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9화 북해 (189/241)

북해

간신히 도달한 만독자전신기 팔성의 경지에 절로 웃음이 피어나고 어깨춤이 춰진다. 이 순간 정말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러면 안 되지.” 

가볍게 숨을 고르며 고조된 기분은 안정시켰다.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감정이 가라앉았다. 새로 얻은 특성 ‘깨지지 않는 정신’덕분이다. 

깨지지 않는 정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신을 안정시켜서 당황하거나, 겁을 먹거나, 방심하는 상황을 막아주는 멘탈 특성이다. 내가 제대로 된 목표를 정해서 만들어진 특성 같다. 

“하단전과 중단전이 합쳐졌다고 했지.” 

하단전과 중단전이 합쳐진다는 게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몰랐기 때문에 만독자전신기를 운용해보았다. 

“헉!” 

내력을 움직이자마자 단전이 합쳐진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내공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혈도를 통과해야 하는데, 내력이 혈도를 지나는 속도가 이전보다 두 배는 빨라졌다. 

즉, 단전이 합쳐지기 전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무공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 몸 전체가 단전화가 됐기 때문에 이젠 내공의 양을 거의 거의 무한으로 모을 수 있게 되었고, 내공의 회복속도와 발현속도도 비할 바 없이 빨라졌다. 

“더욱 많은 내력을 모을 수 있다는 게 이 소리였어. 미친 사기능력이네.” 

중단전과 하단전의 통일은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큰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큼지막한 미소가 번지고 있다. 

“상단전도 커지고 연위결의 성취도 올랐으니, 이제 완성된 만천화우도 쓸 수 있겠지.” 

만천화우 광화는 무리지만 천화는 확실하게 피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말 나온 김에 해봐야겠어.” 

주머니에서 천판을 꺼내들어 공중에 띄웠다. 연위결을 연결해서 천천히 꽃을 피워냈다. 

일부러 느긋하게 천화를 개방했지만, 처음 사용할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2개, 4개, 8개... 512개. 

록스에서 512의 꽃을 피웠을 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지만 지금은 두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가을 하늘처럼 쨍쨍한 느낌이다. 

파아악! 

드디어 1024개의 천화를 내 힘으로 피워냈다. 살짝 머리가 띵했지만 못 견딜 수준은 아니다. 

“됐어!” 

단숨에 여러 계단을 껑충 뛰어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록스에 있을 때에 비해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다. 

챠앙! 

뜨거운 희열을 느낀 뒤 천화를 다시 천판으로 바꿔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상단전까지 합쳐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중단전과 하단전이 합쳐졌으니, 분명 상단전까지 통일 될 수 있을 거다. 그때 내 몸이 어떻게 바뀔지 문득 궁금해졌다. 

“현경이 되어야 모든 단전이 조화되는 건가?” 

지금 내 수준은 조화경의 극의다. 아마 만독자전신기 구성이 되어야 현경에 도달하게 될 거다. 

이제 갓 팔성이 되었으니, 현경에 가려면 천리, 아니 십만 리는 남았다. 현경을 이루고 싶지만 급하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니, 마음을 가볍게 먹었다. 

“다른 힘도 있으니.” 

내겐 사천당가의 암기만 있는 게 아니다. 여러 효과를 가진 강력한 독들도 함께 하고 있었다. 

“당가십독 - 칠보추혼독이라, 이건 유명하지.” 

사천당가의 특성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아래에서 봤던 당가십독의 첫 번째 독이 열렸다. 

칠보추혼은 무협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단어다. 

칠보추혼사(七步追魂蛇)에게서 추출한 독으로 중독되면 일곱 걸음을 걷기 전에 혼을 쫓아버린다는 지독하고도 발동속도가 빠른 독이다. 

고수들에게는 조금 시간이 지체되고 효과도 낮겠지만, 내가 배운 어떤 독보다도 강력한 살상력을 지니고 있다. 사용 할 때는 정말 조심해서 써야 할 거 같다. 

새로 얻은 능력들의 확인을 끝낸 뒤 아직 내 무릎위에 올라가 있는 드래곤 하트를 만져보았다. 

“아직 쓸 만하겠네.” 

다행히 아직도 많은 마나가 남아있었다. 바로 포메라를 소환했다. 

“오랜만이오.” 

“한 달 정도 만인가.” 

“그 정도 됐...” 

포메라의 안광의 불이 갑자기 거세졌다. 녀석의 눈덩이를 뚫고 나올 것 같았다. 

“뭐, 뭐요?” 

“뭐가? 뭔지 말을 해줘야 알지.” 

“이, 이상하오. 주인에게서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소!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이곳에 없다고 생각했을 거요!” 

“아, 그거로군.” 

강해질수록 자신을 드러내는 기사들과 다르게 무인들은 강해질수록 자신의 힘을 내보이지 않는다. 

반박귀진(返璞歸眞)이라는 무공 용어가 있다. 

높은 수준의 무공을 쌓아서 무공을 익혔지만 평범한 사람보다도 더욱 평범하게 보이는 경지가 바로 반박귀진인데 지금의 내가 완벽한 반박귀진을 이룬 것 같다. 

“주인에게서 아무런 힘이 느껴지지 않소. 무슨 존재감을 숨기는 능력을 얻은 거요?” 

“그럴 리가 있겠냐.” 

“한 달 전만 해도 새어나오던 위압감이 완전히 사라졌소. 이제 주인이 뒷골목에 가면 ‘이 자식아. 왜 꼬라보냐.’라고 하면서 시비 거는 양아치가 있을 거요.” 

“하하하!” 

포메라의 예시가 너무 현실적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정말 녀석의 말대로 그런 놈이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뭔가를 이룬 것 같군. 축하하오.” 

“고맙다. 이거 난 다 썼으니, 이제 가져가.” 

“어, 어!” 

포메라에게 무릎에 있던 드래곤 하트를 던져주었다. 녀석은 뼈마디를 떨며 간신히 드래곤 하트를 받았다. 

“드, 드래곤 하트를 던지는 인간은 아니, 드래곤 하트를 던지는 생명체는 주인밖에 없을 거요. 드래곤들도 그렇게 막 대하진 않을 텐데...” 

포메라는 날 슬쩍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피부가 있었다면 분명 크게 인상을 쓰고 있었을 거다. 

“언데드들 복구는 잘 되고 있어?” 

“그렇소. 복구도 전부 끝냈고 용아병과 용골병도 완성시켰소.” 

“결국 만들었군.” 

“주인이 본드래곤에게 너무 큰 피해를 입혀서 조금 작게 만들다보니, 뼈와 이빨이 남아서 만들어 봤소. 구경 한 번 해보시겠소?” 

“구경?” 

포메라를 돌려보내려 할 때 녀석이 갑자기 구경을 하겠냐고 물어왔다. 녀석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꽤나 잘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좋아.” 

이젠 내 것이 된 본드래곤과 용아병을 비롯한 새로운 언데드들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놀랄 거요. 손을 잡으시오.” 

포메라의 작은 손뼈를 잡았다. 녀석은 눈을 감고 워프의 주문을 외워서 록스의 해안 동굴로 이동했다. 

“미안하지만, 좀 멀리 가야하오.” 

동굴에 도착하자, 포메라가 나를 돌아보고 여유롭게 말했다. 

“멀리?” 

“그렇소. 본드래곤과 언데드들을 강화시키기 위해 지금은 다른 곳에 두었소.” 

“그럼 북해에 가져다 놨겠네.” 

“허억! 그, 그걸 어떻게...” 

내 대답을 들은 포메라가 뒤로 자빠졌다. 내가 북해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의외였나 보다. 

“뻔하지. 언데드들에게 힘을 주는 건 냉기니까. 냉기로는 북해가 최고잖아.” 

“주인은 진정 무서운 인간이오. 모르는 게 없어.” 

포메라는 더욱 새하얗게 변한 두개골을 절래절래 흔들며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녀석을 따라 안으로 가자 사람 3명 정도가 들어갈 만한 마법진이 보였다. 

“북해로 이동하는 왕복 마법진이오. 너무 멀어서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만들어놓았소.” 

“맞아. 멀긴 하지.” 

록스와 북해는 거의 극과 극으로 떨어져있으니, 단발성 마법진인 아니라 몇 번 사용할 수 있는 내구성 있는 마법진을 설치해 둔 모양이다. 

30분정도 기다리고 있으니, 마법진에서 푸른빛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 됐소. 들어오시오.” 

포메라의 손짓을 따라서 마법진 안에 들어갔다. 

“거리가 멀다보니, 좀 흔들릴 거요.” 

“한 두 번이냐.” 

“크흠, 전에도 말했지만 이동은 내 전문이 아니라...” 

“됐으니까. 빨리 가자.” 

“끄응, 알겠소.” 

포메라가 만마의 창을 꺼내 땅을 내리치자 마법진의 빛이 우리를 감쌌다. 녀석의 엄살과는 다르게 진동은 크지 않았다. 

워프통로에서 1분정도 대기하고 있으니, 세상이 바뀌었다. 

“하아...” 

북해에 도착하자,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얗고 거친 숨결이 보였다. 

“멋지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푸른빛이 도는 얼음의 산과 언덕이었고, 바로 앞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싸늘한 냉기의 바다가 보이고 있었다. 

“여긴 북해의 중앙부분이라, 인간은 아무도 없소. 마음대로 행동해도 상관없을 거요.” 

“그래?” 

“근데 춥지 않소? 견디기 힘들 텐데?” 

포메라는 얇은 무복을 입은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녀석의 걱정과 달리, 난 추위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천무지체에 붙어있는 수화불침에 명룡의 보의에 달려있는 저항효과로 아주 쾌적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난 괜찮아.” 

“저, 정말이오?” 

“그래. 약간 쌀쌀한 정도?” 

“후우, 내가 괜히 걱정했지. 한참 전에 인간을 넘어선 괴물인데...” 

포메라는 내 위아래를 훑어보고서 한숨을 내쉬고 바다에 발을 담갔다. 

“그 안에 있어?” 

“그렇소. 정말 신기하게도 북해의 모든 장소에서 가장 온도가 낮은 곳은 이 물 속이오. 얼지 않는 것이 정말 신기한 일이오.” 

포메라를 따라 바다에 발을 담갔다. 조금 냉기가 느껴졌지만 별로 상관없을 정도였다. 

“들어올 필요 없소. 가지고 나올 테니.” 

“그게 낫겠네.” 

추위는 상관없었지만, 옷이 젖는 게 귀찮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괴물이야. 괴물...” 

포메라는 이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서 바다로 들어갔다. 

촤아아악! 

아름다움을 넘어 화려하기까지 한 주변 경관을 눈에 담고 있을 때 바다가 거칠게 흔들렸다. 

콰아아아아! 

거대한 파도와 함께 수십의 언데드가 수면 밖으로 튀어나왔다. 

차악! 

포메라의 마력을 받은 언데드들은 일제히 내 앞으로 걸어와서 무릎을 꿇었다. 기사들이 내게 무릎을 꿇고 있는 것 같았다. 

새로 만든 용아병과 용골병인지, 색이 다르고 굉장히 튼튼해 보이는 해골전사들이 보였다. 그 뒤에는 록스 습격 사건때 보았던 괴수들과 몬스터들이 뼈만 남은 채 보이고 있었다. 

“멋지긴 하네.” 

콰과과과과! 

수십의 언데드가 나온 것보다 더 큰 파도가 몰아쳤다. 흡사 해일이 이는 것 같았다. 

쿠구구구구. 

파도가 내린 자리엔 거대하고도 거대한 본드래곤이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가라.” 

본드래곤의 머리에 타고 있는 포메라가 손짓을 하자 본드래곤이 내 뒤에 있는 빙하에 내려섰다. 

쿠웅! 

에이션트급 드래곤으로 만들었는지, 다시 봐도 정말 거대한 놈이다. 

“새로운 언데드들은 괜찮소?” 

“나쁘지 않네. 지능도 괜찮은 거 같고.” 

“모두 이 창 덕분이오. 정말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소. 물론 쓸 때 조심해야하지만.” 

“그래. 먹히지 않게 조심해. 그런데 본드래곤 크기가 생각보다 줄지 않았네.” 

“크기를 맞추며, 튼튼하게 만드느라 고생했소. 이전에 쓰던 자는 만들기만 하고 관리는 대충한 것 같소. 제대로 관리했다면 더 강했을 거요.” 

“그건 기쁜 소식이로군.” 

본드래곤의 크기는 조금 작아졌지만 힘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소리였다.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넣어봐.” 

“알겠소. 정말 떨리는군.” 

포메라는 손뼈를 덜덜 떨며 드래곤 하트를 띄워 본드래곤의 목에 조립시켰다. 

파아아아! 

본드래곤의 전신에서 오색 빛의 마나가 번쩍였다. 서로의 색을 자랑하던 다섯 가지 빛들은 섞이기 시작하더니, 새까만 검은색이 되어 본드래곤의 전신을 덮었다. 놈의 전신에 어둠의 마나가 씌워졌다. 

“크르르르...” 

본드래곤의 눈과 입에서 청색의 불꽃이 일렁거렸다. 드디어 본드래곤에게 새로운 생이 들어간 거다. 

“됐소! 됐다고! 본드래곤이오! 내가 본드래곤을 다루고 있소!” 

포메라가 만마의 창을 장대 삼아 높이뛰기를 하고 있었다. 장난감 선물을 받은 아이가 기뻐서 방방 뛰는 것 같다. 

“그래. 수고했다.” 

본드래곤의 위압감 있는 모습에 나도 살짝 떨렸다. 적으로 봤을 때와 달리 내 편이라는 게 엄청난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역시 내 본드래곤. 멋지네.” 

“흐, 흠...” 

포메라가 나를 째려보았다. 녀석은 나와 눈이 치자마자 고개를 바다 쪽으로 돌려버렸다. 

“다 봤으니, 이제 넣어. 돌아가...” 

빙긋 웃고 가이린으로 돌아가자고 하려 할 때였다. 저 먼 바다 쪽에서 숨이 턱 막힐 정도의 마나가 일렁였다. 

촤아아아악! 

웅장한 마나가 느껴진 곳에서부터 내가 있는 빙하 앞까지 바다가 일자로 갈라졌다. 모세의 기적을 눈앞에서 보는 기분이다. 

쿠구구구구. 

묵직한 존재감을 퍼뜨리는 남자가 쪼개진 바다 사이를 걸어오고 있었다. 너무도 거대한 마나를 두르고 있어 그의 발이 닿을 때마다 대지가 파여 나간다. 

외형은 남자지만, 저건 절대 인간일 수가 없다. 놀란 마음을 침착하게 다잡고 창조주의 눈을 사용했다. 

“아...” 

그의 정체를 보자마자, 안정시킨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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