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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화 아다스 (2) (205/241)

205화 아다스 (2)

벽지는 금박으로 덮이고, 세공된 보석이 벽에 통째로 박힌 휘황찬란한 방에 한 중년인이 뒷짐을 지고 서있었다.

그는 검은색 나무가 그려진 그림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쳐다보고 있었다.

“아다스님.”

중년인의 뒤로 집사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집사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지만 중년인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사천상회의 회주 모카건이 초대에 응했습니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겠지.”

“네. 저희와 다른 상회의 압박 때문에 사천상회는 서서히 말라죽고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

집사는 계속해서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아다스는 당연하다는 듯 돌아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놈이 유렌과 접촉 했나?”

“모카건의 근처에 넣은 세작들이 전부 잡혀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수도에서 사라진 날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외부에 노출되었으니, 가이린에 가진 않았습니다.”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았나?”

“사천상회에서 나오는 메시지와 편지는 전부 확인하고 있지만 가이린으로 향하는 메시지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유렌에게 말하지 않고 홀로 해결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상회가 커지니 자신이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군. 역시 인간들은 단순하단 말이야.”

아다스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이 상황을 굉장히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유렌이 포메라를 소환해서 모카건을 바로 돌려보내줬기 때문에 이들은 모카건이 가이린에와서 유렌과 상의를 하고 돌아간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장소는?”

“일주일 뒤 문라이트 식당입니다.”

“문라이트라...”

“그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자더군요. 상회와 아무 관련도 없는 식당에서 만나자는 것을 보니, 저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후후...”

아다스가 그림에서 시선을 떼고 몸을 돌려 집사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입가에 즐겁다는 미소가 피어났다.

“그런 것 같군.”

도플갱어 킹인 아다스는 단순한 변신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의 기억과 습관,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완벽한 변신을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 조건 때문에 언제라도 밟아 죽일 수 있는 사천상회를 압박해서. 모카건을 초대한 것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풀렸으니, 이제 모카건을 만나서 그를 흡수하기만 하면 아다스의 목적이 완성 된다.

“그럼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그래. 부탁하지.”

**

“이제 강환은 완전해졌어.”

일주일간 밤낮없이 수련한 끝에 완벽한 강환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광화를 위해서 내공수련도 꾸준히 해왔다.

“근데 왜 부족하게 느껴지는 거지? 뭔가가 더...”

목표로 했던 강환은 완성했지만, 무언가가 모자르다는 생각이 든다.

우우웅.

비수에 강환을 담자, 강기가 응집되어 눈이 부실정도로 강렬한 빛을 내고 있었다. 처음 수련을 시작할 때에 비하면 빛과 위력이 훨씬 강화 됐지만 역시나 부족한 느낌이다.

“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별 생각 없이 흔든 손가락 때문에 강환이 씌워져있는 비수가 한 바퀴 회전했다.

“어?”

비수를 조금 더 빠르게 돌리자, 비수가 회전하면서 커다란 원처럼 보이고 있었다.

“이거였어! 이게 그분이 보여준 진정한 광화야!”

계속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회전이었다. 강환에 회전력을 더함으로 더 큰 위력과 속도를 만드는 것이다.

“비수 때문이었군.”

내가 회전을 생각하지 못한 이유는 천판의 조각이 아니라, 비수를 가지고 강환을 수련을 했기 때문이었다.

손잡이가 있는 비수와 다르게 천판의 조각들은 모든 부위로 공격을 할 수 있다.

천판의 조각들에 강환을 두르고 강렬한 회전을 더해서 더욱 큰 파괴력과 속도를 내는 것이 광화의 진정한 비밀이었다.

“그래서 그분이 그 짧은 시간에 운석을 조각내버릴 수 있던 거야.”

내 광화와 당천위의 광화의 위력과 속도차이가 숙련도에서만 온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능력 그 자체에서도 차이가 있었던 거다.

“하하하!”

제대로 된 만천화우를 깨달았다는 기쁨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은 시간은 5일정도인가.”

아다스와 모카건이 만나기로 약속을 한 날은 일주일 남았다. 미리 준비를 해야 하니, 최소 이틀 전에는 제국으로 가야한다.

남은 시간은 5일정도 밖에 없지만, 지금의 집중력과 의지라면 충분히 광화를 완성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 처음부터 실전으로 가야겠지.”

천판을 허공에 띄워 천화를 피워냈다.

우우웅!

천개의 꽃잎에 강환을 담으니, 광대한 빛을 가진 광화가 피어났다.

“큭...”

연위결을 사용해서 모든 광화에 회전을 더하자, 과부하가 온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정도 쯤이야. 참을 수 있지.”

연위결에 무리가 간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기술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내 예상대로 강환에 회전을 더하는 것이 진정한 광화의 길이 확실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

“모카건님.”

“음, 무슨 일인가?”

자신의 방에서 업무를 보던 모카건은 비서의 부름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의 비서는 평소와 달리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저희 암호를 알고 계신분이 뒷문으로 오셔서 모카건님을 뵙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수상한 남자라서...”

“수상은 개뿔! 빠, 빨리 모셔오게!”

“네? 아, 네!”

비서는 곧바로 밖으로 튀어나갔다. 모카건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오셨군.”

최근에 암호와 뒷문을 알려준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아다스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짜가 이틀밖에 남지 않아서 걱정했건만 드디어 유렌이 도착한 것이다.

“여기입니다.”

비서가 전신을 로브로 가린 유렌을 방으로 데리고 왔다.

“수고했다. 나가 보거라.”

“예.”

모카건은 비서를 내보내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유렌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좀 늦었죠?”

“목이 빠져라 기다리긴 했지만, 오실거라 믿었습니다.”

모카건의 말에 유렌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불안했을 텐데, 저렇게 농담을 하는 것을 보니, 역시나 굳센 사람이다.

“준비는 어떻게 됐습니까?”

“이틀 후 점심식사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장소는 수도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인 문라이트입니다.”

“어디 있죠?”

“중앙 도로에 있습니다. 간판도 크고 사람도 많아서 어렵지 않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잘 하셨어요.”

유렌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식당이지만, 유명하다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전 뭘 해야 하죠?”

“이틀 동안 잠 푹 주무시면서 밥 잘 드시면 됩니다.”

“네?”

모카건은 유렌의 대답이 황당했는지 풀린 눈으로 멍하니 쳐다보았다.

“저, 정말로 그것뿐인가요? 제가 할 일이?”

“연기는 좀 필요하겠네요. 아다스를 도플갱어가 아니라, 인간으로 보는 연기가요. 상회를 살려야한다는 필사적인 의지도 보여야 하고요.”

“그건 할 수 있습니다.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니까요!”

모카건의 눈빛에서 급변했다. 한 단체를 이끄는 수장의 카리스마가 빛나고 있었다. 그에게서 바위 같은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 눈빛 좋네요. 아다스에게도 먹히겠어요.”

“후우...”

모카건이 한숨을 쉬고 벽에 등을 기댔다. 그의 얼굴에서 피로가 보이고 있었다.

“지금 며칠째 잠을 못 잤는지 모르겠습니다. 상회의 일도, 아다스를 만나는 것도, 제 일도 걱정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럴까봐 아다스의 정체를 나중에 말할까 고민했었어요. 하지만 모카건님이 이 일의 당사자기 때문에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렌은 모카건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아다스가 도플갱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 믿음 덕분인지 피로에 찌든 모카건의 눈빛 아래에서 강렬한 의지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으니, 더욱 힘이 나네요. 거기다 유렌님이 근처에 계시는 걸 알고 있으니, 오늘부터는 잠이 솔솔 오겠어요.”

“그러면 좋겠군요.”

“유렌님은 이제 뭘 하실 겁니까?”

유렌은 창을 가린 커튼을 슬쩍 들어 올려서 중앙 도로 쪽을 쳐다보았다.

“준비를 해야죠.”

“준비요?”

“식당에서 싸움이 벌어질 때 우리가 유리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준비를 해놔야 해요. 모카건님과 다른 사람들의 목숨도 지켜줘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아다스는 의심이 많고, 확실한 일처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놈의 부하들은 오늘과 내일에도 식당에 숨어들어가 이상한 점이 없는지 조사를 할 것이다.

유렌은 그 모든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약속 당일 새벽에 식당에 들어가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펼쳐지도록 준비를 할 것이다.

유렌은 다시 커튼을 치고 돌아서서 빙긋 웃었다.

“이제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앞으로는 두 다리 쭉 뻗고 주무시면 됩니다.”

**

모카건과 아다스의 약속 당일 새벽.

사천상회를 나와서 문라이트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미리 살펴놨기 때문에 곧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탁.

연위결을 사용해서 창문 안쪽의 잠금장치를 조용히 올린 후에 창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흠...”

일단 식당 전체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식당은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졌는데 수도에서 가장 맛있다는 명성만큼이나 잘 꾸며진 내부를 가지고 있었고,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다.

“2층이라고 했지.”

모카건과 아다스가 예약한 장소는 2층 전체였다. 모카건은 이곳에서 만나자고만 했는데, 아다스가 2층을 통째로 빌렸다고 했다.

“설치하기에 나쁘지 않네.”

2층과 1층을 전부 살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2층이라서 조금 걱정했지만, 계획을 진행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었다.

“시작해볼까.”

주머니 속에서 회색 돌들을 꺼내들었다.

빠드득.

내공을 사용해서 회색 돌을 바닥에 밀어 넣었다. 이렇게 해놓으면 일반 사람들에겐 거의 보이지 않고, 돌은 바닥과는 별개의 존재로 인식시킬 수 있다.

일층과 이층을 오가며 미리 봐뒀던 장소 24곳에 회색 돌들을 박아 넣었다.

“됐어.”

모카건과 아다스가 만났을 때 진법을 발동시키기 위해서 미리 돌맹이들을 정해진 장소에 넣어둔 것이다.

환영미리진과는 다른 새로운 진법인데, 새 진법은 모카건과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고 아다스를 방해할 것이다.

내일 아다스가 본색을 드러내려 할 때 마지막 한 곳에만 돌을 놓으면 25개의 축에서 기가 솟아올라 진이 발동할 것이다.

“포메라.”

진의 설치를 끝낸 뒤 포메라를 소환했다.

“가이린으로 돌아가려고 부른 거요? 음, 여긴 식당 같은데?”

포메라가 주변을 살펴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식당 맞아.”

“설마 여기서 돌아갈 거요? 흔적이 남을 텐데?”

“아니, 여기에 환상마법을 설치해줘.”

“갑자기 환상마법을?”

“지금 상황을 설명해줄게.”

포메라에게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상황인지 모두 말해주었다.

“그럼 주인의 결계를 숨기기 위해서 내 환상마법을 미끼로 쓴다는 것이로군.”

“그래. 정확해.”

아다스는 의심이 많은 놈이다.

식당에 적당한 수준의 환상마법이 걸려있는 것을 확인하면 내가 왔다는 의심을 하지 않고, 설치한 진에 대해서도 눈치를 채지 못할 것이다.

‘모카건이 마법사의 힘을 빌렸구나.’정도로 생각하고 비웃을 게 뻔하다.

“알겠소. 그러면 5서클과 6서클 사이로 쓰면 될 것 같소.”

“겉은 그 정도로 해주고, 진을 유지할 돌들에겐 좀 더 수준 높은 마법들을 써줘.”

“알겠소.”

포메라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내가 설치한 진위에 자신의 환상마법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주인. 다 됐소.”

환상마법이 전공이라 그런지, 포메라는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환상 마법의 설치를 모두 끝냈다.

“결계를 유지할 돌들에게 7서클 마법을 사용했고, 그 위에 6서클 환상마법을 덮었소. 6서클은 100% 걸릴 테지만, 7서클은 모를 거요.”

“수고했어.”

“나 같은 7서클마스터에 걸리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오. 후후.”

포메라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자만 가득한 웃음을 터트렸다.

“근데 너 계속 7서클인데, 언제 8서클 되냐?”

“마, 마법 서클이 그렇게 쉽게 올라가는 게 아니오.”

“난 능력이 계속 올라가던데?”

“그건 주인이 미쳐서 그런 거요. 남들이 모두 주인 같은 괴물이라 생각하지 마시오.”

“하하!”

잘난 척하지 말라는 듯 포메라가 인상을 찌그러뜨렸다.

“그런데 도플갱어 킹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군. 일이 잘 될 것 같소?”

“잘 돼야지.”

“문제가 생기면 어쩔 거요?”

“어쩌긴 뭘 어째. 다 때려 부숴야지.”

“하, 또 그 무식한 계획이군.”

포메라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매번 똑같아라고 중얼거렸다.

“그럼 난 가보겠소. 동이 트기 전에 돌아가 명상을 해야 하니까.”

“가긴 어딜 가?”

“억!”

돌아가려고 등을 돌린 포메라의 로브를 당기자, 녀석이 비틀거리며 끌려왔다.

“명상은 여기서 해, 너도 해줄 일이 있거든. 아주 중요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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