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2화 카볼 (2) (192/241)

카볼 (2)

카렉스 볼카누이스가 카볼이었다니. 

사실 카볼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첫 번째는 멸망한 왕국을 포함한 여러 왕국의 기본 검술을 재정립해서 검술서를 저술한 검사. 

두 번째는 석상 던전에서 만났던 로벤이 말해준 내용인데 검성이라는 칭호를 가졌던 희대의 검사이고 인간이 아니라고 했었다. 

원작에서 비중이 있는 인물도 아니었고, 이 두 가지 정보밖에 없었으니, 그가 누군지 알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볼카누이스 영감은 제작, 마법연구, 정령, 농사와 요리까지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았지만 가장 관심이 많았던 것은 검술이었지. 내가 본 것만 해도 천 년 넘게 검술만 배우고 익혔을 거다. 인간 기준으로 마스터는 한 참 전에 뛰어넘었고.” 

“그는 괴짜로군.” 

“맞다. 아주 정확해. 그 영감만큼 다른 종족에 관심 있는 드래곤은 없을 거다.” 

카이젤은 내 말에 동의하며 잠을 자는 드래곤의 그림을 허공에 그렸다. 

“보통 드래곤은 활동을 한 뒤 휴식기를 가지는데, 그는 잠도 자지 않고 매번 다른 일을 찾아 나선다.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하지.” 

“지금 볼카누이스는 어디서 뭘 하고 있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추적당하는 건 무지하게 싫어해서 추적 방지 마법까지 쓰고 다니는데. 우리 로드도 찾는 걸 포기했지. 가끔 나타나서 자기 자랑만하다가 돌아간다.” 

“음...” 

“이제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레어에서 좀 쉬지. 뭐하고 돌아다니는지 모르겠군.” 

카이젤이 덤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말은 저렇게 해도 볼카누이스와 나름 사이가 좋은 듯싶다. 

“아깝네.” 

볼카누이스를 찾을 수만 있다면 단 번에 제왕의 검을 익혀서 초식과 신체 능력을 상승시킬 수 있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책이 어디 있다고 했지?” 

“저쪽 책장이다.” 

카볼의 검술서를 찾기 위해서 카이젤의 손짓을 따라 네 번째 책장 앞에 섰다. 

“거기 다섯 번째 칸에서 네 번째 책이다.” 

책장을 살펴보려고 할 때 카이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을 따라가니, 정말 튜란 왕국 기본 검술서가 보였다. 정확한 위치까지 기억하다니, 역시 절대 기억을 가진 드래곤답다. 

팔랑. 

가볍게 책 표지를 넘겨보았다. 1장을 보니, 카볼 특유의 글씨체와 그림이 보였다. 차분하게 1장의 검술들을 모두 읽어보았다. 

[창조주의 눈에 예속된 천안이 튜란 왕국 기본 검술 1장 회원검을 각인합니다.] 

[특성 천무지체로 인하여 해풍검을 즉시 재현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정말 확실해졌다. 

카볼은 레드 드래곤 카렉스 볼카누이스가 맞았다. 바로 바닥에 주저앉아서 책을 끝까지 읽어보았다. 

[튜란 왕국 기본 검술을 모두 체득하셨습니다.] 

[튜란 왕국 기본 검술이 특성 검인에 예속 됩니다.] 

[튜란 제왕의 검 9/18] 

[특성 검인의 경험치가 15% 상승합니다.] 

[검인에 기본 검술 9개가 모인 효과로 모든 신체능력이 4% 상승합니다.] 

카볼의 검술서는 검술에 대한 이해력을 상승시켜주고, 검술을 자동으로 익히게 해주며, 신체능력까지 올려준다. 책 하나하나가 기연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환검(幻劍)이군.” 

이번에 배운 튜란 왕국 기본 검술은 환검이었다. 

환검은 한 번 검을 휘둘러도 두세 번 휘두르듯이 적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검술이다. 꽤나 복잡했지만, 보는 것만으로 검술을 익히는 내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잘 봤어.” 

“나에겐 가치 없는 책이니 가져가라. 볼카누이스 영감도 외부로 내보내라했으니 잘됐어.” 

“그래도 3개나 남았군.” 

“흠, 그런 책이 또 있나?” 

카이젤은 이런 책이 또 있다는 것이 짜증나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10권 이상 있어.” 

“10권이상이라니, 하여튼 그 영감은... 넌 그 책들을 찾고 있는 건가?” 

“그래. 여기 있는 보물들보다도 내게 필요한 게 그 책이야. 꼭 구해야하지. 이게 볼카누이스의 다른 검술서다.” 

마법 주머니를 꺼내서 카볼의 다른 검술서를 보여주었다. 카이젤은 내가 꺼낸 검술서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검술서를 보고서 피식 웃었다. 

“이 영감 하여튼 심술은...” 

“왜?” 

“책에 추적 마법을 써볼까 했는데, 네 책에 추적방지가 걸려있다. 정말 방심 같은 건 없는 영감이라니까.” 

카이젤이 내가 꺼낸 검술서를 보며 빈정댔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추적? 볼카누이스를?” 

“아니, 그건 힘들고 그가 쓴 다른 책 말이다. 근데 이 영감도 여기엔 추적방지를 사용하지 않았군. 크크.” 

카이젤은 튜란 왕국 기본 검술서를 잡고 돌려보며 히죽 웃었다. 

“네가 가진 책에는 추적 방지 마법이 걸려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책에는 없다.” 

“그럼 추적을 할 수 있다는 거야?” 

“책이 사라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나라 수준의 크기에서 추적이 가능하지.” 

“하!”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잘만 쓰면 한 권을 더 얻을 수도 있을 거란, 기대감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지금 써 줄까?” 

“여기는 얼음밖에 없는 곳인데, 여기서 써서 뭐해. 다른 곳으로 가서 써야지.” 

카이젤의 말을 들어보니, 추적 마법을 사용 할 수 있는 기회는 딱 한 번뿐이다. 

추적 마법을 어디서 써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일단 크라시스에선 2개가 있었으니 빼고, 이오칼에서도 검술서도 얻었으니 빼야한다. 

지금 생각나는 건 두 개 다. 역사가 깊은 로돈 왕국과 제국이었다. 

“로돈왕국이 좋겠어.” 

제국에서 썼다가 사이온 후작가의 검술서들이 수색되면 망하기 때문에 로돈 왕국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지금 바로 가겠나?” 

동료가 된다고 맹세를 했지 때문인지, 날 인정했기 때문인지 카이젤은 내게 도움을 주려고 하고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아니, 잠시만.” 

카이젤을 뒤로하고 아티펙트가 있는 곳에 가서 내게 필요한 물건을 창조주의 눈으로 찾아보았다. 

“뭐, 뭐하는 건가?” 

“필요한 물건을 찾고 있지. 너랑 나는 동료잖아. 쓰고 돌려줄 테니까 좀 빌려줘. 네 공격을 막느라 사용한 아이템 복구 좀 해야 하거든.” 

“으음, 알겠다.” 

자기 탓이라고 하니, 카이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동료가 된 걸로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겠지만, 내 소원은 아직도 한참 남았다. 

“이거랑 이것들이 좋겠네.” 

필요한 아티펙트들을 챙긴 뒤 포메라가 있는 책장으로 갔다. 그곳에 있는 마도서들의 제목을 읽어보고 괜찮은 것들을 챙겼다. 

“그쪽은 마도서가 있는 책장이다만...” 

“보고 돌려줄게. 네 브레스를 막으며 공격하다가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기술들을 썼거든.” 

“그, 그건 미안하지만, 마도서는 한 번 열면 사라져 버리는 책인데...” 

“괜찮아. 나중에 비슷한 걸로 돌려줄게.” 

“하...” 

대충 대답하며 마도서 2권을 챙긴 뒤 금괴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카이젤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계속 자신의 핑계를 대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드르르륵. 

카이젤은 이제 포기했는지, 내가 금괴와 보석들을 챙겨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능글맞게 웃으며 비싸 보이는 것들 위주로 주머니에 담았다. 

“포메라.” 

“왜 그러시오.” 

포메라는 카이젤의 마법서들을 보고 있느라,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지식욕이 드래곤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 버렸다. 

“너 골렘 다룰 수 있지?” 

“난 7서클의 마법사요. 골렘이야 손쉽게 다룰...” 

“그럼 됐어.” 

포메라의 말을 끊고 뒤를 돌아서 카이젤을 보았다. 

“카이젤.” 

“또, 또 뭐냐?” 

“아까 네가 우리 언데드들을 모두 부서서 하는 소린데, 그게 좀 오래 준비한 것들이거든. 그래서...” 

“서, 설마...” 

“네 골렘들도 좀 빌리자.” 

카이젤은 자신이 골렘이 된 것처럼 표정이 굳어버렸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카이젤은 큰 후회를 하고 있었다. 난 계속 해왔던 대사를 읊었다. 

“나중에 돌려줄게.” 

** 

포메라는 새로 얻은 아이스 골렘 여섯 마리에 날아갈 것처럼 기뻐했다. 

드래곤이 만든 아이스 골렘의 위력을 본 포메라는 언데드들을 복구시키기 위해 홀로 북해에 남았는데도 끝없이 방긋거렸다. 

포메라를 북해에 놔두고 나와 카이젤은 로돈왕국의 중심부에 와 있었다. 

“여기서 할 텐가?” 

“그래.” 

말을 마치고 카이젤에게 튜란 왕국 검술서를 건네주었다. 그는 받은 검술서의 표면에 내가 알지 못하는 문자를 그려 넣었다. 

화아악 

문자에서 나오는 불이 검술서를 순식간에 태워버렸다. 카이젤은 책은 쳐다보지도 않고 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찾았다. 반응이 두 개로군.” 

“정말? 확실해?” 

“그래. 그것도 같은 장소에 있다. 편하겠어.” 

나도 모르게 양 주먹에 힘이 들어갔고, 안면에 화색이 돌았다. 

“어디지? 로돈 왕국 안인가?” 

“아니, 서쪽으로 로돈 왕국을 넘어간다. 운이 좋았군. 조금만 더 멀었어도 찾을 수 없었을 거다.” 

“로돈에서 서쪽이면... 그 사막인가?” 

“그래.” 

로돈 왕국 서쪽에 있는 사막은 예전에 아우쿠솔의 미궁이 열렸던 시와라 사막이다. 미궁을 찾아 갔던 방향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에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고 있다. 

“시와라 지하경매장.” 

“크라시스 출신이 그걸 알고 있다니, 특이하군. 맞다. 딱 그 위치에서 책의 신호가 나타났다. 

로돈 왕국에서 조금 벗어난 시와라 사막의 지하에는 불법 경매장이 있다. 수많은 장물들과 보물들, 노예까지 거래되는 최악이자 최대의 경매장이다. 

그 장소에 카볼의 검술서가 있는 게 확실했다. 

“음...” 

문제는 그 경매장의 진정한 주인이 세피로스의 삼공 야왕 크리티스라는 점이다. 그가 경매장을 지키고 있지는 않겠지만 위험한 건 사실이다. 그의 라이칸들이 지키고 있을 테니까. 

“이거 조심해야겠는데.” 

“네가? 나도 이겼던 네가 조심을 한다고?” 

카이젤은 내 말이 어이가 없는지 두 번이나 물어본다. 

“그곳의 주인에 대해서 알아?” 

“가보기 했다만, 경매장의 주인이 누군지는 관심이 없어서 말이지.” 

“하긴...” 

드래곤이 한입거리도 안 되는 라이칸에 대해 관심가질 리가 없다. 다만 야왕 크리티스와 바로 밑에 있는 키르아는 카이젤 같은 드래곤도 죽일 수 있는 사나운 힘을 가지고 있다. 

“일단 로돈 왕국 서쪽 관문으로 이동하자. 그곳에서 안내자를 구해야하니까.” 

“안내자?” 

“그래. 사이와 지하경매장에 가려면 안내자가 필요하거든.” 

“100년 전에는 그런 귀찮은 게 없었는데.” 

카이젤이 별게다 생겼다고 중얼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 일단 가서 생각해보자고.” 

최고의 방법은 놈들에게 피해를 주고, 검술서를 챙기는 거지만, 안내자를 구한 뒤 안전하게 경매로 책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상황을 살피며 방향을 정해야겠다. 

“알겠다. 그럼 이동하마.” 

번쩍. 

우리는 순식간에 서쪽 관문의 구석으로 이동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드래곤답게 이동마법의 수준은 포메라와 차원이 달랐다. 

“음?” 

편안한 이동에 감동을 느낄 새도 없이 달짝지근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왜 그러느냐?” 

“잠시만 따라와 봐.” 

이 달짝지근한 향기는 내가 예전에 사용했던 만리추종향이다. 세상에서 나만 맡을 수 있는 향인데, 내가 이것을 쓴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하, 저놈. 여기서 뭐하는 거지?” 

냄새를 따라가니, 거지차림을 하고 있는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마을을 여기저기 돌며 구걸을 하고 다녔다. 다만 저 남자는 거지도 아니고, 노인도 아니다. 

“무음의 제니스. 여기 있었군.” 

“저 인간 변장을 하고 있는데.” 

“맞아. 원래는 젊은 녀석이야.” 

마이라를 구할 때 만난 제니스가 이곳에서 변장을 하고 있었다. 저 도둑놈이 괜히 여기 올 리가 없다. 경매장을 노리고 온 게 분명했다. 

우우웅. 

아그네스를 이용해서 매번 사용하는 평범한 얼굴로 외모를 바꿨다. 잠시 기다렸다가 제니스가 골목 쪽으로 오는 순간 놈을 잡아서 제압했다. 

“누, 누구냐!” 

당황했는지 제니스의 목소리가 젊은 남자로 변했다. 당황했는지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제니스.” 

“어? 어떻게 내 이름을...” 

제니스의 표정이 무너져 내리고, 이빨 사이로 바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녀석의 몸을 돌려 내 얼굴을 보게 만들었다. 

“너, 넌! 그 신전의 도둑놈!” 

“도둑놈은 너고.” 

“크윽!” 

제니스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여기는 무슨 일로 왔지?” 

“너라면 무슨 일로 왔는지 알려 주겠냐. 난 절대... 알려 드리겠습니다. 헤헤!” 

녀석의 목에 비수를 가져다대니, 당찬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렇게 빨리 기가 죽을 거면서 반항을 하려 하다니, 정말 웃기는 놈이다. 

“안 알려줘도 돼. 똥파리가 찾는 거야 뻔하지. 네가 노리는 건 지하 경매장의 물건이겠지.” 

“네. 전 똥파리... 지, 지하 경매장도 알고 있습니까?” 

“네가 찾는 물건은 뭐지?” 

잠시 고민하던 제니스가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음, 훔치려고 했는데, 경계가 생각보다 심해요. 특히 이상한 능력을 가진 경비들이 있어서 냄새를 맡듯이 내가 숨은 곳을 기가 막히게 찾아냅니다. 보통 놈들이 아니에요.” 

“음...” 

제니스가 말하는 경비는 인간이 아니라, 라이칸 놈들이다. 녀석의 은신을 냄새로 찾아내는 것이다. 

“댁도 그곳에 노리는 게 있나보죠?” 

“너 경매장에 들어 갈 수 있어?” 

“사람이 정이 있으면 오고 가는 게 있어야 하는데, 자기만 물어보고 대답을 안 해... 아, 알겠어요!” 

주먹을 들어 올리자, 제니스가 깜짝 놀라서 손사래를 쳤다. 

“몰래 들어갈 수도 있고, 대놓고 들어갈 수도 있어요. 이곳에 있는 안내자들의 신원을 다 파악했거든요. 변장을 해서 들어가면 얼마든지 가능하죠.” 

“그럼 됐네.” 

“네?” 

제니스의 어깨를 잡으며 서슬 퍼런 눈빛을 보냈다. 

“축하한다. 넌 지금부터 우리 안내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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