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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화 지하 경매장 (2) (194/241)
  • 지하 경매장 (2)

    “이봐.” 

    “아...” 

    모든 준비를 마치고 근처로 다가오는 직원을 불렀다. 종업원은 갑자기 나타난 우리를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이곳의 관리자를 데려와라.” 

    나는 가만히 있었고, 옆에 있는 제니스가 앞으로 나섰다. 전문가답게 순식간에 말투와 목소리가 달라졌다.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네? 무, 무슨 일이죠. 제게 말씀을 해주시면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관리자를 불러오라 했을 뿐인데, 종업원이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이 녀석은 경비들이 인간이 아닌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네가 알면 어쩌게. 불러오라면 불러와!” 

    제니스는 건들거리는 걸음을 걸으며 종업원을 내려다보며 압박했다. 

    “으윽...” 

    “뭐지?” 

    종업원의 뒤에서 신장이 2m는 되어 보이는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강인하면서도 날렵한 외형을 보니, 라이칸이 분명했다. 

    “이, 이분들이 관리자님을 데려오라고 하, 하셨습니다.” 

    종업원은 앞에서 압박을 가하는 제니스보다 뒤의 라이칸을 더 무서워하고 있었다. 아예 전신을 덜덜 떨었다. 

    “관리자를 데려오라고 했다고? 다시 말해봐라.” 

    라이칸이 특유의 야생의 기세를 불러왔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오줌이라도 지리겠지만, 제니스만 살짝 위축됐을 뿐, 나와 카이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관리자를 데려오라고.” 

    “크크큭,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제니스가 조금 작아진 음성으로 말하자, 라이칸은 앞의 제니스만 보고 자신의 압박이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이를 드러내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목을 뜯어버리기 전에 당장 꺼...” 

    콰앙! 

    라이칸이 제니스에게 머리를 들이밀었을 때 주먹으로 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쿠구구구. 

    라이칸은 왼쪽 기둥을 부수고 벽에 박혀버렸다. 내력을 담은 주먹이 턱을 날렸기 때문에 놈은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다. 

    “크으윽...” 

    “마지막 기회를 주지. 관리자를 데려와라.” 

    라이칸과 똑같은 대사를 읊었다. 놈은 이제야 무언가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는지, 고통과 당황이 담긴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너, 넌 누구냐.” 

    “넌 알 자격이 없다.” 

    “무슨 일이야!” 

    “대체 뭐야!” 

    기둥이 무너진 소리를 듣고 경비들과 종업원이 몰려왔다. 

    “블크. 설마, 이놈들에게 맞은 거냐?” 

    “정신이 나간 놈들! 여기가 어딘지 알고!” 

    “멍청한 놈!” 

    “자, 잠깐.” 

    달려온 라이칸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우리를 공격하려 했지만 내게 날아간 블크라는 라이칸이 일어나서 손을 들어올렸다. 

    “왜 그러는 거야?” 

    “바로 사지를 뜯어버려야지!” 

    “왜 관리자를 불러달라고 하는 거요.” 

    얻어맞은 블크가 하는 말에 라이칸들은 당황했고, 나는 속으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생각대로 되고 있었다. 

    “네겐 알 자격이 없다고 했을 텐데.” 

    “그래도 말을 하지 않으면...” 

    “렉쿤을 불러와라.” 

    “으음...” 

    내 입에서 경매장 관리자의 이름이 생자로 나오자, 라이칸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관리자가 누군지 알고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을 보고 무언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완벽하게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여긴 보는 눈이 있으니, 손님방으로 가시겠소? 내가 렉쿤님을 데려오겠소.” 

    “...안내해라.” 

    제니스가 내 뒤로 물러났고, 나는 라이칸들을 무감정한 눈으로 쳐다보며 잠시 생각하는 척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후우, 어이 네가 안내해드려라. 난 렉쿤님을 불러오지.” 

    “아, 알겠어.” 

    블크는 한숨을 내쉬고선 렉쿤을 데리러 갔고, 다른 라이칸이 우리는 화려한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제니스가 갑자기 말을 할까봐 걱정했는데, 역시 연기가 되는 녀석이다. 

    지금까지는 잘 되고 있군. 

    내 계획은 에블린의 명령을 받아서 경매장에 물건을 찾으러 온 라시드를 연기하는 것이다. 

    에블린은 크리티스의 성을 찾아가서 그와 대화를 나누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그 밑에 있는 상위 라이칸과도 안면이 있다. 

    사람을 외모가 아니라, 냄새로 기억하는 라이칸의 습성을 노려서 정확하지 않은 외모의 라시드로 변신을 하고, 카이젤의 마법을 사용해서 에블린의 냄새가 풍기는 것처럼 환상을 심어 놓은 것이다. 

    지금까지 들었던 정보를 모아보면 라시드는 말수가 적고, 에블린의 명령만 듣는다고 했기 때문에 연기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로봇처럼 명령을 들었다고 하면서 막 나가면 된다. 

    끼이익... 

    잠시 기다리자, 문이 죽어가는 소리를 내며 열렸고, 회색 머리를 가지고 있는 날렵한 거구 렉쿤이 들어왔다. 

    그의 주먹에는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는데 분명 아까 갔던 블크의 피일 거다. 놈의 표정을 보니, 내가 변한 라시드를 전혀 모르는 눈빛이다. 

    “네놈들이냐. 겁 대가리를 상실한 벌레들이?” 

    렉쿤은 들어오자마자 인상을 쓰면서 우리 셋을 노려보았다. 굉장히 화가 솟구친 표정이다. 제니스가 놈의 기세를 간신히 참고 있어서 내가 앞으로 나섰다. 

    “닥치고, 창고를 열어라.” 

    우리가 있는 방에는 사람이 7명, 라이칸이 9마리 정도 있었는데, 내가 한 말에 방 전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내가 경매장을 운영하면서 미친놈은 많이 봤지만, 너 같은 놈은 처음이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렉쿤의 표정은 약간 경직되었다. 자신의 기세에 겁을 먹지 않고 말을 막하는 나의 모습에 경각심을 가진 것이다. 

    “에블린님의 명령이다.” 

    “음!” 

    렉쿤의 심리가 흔들리는 지금이 바로 에블린의 이름을 팔 때다. 그녀의 이름을 꺼내자 렉쿤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에블린님이라고 한 거냐??” 

    “귀가 먹혔나? 왜 두 번이나 말하게 하는 거지?” 

    “너는 누구냐?” 

    “검귀.” 

    세피로스는 본명이 아닌, 칭호를 사용하기 때문에 라시드의 이름이 아니라, 검귀라고 말했다. 검귀의 칭호를 들은 렉쿤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네놈이 검귀였군...” 

    말하는 것을 보니, 렉쿤도 라시드의 칭호를 들어본 모양이다. 

    “잠시만 기다려라.” 

    렉쿤이 한 발 앞으로 나왔다. 놈의 코가 움찔 거리는 것을 보니, 정말 에블린이 보낸 게 맞는지 확인을 위해서 냄새를 맡으려고 하고 있었다. 

    라이칸의 후각은 특성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에게서 풍기는 수많은 향중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난 가만히 서서 무표정으로 렉쿤을 쳐다보았다. 마치 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음!” 

    얼굴을 들이밀고 있던 렉쿤의 머리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원하는 것을 찾은 듯 한결 편해진 표정이다. 

    “확실히 에블린님의 냄새가 나는군.”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속으론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법이 제대로 먹히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카이젤이 사용한 마법은 8서클 체크 일루전이라는 마법이다. 상대가 원하는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환상 마법으로 이번의 경우는 렉쿤의 찾는 에블린의 냄새를 맡게 한 것이다. 

    이 트릭이 통하려면 녀석이 정말 나를 검귀라고 믿게 해야 한다. 그래서 놈의 압박도 무시하고 정말 라시드가 된 것처럼 계속 건방지게 군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숙였다면 렉쿤은 에블린의 냄새를 찾지 못하고 우리에게 덤벼들었을 거다. 

    “거기다 크리티스님의 냄새까지 나다니, 정말이로군.” 

    “...” 

    렉쿤은 내가 생각도 하지 않던 크리티스의 냄새까지 찾았다고 했다. 생각이상으로 단순한 건지, 내가 연기를 무지하게 잘했든지 두 가지 중 하나다. 둘 이유가 합쳐져서 일수도 있고. 

    어쨌든 놈이 크리티스의 냄새까지 맡은 것을 보니, 일이 내 예상보다도 훨씬 편하게 풀릴 거란 직감이 들었다. 

    “에블린의 냄새에 크리티스님의 냄새까지 확실해. 의심해서 미안하네. 하하하!” 

    렉쿤은 의심이 풀리자, 커다란 입으로 미소를 짓고 내 앞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2m가 훨씬 넘는 렉쿤이 앉아서 그런지 의자가 불쌍해 보일 지경이다. 

    “미리 연락이라도 좀 해주지 그랬나.” 

    렉쿤이 아쉽다는 듯 쩝쩝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에 있는 사과를 통째로 삼켰다. 

    “그래서 뭘 가져가려고 한 거지? 에블린님이 뭘 보기라도 한 건가?” 

    “넌 알 자격이 없다.” 

    난 여전이 라시드의 연기를 하며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크하하! 역시 검귀야. 듣던 대로 미친 듯이 건방지구만! 에블린님의 명령만 듣는다는 것이 사실인가 보군.” 

    “유렌 록스에 대한 일이다. 급한 일이니, 빨리 문이나 열어라.” 

    “유렌 록스! 빠드득...” 

    렉쿤을 더 빠르게 움직이게 하려고 내 이름을 꺼내봤는데 반응이 즉각 나왔다. 그가 이빨을 갈자, 숨이 막힐 정도로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 망할 놈은 내가 죽여 버려야 하는데!” 

    렉쿤이 내게 화를 내는 이유는 록스의 습격을 막으며 많은 라이칸을 죽였기 때문일 거다. 다만 선공을 때리고 저런 태도라니, 솔직히 어이가 없다. 

    “따라와라. 바로 문을 열어주마.”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잠재우며 렉쿤의 뒤를 쫓았다. 뒤를 살짝 보니, 제니스는 시건방진 웃음을 보이고 있었고, 카이젤은 여전히 무표정이다. 

    “검귀. 너는 그렇다 치고 뒤의 둘은 누구지?” 

    “저흰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입니다. 하하!” 

    창고로 향하며 렉쿤이 내 뒤에 있는 제니스와 카이젤을 쳐다봤다. 제니스는 기다렸다는 듯 부드럽게 대답했다. 렉쿤에게 조금 겁먹은 모습을 잘 연기하고 있었다. 

    “신입을 뽑는다고 듣기는 했는데, 벌써 뽑았나? 유렌 그 죽일 놈에게 많이 당했으니. 빠드득...” 

    렉쿤이 다시 내 이름을 말하며 이를 갈았다. 바로 뒤에 내가 있다면 녀석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정말 궁금해졌다. 

    “여기가 이번 달에 거래될 경매물품을 모아놓은 창고다. 정리는 잘 되어 있으니, 필요한 것을 챙기고 말만해주도록.” 

    렉쿤이 3m는 넘어 보이는 철문을 한 손으로 열고 우리를 창고로 들여보내주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니스는 고맙다고 고개를 꾸벅였고, 나와 카이젤은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관리관.” 

    “아, 예!” 

    렉쿤의 부름에 뒤에 있던 심술 많아 보이는 중년인이 앞으로 나왔다. 

    “이들이 물건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도록. 허투루 대했다간 네 목과 몸통이 분리 될 거다.” 

    “아, 알겠습니다.” 

    렉쿤의 말에 관리관이 이빨을 부딪치면 전신을 떨었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오줌을 지릴 표정이다. 

    “이 관리관에게 물어봐서 물건을 찾아라. 난 크리티스 님에게 너희들이 왔다고 보고를 올리마.” 

    순간 넋이 나갈 정도로 놀랐지만, 억지로 무표정을 유지했다. 

    크리티스는 연락을 잘 받지 않는다. 분명 연락이 갔다가 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다. 빠르게 챙긴 뒤 도망가면 그만이다. 

    “그러든가.” 

    렉쿤은 내 건조한 대답을 듣고 밖으로 나갔다. 

    “후, 유렌록스...” 

    나가면서도 내 이름을 중얼거리며 나갔다. 저 정도 원한이라니, 단순히 동족이 죽었다고 화를 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다른 게 있는 모양이다. 

    “저, 저기 어떤 물건을 찾으시는지...” 

    “책은 어디 있지?” 

    “저기 오른쪽에 있는 책장에 있습니다. 마도서 하고 마법서나 일반 고서들...” 

    관리관의 말을 듣다 말고, 책장으로 향했다. 

    “술은 어디 있나.” 

    “수, 술이요?” 

    “그래.” 

    “저, 저기 나무로 된 수납장에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비싼 술이라...” 

    카이젤 역시 관리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납장으로 이동했다. 

    “이제 나가봐.” 

    “네?” 

    “필요 없으니 나가보라고.” 

    “아, 알겠습니다.” 

    “흐흐흥!” 

    제니스는 관리관을 내보내고 콧노래를 부르며 내게 다가왔다.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카볼님의 말씀대로 되나니! 정말 대단하세요! 혹시 천재 아니에요?” 

    “너 네 물건 안 찾을 거냐? 묘안석인가 뭔가 찾는다며. 시간 별로 없다.” 

    “아하!” 

    책장에서 카볼의 책을 찾으며 대답했다. 제니스는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녀석의 손에 회색 묘안석이 들려있었다. 

    “언제?” 

    “여기 들어오자마자 챙겼죠. 흐흐.” 

    “어디 있는지는 어떻게 알고?” 

    “기업비밀이죠.” 

    괜히 직업이 도둑이 아니다. 콧노래를 부르는 시간밖에 없었는데 정말 대단한 놈이다. 

    “전 다른 것도 좀 골라볼게요.” 

    제니스를 보내고 고개를 흔들다가 익숙한 이름을 찾았다. 

    “찾았다.” 

    한 번에 카볼의 검술서 두 권을 모두 발견했다. 정리를 잘했는지 바로 옆에 끼워져 있었다. 

    “로돈 왕국 기본 검술, 가온 왕국 기본 검술. 됐어.” 

    읽을 시간이 없어서 안을 대충 살펴봤다. 두 책 모두 카볼의 그림과 글씨가 맞았다. 바로 마법 주머니에 넣었다. 

    제니스는 구경을 하고 있었고, 카이젤은 비싸 보이는 술을 입에 물고, 다른 술들은 자신의 아공간에 쑤셔 넣고 있었다. 

    -유렌. 

    혹시 좋은 게 있을 지도 모르니, 주변의 경매품들을 내 주머니에 쓸어 담고 있을 때 조용히 있던 아그네스가 말을 걸어왔다. 

    “응?” 

    -오른쪽 구석으로 가줘. 

    “구석? 왜?” 

    -저기서 나를 끌어당기는 게 있어.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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