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5화 지하 경매장 (3) (195/241)

지하 경매장 (3)

아그네스의 말을 따라 구석으로 향하자,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잡동사니처럼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경매에 내놓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제대로 정리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어디 있는데?’ 

-밑에, 가장 밑에 있어. 

상자들과 물건들을 옆으로 치운 뒤 맨 밑의 상자만 빼냈다. 

‘이 상자 말하는 거야?’ 

-맞아! 

상자를 열어보자 나무로 된 작은 상자들이 빽빽하게 쌓여 있었다. 나무 상자의 크기와 모양이 같은 걸 보니, 똑같은 물건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달칵. 

가장 위에 있던 나무 상자를 꺼내서 열어보자, 삼각형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검은 보석이 나왔다. 

“이건...” 

-그거야 그 보석이 날 불렀어. 

[흑요석] 

오닉스처럼 보이지만, 무기에 잠재된 힘을 끌어내는 특별한 힘을 가진 보석이다. 무기의 종류와 사용 정도에 따라서 나타나는 특성의 종류가 달라진다. 

‘흑요석!’ 

-이게 흑요석이야? 

‘그래. 너도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구나. 잘했어!’ 

흑요석은 다른 말로 옵시디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생긴 건 보석 오닉스처럼 보이지만, 아무 능력 없는 오닉스와 달리 무기에 특별한 능력을 부여해주는 귀한 보석이다. 

흑요석을 이런 곳에서 구하다니, 로또라도 맞은 기분이다. 생각지도 못한 횡재를 해버렸다. 

‘당장 먹어. 아그네스.’ 

-잠시만! 

아그네스가 화속성을 가졌던 것처럼 흑요석을 가져다주려 할 때 그녀가 급하게 소리치며 막았다. 

‘왜?’ 

-이 아래 있는 나무 상자들 전부. 그 흑요석이야. 

“뭐?”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밖으로 소리가 튀어나왔다. 돌아다니던 제니스가 다가왔다. 

“좋은 거 찾으셨어요?” 

“아니, 별거 아닌...” 

“우와! 흑요석!” 

제니스가 내 손에 들고 있던 보석을 보자마자 내 앞으로 달려들었다. 녀석의 눈이 앞의 흑요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 귀한 물건이 여기 숨겨져 있었군요. 하긴 저 멍청이들은 이걸 오닉스 같이 평범한 보석이라고 생각해서 별관심도 없었겠죠.” 

“너도 알아보는군.” 

“보석은 제 전공이니까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도 전 보석 챙기러 건거였잖아요.” 

“그렇긴 하네.” 

“어쨌든 축하드려요. 좋은 거 얻으셨네요. 하하!” 

제니스는 원작과 같이 자신이 챙긴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축하를 해주고 있었다. 

“그래. 고맙다.” 

-유렌. 그만하고 얘기하고, 상자 좀 열어줘. 지금 밖에 없어. 지금 해야 해. 

일단 상자들을 챙긴 뒤 가이린에 돌아가서 주려고 했지만, 아그네스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그녀만이 알 수 있는 어떤 타이밍이 온 것 같았다. 

“제니스. 이 상자들 좀 열어봐.” 

“네? 아, 네. 어? 이거 흑요석? 이것도 흑요석? 이, 이게 다 흑요석이에요?” 

“그래. 빨리 다 까.” 

“아, 알겠어요.” 

제니스와 나는 상자에 있던 흑요석을 전부 까서 바닥에 늘어놓았다. 흑요석의 개수는 딱 16개였다. 

“엄청나네요. 이런 숫자라니. 허어...” 

제니스는 흑요석의 개수를 세고서는 혀를 내두르며 멍청한 라이칸 놈들이라고 중얼거렸다. 

‘이제 뭘 어떻게 할까?’ 

-전부 내게 붙여줘. 

‘이걸 전부?’ 

-그래. 부탁해. 

부탁하지 않아도 아그네스가 원한다면 해주는 게 맞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찾지도 못했을 테니까. 

우우웅. 

아그네스가 빛의 형태로 자신의 몸을 바꾸었다. 난 그 빛에 16개 흑요석을 전부 가져다 대었다. 

화아악! 

아그네스와 흑요석이 합쳐지며, 아그네스의 하얀빛이 검게 물들었다가 팔찌로 되돌아왔다. 팔찌에는 흑요석들이 압축된 작은 흑요석이 붙어있었다. 

[아그네스가 흑요석을 흡수했습니다.] 

[아그네스가 각성을 위해 잠에 빠져듭니다.] 

[깨어날 때까지 아그네스의 능력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사용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지금 난 아그네스의 분신을 얼굴에 붙여서 어설픈 라시드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아그네스가 잠에 빠지며 내 얼굴에 있던 아그네스의 분신이 떨어져서 팔찌로 흡수되어 버렸다. 

“어? 카볼님! 얼굴이...” 

“젠장!” 

제니스의 반응을 보니, 벌써 내 원래 얼굴이 드러나 버렸다. 이 녀석에게 들키는 거야 상관없지만, 밖의 라이칸들이 문제다. 일단 급한 대로 검은색 로브를 꺼내서 머리까지 덮었다. 

“변신 마법이 풀렸는데요?” 

“괜찮아.” 

지금 카이젤의 마법을 썼다간 마력의 흐름 때문에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렉쿤이 돌아오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나가는 게 좋은 것 같았다. 

“음?” 

변신이 풀렸기 때문에 기감을 넓고 세밀하게 펼쳐서 밖의 상황을 파악하려 했는데, 밖이 아니라 바로 아래에서 미세한 마력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마법 같았다. 

“카이젤.” 

“뭐지?” 

“술 좀 그만 마시고. 이 밑에 걸려 있는 마법은 뭐지?” 

“마법사도 아니면서 그걸 느끼다니, 역시 대단하군. 아래에 걸린 마법은 소음과 존재감을 지워버리는 마법이다.” 

“그러면...” 

“이 밑에 누군가를 감춰두고 있다는 소리지.” 

이 경매장에서 노예가 거래되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감출 필요가 없다. 

“음...” 

마법까지 사용해서 감추려 했다는 건 분명 평범한 노예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숨겨뒀다는 뜻이다. 

“일단 밖으로 가자.” 

“아, 네.” 

창고 밖으로 나가자, 창고 관리관이 비굴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전부 고르셨습니까? 더 필요하신 것은...” 

“이 아래엔 뭐가 있지?” 

창고 관리관의 멱살을 휘어잡고 들어올렸다. 

“으으...” 

“뭐가 있냐고.” 

“노, 노예들이 있습니다.” 

관리관이 울먹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압박을 위해 조금 더 기세를 불러일으켰다. 

“히이이익!” 

“내가 묻는 게 뭔지 알 텐데?” 

“에, 엘프가 있습니다.” 

“엘프? 엘프라고?” 

“네, 엘프가 2마리 있습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설정 상 다크 엘프를 제외한 엘프는 오직 엘루나에만 존재한다. 그런데 어떻게 엘프를 잡았단 말인가. 

“엘프를 어떻게 데려온 거지?” 

“그,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안내해라.” 

“그곳은 렉쿤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갈 수 있습니다. 저됴 교육을 할 때만...” 

“지금 죽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으마.” 

“히이익! 아, 알겠습니다. 안내하겠습니다.” 

관리관의 목을 잡으려 하자, 놈이 비명을 지르며 팔을 흔들었다. 

“이쪽으로 오, 오시죠...” 

놈은 다리를 덜덜 떨면서 우리를 한 층 아래로 안내했다. 노예들을 지키는 라이칸과 검사들이 있었지만, 관리자가 우리를 렉쿤의 손님이라고 하자 가볍게 길을 열어주었다. 

“카볼님. 여기 생각보다 심각한데요.” 

“그래. 정말 지랄 맞아...” 

감옥 같이 철장이 있었고 그 안에 사람들은 가축이 된 것처럼 네발로 엎드려 있었다. 모두 같은 자세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억지로 시킨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의 몸에는 멍과 상처가 가득했다. 평민들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고문하고 때린 것이 분명했다. 경매를 시작하기 전에 가볍게 치료를 해서 아무 문제없다는 듯 팔려고 할 거다. 

“빠드득...” 

당장 라이칸들을 죽이고, 철창을 부숴버리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으며 관리자를 따라갔다. 

“후우...” 

내 불편한 기세가 한숨으로 토해졌다. 앞에 가는 관리관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강제로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솔직히 이들을 구하다가 많은 사람이 죽을 것 같아서 건드리지 않으려 했지만, 이 상태를 보니, 그냥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카이젤. 

-뭔가? 근데 이건 뭐지? 메시지 마법은 아니군. 

카이젤에게 전음을 보내자, 메시지 마법으로 답이 왔다. 

-나중에 알려줄게. 여기 철창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마킹 해줘. 

-어렵지 않은 일이군. 알겠다. 

“여기입니다.” 

카이젤과 대화를 끝내자, 관리관이 두꺼운 철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음...” 

철창과 달리, 안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기감으로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창고 아래에 있던 곳이 바로 이곳이 맞았다. 

“또 교육을 시키러 온 건가? 이들은 뭐지?” 

“이, 이분들은 렉쿤님의 손님들입니다. 엘프 노예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 모셔왔습니다.” 

철장 앞을 막고 있는 라이칸에게 관리관이 상황을 설명했다. 

“렉쿤님의 손님이라고?” 

“네. 렉쿤님이 직접 창고 문을 열어주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래? 그럼 상관없겠군.” 

렉쿤이 창고를 열어줬다는 말에 라이칸의 몸을 빼면서 철문을 열어주었다. 이럴 때는 놈들이 단순한 게 참 고맙다. 

쿠구구구. 

거친 마찰음과 함께 창고가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안으로 들어갔다. 

“아...” 

방안에는 두 명의 엘프가 있었다. 

한 명은 성인 여성이고, 한 명은 아직 아이의 티를 벗지 못했는데, 둘 다 금발에 비슷한 외모를 가진 것을 보니, 엄마와 딸인 것 같았다. 

엘프들의 팔과 다리엔 육체능력을 제한하고, 마나의 흐름을 막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그녀들의 몸에는 붉고 길쭉한 흔적과 피멍들이 있었는데, 채찍과 몽둥이로 때린 자국이 분명했다. 

“으으...” 

엘프들은 겁에 질려서 서로를 안고 바르르 떨고 있었는데 새로 등장한 우리보다 관리관을 보며 겁에 질려있었다. 

아까 라이칸이 말한 교육과 채찍 자국을 생각해보면 관리관이 이 엘프들을 고문한 게 확실했다. 

“흐으으...” 

어린 엘프는 내 뒤에 있는 라이칸을 보자마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교육이 완성되지 않아서 조금 반항기가 있습니다. 월말 경매에 올리기 전까지는 둘 다 노예화 시킬 수 있을 겁니다.” 

“하하하, 노예화?”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빙글거리는 웃음이 나왔다. 주먹에 살기가 모여들었다. 

“아시다시피 노예가 아닌 평민이나 다른 종족들을 노예로 만드는 거죠. 한 번 때려보시겠습니까?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헤헤.”

내가 정말 웃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관리관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놈의 손에는 억세게 감겨진 채찍이 들려있었다. 

“하악...” 

채찍을 본 엘프들의 눈에서 고통의 빛이 떠올랐다. 

“으으으...” 

라이칸은 겁먹은 어린 엘프가 재밌는지, 엘프에게 고개를 들이밀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린 엘프는 거의 발작하기 직전이었다. 

“후...” 

더 이상은 참기 힘들었다. 

“제니스.” 

제니스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엘프들 앞으로 가서 그녀들의 시야를 가렸다. 한 번에 내 의도를 알다니, 역시나 눈치 빠른 녀석이다. 

“뭐 하는 거냐!” 

샤아악! 

라이칸이 엘프들을 가린 제니스에게 손을 가져다 댈 때 귀왕살을 꺼내 들어서 놈의 목을 단번에 베어버렸다. 알고 있어도 막지 못할 정도로 순속의 공격이었다. 

“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려는 관리관의 마혈과 아혈을 짚어서 꼼짝도 못하게 만든 뒤 철문을 닫았다. 

쿠웅! 

“고문 좋아하지? 이거 한 번 견뎌봐.” 

목각인형처럼 쓰러진 관리관의 혈도를 짚어 분근착골을 써주었다. 시작한지 3초도 되지 않아 관리관의 얼굴에 굵은 핏줄이 올라왔다. 극악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턱! 

관리관을 걷어차서 구석에 보내고, 라이칸의 시체를 옆으로 던졌다. 비명을 지를까봐 엘프들의 시야를 가린 건데 이제 문이 닫혔으니 소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괜찮으세요?” 

“아!” 

망토를 벗고 엘프들의 앞으로 가자, 엄마로 보이는 엘프가 손을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유, 유렌님? 유렌님 맞으시죠!” 

“네. 저 맞습니다.” 

“아아! 감사합니다!” 

“으아아앙! 

날 알아보는 것을 보니, 역시 엘루나의 엘프가 맞았다. 그녀는 아이들 꽉 끌어안고 방울진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엄마의 눈물을 보고, 같이 울기 시작했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유렌님. 전 엘루나의 티아리라고 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아, 그, 그게...” 

티아리가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무래도 대화는 나중에 해야 할 거 같다. 

“아니에요. 나중에 듣죠.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할 거 같습니다.” 

“아, 네!” 

“카이젤. 아까 밖에 마킹 해놓은 사람들 동시에 텔레포트 시킬 수 있어?” 

“당연히 가능하다. 먼곳은 힘들지만...” 

쿠구구구. 

카이젤일 말을 시작할 때 바닥은 잠잠하건만 천장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피해!” 

난 두 엘프를 데리고 구석으로 움직여서 호신강기를 둘렀고, 카이젤은 제니스의 목을 잡고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콰아앙! 

“크아아아!” 

천장이 수수깡처럼 부서져 내리며 광기를 빛내는 렉쿤이 내려섰다. 

“유렌 록스! 감히 나를 속여!” 

“어떻게 알았지.” 

당황하지 않은 표정으로 렉쿤의 앞에 섰다. 놈은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내가 라시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황한 모습을 보여주면 손해다. 

“이 쥐새끼 같은 놈!” 

라쿤의 뒤로 다크 엘프 두 명이 내려섰다. 느껴지는 마나를 보니, 에블린의 부하 중에서도 강력한 놈들이다. 

콰드드득! 

철문이 찢겨나가고 라이칸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완전히 포위된 상태다. 

“감히 크리티스님을 사칭하다니! 사지를 씹어 삼켜주마.” 

“크리티스 따위를 사칭한 적은 없는데? 네가 멍청하게 속았지.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크으...” 

정곡을 찔린 렉쿤이 어금니를 갈며, 변신을 시작했다. 부풀어오는 근육 때문에 옷이 찢어지고, 회색 털이 자라난다. 

“크르르르...” 

반인반수 라이칸의 야생의 기세가 방을 휘감았다. 역시나 라이칸 중에서도 강자라 불릴만한 무력이 느껴진다. 

“크아아아!” 

“크르르르!” 

라이칸으로 변한 렉쿤이 울부짖자, 다른 라이칸들도 변신을 시작했고 우리는 라이칸과 다크 엘프들에게 둘러싸였다. 

“유렌 록스. 네놈이 살아 있었다는 흔적조차...” 

“말 참 많네.” 

“뭐?” 

귀왕살 들어올리며 살기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 온 이상 이리 될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열 좀 받았거든. 닥치고 덤벼. 똥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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