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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화 니벤 산 (3) (211/241)

211화 니벤 산 (3)

캬아앙!

갑자기 키르아의 등 뒤에 나타난 다크엘프가 내가 던진 비수를 막아냈다. 내가 공격을 할 거라고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을 정도로 빨랐다.

“훗.”

다크 엘프가 입가에 우물을 만들어서 나를 비웃었다. 저 여자가 바로 이곳의 두 번째 책임자 다크엘프 수호자 실리나 일 것이다.

“웃기는 아직 이를 텐데.”

“뭐?”

내 말을 들은 실리나의 동공이 두 배로 커졌다.

실리나가 나올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분명 근처에 있을 것 같아서, 처음부터 평범한 비수와 귀왕살을 준비해 둔 후 평범한 비수를 먼저 미끼로 던진 것이다.

빠지지직!

준비했던 두 번째 비수, 귀왕살에서 뇌성이 울렸다. 우레를 든 것처럼 손에서 뇌기가 번쩍였다.

최상급 암기술 광뢰(光雷)를 사용해서 귀왕살을 던졌다.

번쩍!

한 밤 중에 떨어지는 낙뢰처럼 광뢰는 공간을 가르며 키르아에게 쇄도했다. 놈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해도 막아내지 못 할 만큼 빠른 속도였다.

“큭.”

키르아는 이미 자신의 심장 앞까지 날아온 귀왕살을 보고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브리콜라카스와 자각의 특성을 가진 놈답게 몸을 살짝 틀어서 귀왕살이 심장에 꽂히는 것은 간신히 피해냈다.

퍼억!

귀왕살은 키르아의 심장대신 명치에 꽂혔다.

“끄아아아아아!”

키르아는 귀왕살이 박히자마자 세상이 떠나가라 비명을 내질렀다. 변신까지 해가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역시 먹히는군.”

키르아의 종족인 브리콜라카스는 신의 힘을 이어받은 라이칸의 상위종이다. 귀왕살이 가지고 있는 신살 특성이 잘 먹혀들 수밖에 없다.

귀왕살에 여러 가지 독까지 주입했으니, 놈이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건 당연한 모습이다.

거기다 브리콜라카스의 기본 특성인 빠른 재생 능력도 귀왕살에 있는 회복 방지 능력에 막혀버린다. 내가 귀왕살을 만들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놈들을 잡기 위해서였다.

“꺼어억!”

키르아는 모기약을 맞은 모기처럼 빌빌대며 무릎을 꿇었다.

“키르아!”

실리나는 다급한 표정으로 키르아를 살폈다. 고작 단검 하나가 박혔을 뿐인데, 팔다리가 뜯겨나간 것 이상으로 아파하고 있는 것에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카아아아악!”

“젠장!”

실리나가 아직도 비명을 지르는 키르아를 데리고 동굴 앞 마법진으로 올라갔다.

“뭣들 하는 거야! 저 놈이 유렌 록스다! 놈을 막아!”

실리나의 명령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던 라이칸과 다크엘프가 내게 달려들었다.

“크르르르!”

라이칸은 변신을 한 뒤 몸을 숙여서 돌진해왔고, 다크엘프들은 활을 꺼내들었다.

컁!

캬앙!

날아온 다크엘프들의 화살을 튕겨내고, 놈들을 향해 두 마리 나비를 날렸다. 주머니에서 로벤의 롱소드를 꺼내들었다.

부아아앙!

롱소드에 강환을 둘러서 나를 찢기 위해 손톱을 휘두르는 라이칸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아!”

앞의 동료가 내 일 검도 견디지 못할 줄은 몰랐는지, 뒤에서 달려들던 라이칸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촤아악!

검을 횡으로 휘둘러 라이칸 두 마리를 동시에 베어버렸다.

“아...”

고작 두 번의 휘두름으로 강력한 신체를 가진 라이칸 3마리를 처리했다. 금방이라도 덤벼들려던 라이칸들은 내 검 앞에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아아악!”

뒤쪽에서 다크엘프들의 비명이 들렸다. 내가 날린 혈화접을 피해내지 못하고 나비의 이빨에 물려버린 것이다. 놈들은 각각 목과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로 쓰러졌다.

“아...”

“대, 대체 뭐야! 어떻게 이런 기세를...”

“으으...”

라이칸과 검을 들은 다크엘프들은 내가 앞으로 걸어갈 때 마다 뒤로 물러났다. 기세만이 아니라, 마음에서도 밀린 것이다.

후우욱.

손가락을 비벼서 모두에게 독을 뿌리며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캬컁!

멀리 있던 다크엘프들이 마나를 담아 활을 쏘았지만, 내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가볍게 튕겨주었다.

“이익!”

실리나가 이를 악물었다. 뒤에서 아이스 골렘이 압박을 하고, 앞에서는 내가 다가오고 있으니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다.

“워프 마법진을 발동시켜라!”

실리나는 동굴에 있는 인간들을 포기하고, 이곳에 있는 인간들과 키르아를 데리고 도망치려는 생각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빙긋 웃으며 그녀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아, 알겠습니다!”

엘프들이 긴급하게 움직여서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었지만, 워프 마법진에서 나와야 할 푸른빛이 올라오지 않았다.

“뭐, 뭐야!”

“마법이 발동되지 않습니다!”

“뭐?”

“어디 그게 되겠어?”

“네놈! 대체 언제!”

실리나가 핏대를 세웠다. 기회만 된다면 당장에 내 목을 물어뜯을 표정이었다.

“내가 한 건 아니고, 유능한 부하가 있어서.”

아이스 골렘들이 갑자기 자신들의 뒤통수를 긁었다. 포메라가 내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져서 골렘들의 제어를 잠시 풀어버린 거다. 하여튼 단순한 놈.

“유렌 록스...”

실리나의 입에서 내 이름이 갈려나왔다. 심장을 긁어내는 것 같은 소리였다.

“크으윽...”

키르아가 명치에 박힌 귀왕살을 뽑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상처에선 검은 피가 줄줄이 흘러나왔고, 안색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사실 키르아는 이렇게 쉽게 당할 놈이 아니다. 방심을 하다가 인간 형태에서 명치에 귀왕살이 박혔기 때문에 저렇게 약해진 거다. 귀왕살에 발라놓은 독도 한 몫 했고.

그래도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심장에 박혔으면 바로 죽었을 테니.

“시, 실리나. 저 놈을, 유렌 록스를 죽여야지. 왜 멍하게 있는 거냐!”

키르아가 당장에 공격할 것처럼 손톱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냈다.

“후우...”

키르아와 둘이서 라면 나와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실리나가 검을 들어서 나를 겨누었다.

“다들 일어나라! 전부 한 번에 달려들면 죽일 수 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저 놈은 한 놈뿐이다!”

라이칸과 다크엘프들은 키르아와 실리나의 말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뭣들 하는 거냐! 빨리 일어나!””

키르아가 소리를 질러도 라이칸도 다크엘프도 움직이지 않았다.

저들은 명령에 불복종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가 말을 듣지 않고, 말도 할 수 없어서 저러고 있는 것이다. 즉,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너희들...”

“소용없어.”

“뭐?”

“괜히 저러는 게 아니야. 내가 한 거거든.”

라이칸과 다크엘프들을 겁에 질리게 한 뒤 동굴 밖에 한 가지 독을 풀었다. 혼연적마(魂連的痲)라는 최강의 마비독을.

마음부터 내게 밀린 저들은 절대 혼연적마를 감당하지 못한다. 육체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마비된 상태다. 저들의 상태는 인형과 다름없다.

“으득득...”

실리나가 이빨을 갈며 나를 노려보았다. 얼굴에 푸른 핏줄이 올라왔다.

“키르아. 어쩔 수 없다. 너와 나 둘이서 라도...”

“커헉!”

키르아는 실리나의 부름에 답하지 못하고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놈에게 넣어놨던 독이 작용한 것이다.

변신상태에서 썼다면 독이 발동하는데 오래 걸렸겠지만, 인간 상태였기 때문에 독이 쉽게 풀렸다.

“끄아아아악!”

키르아는 귀왕살이 박혔을 때보다. 더 큰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기었다.

“아프냐?”

전신을 부르르 떨며 헐떡이는 놈에게 다가갔다.

“네놈만큼은 그냥 죽일 수 없지.”

“크아아악!”

키르아는 아무 죄도 없던 사람들을 자신의 기분을 풀기 위해 잔인하게 죽였다. 이런 악마 같은 놈을 쉽게 죽일 수는 없다.

“커어억...”

이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놈에게 들어간 여섯 가지 독이 계속해서 지옥의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다.

“네가 죽인 이들에게 잘못을 빌며 죽어라.”

“흐으윽...”

키르아는 극악의 고통에 눈조차 감지 못하고 충혈 된 눈을 그대로 드러낸 채 숨이 끊어졌다.

“멈춰!”

실리나가 상자에 손을 올리며 소리를 질렀다. 입술이 덜덜 떨리는 것을 보니, 키르아를 고통스럽게 죽인 내게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오지 마! 이 인간들 구하러 왔지? 다가오면 이들의 목숨은 없어!”

실리나의 말에도 멈추지 않고 걸었다.

“오지 말라고!”

실리나의 눈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익!”

실리나가 정말 사람들을 죽일 것처럼 상자에 검을 날렸다. 하지만 그녀의 검에 맞은 상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했다.

“이, 이게 무슨!”

“위를 봐.”

실리나는 내 손가락을 따라 허공으로 시선을 올렸다.

“일을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아무 의미 없는 살생은 좋지 못하오.”

하늘에서 상자들을 띄우고 있던 포메라가 손을 흔들었다. 녀석은 우리가 싸우고 있을 때 사람들이 들어있는 상자들을 빼돌리고 미리 준비해 놓았던 환상마법을 발동시킨 것이다.

“하하!”

다만 언데드인 놈이 살생을 좋지 않다고 하는 게 우습다. 저러다 정말 성불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대체 언제...”

“네가 키르아를 잡고 나만 보고 있을 때 했지.”

“마나의 파동이...”

“일부러 내 기세를 퍼뜨려서 너희들을 압박한 거다. 네가 저 녀석의 마법을 느끼지 못하도록.”

“아...”

실리아는 나와 포메라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정신이 나간 것처럼 머리를 미친듯이 흔들었다.

“하! 아하하하하하!”

실리나가 자신의 양 머리를 부여잡고 광기어린 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해. 아주 대단해! 역시 유렌 록스야!”

머리를 풀어헤친 실리나는 붉어진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그냥 잡혀줄 느낌은 아니라, 긴장을 유지했다.

“에블린님께서 너와 만나게 되면 일초도 방심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말도 아무 소용없어. 소용 있을 수가 없지!”

실리나는 자조적인 표정을 한 채로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귀신처럼 안에서부터 나타나는데 너를 어찌 당해내겠어. 하하하하!”

“덤비지 않을 건가?”

“흥. 네놈이 아다스를 잡은 것을 모를 거라 생각했나?”

실리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역시 세피로스놈들 만큼은 아다스를 죽인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블린이 있으니, 모를 수가 없겠지.

“네놈에겐 그 변태 도플갱어 놈을 죽일 능력이 있으니, 이곳에 있는 모두가 한 번에 달려들어도 승산이 희박하다. 그런데 기습을 해서 키르아를 죽이고 시작했으니, 처음부터 우리가 이길 가능성은 없었지.”

실리나는 망가진 정신으로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 말해라. 저 사람들을 왜 납치한 거지? 그리고 저들에게 뭘 먹인 거냐.”

“하, 악실을 먹였다는 것도 파악하다니, 정말 네놈은 인간이 아닌 것 같구나.”

실리나가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눈빛에서 지독한 살의가 보이고 있었다.

“악실? 악실이 뭐지?”

“후후, 내가 대답해줄 거라 생각하나? 나는 명예로운 다크엘프다. 추잡한 엘프들과는 달라!”

실리나가 손에 든 검을 역수로 잡고 자신의 심장을 겨누었다. 그녀의 살의는 내가 아니라,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빠지지직!

실리나의 얼굴을 보고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쯤은 파악했다. 기다렸다는 듯 신법을 사용해 달려갔다.

빠악!

손에 든 검을 튕겨내고 검 손잡이로 실리나의 복부를 찔렀다.

“커허헉!”

조금 만 있으면 실리아도 혼연적마에 중독되니, 조금만 제압하고 있으면 된다.

“자살 할 생각은 하지 말도록. 네가 검을 휘두르기 전에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큭큭. 이미 늦었다.”

“뭐?”

나를 조롱하듯 혀를 내민 실리아의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나는 혼연적마를 제외하고 그녀에게 독을 주입한 적이 없다.

“크흐흐. 에블린님이 혹시라도 네게 잡히면 사용하라고 극독을 주셨지.”

“독?”

“저 녀석들을 잡아봐야 아무 것도 모른다. 크흐흐.”

실리나는 마비된 다크엘프와 라이칸을 가리켰다. 그녀는 나를 비웃으며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다가오는 죽음을 맞아라. 유렌 록스. 큭큭큭.”

말을 마친 실리나는 죽음을 기다리는 듯 눈을 감았다.

“어?”

30초 정도가 지난 후 실리나가 눈을 떴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

“왜, 왜 안 죽는 거지? 분명 10초도 되지 않아 죽는다고 했는데! 어째서!”

“내가 해독했으니까.”

실리나에게 히죽이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뭐? 해, 해독? 네가 해독을 했다고?”

실리나가 독을 먹었다고 하자마자, 흡독지력을 사용해서 그녀의 몸속에 있는 독을 흡수해버렸다. 즉, 저 여자는 지금 아주 건강한 상태다.

“아, 안 돼!”

실리나는 도망치려 했지만, 몸이 굳어가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맹독까지 해독하는 내게 완벽하게 겁을 먹어 혼연적마가 발동 된 것이다.

“아...”

그녀는 마지막 신음도 제대로 뱉지 못하고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난 앞으로 걸어가 실리나와 눈을 맞췄다. 그녀의 눈동자엔 공포, 절망, 두려움 같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넌 내가 허락하기 전엔 죽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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