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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화 아다스 (204/241)

204화 아다스

“늦게 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페루가 데려온 로브의 남자는 나를 보자마자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괜찮습니다. 상회의 일이 바쁜 거야 알고 있습니다.”

페루가 집무실로 데려온 사람은 사천상회의 회주 모카건이었다.

나는 그를 축제 때 초대했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참석하겠다고 소식이 왔지만 축제가 열리기 며칠 전 심각한 일이 생겨서 참석할 수 없다고 연락이 왔었다.

모카건이 내 부름에 응하지 못할 정도라면 정말 급한 일이기 때문에 알겠다고 하고 일부러 그를 찾지 않았다.

지금 찾아 온 것을 보면 일이 해결 됐던지 더 심각해졌던지 둘 중에 하나 일 것이다.

“그래도 죄송합니다. 회주님. 어떻게든 왔어야 했는데...”

모카건이 송구스럽다는 듯 다시 고개를 꾸벅였다. 그의 가라앉은 눈빛을 보니 심각한 일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모양이다.

“회, 회주?”

옆에서 조용하게 서 있던 페루가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 쳤다.

“지금 회주라고 한 거예요? 사천상회의 회주가 유렌님에게? 회주라고? 영주가 아니라요?”

“아직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모카건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페루와 나를 번갈아보았다. 난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올렸다.

“얘한테 말할 필요 없었으니까요.”

“필요 없다니요! 유렌님! 전 유렌님의 오른팔이잖아요!”

“내 오른팔은 아린인데?”

“그, 그러면 왼팔!”

“왼팔은 따로 있어.”

“누, 누구요?”

“말해줘도 몰라. 개랑 비슷한 이름을 가진 녀석 있어.”

내가 말하는 건 포메라였다. 녀석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왼팔이라 말하기에도 부족할 정도다.

“그, 그러면 오른다리는...”

“그건 빽빽이. 어디까지 갈 거냐. 나중엔 발가락까지 나오겠네.”

“크으윽...”

페루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표정을 지었다. 더 놀리면 거의 눈물을 흘릴 기세라 그만하기로 했다.

“너는 내 편의를 도와주잖아. 내 의식주 같은 거지.”

“그, 그럼 오른팔보다 더 중요한 거 아닌가요?”

“그런가?”

“휴우...”

페루는 이제야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카건이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죄송합니다. 두 분이 정말 친하신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그건 괜찮아요. 그런데 정말 저희 유렌님이 상계의 신성으로 불리는 사천상회의 주인이세요?”

“그게...”

모카건이 나를 쳐다보았다. 말해줘도 되냐는 표정이다.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맞습니다. 유렌님이 저희 사천상회의 진정한 회주십니다.”

“허어...”

어이가 없다는 듯 페루의 눈이 멍해졌다. 상상도 못해봤다는 얼굴이다.

“대체 언제 거기까지 손을 쓰신 거예요? 사천상회는 제국에 있잖아요.”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네.”

“뭘 어떻게 해야 10대 상회를 턱밑까지 추격한 대형 상회의 주인이 되는 건지, 정말 배우고 싶네요. 아아...”

“잘 하면 돼.”

페루는 내 대답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걸 누가 모르냐는 표정이다.

“또 제게 숨기시는 거 없죠?”

“있지.”

“나중에는 말씀해주시겠죠?”

“글쎄다.”

난 대답은 하지 않고 빙긋 웃고, 모카건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엔 미소가 걸려있었지만, 어두운 그늘도 같이 담겨 있었다.

“모카건님.”

“예.”

“심각한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겁니까?”

“그렇습니다.”

모카건은 웃음기가 완전히 가신 얼굴을 들어올렸다. 방금 전의 그와 괴리감이 느껴졌다.

“유렌님은 상회를 만들 때 제게 모든 것을 일임하셨지만 이번 건은 상회 자체가 흔들릴 것 같아서 꼭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음...”

사막에서 모카건에게 돈을 넘겨주며 상회를 만들라고 지시했을 때 당신을 믿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했었다.

모카건은 자신의 능력과 내가 준 자금을 바탕으로 사천상회를 대형 상회로 만들었는데 상회 자체가 흔들리다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유렌님이 이번에 축제에 참여하라고 제게 연락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그 소식을 받은 이후로 갑자기 다스상회에서 저희를 견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스상회라면 대륙에서 1, 2위를 다투는 상회잖아요!”

“맞습니다. 그 다스상회입니다.”

페루의 말에 동의하듯 모카건의 눈이 짧게 깜박였다.

“그들이 왜 사천상회를 견제 하는 겁니까?”

“아무래도 유렌님이 저를 부르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네?”

“유렌님이 제게 보내신 편지를 제 밑에 있는 상인 몇 명이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음...”

내가 모카건에게 보낸 편지에는 두 가지 내용이 적혀있었다.

첫 번째는 파티에 와서 즐기라는 내용이었고, 두 번째는 마나석을 사천상회를 통해 판매할 예정이니, 판매할 기관을 조사해보라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의 내용을 봤다면 바보라고 해도 나와 모카건이 나름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거다.

“상인들 중 한 명은 다스상회의 세작이었고, 편지의 내용을 곧바로 다스 상회에 알렸습니다.”

사실 상회가 커지면서 다른 상회의 세작이 침투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지만 모카건의 표정은 침통했다.

“바로 다음 날부터 다스상회는 노골적으로 저희 상회를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스상회의 영향 때문에 다른 상회들도 저희를 방해하더군요. 새 루트를 뚫기도 힘들고, 기존 루트도 잃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대륙 최대 상회의 힘은 막강하더군요.”

“다스상회라...”

“제가 제 밑에 있는 상인들을 관리하지 못한 탓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모카건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았다.

“뭘, 그 정도 가지고 괜찮아요.”

모카건의 앞에 가서 그를 일으켜 세웠다. 별 것 아니라는 내 말투에 모카건의 안구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처럼 창조주의 눈이 있지 않는 이상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은 정말 너무도 쉬운 일이다. 한창 커지고 있는 사천상회의 규모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고.

“유렌님...”

모카건은 감동을 받은 것처럼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네?”

“혹시 다스 상회에서 접촉해오지 않았습니까? 뭐, 상회주끼리 만나자던가, 자기네 상인장과 식사를 하자던가?”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거의 한 달 동안 저희 일을 방해해놓고 얼마 전에 회주끼리 식사를 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역시인가.

사실 침착하게 생각해보면 다스 상회는 대륙에서 두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초대형 상회다.

가이린과 사천상회가 마나석 거래를 한다고 해도 살짝 아쉬울 뿐인 상계의 공룡이 다스상회인데 나와 모카건이 친하다는 것을 알고 압박을 넣는다?

이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다스 상회가 노리는 건 모카건이 아니라, 바로 나다.

“다스상회의 주인과 아직 만나지 않으셨군요.”

“어?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만일 그 식사자리에 갔다면 모카건님은 세상에 없었을 테니까요.”

내 단호하고 냉정한 말에 모카건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 하지만 장소는 저희 상회든, 저희 집이든, 유명 식당이든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시간도 저보고 정하라고 했는데, 아무리 다스상회라도 그렇게 대놓고 습격을 할까요?”

“인간이라면 그런 짓을 하지 않겠죠.”

“어...”

모카건이 입을 쩍 벌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스 상회의 주인은 인간이 아닙니다. 세상 무엇도 될 수 있는 존재죠. 만일 모카건님이 그 식사에 응했다면 모카건님은 죽고, 놈이 만든 분신이 모카건님의 역할을 대신했을 겁니다.”

“허억!”

모카건이 뒤로 넘어져서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그럼...”

“다스상회의 주인이 노리는 건 모카건님이 아니라 접니다. 놈은 모카건님을 죽인 뒤 당신으로 변신해서 저를 노리려고 했겠죠. 그러니 미안해 할 필요 없다는 겁니다.”

“대, 대체 다스상회주의 정체가 뭡니까?”

다스상회의 주인은 신분은 하나가 아니다.

제국의 수도에선 다스상회의 회주이고, 북방에서는 고위 귀족이며, 남부에서는 존경받는 기사다.

그 외에도 그의 신분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놈의 진정한 정체는 세피로스를 세운 삼공 중 한 명이다.

“유렌님?”

혼란스러워 하는 모카건에게 놈의 정체를 말해주기로 했다.

“놈의 이름은 아다스.”

“아다스?”

“그 진정한 정체는 도플갱어 킹입니다.”

**

도플갱어는 슬라임처럼 액체로 태어나서 자신의 시야에 있는 생명체로 변신 할 수 있는 몬스터다.

일반적인 도플갱어는 변신한 존재가 가진 능력의 반도 내지 못하지만, 아다스는 다르다.

아다스는 태어났을 때부터 완벽한 이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이 변신한 존재의 현재 능력만이 아니라, 잠재된 능력까지 발휘할 수 있는 도플갱어들의 왕이었다.

아다스가 가진 최고의 능력은 자신이 변신했던 존재의 분신을 만드는 능력이다. 놈은 그 능력으로 대륙의 여러 가지를 지배하고 있었다.

다만 아다스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특별한 조건을 클리어 해야 한다.

그 덕에 모카건이 살아있는 것이다.

“저, 저는 그럼 정말 죽을 뻔했던 거군요. 정체를 숨기고 와서 다행이었어요...”

모카건은 입고 있던 로브를 꼭 부여잡았다.

“정체를 숨기고 왔다고요?”

“혹시 몰라서 마탑을 이용하지 않고, 저와 친한 마법사분에게 며칠 전부터 부탁드렸거든요. 몰래 가이린으로 보내달라고.”

“그래서 로브를 입고 온 겁니까?”

“네. 얼굴까지 숨기려고요. 다스 상회의 사람들은 제가 이곳에 있는 줄은 절대 모를 겁니다. 그 배신 이후로 제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믿을 수 있는 상인들로만 채웠으니까요.”

당연히 마탑을 이용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다스가 지금 나와 모카건이 만났다는 것을 모른다면 놈을 잡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잘했어요! 정말 잘했어!”

“네?”

갑작스러운 칭찬에 모카건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잘하면 일이 쉽게 끝날 수 있겠네요.”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돌아가서 다스 상회주와 약속을 정하세요. 장소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유명한 식당으로 잡고, 일시는 지금으로부터 2주 뒤.”

“도플갱어가 저를 노리는데 같이 식사를 하라고요?”

“네. 그 장소에 저도 갈 겁니다.”

“아, 그러면...”

내가 간다는 말을 하자마자, 모카건의 표정에 안도감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지켜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 왜 2주 뒤죠?”

“저도 모카건님도 준비가 필요하니까요.”

“준비요?”

“네. 약간 시간이 필요해요.”

아다스에겐 또 하나의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을 발휘한 놈을 죽이기 위해서는 나도 수련이 필요하다.

“그럼 제가 해야 할 준비라는 건 뭐죠?”

“다스상회는 아다스가 모든 결정을 내리던 상회에요. 놈이 죽는 순간 다스상회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겁니다. 우리는 거기서 나오는 공짜 떡을 주워 먹어야죠.”

“아!”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모카건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제야 그의 현명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다스가 죽어서 다스상회가 혼돈이 휩싸이는 순간을 노리라는 거군요.”

“정확합니다.”

“하지만 그 도플갱어가 죽는다고 다스상회가 무너질까요? 그 거대한 상회가 무너지려면...”

“무너져요.”

내 확신을 담은 대답에 모카건이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내 생각대로 되면 재밌는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

**

모카건에게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고 무슨 준비를 해야 할지 알려준 뒤 연무장으로 내려왔다.

다음 수련은 워낙에 난이도가 높아서 여유를 가지고 시작하려했건만, 아다스 때문에 생각보다 빠르게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감이 좋은 건가?”

사실 이 수련은 헬리나가 내게 준 보상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다. 그 보상을 받지 않았다면 한참 뒤에서야 지금 해야 할 수련을 할 수 있었을 거다.

우우웅.

손에 든 비수에 강기를 씌웠다. 비수의 날에 강기가 둘러싸여 있는데도 계속해서 내력을 쏟아 부었다.

기이이잉!

강기가 점점 짙어지고, 압축되기 시작하더니, 빛나는 구슬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비수에서 눈이 부실정도의 빛과 기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이게 강환인가.”

강환은 강기를 모으고 압축시켜서 더욱 큰 파괴력을 내고 더 먼 거리를 타격할 수 있는 최상급의 무공이다. 강기가 뭉쳤기 때문에 파괴력은 상상이상이다.

헬리나가 보상으로 주었던 작은 깨달음 덕분에 강환에 대해서 깨우칠 수 있었다.

“근데 강환이 시작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니까.”

광화의 빛나는 꽃잎 하나하나에 강환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만천화우 광화의 필수 조건은 강환의 사용이었다.

강기만으로도 극강의 고수소리를 듣는데 필수 조건이 강환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남은 시간동안 광화를 익힐 수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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