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필로세 숲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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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해서 창조주의 눈을 켜보았지만 그림자로 만들어진 투견은 그림자 오크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정보도 나오지 않고, 물음표로 가득했다.
“구슬도 보이지 않네.”
너무 많은 그림자가 뭉쳤기 때문인지 투견의 몸속에서 이름 잃은 자의 파편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림자들이 꼬이고 뭉쳐서 파편에서 나오는 빛을 가린 것 같다.
“크르르르...”
그림자 투견이 칼날 같은 송곳니를 갈며 나를 노려보았다. 단순히 위협하는 게 아니라, 원수를 보는 눈빛이다.
“역시 그건가...”
여기까지 와서 아무 것도 눈치를 채지 못한다면 멍청이와 다름없다.
칠죄종을 죽이고 얻은‘이름 잃은 자의 파편’ 때문에 그림자 몬스터들이 나를 미친 듯이 따라온 거고, 앞의 거대한 투견 역시 나를 불구대천지수처럼 여기는 거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림자들이 포메라와 빽빽이에게 주는 압박이 내게 먹히지 않는 이유도 내 안에 흡수된 이름 잃은 자의 파편 때문일 거다.
“크아아아!”
그림자 투견은 앞발을 채찍처럼 휘둘러 나를 세 갈래로 찢어놓으려고 했다.
빠르게 보법을 밟아서 놈의 공격 범위를 벗어났다.
“무슨!”
분명 놈의 앞발이 공격 할 수 있는 거리를 벗어낫건만 그림자 투견의 발이 고무처럼 늘어나서 내 머리를 부수려하고 있었다.
빠지지직!
급하게 뇌인신법을 사용해서 뒤로 물러났다.
콰아아앙!
투견의 앞발을 맞은 대지가 포탄이 터진 것처럼 파여 나갔고, 주변의 나무가 모조리 뽑혀버렸다.
“맞으면 그냥은 안 끝나겠는데...”
단순히 보이는 거리로만 계산하면 방금처럼 큰 코 다친다. 투견의 공격은 언제든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했다.
“크르르르.”
뇌익을 펼쳐서 고속으로 움직여도 놈의 시선은 계속해서 나를 따라온다. 내 안에 있는 파편의 기운을 읽는 것이다.
쾅!
콰아앙!
그림자 투견은 발을 연속으로 내려찍어서 근접해있는 나를 찌부러뜨리려고 했지만, 난 놈의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며 투견을 축 삼아서 시계 방향으로 이동했다.
퍼어억!
퍼억!
투견의 공격을 피하며 강기를 두른 비수들로 공격했지만, 투견을 덮고 있는 그림자가 너무 두껍기 때문에 파고든 비수가 밀려나오고 있었다.
“크르르르.”
내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본 투견은 내리깔리는 울음소리를 내서 나를 비웃었다. 힘에 도취 된 것처럼 놈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이 똥개가 미쳤나?”
비수를 집어넣고, 귀왕살을 꺼내들었다. 귀왕살은 인간이나 평범한 몬스터보다 신마요선의 속성을 가진 특별한 존재에게 치명적인 충격을 주는 무기다.
그림자 투견처럼 괴이한 존재에게도 분명 통할 것이다.
샤아악!
귀왕살로 놈의 뒷발을 베어버리자, 비수로 공격할 때의 답답한 소리와 달리, 종이가 깔끔하게 잘리는 시원한 소리가 들렸다.
“키아아아!”
그림자 투견의 고통에 가득 찬 비명소리와 동시에 놈의 뒷발이 갈라지고 그 틈새로 그림자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귀왕살의 효과는 그림자 투견에게도 통했다. 놈의 능력이 마(魔)와 관련이 있어서 귀왕살의 효과가 통한 것 같다.
샤악!
재빠르게 움직이며 강기를 두른 귀왕살로 투견의 다리를 연속해서 베었다. 놈의 다리에 생긴 상처들에서 그림자들이 연기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악에 받친 그림자 투견이 더욱 발광을 시작했다. 놈의 몸과 다리에서 그림자로 이루어진 줄기와 창이 튀어나와 나를 노렸다.
콰아앙!
계속해서 둥글게 움직이며 놈의 모든 공격을 피했다.
쿠우웅!
내 머리를 노린 그림자 무더기를 한 발 차이로 피한 뒤 빙긋 웃었다.
“크르륵?”
분노에 가득 찬 투견이 이를 악물고 다시 덤벼들려 할 때 오른 발에 내력을 가득 실어서 진각을 밟았다.
콰아아앙!
천지가 관통되는 웅대한 소리가 들린 뒤 그림자 투견이 서있는 땅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
산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그림자 투견이 밟고 있던 땅이 아래로 꺼져버렸다. 눈 앞에 싱크홀이 생긴 것 같은 모습이었다.
“크아아아!”
“소용없어.”
당황한 와중에도 그림자 투견은 오른발을 땅에 걸쳐서 버리려고 했지만,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샤아악!
강기를 두른 귀왕살로 놈의 앞발을 통째로 베어버렸다. 놈의 떨어진 발에서 일렁거리는 그림자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왔다.
콰아앙!
그림자 투견은 버둥거리다가 무너진 땅으로 추락했고, 놈의 몸통 위로 바위들이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크아아악!”
투견은 날개를 펼쳐서 바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했다. 그 와중에도 놈에게 생겨난 상처들에서 그림자들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고맙다. 일리아.”
그림자 투견이 서있던 땅을 무너뜨린 방법은 일리아가 나와 대련할 때 사용했던 대지 뒤엎기를 응용한 것이다.
차이점은 땅을 부순 게 내가 아니라, 그림자 투견이라는 점이다.
일부러 투견 주위를 돌면서 놈의 공격을 땅으로 유도한 뒤 대지에 많은 데미지가 쌓였을 때 진각을 밟아서 땅을 무너 뜨려버린 것이다.
일리아 자신이 만들고 실패한 대지 뒤엎기를 내가 먼저 성공한 게 조금 웃기지만, 어쨌든 큰 도움이 됐다. 대련에서 수확을 얻은 게 일리아 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크아아아아!”
바위가 모두 떨어지자, 그림자 투견이 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멍을 빠져나오려 하는 것이다.
파아앙!
투견이 땅을 박차고 날개를 퍼덕이자, 순식간에 지상에 이르렀다.
“설마 이걸 몰랐을까?”
여유롭게 움직인 뒤 귀왕살을 역수로 들었다.
촤아아악!
그림자 투견이 지상에 나오기 직전 귀왕살에 5m가 넘는 강기를 뽑아내서 놈의 왼쪽 날개를 그대로 찢어버렸다.
“키아아아!”
“이런!”
당연히 다시 떨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투견은 남은 오른쪽 날개만으로도 구멍을 벗어나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그림자라 가벼워서 그런 건가.”
그림자 투견은 천공에서 남은 한쪽 날개를 퍼덕이며 나를 노려보았다. 검게 번들거리는 눈알에서 내게 향하는 지독한 살의를 느낄 수 있었다.
“크아아아!”
투견의 찢어지는 울음소리가 들리고, 놈이 떠있는 허공 위에 수백 개가 넘는 그림자 창이 생성되었다. 창날이 드릴처럼 꼬여 있는 모습을 보니, 방어를 해도 뚫어버릴 것 같았다.
“주, 주인! 피, 피하시오!”
“빽!”
멀리서 포메라와 빽빽이가 소리를 질렀다. 살짝 곁눈질 해보니, 그림자 투견의 기세에 전신을 떨고 있었다. 저런 상태에서도 내 걱정을 하는 것을 보니, 부하는 잘 둔 것 같다.
“사실 방어를 할 필요는 없지.”
적이 공격을 한다고 무조건 막을 필요는 전혀 없다. 같이 공격해서 맞부딪치는 게 내 방식이다.
“거기다. 이제 보이기 시작했거든.”
귀왕살로 만든 상처에서 그림자들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놈의 몸속에 있는 노란빛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파아아아!
투견이 한쪽만 남은 앞발을 휘두르자, 수백 개의 그림자 창을 나를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주인! 위험하오!”
“빽!”
포메라가 기겁하며 일어나고, 빽빽이가 날개를 펼쳤지만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챠아앙!
내려오는 창들을 향해 천판을 날렸다. 천판은 순식간에 분열해서 천개의 천화를 꽃피웠다.
“이제 좀 따라간 건가.”
당천위가 원하던 찰나의 시간에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개화 속도였다.
우우웅.
피어난 천화에 강기와 어검의 무리를 담아 유성처럼 떨어지는 그림자 창을 향해 날렸다.
콰아아아앙!
그림자 창과 만천화우가 맞붙자, 천공이 흔들릴 것 같은 거대한 충격파가 터지고, 고막을 터트릴 것 같은 굉음이 들렸다.
슈아아앙!
충돌이후 그림자 창들은 수수깡처럼 모조리 부러졌고, 힘이 남은 천화들은 그림자 투견의 본체를 노리며 빛살처럼 날아갔다.
“크아아!”
투견이 하늘을 향해 울음을 내지르자, 놈의 앞에 거대한 방패가 생겨나 놈을 향하던 천화들을 모조리 막아버렸다.
“크르르르...”
놈이 나를 보고 다시 비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자신의 공격도 막혔지만, 내 공격도 막혔다는 뜻 같았다.
“미안하지만 내 공격은 하나 남았거든.”
다시 귀왕살을 빼들었다.
“크륵!”
귀왕살을 보자, 투견의 살기 가득했던 눈에 무거운 공포가 내려앉았다. 귀왕살 만큼은 자신의 방어가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처음 쓰는 거라 잘 될지 모르겠지만...”
만독자전신기의 뇌기를 극성으로 운용해서 귀왕살에 담았다.
빠지지직!
귀왕살은 번개 그 자체가 된 것처럼 번쩍였고, 공기를 튀겨대고 있었다.
“광뢰(光雷).”
그림자 투견을 향해서 당천위가 전수해준 광뢰를 쏘아냈다.
콰르르릉!
우레가 땅에서 솟아올라 하늘을 찢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크르르르!”
투견은 미리 준비해둔 거대한 그림자 구체를 자신의 앞에 만들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빠지지직!
광뢰는 순식간에 그림자 구슬을 수박처럼 박살내버리고, 노란빛이 새어나오는 그림자 투견의 가슴을 뚫어버렸다.
파아아아앙!
하늘에서 거대한 파공음이 터져 나오고, 투견을 감싸고 있던 그림자들이 안개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후우우욱.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바람에 날아가듯이 저녁노을 아래로 그림자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크륵...”
투견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사라져버렸고, 놈의 몸속에 있던 노란빛만 또 하나의 태양처럼 떠올라 있었다.
화아악!
공중에 떠 있던 노란빛은 자석에 이끌리듯이 내 손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름을 잃은 자’의 파편을 획득하셨습니다.]
메시지를 읽고, 주먹을 꽉 쥐었다.
“다 모았군.”
엔비가 가지고 있던 모든 파편이 내게 흡수 되었다. 오늘 일은 겪고 보니, 이 이름을 잃은 자의 파편은 분명 무슨 쓰임새가 있을 것이다.
“주, 주인. 괜찮은 거요?”
“빽!”
포메라와 빽빽이의 얼굴이 평소대로 돌아왔다.
“너희는 이제 괜찮아?”
“그 개가 사라지자 괜찮아졌소. 이제 아무렇지도 않소.”
포메라는 걱정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다만 그 느낌은 아직도 기억날 정도요. 정말 견디기 힘들었소.”
“자세히 좀 말해봐.”
“내가 천적 앞에 있는 초식동물이 된 것 같았소. 전혀 반항 할 수 없는...”
“빽!”
“음...”
포메라와 빽빽이의 반응을 보니, 그림자들은 생각이상으로 위험한 놈들이다.
앞으로는 칠죄종을 처리하면 그림자가 나오기 전에 이름 잃은 자의 파편을 빠르게 회수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상황이 급박해서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이 그림자들과 비슷한 놈을 얼마 전에 본 적이 있었다.
라스가 가지고 있던 이름을 잃은 자의 파편을 흡수했을 때 시간이 정지됐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멈췄을 때 언덕 위에서 움직이던 로브를 쓴 놈에게서 오늘 본 그림자 몬스터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이제 보니까 그건 로브가 아니었어. 그 놈도 그림자를 덮고 있었던 거야!
“분명 관계가 있어.”
그 그림자 놈이 이 일을 벌인 흉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흡수한 빛 대신에 어두운 빛을 가져간 것도 마음에 걸렸다.
“주인. 또 뭔가 알아낸 거요?”
“그래.”
“그게 뭐요?”
“나도 몰라.”
“하, 또 시작이군.”
포메라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콰르르르.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하려 할 때 무릎만 남은 석상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전투가 꽤나 거칠었는데 지금까지 버틴 게 용했다.
“어?”
가루가 된 석상에서 투명한 구슬이 튀어나와서 내 신발에 부딪쳤다.
“이 구슬...”
처음 보는 구슬이 아니다. 특별한 일을 해결할 때마다 나와서 나를 깨진방으로 보내주었던 구슬이다.
손을 뻗어서 구슬을 잡았다.
화아악!
순식간에 세상이 바뀌었고, 이제 익숙해진 깨진 방으로 이동되었다.
“음...”
예전에 비해 벽면의 금과 흔적들이 많이 줄어 있었다. 이젠 찢어진 방이나, 금간 방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였다.
빠각.
손에 들고 있던 구슬은 정면으로 날아가서 꽤나 큰 금을 지우고 사라졌다.
“뭐지? 왜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거야.”
바로 보상을 주거나, 말을 하던 것과 다르게 방은 조용했다. 벽들을 천천히 살펴보고 있을 때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렌 록스.”
목소리를 듣자마자, 소스라칠 정도로 놀랐다. 지금까지와 달리 확실한 감정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닿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