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3화 지하 경매장 (193/241)
  • 지하 경매장

    “저 덩치 좋은 놈 보이죠?” 

    “덩치 좋은 놈들이 한둘이 아닌데? 죄다 산만하잖아.” 

    우리는 모래산 위에서 지하경매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저기 회색 옷을 입은 무섭게 생긴 놈 있잖아요. 그중에서도 특히 큰놈이요. 눈썹도 사납게 생긴 저 오른쪽 놈.” 

    “그래. 확실히 제일 크네.” 

    “저 놈이 이 경매장의 주인이에요. 진짜 주인은 따로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현재 관리는 저 렉쿤이라는 놈이 하고 있어요.” 

    “렉쿤. 저 놈이 렉쿤이군.” 

    렉쿤이라는 놈은 크리티스 속하에 있는 라이칸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다. 이 경매장을 맡겼을 정도니, 놈의 무력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극히 위험한 수준이다. 

    “어? 알고 있었어요?” 

    “아냐. 계속해.” 

    “음, 렉쿤과 그의 경비들은 이상할 정도로 감이 좋아요. 낮이 아니라, 밤에 침입해도 절 알아차리고 제가 숨은 장소로 다가오거든요. 밤에 쓰는 은신은 정말 자신 있는데...” 

    “나도 너 정도는 찾을 수 있는데?” 

    “아니, 그건, 그러네요. 하아,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제니스가 할 말이 없는지 끙끙 거렸다. 

    사실 녀석의 은신은 뛰어나지만 기감으로 찾는 나나, 적을 후각으로 찾는 라이칸이나 상대가 좋지 않았다. 일반적인 기사라면 수준이 높다고 해도 제니스를 찾기 힘들 거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랑 같이 몰래 훔치시겠어요?” 

    “그건 좀 별로고.” 

    처음부터 전부 날려버리지 않는 이상 강제 경매장을 침입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크리티스는 몰라도 렉쿤과 비슷한 수준의 라이칸이 나타날 거다. 

    “그럼 돈으로 사실 겁니까?” 

    “그게 낫겠지. 경매에 물건이 나온다면 말이야.” 

    괜히 적을 좀 놀리려다가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확실한 계획이 아니라면 돈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카볼의 검술서가 비쌀 리도 없고. 

    “저는 그게 힘든데...” 

    “힘들다고? 너 돈 많잖아.” 

    “저희가문의 가훈이 ‘돈 주고 물건을 사지 않는다.’거든요. 경매는 더더욱 안 되죠.” 

    “도둑집안의 가훈답네.” 

    “하하하!” 

    칭찬이 아니건만, 제니스는 박장대소하면 웃어재낀다. 어디에서 웃음이 나오는 건지 도통 할 수가 없다. 정말 특이한 놈이다. 

    “넌 살 돈이 있음에도 어떻게든 훔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거야?” 

    “바로 그거죠.” 

    “하...” 

    내 생각으론 정말 이해가 안 되지만, 도둑이라는 자기 직업에 정말 충실한 놈이다. 

    “넌 뭘 찾는 건데?” 

    “묘안석이라고 아십니까?” 

    “고양이 눈모양의 보석이잖아.” 

    “오, 역시 동종업계라서 아시네요. 다만 보통 보안석이 초록색인데, 이번에 회색 묘안석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걸 가져가려고 왔죠.” 

    “흠...” 

    회색 묘안석이라니,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물건이라 흥미가 확 식었다. 

    “용병님은 뭘 찾으시죠? 아, 이제 이름이라도 알려주시죠. 계속 용병님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실제 용병도 아니시고.” 

    “카볼이라고 불러.” 

    본명 대신 카볼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카볼님은 뭘 찾으시는 대요?” 

    “책을 찾는다.” 

    “책? 그렇게 안 생기셨는데, 고상한 취미가 있으시네요.” 

    “쯧...” 

    “으윽!” 

    시끄럽게 까부는 제니스에게 혀를 차자, 녀석은 몸을 한 번 떨고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아예 분위기 파악 못하는 놈은 아니었다. 

    “카이젤 어때? 안에 있어?” 

    “그래. 두 권 모두 저 모래 밑에 있다.” 

    뒤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카이젤이 이마를 쓸어 올렸다. 

    “근데 호위로 보이는 놈들 인간이 아니로군.” 

    “이, 인간이 아니라구요? 저놈들이?” 

    “넌 알아보았나?” 

    카이젤이 제니스를 무시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난 긍정의 의미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칸을 알아보다니, 역시 대단하군.” 

    “라이칸!” 

    제니스가 기겁하며 뒤로 자빠졌다. 다시 렉쿤을 쳐다보는 녀석의 눈빛은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했고 흥분한 것 같기도 했다. 

    “라이칸은 지도자의 힘이 강할수록 수하들의 힘도 강해진다. 저 라이칸들의 수준을 보니, 따르는 지도자의 수준이 상상이상이야. 흠...” 

    카이젤이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병을 입에 물었다. 

    “카이젤.” 

    “왜 그러나?” 

    “혹시 저 놈들의 후각을 속일 수 있는 마법 있어?” 

    “후각을 속인다? 만들면 모를까. 지금 그런 마법은 없다.” 

    “그럼 환상 마법을 사용해서 저 라이칸들이 맡으려는 냄새를 맡게 할 수는 있어?” 

    “원하는 냄새를 맡게 한다? 흠, 그건 되겠어. 8서클 마법 중에 비슷한 게 있지.” 

    “그럼 됐네.” 

    검술서가 경매장 안에 있다고 무조건 경매에 나오지는 않는다. 

    경매에 나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놔야 하는데, 카이젤의 대답을 듣자, 내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잘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다. 

    뭐,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다 때려 부수고 튀면 되고. 

    “제니스. 다음 경매는 언제 열리지?” 

    “내일 열립니다.” 

    시간도 적당하다. 

    “가자. 준비를 해야겠어.” 

    ** 

    “긴장하지 마세요. 무릇 연기란 정말 그 사람이 된 것처럼...” 

    “너나 잘해.” 

    나와 카이젤은 화려한 귀족의 복장을 입고, 제니스는 안내인으로 위장한 뒤 경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크으, 그 목소리 정말 잘 어울리세요. 건방진 귀족으로 딱이다!” 

    “시끄러워. 너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어?” 

    “전 원래 혼자 일하잖아요. 그러다보니 혼잣말이 많아졌어요. 하하. 이것도 직업병일까요?” 

    “싸일런스.” 

    “흡!” 

    옆에서 술을 마시던 카이젤이 제니스의 입을 마법으로 막아버렸다. 이게 오늘만 벌써 4번째다. 

    “저 시끄러운 놈. 꼭 필요하냐?” 

    “어쩔 수 없어. 이제 와서 다른 놈 구하기도 어렵고. 저래보여도 연기는 잘하잖아.” 

    “저 놈 때문에 술맛이 떨어진다.” 

    “일단 풀어줘. 이제 들어 가야하니까.” 

    “하하! 이제 침묵 마법도 익숙해지네요.” 

    카이젤이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자, 제니스의 입을 풀렸다. 녀석은 입술을 몇 번 풀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다음.” 

    “오랜만입니다. 오늘 모시고 온 분들은 신성국 이오칼의 귀족 분들입니다. 먼저 여기 잘생긴 공자님은...” 

    제니스는 문지기들에게 귓속말을 해서 우리를 소개했다. 문지기들은 우리를 한 번씩만 쳐다보고 바로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열어주네.” 

    “이래서 제대로 된 안내자를 구해야 하는 거예요. 제가 변장한 안내자는 꽤나 오랜 기간 손님들을 데려와서 신뢰도가 굉장히 높아요. 두 분의 신분 확인도 제대로 안 할 거예요.” 

    “그 안내자 본인은 어디 있는데?” 

    “얼마 전에 야반도주했어요. 하하.” 

    “허...” 

    무슨 사정인지 대충 예상이 되어 딱히 물어보지 않았다. 

    “여기가 사막 밑이라니, 신기할 정도군.” 

    “맞아요. 정말 잘 만들어놨죠.” 

    지하 경매장은 내가 있던 현대의 건물처럼 세련된 내부를 가지고 있었다. 모래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고, 종업원은 절도가 있었다. 

    “이쪽이에요.” 

    우리는 정해진 좌석에 가서 앉았다. 카이젤은 술에만 관심 있는 듯 종업원에게 계속해서 술만 시켰다. 여기오고 나서부터 계속해서 술만 찾는다. 

    “술을 원래 그렇게 좋아했나?” 

    “바로 전 유희의 직업이 술을 만드는 장인이었다. 원래 잠을 자서 초기화를 해야 했는데 하지 않았더니, 계속 술이 당기는군.” 

    “술을 좋아하신다구요? 저도 술 좀 하는데 잘 됐네요. 제 비밀 창고에 고급술들이 많은데 한 번 가보시겠어요?” 

    제니스는 카이젤이 술을 좋아한다는 소리만 듣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음, 네가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는구나. 이 일이 끝나는 대로 한 번 가자.” 

    “네. 꼭 가죠!” 

    “하...” 

    오른쪽엔 주정뱅이가, 왼쪽에는 수다쟁이가 앉아있다. 갑자기 급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다. 한숨을 쉬고 있을 때 경매장의 불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바쁜 와중에도 저희 시와라 경매장을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만족하실 수 있는 보물들을 준비했으니, 자신의 물건을 찾아서 돌아가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자 첫 번째 물건 나와 주세요!” 

    단상에 불이 켜지고 사회자가 올라왔다. 그는 모두에게 인사를 한 뒤 바로 경매 물품을 가져왔다. 

    “검인가...” 

    첫 번째로 나온 건 화려한 모양을 가진 검이었다. 창조주의 눈으로 봤지만 별게 아니라서 관심을 끊었다. 

    “저거 괜찮은 검입니다. 일단 제작시기가 백여 년 전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현역으로 쓸 예기를 가지고 있고, 만든 사람이 글쎄 대륙장인에는 못 미치지만... ” 

    “조용.” 

    “아, 옙!” 

    다음에 나온 물건 역시 검이었다. 같은 종류의 물건이 연속으로 나오는 순서인 것 같다. 

    “두 번째도 별거 없군.” 

    “아니에요. 저건 키아벨의 태도라고 해서 천 명 베기를 한 유명한...” 

    제니스는 처음 봤을 때랑 완전 다른 인간이 되었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에게 돈이나 보물을 뺐기는 호구 포지션인데, 지금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협업을 하다 보니, 동료라는 생각에 나를 형님처럼 대하고 있었다. 

    얍실스러운 도둑인 제니스의 캐릭터가 내 앞에서 붕괴되어버렸다. 

    “제니스.” 

    “네?” 

    “제발 조용.” 

    “옙!” 

    ** 

    “유렌.” 

    지루함에 하품을 참고 있을 무렵 카이젤이 내 어깨를 쳤다. 

    “응?” 

    “저 물건 사는 게 좋을 거다.” 

    “손수건을?” 

    카이젤이 말한 물건은 금실로 수를 놓은 화려하고 우아한 느낌의 손수건이었다. 

    “저게 뭔데?” 

    “잉카오른의 손수건이다.” 

    카이젤의 말을 들어도 뭔지 모르는 물건이라, 창조주의 눈을 켜보았다. 

    [잉카오른의 손수건] 

    고대의 재단사 잉카오른이 환수들의 털로 짜낸 손수건이다. 심장 근처에 가지고 있다면 딱 한 번 일격에 죽을 위기에서 주인을 구해주는 효과가 있다. 

    특수능력 : 위벽수호(위기시 자동 발동) 

    “허!” 

    잉카오른의 천의 정보를 읽어보자, 자연스럽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건 이해를 뛰어넘은 물건이다. 

    “저건 네게 또 하나의 생명을 줄 거다. 무조건 사라.” 

    “알겠어.” 

    카이젤의 말이 맞다. 저 천을 가지게 되면 목숨이 하나 더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조건 챙겨야 한다. 

    “700골드.” 

    “800골드.” 

    잉카오른의 천이 가진 능력을 아는 사람이 없는지 금액이 찔끔찔끔 오르고 있었다. 내겐 정말 다행인 일이다. 

    “자, 1000골드까지 나왔습니다. 또 없으십니까?” 

    “1100골드.” 

    손가락을 들어올려 100골드를 올렸다. 

    “오! 오늘 처음 참가하시는 신사분이 1100골드를 부르셨습니다. 다른 분?” 

    “1200골드!” 

    1000골드를 젊은 여성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렸다. 

    “1500골드.” 

    손가락 세 개를 펴며 1500골드를 외쳤다. 찔끔찔끔 올리기 귀찮아서 올린 건데, 모두의 시선이 내게 몰렸다. 

    “오! 화끈하십니다. 1500골드 나왔습니다. 또 없으십니까?” 

    “2000골드.” 

    “4000골드.” 

    여자가 2000골드로 올리자마자, 바로 2000골드를 올려서 4000골드를 불렀다. 

    “흥...” 

    그녀는 나를 한 번 노려보고서 손을 내렸다. 여유가 있어도 손수건에 4000골드 이상을 쓸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땅!땅! 

    “낙찰! 이 아름다운 손수건은 저기 통 큰 신사분이 가져가셨습니다!” 

    짝짝. 

    작은 박수가 나왔다. 돈을 지불하고 손수건을 챙겼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다르네요. 굉장한 능력이 있는 손수건 같은데요? 제가 챙길 걸 그랬네요. 하하!” 

    손수건을 받아오자, 제니스가 은근한 눈빛을 보내온다. 심장에 가장 가까운 윗주머니에 넣고 녀석을 노려봤다. 

    “너 훔치면 정말 죽는다.” 

    “에이, 상도가 있지. 저도 동료 물건은 안 털어요.” 

    “아니, 난 도둑이 아니라고.” 

    “하하! 제겐 그러실 필요 없어요. 다 알아요.” 

    이 녀석은 나를 힘이 좀 강한 도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친근감에 계속해서 말을 걸고 지 나름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다. 

    “이번 물건은 제국의 공작부인이 입으셨던 드레스로...” 

    다음 내용도 내가 볼 필요 없는 경매였다. 

    “책은 언제 나오지?” 

    “원래 순서는 무기 다음이에요. 지금 옷이 나오고 있으니, 오늘은 책을 팔지 않는 것 같네요.” 

    “에휴...” 

    “경매장에 물건이 있어도 경매에 내놓지 않는 경우도 흔하거든요. 제가 원하는 보석도 오늘은 내놓지 않을 것 같네요. 창고에 박혀 있겠죠.” 

    “그럼 언제 팔지?” 

    “경매는 월말에 가장 크게 열리거든요. 그때 나올 거 같네요.” 

    월말이면 가이린에서 파티를 열 때다. 그때까지 여기에 있을 생각은 전혀 없다. 

    “카이젤. 지금도 경매장 안에 책 있지?” 

    “그래. 저 뒤편에 있다. 꽤나 강한 놈들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니, 저 녀석이 말한 창고 안에 있는 것 같군.” 

    경매로 얻고 빠지는 것도 좋지만, 창고에 있다면 억지로라도 빼내야 한다. 

    “그럼 두 번째 계획으로 간다.” 

    “아, 왠지 조금 떨리네요.” 

    “무서워 할 필요는 없다. 네 말대로 자연스럽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재밌을 거 같아서요. 도둑질과 사기는 많이 쳤지만 이렇게 동료와 같이 하는 건 처음이라 떨려요. 하하!” 

    제니스와 대화를 하면 점점 피곤해지는 느낌이다. 

    “일어나. 준비를 하자.” 

    우리는 경매가 진행 중인 경매장을 빠져나와 복도로 나왔다. 카이젤이 은신마법을 발동시킨 뒤 변장을 시작했다. 

    카이젤은 무표정을 하고 있는 엘프로, 제니스는 야비해 보이는 청년으로, 나는 라시드의 모습으로 변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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