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8화 팔성을 이루다. (188/241)

팔성을 이루다.

건틀릿에 들어있던 키아믹의 힘을 흡수한지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의 시간동안 영주 업무를 꾸준히 하면서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를 칠성의 꼭대기까지 끌어올렸다. 

바로 오늘 팔성에 도전하기 위해서 월간회의를 당겨서 하고 있는 중이다. 

“마나석 재고는 좀 쌓였나?” 

책장 앞에서 허리를 쭉 펴고 있던 페루가 앞으로 나왔다. 

“네. 아시다시피 금탑과 독점 계약을 했기 때문에 상당한 양의 마나석이 쌓여있는 상태입니다. 이제 조금식 물량을 푸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페루의 말대로 가이린은 마나석 광산에서 나오는 최상급 마나석을 금탑에만 팔고 있는 상태다. 채굴하는 양에 비해 파는 양이 적으니 마나석이 쌓일 수밖에 없다. 

“금탑의 마법사분들이 저희 마나석이 굉장히 좋다고 소문을 내셔서, 지금도 판매문의를 보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거야 당연히 알고 있지.” 

가이린에서 채굴하는 마나석은 질이 좋다고 소문이 났지만 내가 물량을 풀지 않아서 금탑을 제외한 어디에서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가이린의 최상급 마나석은 그 희소가치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중이다. 

“지금 판매를 시작한다면 정말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조만간 다른 장소에서도 마나석 광산이 열리게 된다. 그전에 쌓인 물량을 판매하는 것이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알겠어. 그거라면 해결 해줄 상인이 있어. 조만간 부를게.” 

“네? 유렌님이 아는 상인도 있으십니까?” 

“나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 

“헉! 아, 아니 그게 아닙니다!” 

내가 표정을 굳히자, 페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녀석은 손을 내저으며 앞으로 나왔다. 

“농담이야. 뭘 그렇게 과민반응 해.” 

“하...” 

“어쨌든 부를 사람은 있으니, 마나석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내가 부를 사람은 사천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모카건이다. 조만간 그를 불러 상회에 대한 일들과 마나석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다. 

“근데 그 상인이 누구죠?” 

“제국 수도에 터를 잡고 있는 사천 상회의 회주.” 

“지, 지금 사천상회의 회주라고 하셨습니까?” 

“사천상회를 알아?” 

“당연하죠! 사천상회는 지금 대륙에서 떠오르는 신성이에요. 큼지막한 거래도 많이 맡고 있고, 뒤늦게 시작했지만 십대 상회들을 바짝 쫓고 있어요.” 

페루는 자신이 사천상회의 상인이라도 된 것처럼 눈을 빛내며 흥분하고 있었다. 

페루의 말을 들으니, 모카건이 사천상회의 몸집을 몇 배로 불려놓은 모양이다. 가진 돈을 쏟아 부어 밀어준 보람이 있다. 

“근데 사천상회의 회주는 제국사람인데 유렌님하고 안면이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사막을 싸돌아다니다가 인연을 맺었지. 너도 안다고 했으니 네가 불러. 내가 찾는다고 하면 무조건 올 거야.” 

“알겠습니다!” 

페루에게 사천상회의 진짜 주인은 나라고 말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졌다. 모카건이 왔을 때 페루에게 말을 해줘야겠다.

“신규 병사들의 상태는?” 

페루가 물러나고 아린이 앞으로 나왔다. 

“신규 병사의 기본훈련은 성공적으로 끝냈고, 장비 지급도 완료했습니다. 병사들은 각자 정해진 위치에서 임시 임무를 수행중입니다.” 

“다행이네. 새로 받아들인 기사들은 적응 잘하고 있지?” 

“기사들은 유렌님을 존경해서 왔기 때문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훈련은 저와 크라이드, 브리카가 번갈아가면 시키고 있습니다.” 

“훈련은 잘 따라와?” 

“대부분의 기사들은 잘 따라오지만, 몇 명의 기사들이 말썽을 부려서 다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전부 열심히 수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린이 말하는 다른 방법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자신감 있는 표정을 보니, 줘 패는 게 분명했다. 

“그, 그래. 그럼 계속 수고해주고.” 

“유렌님. 록스 습격 사건 때 도와주신 분들을 모셔서 파티를 여는 건 언제 하실 생각이십니까? 몇 분께서 언제 하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아, 그것도 해야지.” 

록스 습격 사건 이후 한 달이 넘게 지났다. 이제 사람들의 피로도 풀렸을 테니, 불러서 보답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날짜는 언제로 할까요?” 

“준비 할 시간도 필요하니, 한 달 뒤로 잡아.” 

“네!” 

“난 파티에 대해 전혀 모르니, 페루. 네게 맡길게. 파이란 관리관하고 상의해서 잘 준비해줘.” 

“예산은 어떻게 할까요?” 

“팍팍 써. 하는 김에 마을에도 축제를 열어주고.” 

“알겠습니다!” 

돈을 쓰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페루는 흡족한 얼굴이 되어 뒤로 물러났다. 

나를 돕기 위해 와준 사람들에게는 돈이 아깝지 않다. 가이린의 재정이 부족한 것도 아니니, 얼마를 써도 상관없다. 

“모카건도 그 파티에 맞춰서 불러줘.”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달 회의 끝. 모두 나가보도록.”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동안 개인 연무장에 있을 테니, 그 사이에 발생하는 일들은 알아서 처리해.” 

연무장에 간다고 하자, 아린과 페루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페루는 질렸다는 듯 혀를 내밀었다. 

“또 가십니까?” 

“그러게요. 요새 연무장에 엄청 자주가세요.” 

“그 동안은 준비였고, 오늘이 진짜.” 

만독자전신기 팔성에 도전할 준비는 모두 끝내놓았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오늘은 무조건 시도한다. 

“다시 볼 때 많이 변해 있을 테니, 놀라지 말라고.” 

** 

“후욱...” 

연무장의 천장을 올려보며 뜨거운 한 숨을 내쉬었다. 

“전투 경험 100%” 

최근에 싸운 놈의 수준이 수준이다 보니, 당천위의 전투 경험의 경험치가 전부 차버렸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는 밤을 새어가며 수련해서 칠성의 꼭대기까지 채워놓았다. 

당천위의 전투 경험 100%와 칠성의 막바지에 도달한 만독자전신기가 모였다. 

부족한 건 약간의 내공이었는데 그걸 해결 해 줄 건 내 눈앞에 있는 큼지막하고 새하얀 뼈였다. 

“드래곤 하트. 이걸 쓰는 날이 올 줄이야.” 

드래곤 하트는 판타지 소설에서 꼭 한 번 씩 등장하는 최고의 기연이다. 이 드래곤 하트를 내가 쓰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휴우...” 

하늘로 올라가는 풍선처럼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천천히 심호흡을 한 뒤 드래곤 하트를 양손으로 잡아 무릎에 올려놓았다. 

화아악! 

정화시켜 놓은 보람이 있는지, 드래곤 하트에선 순수한 자연의 마나만 느껴지고 있었다. 

드래곤 하트엔 크기에 비해 상상하기도 힘든 거대한 양의 마나가 들어있다. 소설에서 드래곤 하트를 얻고 환골탈태를 했던 게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우우웅.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만독자전신기를 운용했다. 용솟음치는 내력이 드래곤 하트의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드래곤 하트 안에 있는 웅대한 마나가 내 몸으로 노도와 같이 밀려왔다. 막대한 마나로 인해 혈도가 터질 것처럼 뜨거워졌다. 

쿠구구구구. 

상당히 고통스럽긴 했지만, 그동안 많은 일들을 겪어서 그런지 버틸만했다. 드래곤 하트의 마나를 흡수해서 내 단전을 꽉꽉 채워나갔다. 

드래곤 하트의 마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단전을 꽉 채워버리고도 힘이 남아 끊임없이 대주천을 돌았다. 단전과 혈도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빠지지직! 

만독자전신기의 내력이 무한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극성의 뇌기와 지독한 독기가 차올라서 혼이 나갈 것처럼 아찔해졌다. 혀를 살짝 깨물어서 정신을 차렸다. 

뿌드득.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물며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 정신을 놓아버리면 주화입마가 아니라 죽을지도 모른다. 

퍼어엉! 

몸속에 있는 무언가가 시원하게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실제 있는 장기나 뼈가 아니라, 심상 속의 벽이 터지는 소리였다. 

퍼버버벙! 

벽이 연속으로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내 정신은 무아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번쩍. 

눈을 뜨자 이젠 익숙하기까지 한 정신세계가 보였다. 

“저건...” 

정신세계의 한쪽에 극장의 스크린처럼 화면이 보이고 있었고, 그 화면에는 내가 나오고 있었다. 

첫 번째 장면은 처음 록스에서 깨어났을 때다. 아린을 보고 당황에 잠긴 표정이 보인다. 그 장면 이후로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제 4 연무장으로 도망가서 걷기를 시작했을 때, 사천당가 특성이 개방 됐을 때, 오크 투사를 잡아 일리아를 구했을 때, 샤크라이 킹을 잡아 처음으로 깨진 방에 갔을 때, 이레아를 도와 마계수를 잡았을 때, 많은 준비 끝에 세피로스의 베일을 잡았을 때. 

내가 해결하고 겪었던 수많은 장면들이 스쳐지나간다. 전투, 대화, 사건, 관계 그 모든 것이 보이고 있었다. 

저러고도 살았다니, 나 진짜 운이 좋았네. 

단순히 장면이 보이는 게 아니라, 그 순간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도 보였다. 제 3자의 위치에서 보니, 아쉬운 일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나도 정말 정상은 아니야. 

비수 하나 믿고 미친 척 돌진한 적도 있고,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달려들기도 했다. 그러고도 살아남은 것을 보니, 내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난 단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내 모습에 끝까지 집중했다. 

거의 다 왔군.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화면 속의 나는 록스의 습격을 막아냈고, 당천위를 강림시켜 라스마저 처리해버렸다. 

탁. 

라스가 쓰러지자, 화면 속의 내가 멈춰버렸다. 

저벅. 

저벅. 

화면 속의 내가 스크린을 뚫고 걸어 나와 내 앞에 섰다. 

“아...” 

내 앞에선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몸에 셀 수 없이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피곤으로 인해 눈 밑이 검게 변해있었으며, 마음마저 지쳐 보였다. 

스크린에서 나온 나는 뭔가가 부족해 보였다. 

지금 저 모습이 내 모습이라니,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거울을 보지 않은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래. 그랬지...” 

왜 내 모습이 저렇게 힘들게 보이는지 알 것 같았다. 

“내 원래의 목표는... 살아남는 거였어.” 

현실의 작가에서 유렌이 된 이후, 내 원래의 목표는 라시드에게서 살아남고,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위험한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 수련을 시작했을 뿐이데, 어쩌다보니 스토리의 중심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 있었고,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소설의 주인공은 적에게 세뇌 당했고, 죽어야 할 엑스트라가 세상을 구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 웃긴 일이다. 

“난 아직도 제대로 마음을 정하지 못했어.” 

우연히 끌려온 세계, 살아남기 위해 수련한 무공, 어쩌다가 참여한 사건들, 구할 수 있었기에 구한 사람들. 

난 멍청하게도 아직 이 세계를 단순한 소설이라 여기고 있었고, 내 일이 아니라 잠시 주인공의 대리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겠지.” 

다시 내 앞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내 반응을 기다리는지 미동도 없었다. 

“남의 일이 아니야. 이건 전부 내 일이고, 내 삶이다. 내 목표는 살아남는 것을 벗어나, 이 세계를 구해 원래대로 돌리는 것이다.” 

내 선언이 끝나자, 마주보고 있는 정신세계의 내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상처가 지워지고, 어두웠던 피부와 표정이 밝게 변했다. 

제대로 된 목표가 다시 내게 생기를 주고 있었다. 

그가 빙긋 웃으며 왼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나도 똑같이 왼 발을 내뻗었다. 세상이 회전하기 시작하며 실제의 나와 정신세계의 내가 합쳐지기 시작했다. 

쩌저적! 

정신을 차리자, 정신세계의 내가 사라졌고 새하얗던 정신세계가 다양한 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 다양한 모습이 진짜 나의 정신세계였다. 

“아...” 

다시 눈을 감았다가 뜨니, 정신세계에서 벗어나 연무장의 회색 벽이 보였다. 

[만독자전신기가 팔성에 도달했습니다.] 

[조화경의 극의에 이르렀습니다.] 

[깨지지 않는 정신을 얻었습니다.] 

[하단전과 중단전이 합쳐집니다.] 

[지금부터 더욱 많은 내력이 모을 수 있으며, 내력의 회복 속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상단전의 크기가 확장됩니다.] 

[연위결의 성취가 크게 상승합니다.] 

[당가십독 - 칠보추혼독(七步追魂毒)이 개방됩니다.] 

많은 메시지가 떴지만 보지 않아도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게 팔성인가...” 

내 손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 익힌 것과 익히지 않은 모든 것을 행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내 몸속에 대륙 전체를 호령할 힘이 약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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