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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화 다시 불린 성자 (214/241)

214화 다시 불린 성자

타악!

제국 수도에서 3대째 운영 중인 주점 붉은 바다에서 두 중년인이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오늘은 일진이 정말 더러웠다니까.”

“또 진상 손님 온 거야?”

“그렇지 뭐. 매일 한 놈 이상은 진상이니까. 에휴.”

죽마고우인 중년인들은 서로의 하루를 말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 자네 그 소문 아니지, 그 사실 들었나?”

머리가 벗겨진 중년인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소문? 사실? 뭐라는 거야. 인마. 벌써 취했냐?”

“아니, 소문이 아니라 사실.”

“뭔데? 난 오늘 쳐 박혀서 일만 해서 몰라.”

“문라이트 식당에서 일어난 일 있잖아. 거기서...”

“아, 그거야 당연히 알지. 도플갱어 킹 말하는 거지?”

맞은편에 앉은 털보 중년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혼자 일 한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알아 인마.”

“아니, 그 도플갱어 킹을 죽이고 홀연히 사라진 영웅 있잖아. 그 사람의 정체가 드러났다고!”

“헉! 정말?”

털보 중년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도 두 중년인의 테이블을 쳐다보며 귀를 기울였다.

“역시 모르는군. 흐흐.”

“누군데?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네가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지. 크라시스의 유렌 록스 후작!”

“캬아!”

털보 중년인이 시원한 표정을 지으며 손뼉을 부딪쳤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어! 다른 귀족이나 기사들은 자신이 이룬 업적들을 알리려고 혈안이 되어있지만 그분은 다르지. 본인이 워낙 뛰어나니 그런 자랑이 필요 없는 사람이잖아!”

털보 중년인은 유렌에 대한 호감이 깊은지 파안대소했다.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도 털보 중년인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알게 된 거야? 그분이 그런 사실을 밝힐 리가 없잖아.”

“아까 우리 가게에 병사들이 와서 떠드는 것을 들었거든.”

털보 중년인만이 아니라, 주점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대머리 중년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마른 침을 삼켰다.

“도플갱어 킹. 그 망할 놈이 다스 상회의 회주로 변신해서 제국 전역에서 사람들을 대량 납치를 했대.”

“납치라고?”

“헉!”

“그 망할 몬스터 놈이!”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것에 흥분했는지 대머리 중년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 지금은 괜찮아.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구해냈거든.”

“정말? 아, 그럼 그 일을 한 사람이 설마...”

“맞아! 유렌 후작님이 400명이 넘는 납치된 사람들을 모조리 구해내셨어! 모두가 도플갱어 킹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분은 한 발 빠르게 움직이신 거지!”

“400명? 우와!”

“우와아아아!”

“유렌 록스!”

“유렌 후작 만세!”

주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앞에 유렌이 있는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나무잔을 탁자에 내리치며 환호했다.

“아! 아! 잠시! 아직 안 끝났소.”

대머리 중년인은 모두를 조용히 만들고 말을 이었다.

“사람들을 납치한 놈들이 누굴 거 같아?”

“도플갱어 킹이니, 도플갱어 아닌가?”

“아니야. 그런 허접한 놈들이 아니라, 자그마치 라이칸 스로프와 다크엘프라네!”

“헉!”

“라이칸!”

“다크엘프라니!”

“그게 다가 아니야. 유렌님은 그 악마 같은 납치범 놈들을 모조리 생포해왔네! 지금은 그놈들 전부 황궁 감옥에 갇혀있다고 하네!”

사람들은 너무 놀라서 잠시 반응을 하지 못했다. 모두 넋이 나간 표정으로 대머리 중년인을 보았다.

“그래. 놀랄 수밖에 없지. 그 강한 종족들을 모두 생포하셨으니까.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또 있어? 내가 유렌님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제 놀랄 기운도 없어.”

“놈들은 납치한 사람들에게 이상한 독을 먹여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독은 최고위 신관도 해독시키지 못 했다고 하네. 그런데...”

대머리 중년인은 모두의 시선을 즐기며 잠시 말을 멈췄다. 그는 자신의 빈 잔을 흔들며 싱긋 웃었다.

“아, 목이 좀 마른데...”

“이, 이봐 주인장 이분에게 술 좀 가져다줘.”

“난 안주 값을 계산하지. 빨리!”

“그럴 필요 없소. 내가 내지. 그러니 빨리 다음 이야기를 해달라고!”

카운터에 있는 점장이 직접 술을 가져다주며 중년인을 재촉했다. 대머리 중년인은 단숨에 잔을 비운 뒤 다시 입을 열었다.

“크으, 최고위 신관님도 해독하지 못하는 그 독을 유렌님이 해독했다네.”

“저, 정말?”

“그래. 신관들이 유렌님이 해독하는 모습에 경악을 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지 뭐야!”

“크하하하! 그런데 유렌님이 그걸 어떻게 해독하셨지?”

“그분은 예전에 신성교국에서 성자 소리를 들었던 분이라고! 그 정돈 할 수 있으시겠지.”

“아, 맞네! 그랬지!”

유렌의 과거 활약들은 이미 전 대륙에 퍼졌기 때문에 모두가 그가 성자라 불렸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유렌님은 라이칸과 다크엘프를 잡고도 쉬지 못하고 사람들의 독을 해독하고 계시고 있다네. 이곳은 자신의 왕국도 아닌데, 정말 대단하신 분이야! 소문 그 이상의 분이라고!”

대머리 중년인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감동받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자신의 나라의 국민이 아님에도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유렌의 이야기를 듣자 코끝이 뜨거워진 것이다.

탁!

갑자기 주점의 점장이 테이블 위에 술잔을 마구 올려놓았다.

“오늘 이 한 잔은 내가 쏜다. 진정한 귀족 유렌님을 위하여!”

“유렌님을 위하여!”

“우와아아아아!”

주점의 사람들은 모두 잔을 들어 올려 유렌을 찬양했다.

이 주점만이 아니라, 그 옆 식당도, 그 옆의 여관에서도 유렌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국의 전역에 유렌의 활약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

[그림자 혼을 흡수했습니다.]

[흡수된 그림자 혼으로 인해 내력과 오성이 상승합니다.]

[이름 잃은 자의 파편이 강화 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남자의 그림자 혼을 흡수했다. 혼이 빠지자, 남자의 표정이 축 늘어지며,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 끝났소.”

“알겠습니다.”

그림자 혼의 흡수를 끝낸 남자를 옆에 있던 고위 신관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극도의 예를 취하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화아악.

신관이 남자에게 회복 마법을 사용하자 남자의 혈색이 빠르게 돌아오며 거칠었던 숨소리 일정하게 변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위 신관은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 뒤에 있던 다른 신관들도 거의 신을 대하듯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네. 여러분들도 고생하셨습니다.”

사천상회의 앞마당에 모여 있던 군중들에게 빠르게 상황을 설명한 뒤 사람들의 그림자 혼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빠르게 신관들을 데려왔지만 신관들은 예상대로 그림자 혼을 빼내지 못했다. 그들의 신성력은 그림자 혼의 어둠에 밀려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오직 나만 그림자 혼을 흡수 할 수 있었다. 내가 그림자 혼을 흡수해서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을 본 신관들은 경악을 하며 몸을 떨었다. 그 이후로 저들은 나를 성자라고 불렀다.

“성자님. 쉴 곳을 준비해두었습니다. 가시지요.”

“아, 그 성자 소리는...”

“신성교국에서도 성자라 듣지 않으셨습니까. 역시 그들의 보는 눈이 맞았습니다. 유렌님은 능력도, 인성도 성자 그 자체십니다!”

“맞습니다! 성자시여!”

고위 신관 뒤에 있는 신관들도 손을 올리며 함성을 질렀다.

“하...”

어쩌다 보니, 제국에서도 성자 소리를 듣게 되었다. 참 인생이란 모를 일이다.

“성자님. 피곤하실 텐데, 일단은 휴식을 취하시죠. 방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교국 때와 마찬가지로 설명을 할 수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을 게 뻔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를 따라 내게 배정된 방에 들어갔다.

“끄아!”

방문을 닫고 혼자가 되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성자대우를 해주는 지 침대가 아주 폭신폭신 했다.

“싸우는 건 별 문제가 안 됐는데 뒷일이 힘들었네.”

납치된 사람의 수가 자그마치 400명이 넘었다. 그 사람들을 홀로 회복시키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내력과 오성이 올라서 정신력이 상승되지 않았다면 진즉에 탈진했을 거다.

신관들은 내 사정을 모르니, 내가 자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사람들을 치료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그렇고 정신 나가버린 성장을 이뤘군.”

한 명 한 명의 그림자 혼은 별게 아니지만 400개의 혼을 흡수하니, 그 양은 정상의 범주를 한참 뛰어넘었다. 단전화 된 내 몸 전체가 내력으로 꽉꽉 차버렸다.

“이제 정말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정도가 된 건가.”

내력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까지 이루었다. 조화경의 극도 벗어날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조만간 단단히 준비를 해서 현경에 도전을 해야겠다.

“아, 그러고 보니 독도 바뀌었지.”

실리나의 맹독을 흡수했을 때 칠보단혼독이 한 차례 변화를 이루었다.

[흡독지력이 대상에서 독(오케인의 독침)을 흡수합니다.]

[흡독지력이 만독자전신기의 운용을 돕습니다.]

[흡독지력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칠보단혼독이 오보단혼독으로 강화 됩니다.]

실리나에게서 흡수한 독은 칠보단혼독과 비슷한 속성을 지녔는지, 칠보단혼이 오보단혼으로 되어버렸다.

이제 오보단혼독을 사용하면 다섯 걸음을 걷기 전에 숨이 끊어진다는 소리다. 가득이나 강력한 독이 더욱 지독하고 빨라졌다.

“생각지도 않던 보상들을 얻었군.”

이번에 제국에 와서 기대한 보상은 아다스의 처리와 사천상회의 성장, 도플갱어의 구슬뿐이었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크고 다양한 것들을 얻었다.

“이런 게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는 건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아다스를 죽이고 얻은 구슬을 꺼냈다.

[도플갱어 킹의 보주]

도플갱어 킹. 아다스의 힘과 특성을 담은 구슬이다. 사람이 먹는다면 자신의 분신 1개체를 소환 할 수 있다. 다만 분신의 능력은 보주를 먹었을 당시의 능력에 고정된다.

이 말은 내가 지금 보주를 먹는다면 나중에 내가 더 성장을 이뤄도 분신의 능력은 변하지 않고, 지금의 능력에 고정된 다는 소리다.

“그럼 지금 먹을 필요는 없지. 현경에 오르고 난 뒤에 먹으면 될 것 같군.”

여기 나오지 않았지만, 분신은 보름에 한 번만 사용 할 수 있고, 분신의 유지 시간도 12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엄청난 특성인 만큼 그 제약도 큰 능력이다.

도플갱어의 구슬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눈을 감았다. 사람들을 모두 구해내고, 보상도 확인하니, 마음이 풀려서 졸음이 밀려오고 있었다.

거부하지 않고, 수마에 몸을 맡겼다.

**

“음...”

저녁 쯤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아다스 때부터 예민했던 신경이 풀리며 푹 잔 것 같다.

똑똑.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을 보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오.”

“푹 쉬셨습니까?”

들어온 사람은 모카건이었다.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해왔다.

“오랜만에 푹 잤네요.”

“그때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모카건이 면목 없다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군중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른 것을 죄송하다고 하는 것이다.

“아니에요. 사실 일이 너무 커져서 결국엔 제 이름이 알려졌을 겁니다. 자책 할 필요 없어요.”

“그, 지금 제국만이 아니라, 전 대륙에 유렌님의 활약이 퍼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 수도는 더욱 난리가 났습니다. 크라시스 왕국의 영웅인 유렌님이 자신들을 위해 싸웠으니까요.”

“음, 뭐 괜찮아요.”

대륙 전체에 퍼지는 건 의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어쩌겠나. 그냥 유명세를 즐기는 게 편하다.

“납치됐던 사람들은 어떤가요?”

“이제 하나 둘 씩 정신을 차리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구해준 유렌님을 보고 싶다고 소동도 일어났습니다.

“그럼 괜찮은 가보군요. 다행이네요.”

“그리고 이게 유렌님 앞으로 왔습니다.”

미소를 지은 내게 모카건이 흰 봉투를 내밀었다. 받아서 뒤집어보자 제국 황실의 문양이 박혀있었다.

“황궁에서 유렌님을 초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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