록스님!”

내가 황궁에 초대됐다는 사실을 어디서 들었는지 황궁의 정문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유렌 록스 만세!”

“우와아아아!”

그들은 양손을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중앙도로에 귀가 따가울 정도로 내 이름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제국 황궁의 문 앞에서 크라시스 왕국의 귀족 이름이 불리고, 만세가 울려 퍼지다니, 신기한 기분이다.

모인 군중들은 나에 대해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모카건이 제국 전체에 내가 한 일들이 퍼졌다고 했는데, 그 효과인 것 같다.

“우와아아아!”

“유렌 록스!”

군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자, 더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문을 열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알겠소.”

“유렌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데리러 온 서기관을 따라 황궁의 문 앞에 섰을 때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목소리는 많은 군중 사이에서도 묻히지 않았다.

“아...”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본 적 있는 얼굴들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그림자 혼을 흡수해서 치료를 해준 사람들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구해준 사람들은 허리를 폴더폰처럼 접에서 고개를 숙였다. 손을 흔들어서 그들의 인사를 받고 일으켜 세웠다.

“몸은 괜찮소?”

“네. 유렌님 덕분에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차근차근 회복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구해낸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한 것을 보자, 가슴이 뜨거워졌다. 사람들을 구하고, 치료해 준 보람이 느껴져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정말 다행이오.”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두 남녀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내게 감동을 받은 얼굴이 되었다. 내가 이 와중에도 구해낸 사람들을 걱정해줄지 몰랐던 모양이다.

“역시 저분은 성자야!”

“성자 유렌 록스 만세!”

“와아아아아!”

그저 내가 구한 사람들이 어떤 상태인지 걱정돼서 물어봤을 뿐인데 사람들은 알아서 감동하고, 더욱 큰 환호를 내질렀다.

“유렌 후작님. 이곳에 있으면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어서 들어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빨리 안으로 들어가시는 것이...”

옆에 선 서기관이 땀을 삐질 흘리며 말을 걸었다, 그의 말대로 사람들이 더 몰려들고 있어서 빨리 들어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알겠소. 갑시다.”

“감사합니다. 문을 열어라!”

서기관의 말에 황궁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밖에서 폭발적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제가 황궁에서 10년 동안 일했지만 저 정도로 큰 함성이 터지는 건 처음 봅니다. 특히나 외국의 인사에게 이 정도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서기관이 나와 뒤를 쳐다보고 혀를 내둘렀다. 놀란 것이 얼굴에 그대로 티가 나고 있었다.

“고맙게도 날 잘 봐준 것 같소.”

“그럴 수밖에 없죠. 그런 업적을 이루셨으니! 제가 유렌님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하하하!”

서기관이 흥분한 얼굴로 속사포처럼 빠르게 말했다. 난 피식 웃으며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서기관은 황홀한 표정으로 나와 대화를 하며 본궁 옆에 있는 황태자 궁으로 데리고 갔다.

“이곳에서 예복을 입고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크라시스의 문양으로 준비했습니다.”

“알겠소. 근데 황제 폐하는...”

“음... 폐하께서는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유렌님을 초대하신 분은 황태자 전하십니다.”

“역시 그렇군.”

제국의 황제는 가장 아끼던 황태자가 죽은 이후 외부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이황자를 황태자의 자리에 앉힌 이후에 자신의 궁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황태자가 죽어서 황제의 마음이 약해졌을 때 글러트니와 프라이드가 수를 써서 황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상태다.

칠죄종 놈들은 심약한 이황자를 황태자의 자리에 놓고 제국을 자신의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한 것이다.

“옷을 다 갈아입으시면 쉬고 계십시오. 전 잠시 후 다시 오겠습니다.”

“알겠소.”

서기관이 나간 것을 보고, 예복으로 갈아입었다.

“완벽하게 무에 특화된 몸이군요.”

옷을 다 갈아 있었을 때 창가에서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고개를 돌렸다.

“러스트. 자주 보는 군.”

내 뒤의 창가 앞에 서있는 사람은 러스트였다. 그녀는 시녀 복장을 한 채로 미소 짓고 있었다.

저 시녀의 모습은 그녀의 가짜 신분일 뿐이다. 저 모습 외에도 귀족 여식이나 기사의 신분도 가지고 있다.

“놀라지 않는군요.”

“거기 있는 거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계속 옷을 벗었던 건가요?”

“당신 말대로 몸은 자신 있거든.”

러스트가 손으로 입을 가리곤 쿡쿡 거리며 웃었다.

“무슨 일이지?”

“당신이 황궁으로 온다는 소리가 들려서 와봤어요.”

“뭔가 경고를 해주러 온 건 아닌가?”

난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며 러스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황궁에는 프라이드가 있고, 글러트니도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내 몸 하나 빼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 온 거다.

“경고라, 지금은 그럴 필요 없어요.”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이 황궁엔 전에 말했던 굉장히 위험한 존재가 있어요. 다만 지금은 지하에 박혀 있어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요.”

러스트가 말하는 위험한 존재는 프라이드였다. 놈이 지하에 박혀있다는 말은 지금 수련을 하고 있다는 소리다.

놈은 남들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강해지는 특별한 칠죄종이니까.

프라이드가 이 타이밍에 수련을 들어가다니, 원작에는 전혀 없는 내용이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하에 있다고?”

“뭔가를 얻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나중에는 더 강해져 있을 거예요.”

역시 내 예상대로 수련에 들어간 모양이다.

“걱정 마세요. 나중에 제가 그를 찌를 수 있는 순간을 알려드릴 테니까.”

난 러스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러스트는 프라이드가 강하다는 것을 알지만, 놈의 숨겨진 특성까지는 알지 못한다.

현경에 오른다면 모를까 지금의 난 놈을 이길 수 없다. 강함의 문제가 아니라, 프라이드의 특성 때문이다.

아무래도 프라이드에 대한 대비를 좀 더 확실하게 해놓아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알겠소.”

“그럼 황궁에서 즐거운 시간되시길 바랄게요. 성자님. 후후.”

러스트는 아찔한 미소를 지은 뒤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곳을 쳐다보고 있을 때 밖에서 서기관의 노크소리가 들렸다.

“유렌님. 준비는 되셨습니까?”

“나가겠소.”

**

“오! 유렌 록스 후작! 황궁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오!”

황태자 궁의 문이 열리자마자, 금빛 장포를 두른 황태자가 양손을 벌리고 내게 다가왔다.

“크라시스 왕국의 유렌 록스 후작이 아인스 제국의 작은 태양을 뵙습니다.”

나는 서기관에게 들었던 대로 황태자에게 예를 취했다.

“하하하! 일어나게!”

황태자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서글서글한 인상이지만, 뭔지 모르게 강인해 보인다.

“감사합니다.”

“감사? 감사는 내가 해야지.”

황태자가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황태자 저하!”

“아니야. 괜찮네!”

황태자의 호위 기사들이 앞으로 나와서 그를 말리려고 했지만, 황태자는 기사들을 물리고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엔 반가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유렌 록스 후작은 대륙 전체의 영웅이야! 내게 무슨 짓을 할 리가 없네!”

“하오나...”

“괜찮다니까.”

황태자는 기사들을 물리며 내 손을 더욱 격하게 흔들었다. 나는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속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황태자가 된 이황자는 이렇게 자기의견을 말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무언가 그를 변화시킨 것 같았다. 설마 칠죄종 놈들이 한 짓인가?

바로 창조주의 눈을 사용했다.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이름: 시리언 데킨 피아렌]

[특성: 유약함, 팔랑귀, 동경, 변화하는 의지]

[호감도: 81 (강한 호감)]

[현재 기분: 동경하던 자를 만나 가슴이 터질 것처럼 떨림.]

창조주의 눈으로 확인한 황태자의 정보를 보고 믿기 힘들어서 내 눈을 비볐다.

얘 뭐야?

황태자의 호감도는 내가 놀랄 정도로 높았다. 그냥 호감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강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반갑소. 유렌 후작!”

황태자는 자신이 최고로 좋아하는 연예인을 본 열성팬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보는 내가 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가, 감사합니다.”

“그래. 듣던 것 이상의 미남이로군. 하하하!”

황태자는 내 모든 것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당황한 모습이 귀엽네요.

갑자기 귓속으로 러스트의 달달한 음성이 들려왔다. 찾아보니, 그녀는 어느새 황태자의 호위 기사가 되어 있었다.

-이분이 왜 이렇게 나를 반가워하는 거지?

눈으론 황태자를 보며 러스트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황자는 원래 굉장히 유약하고 소극적인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망나니에서 영웅이 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이 변하기 시작했죠.

-아...

-그래서 저희 쪽도 당황했어요. 원래 허수아비로 세워놓을 다음 대의 황제가 변하기 시작했으니까. 당신이 활약하면 할수록 이황자도 자신을 고쳐가더군요. 동경하는 어른을 닮으려는 아이의 모습 같았죠. 후후.

-그렇군.

이제 황태자의 높은 호감도와 글썽거리는 눈빛이 이해가 갔다. 저 사람을 변화시킨 건 칠죄종이 아니라, 나였다.

원래 유렌 록스라는 인물은 망나니였으니, 황태자는 내가 180도로 변해서 활약하는 소문을 들으며 자신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황태자는 자신이 가진 동경의 특성을 이용해서 나를 동경하며 스스로를 변화시킨 것이다.

나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지금 그의 모습은 원작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 되었다.

“도플갱어 킹을 잡고, 우리 제국의 국민들을 구해주어서 정말, 정말 고맙소! 덕분에 수많은 목숨이 살아났소.”

황태자가 홍조를 띈 얼굴을 한 채로 내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사람이 없었으면 고개라도 숙였을 것 같다.

“우리 제국은 유렌 후작의 나라도 아닌데, 목숨을 걸고 싸워주다니,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요. 다시 한 번 고맙소.”

“나라가 아니라, 사람이 관련 된 일이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아! 역시 유렌 후작이오. 당신은 그리 말할 것 같았소!”

황태자의 눈빛이 한 층 더 반짝였다. 내 대답에 감동이 극에 달한 것 같았다.

“소문이 유렌 후작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소. 하하하! 난 유렌 후작이 오크 투사를 잡을 때의 이야기도 알고 있소. 자신의 약혼녀를 구하기 위해...”

황태자는 나에게 내가 해왔던 일들을 말하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대화를 하면서도 나에 대한 그의 호감도가 점점 더 올라가고 있었다.

“아, 내가 너무 내 말만 한 것 같군. 미안하오.”

“아닙니다.”

황태자는 거의 30분정도를 내 업적을 칭호하며 수다를 떨었다. 황당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으음, 이러려고 유렌 후작을 부른 게 아닌데 너무 시간을 끌었군. 이쪽으로 오시오.”

황태자는 미안한 미소를 짓고서 뒤를 돌았다. 그는 따라오라는 듯 내게 손짓하며 나를 데리고 움직였다.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그냥 말로만 고맙다고 해서야 되겠소? 내 유렌 후작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소.”

황태자는 나를 데리고 황태자 궁을 나와 본궁으로 들어갔다. 그는 본궁의 안쪽으로 들어가 5m가 넘는 황금색 철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단순한 철문이 아니라, 강기로도 베기 힘든 특별한 철이었다.

“아인스의 이름으로 말한다. 열려라.”

황태자가 문의 중심에 손을 올리고 소리를 치자, 철문이 열렸다.

콰아아아!

강철 문이 열리자, 오색 빛이 봇물 터지듯 번쩍였다. 눈부신 빛이 사그라지자 안쪽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왕실 창고처럼 제국의 보물을 모아 놓은 보고였다.

“아...”

“이곳은 직계 황족만 열수 있는 보고라네. 나도 황태자가 되고 나서야 허가가 났지. 그것도 딱 한 번 들어갈 수 있게 말이야.”

“네? 그러면 저를 위해서 그 한 번을 사용하신 겁니까?”

“하하하! 황제 폐하께서 계셨어도 열어주셨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말씀드리면 다시 받을 수 있을 거야.”

황태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창고 개방을 나를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아무리 동경하던 자라하더라도 이런 대우라니 깜짝 놀랐다.

“자네가 가지고 싶은 것을 골라보게나.”

“하지만...”

“괜찮네. 말했듯이 폐하께서도 허락하실 거야. 부담 가질 필요 전혀 없네.”

황태자가 오른 손을 들어 올려 보고를 가리켰다. 그가 빨리가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난 그에게 감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허어...”

보고 안에선 다양한 무기와 갑옷, 유용한 아티펙트들이 자신을 골라달라며 반짝이고 있었다.

“음...”

무엇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며 보고를 둘러보고 있을 때 오른쪽 끝에서 내 모든 감각을 잡아당기는 물건을 발견했다.

“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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