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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화 니벤 산 (4) (212/241)
  • 212화 니벤 산 (4)

    “으읍...”

    혼연적마에 중독 돼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실리나에게 강화된 자백제를 먹였다.

    강화된 자백제는 지인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하는 것처럼 자세한 정보를 술술 불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자백제를 먹인 뒤 실리나의 목 위만 마비를 풀어주었다.

    “대,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질문은 내가 한다.”

    “으...”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으로 실리나를 쳐다보니, 그녀는 내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너는 내게 어떠한 정보도 들을 수 없을 거다. 내 입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실리나가 소리를 지르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녀는 자백제의 효과를 모르기 때문에 저런 말을 뱉은 거다.

    잠시 뒤에 실리나가 보여줄 표정이 기대가 된다.

    “이곳은 에블린이 시켜서 온 건가?”

    “그, 그렇다. 그분께서 이곳에 와서 제물들을 회수하라고 명하셨다. 어?”

    나는 ‘에블린이 시켜서 왔냐고.’만 물어봤지만, 실리나는 에블린이 무엇을 시켰는지 까지 알아서 말해주고 있었다. 이게 강화된 자백제의 힘이다.

    “무, 무슨!”

    실리나는 자신이 대답해놓고도 깜짝 놀라서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면 스스로의 혀를 잘라버렸을 표정이다.

    “내, 내가 왜 네 질문에 대답을 한 거지? 대체 이게...”

    “제물이라...”

    실리나는 분명히 제물이라 말했다. 상자에 갇힌 사람들의 성별, 나이, 능력, 지위가 가지각색이라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제물이라니,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

    “내게 무엇을 먹인 거야!”

    “닥치고 내 질문에나 대답해. 이들이 무슨 제물이라는 거지?”

    “위대한 어, 업을 이룰 제물들이다. 저 인간들은 모두 에블린님의 업이 되어 줄 거다!”

    실리나는 볼을 부들부들 떨며 내 물음에 답했다. 상자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에는 사이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업이라니,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업? 업이 뭐지?”

    “에블린님과 크리티스님이 함께 이루실 위대한 일이다. 너는 절대로 막지 못해.”

    “그니까 그 위대한 일이 뭐냐고.”

    “...”

    실리나는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자백제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에도 입을 열지 않는다는 건 하나 밖에 없다. 그녀도 모른 다는 거다.

    “모른다는 거군.”

    실리나는 에블린의 직속 부하다. 나로 생각해보면 포메라나, 아린, 페루 같은 위치인데도 업에 대해 알려주지 않은 걸 보면 에블린이 극도로 조심스럽게 대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아, 알고 있다. 네게 말하지 않는 것뿐이다!”

    실리나가 거짓말을 하려 했지만 의미 없었다. 그녀의 심리는 전부 내게 간파되고 있었으니.

    “됐고, 네가 저들에게 먹인 악실이라는 건 뭐지?”

    “아, 악실은 과일이다. 에블린님이 내려주신 검은 과일. 악실의 과즙을 인간들에게 머, 먹였다.”

    “과일이라...”

    악실은 내가 전혀 모르는 과일이다. 포도도 아니고 검은색 과일이라니.

    스토리가 막바지로 흐르면서 내가 모르는 것들이 점점 나타나고 있다.

    “그 악실이라는 것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 건데.”

    “인간이 악실을 먹게 되면 숨을 쉬는 최소한의 활동을 제외하고는 모든 신체기능이 멈춘다. 인간의 신체는 악실의 어둠을 받아들여 자신의 몸 전체를 어둠의 마나로 채, 채우게 된다.”

    “인신공양!”

    실리나의 말을 들어보니, 이들이 하려는 건 인신공양 그 자체다. 정말이지 지독하고 욕이 나오는 놈들이다.

    “악실이라는 어둠의 씨앗을 사람의 몸에 심어서 뿌리를 내리게 한 뒤 인간의 몸이 어둠의 마나로 가득 채운다는 거냐? 나중에 재물로 바치기 위해서?”

    “그, 그렇다.”

    “악귀 같은 놈들!”

    어둠의 마나에 직접 노출 된 인간은 십중팔구는 죽게 된다. 그래서 흑마법사들이 스스로를 타락시켜서 어둠의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다.

    “악실과 어둠의 마나라니...”

    상자를 열어서 사람들을 보았을 때 어둠의 마나를 느끼지 못했었다.

    저 악실이라는 과일에 있는 어둠의 마나는 내가 아는 어둠의 마나와 다른 것 같지만, 인간에겐 더 위험할 것 같다.

    “저 사람들을 구할 방법은?”

    “그, 그딴 방법이 있을 것 같나? 악실을 받아들인 순간 저 인간들의 목숨은 이미 죽은 것이다. 저들은 숨만 쉬는 좀비와 다를 것이 없어! 성녀가 와도 구하지 못한다.”

    “허, 정말 지독한 자들이오.”

    포메라가 고개를 저으며 다가왔다. 녀석은 혐오스러운 눈으로 실리아를 쳐다보았다.

    빠각!

    “캬악!”

    주먹을 들어 실리나의 인중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실리나의 눈이 멍청하게 풀려버렸다.

    “말을 잘 골라야 할 거다. 무엇이 네 마지막 말이 될지 모르니까.”

    “으으...”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일이 진행되고 있나?”

    “이 작업은 아다스가 진행했기 때문에 이, 이곳 밖에 없을 거다.”

    지금은 없겠지만 악실이라는 과일이 있다면 언제어디서도 사람들을 저런 상태로 만들 수 있다.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실리나의 몸을 수색해서 그녀의 마법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을 뒤지자 자두 알만한 크기의 검은 구슬 몇 개가 보였다.

    힘을 주자, 정말 과일이라도 되는 듯 검은 과즙이 떨어졌다. 다만 과즙의 색이 오폐수처리장에서 나오는 폐수처럼 검은색이었다.

    “이게 악실이냐?”

    “마, 맞다. 그게...컥!”

    실리나의 눈에 악실을 가져갔을 때 그녀의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회색 눈동자가 사라지고, 흰자위만 남았다.

    “뭐야!”

    “우...”

    실리나의 목소리는 한 차원을 넘어서 들리는 것처럼 울리고 있었다.

    “유렌 록스...”

    실리나가 변했다. 단순히 말투와 목소리가 변한 게 아니라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았다. 난 저 안에 누가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

    “에블린.”

    “유렌 록스. 또, 또 방해를 하는군요. 아다스를 죽여 놓고 이곳까지 찾아오다니, 대체 어디까지 방해를 해야 속이 시원한 거죠?”

    뭘 했는지는 모르지만 저 안에 있는 건 더 이상 실리나가 아니라 세피로스의 삼공 에블린이다. 에블린이 실리나의 몸에 빙의한 것이다.

    “너야 말로 끊임없이 일을 저지르는군. 대체 뭘 노리고 있는 거지?”

    “당연히 알려드릴 수 없죠.”

    “실리나가 말한 업이 대체 뭐지? 대체 네 목적이 뭐야!”

    내가 나타나기 전에 라시드를 데려갔으니, 에블린은 한참 전부터 원작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적을 알 수가 없다.

    “업이라, 실리나가 제 생각보다 입이 가벼웠군요.”

    실리나의 몸속에 들어온 에블린은 뼈를 긁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상한데?

    처음으로 에블린과 제대로 된 대화를 했기 때문인지, 그녀의 말을 들으며 뭔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에블린은 분명히 내게 분노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계획을 망쳤는데 만족이라니,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이만 가야겠어요. 당신이 또 어떤 기괴한 짓을 할지 모르니까.”

    “라시드는 어디 있지?”

    “라시드라, 그 아이도 알고 있군요... 쿨럭!”

    실리나의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에블린이 실리나의 몸을 조종해 맥을 끊은 것 같다.

    “미안하지만 당신은 그를 보지 못할 겁니다.”

    “뭐?”

    “당신이 그 전에 죽을 테니...”

    에블린의 마지막 말과 함께 실리나의 숨이 끊어졌다. 에블린의 빙의도 끝났는지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주, 주인. 방금 대체 뭐였소. 누군가 빙의 했던 것 같은데?”

    “에블린이다.”

    “에, 에블린이면 그 세피로스의 삼공이라는 다크...”

    “그래. 그 세피로스의 대가리 에블린이다. 너를 타락시키게 지시한 것도 그녀지.”

    “음...”

    포메라가 화를 낼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 외로 평온한 표정으로 턱만 긁적였다.

    “뭐야. 그 반응은? 안 열 받아?”

    “괜찮소.”

    “괜찮다고? 그녀가 너를 타락시킨 원흉인데?”

    “처음엔 화가 많이 났지만, 명상을 하며 많이 내려놓았소. 그리고...”

    “그리고?”

    “지금도 나쁘지 않소.”

    포메라가 먼 산을 바라보며 조금 뜸을 들이다가 중얼 거렸다.

    “나쁘지 않다고?”

    “그렇소. 명상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인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소. 난 인간이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살아있는 것 같소. 진심으로.”

    본심을 말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포메라의 눈이 시퍼렇게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주인을 따르는 것은 나를 도와준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옳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오.”

    “너에게 인정받는 건 기쁘다만, 언데드인 놈이 그런 말하는 거 엄청 웃긴 거 알지?”

    “후후...”

    내가 웃으며 농담을 던지자, 포메라도 이를 딱딱 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두 분 사이가 정말 좋군요.”

    “헉!”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포메라가 뒤로 물러섰다. 난 그 기척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표정 변화 없이 뒤를 돌았다.

    “누구시오!”

    경계를 하는 포메라에게 손을 들어 올려서 막았다.

    “러스트...”

    “오랜만이네요.”

    우리 앞에 나타난 사람은 색욕 러스트였다. 그녀는 언덕 아래에 있어야 할 사린을 허리에 끼고 있었다.

    “그 아이는...”

    “걱정 마세요. 잠시 재운 거예요.”

    러스트의 말대로 사린의 숨소리는 일정했다.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주인. 아는 여자요?”

    “그래. 아는 사람 아니, 아는 존재다.”

    포메라는 내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고 경계를 풀지 않은 눈으로 러스트를 쳐다보았다.

    “러스트. 여긴 어떻게 온 거지?”

    “제가 준 자료로 어떻게 일을 처리하셨나 보러왔죠.”

    “네가 준 자료라고?”

    “그럼요. 후후.”

    러스트는 보는 사람의 심장을 떨리게 만드는 아찔한 미소를 지었다.

    “이 아이가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수천 개가 넘는 다스 상회의 자료를 이틀 만에 파악 할 수는 없죠.”

    “그럼 처음부터 네가...”

    “네. 제가 이 아이를 통해 당신께 자료를 드린 거죠.”

    러스트는 조심스럽게 사린을 내려놓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여러 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하...”

    러스트의 신분은 여러 가지다. 황궁에 있는 신분도 있으니, 그녀가 다스 상회의 자료를 빼돌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제 생각이상으로 잘 처리하셨군요.”

    “왜지?”

    “네?”

    “왜 날 도와준 거냐고.”

    “당신의 집에서 만났을 때 말씀드렸잖아요. 서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그 믿음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그 자료를 드린 거죠. 그때 본 밤하늘 기억하시죠. 후후.”

    러스트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그럼 왜 직접 주지 않고, 사린을 이용한 거지?”

    “처음부터 제가 이 자료들 드렸다면 고민하느라 시간이 갔을 테고 이 사람들은 이곳에 없었을 테니까요. 아닌가요?”

    그녀의 말대로다. 러스트가 내게 이 자료를 주었다면 고민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이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을 거다.

    “넌 이곳에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았던 건가?”

    “정확히는 몰랐지만 짐작은 했죠. 이곳 북방만이 아니라, 제국에서도 실종이 갑자기 늘었거든요.”

    이전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다니, 정말 대단한 정보력과 예측 능력이다.

    “일단은 고맙다고 해야겠군.”

    “그 인사 잘 받을 게요.”

    러스트가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귀족식으로 인사를 받았다.

    드드득.

    상자를 뜯어서 안에 있던 사람들을 꺼냈다. 한 상자에는 여섯 명의 사람들이 들어 있었다.

    “이들은 악실이라는 과일의 과즙을 먹었다고 하는데 혹시 알고 있어?”

    “악실이요? 그런 과일은 들어보지 못했어요.”

    “이거야.”

    내가 손으로 만졌던 악실을 러스트에게 보여주었다.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하게 변했다.

    “음...”

    러스트는 인상을 찌푸리며 약실을 만지작거렸다. 안의 과즙까지 만져본 뒤 일어났다.

    “제가 모르는 물건이지만, 굉장히 친숙한 느낌이 드는군요. 이런 감각은 처음이에요. 무언가 그리운 기운이 나는 군요.”

    “그리운 기운이라...”

    러스트도 모르는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려서 사람들을 살피려 할 때 러스트의 말이 이어졌다.

    “이 악실의 과즙은 인간들의 몸속에 독처럼 퍼지고 있어요.”

    “독처럼 퍼진다고?”

    “네. 독처럼 피를 통해서 장기를 감염시키고 있어요. 다만 이건 어둠의 마나와는 다르군요. 비슷하지만 확실히 달라요. 오히려 우리와 비슷한...”

    러스트의 다른 말보다 독처럼 퍼진다는 말이 내 머리를 울렸다.

    “될지도 몰라.”

    “뭐라고 했소. 주인?”

    “이들을 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포메라에게 대답을 해주고 악실에 감염된 남자를 앉힌 뒤 그의 등에 손을 올렸다.

    우우웅.

    남자의 몸에 내력을 흘려 넣어서 몸속에 퍼지는 악실의 기운을 파악했다. 악실은 남자의 간을 넘어 그 아래까지 자신의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다.

    흡독지력을 운용해서 악실의 기운을 흡수하려 했다.

    “아...”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악실의 기운은 흡독지력으로 흡수되지 않았다. 독처럼 퍼지는 거지 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기랄...”

    남자의 얼굴이 좀비보다 더 창백하게 변하고 핏줄이 튀어나오는 것에 욕지거리가 나왔다.

    “내가 구할 수 없는 건가...”

    띵!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할 때 맑은 알림음이 들렸다.

    [이름 잃은 자의 파편이 임시 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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