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과 다른 습격 (4)
“후후.”
자신에게 날아오는 수십 개의 마법 속에서 당천위는 웃었다. 그게 무엇인지, 어떤 위력을 가졌는지, 어떤 효과를 내는지도 모르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피워냈다.
뭐든 상관없다는 느낌이다.
빠직.
그의 손에 들린 귀왕살에서 뇌광이 번쩍였다.
광뢰에 대해 표현을 하자면 그저 빛이었다.
무엇보다도 빠른 빛.
광뢰는 다가오는 모든 마법들을 관통해버렸다. 화염의 총알도, 얼음의 구슬도, 번개의 창도, 4대원소로 만들어진 검마저 뚫어버렸다.
라스가 방어를 위해 만들어놓은 마나 장벽을 깨부수고, 놈의 몸을 몇 겹으로 덮은 마나 갑옷을 찢었다.
빠지지직!
라스의 마지막 보호마법까지 파괴한 광뢰는 그대로 놈의 핵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커허헉!”
라스는 핵이 부서지고 나서야 자신이 공격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허...
수십 개의 마법을 돌파해서 라스의 핵을 뚫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광뢰에 맞고 나서야 라스가 알아차린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제 피하면 되겠어.”
라스가 죽어가며 우리에게 날아오는 마법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당천위는 그중에서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만한 마법들에 비수를 던져 처리해버렸다. 끝까지 빈틈이 없었다.
“기가 흩어지고 있는 것을 보니, 끝이로군.”
-심장에 있는 핵이 파괴되었으니 끝입니다.
“역시.”
당천위는 추락하는 라스를 무감정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오히려 바로 밑에 부서져있는 본드래곤을 보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영 아깝단 말이지.”
-네?
“저 용말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한 번 싸워보고 싶었다니까.”
-농담 아니셨습니까?
“농담은 무슨. 저런 거 말고 진짜로 살아있는 용은 저 생선 가시 같은 놈보다는 훨씬 강하겠지?”
-그렇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극뢰포라고 해도 진짜 드래곤의 브레스는 이길 수는 없습니다.
내 말을 들은 당천위가 피식 웃었다.
“그런 거야 당연히 알고 있지. 난 놈의 기를 살피고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극뢰포를 쓴 거다. 상황이 바뀌면 그에 맞게 싸우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
당천위가 본드래곤에게 주먹질을 할 때 자신의 힘을 믿고 단순하게 움직인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전투의 순간순간 알맞은 방법으로 싸우고 있었다.
“또 뭐 나오는 거 없나?”
-더 이상은 없을 겁니다. 있어서도 안 되구요.
“그렇긴 하네. 도시가 아주 난리가 났어.”
사실 전투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사람들은 몇 번이나 자신의 죽음을 느꼈고, 죽음의 고비를 넘었다. 이 이상 일이 터지면 정말 위험하다.
-후...
오늘 싸운 강자만 해도 마탑 앞에서 위빅, 후작가에서 마피언과 오비스에 칠죄종 라스까지 정말이지 난리가 났다.
“우와아아아아!”
“유렌! 유렌!”
“유렌님! 정말 대단했습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투가 끝나자 사람들이 엄청난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손을 들어 올리며 내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을 구한 건 암왕님인데, 제 이름이 불리니까 민망하네요.
“저들을 구하기 위해 너도 격한 싸움을 했으면서 무슨 소리냐. 내 앞에선 겸손 떨 필요 없다고 했지?”
-그러셨죠.
“너 정도 실력이라면 겸손은 오히려 독이다. 말했듯이 항상 당당하게 행동하도록.”
-알겠습니다. 제가 한 것처럼 당당하게 나가겠습니다.
“하하하!”
당천위는 시원하게 웃고서는 천천히 땅으로 내려갔다. 그는 내 내공을 쓰고 있지만 사용방식과 감각이 차원이 달랐다. 배우기 위해서 그의 세세한 움직임 모두를 자세히 관찰 했다.
탁.
“음?”
땅에 다리가 닿자마자 내 몸의 통제권이 넘어왔다. 당천위가 말도 없이 갔다는 생각에 아쉬워 할 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안 나가지는 거지?
“아직 계셨습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남아 있군. 네가 그랬듯이 네 시야를 통해 보고 있다.
“혹시 계속 계시는 겁니까?”
-그건 아니다. 내 혼이 흔들리고 있거든. 일시적인 현상이라, 곧 네 몸을 떠나게 될 거다.
“아...”
강림 같은 게 아니라도, 당천위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수련을 하는데 큰 힘이 되어줄 걸 알기에 많이 아쉬웠다.
-떠날 사람은 떠나는 게 맞지. 아이도 아니고, 뭐 그런 걸 아쉬워하느냐. 후후.
혼이 겹쳐있었기 때문에 당천위의 감정을 알 수 있었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그 역시 꽤나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유렌!”
일리아가 전력을 다해 달려오고 있었다. 갑옷은 고철처럼 찌그러졌고, 손에서는 피가 흐른다. 얼굴에도 상처가 나있었다.
나를 돕기 위해 와서 저런 상처를 입은 것을 보니 마음이 굉장히 쓰렸다.
“일리아.”
“괜찮아?”
능력에 대한 것, 내게 변화가 생긴 것, 괴물을 이긴 것 그 모든 것을 제쳐놓고 내 상태부터 묻는 일리아의 목소리를 듣자 가슴 한편이 따뜻해진 느낌이 든다.
“너야 말로 괜찮아? 얼굴에 상처가 났는데.”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일리아가 뺨에 난 상처를 손등으로 닦으며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나는 됐고, 너 다친데 없냐고 물었잖아.”
“한 대도 안 맞은 거 너도 봤잖아.”
“그렇긴 한데, 좀 이상해서...”
일리아는 내 주위를 돌며 감별사처럼 내 몸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때도 봤던 아이로군. 너와 무슨 관계냐?
‘음, 제 약혼녀입니다. 저를 도와주기위해 와줬습니다.’
-정말이냐? 너는 딱 봐도 쑥맥이라 혼인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약혼녀가 있었어?
‘아니, 뭐. 집안이 결정한 거라...’
-그러면 뭐 어떠냐. 저 아이도 네게 마음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거기다 저 미모. 무림사화에 견주어도 밀리지 않겠어.
‘하하하...’
당천위는 이 상황이 재밌는지 한층 들뜬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근데 너 뭐하느냐?
‘네?’
-네 약혼자와 사람들을 지켜냈고, 이런 싸움을 끝냈으면 한 번 꼭 안아줘야지.
‘이런 장소에서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
-쯧. 장소가 중요하냐? 상황이 중요하지. 지금이 딱 좋다. 저 아이도 네게 마음이 있다니까.
‘약혼자니까 그렇죠.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이 멍청한 놈아! 에라!
‘헉!’
당천위에겐 아직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었나보다. 그는 내 몸을 확 밀어재껴서 일리아를 껴안게 만들었다.
“아!”
갑작스럽게 품에 안긴 이레아가 당황에 가득 찬 소리를 냈다.
-크하하하!
‘아 진짜!’
짧은 시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 상태에서 물러나는 게 더 이상했기 때문에 그녀를 살짝 안았다.
“너, 너...”
일리아는 크게 당황했는지 목소리가 덜덜 떨려나왔다. 옆을 곁눈질해 보니 귀와 목이 새빨개져있었다.
“수, 수고했어. 유렌...”
일리아는 가만히 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수고했다하며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 손에 그녀의 감정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크으, 얼마나 좋으냐. 내가 말했잖아. 약혼자라고 해도 억지로 좋아하는 척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 아이는 널 정말 좋아하고 있다니까.
‘좀 조용히 해요!’
-하하하!
싸울 때는 무지하게 멋있더니, 연애에 대해 말하는 건 동네 아저씨와 다를 바가 없다. 당천위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음...”
“흠...”
일리아는 나와 떨어지자마자 고개를 획하고 돌렸다. 빨개진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나, 난 저쪽에 우리 기사들을 보러 갈게!”
“어...”
일리아는 날 쳐다보지 않고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놔둬. 부끄러워 그러는 거다.
“이제 그런 일 하지마세요.”
-그런 일이 뭐냐?
“아까...”
“유렌님!”
이번에 찾아온 사람은 이레아였다. 그녀 역시 전투복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었고 상처가 많았다. 스스로를 회복시킬 수 있음에도 잊은 모양이다.
“괜찮으신가요? 아까 뭔가 달라 보이셨는데...”
“아...”
이레아가 내 몸에 당천위가 들어갔을 때를 말하고 있었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오히려 성녀님이 상처가 많네요.”
“이런 건 바로 치료할 수 있어요. 그것보다 저 아까 정말 감동받았어요.”
“감동이요? 아...”
그녀가 감동 받았다고 하는 건 당천위가 만천화우 광화로 운석을 부숴서 모두를 구했을 때 일거다.
“운석 때는...”
“그 용대가리의 뼈들을 아주 뽀사 버리셨을 때 정말 멋있었어요. 맞아요. 씹어 먹고 뜯어먹을 언데드들은 그렇게 부숴버려야 해요.”
“아...”
이레아는 운석이 아니라, 본드래곤을 주먹으로 날려버린 것에 감동을 받았나보다. 역시 언데드 혐오에 걸린 사람다웠다.
“정말 대단하세요.”
-이 귀여운 아이는 또 누구냐?
‘이레아님이라고 제 일을 많이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주셨죠. 저렇게 보여도 굉장히 강합니다.’
-그렇구나. 잘 단련되어있어.
당천위는 그 이후에 이어진 나와 이레아의 대화를 듣다가 혀를 찼다.
-쯧쯧. 유렌 이 귀여운 아이도 네게 마음이 있는데?
‘네?’
-눈빛을 빛내고 있고, 심장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뛰고 있잖아. 너 약혼자도 있는 놈이 뭐하고 돌아다니는 거냐?
‘아니, 그게...’
-에라, 이놈아!
당천위가 또 밀 것 같아서 몸에 힘을 주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소리만 치고 끝냈다.
-내가 또 젊었을 적에 인기가 많았거든. 그래서 네게...
“유렌님!”
당천위가 자기 자랑을 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사람이 다가왔다. 어깨위에 엘라임을 올려놓은 로디엔이었다.
“주변에 건물 잔해를 치우고 오느라 늦었어요. 어디 몸은 괜찮으세요?”
로디엔은 오자마자 내 손을 잡고 꽉 쥐었다. 커다란 눈망울에서 당장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전 괜찮아요.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에요. 유렌님이 엘루나에서 해주신 게 얼마나 큰 데요! 이 정돈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까 운석이 떨어질 때는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유렌님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운석을 가루로 만드셨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볼 때마다 강해지시는 군요.”
로디엔은 죽음의 위기에서 운석을 파괴한 것에 큰 감동을 느꼈나보다. 내 손을 잡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유렌.
‘네?’
조용히 로디엔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당천위가 말을 걸었다.
-이 귀가 뾰족한 예쁜 아이도 마찬가진데...
‘어...’
-그리고 말이다. 좀 전의 귀여운 아이가 감동받은 것도, 이 귀가 뾰족한 아이가 감동받은 것도 둘 다 내가 한 건데 왜 네가 잘난 척하냐?
‘당당해지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래서 제가 한 것처럼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윽...
당천위는 할 말이 없는지 조용히 있다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도둑놈...
**
마을에 남아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귀가 아플 정도의 환호를 들었다. 모두 죽을 위기를 구해냈기 때문인지 여태까지 들었던 환호 중 가장 컸던 것 같다.
“유렌님!”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 할 때 페루가 달려왔다. 숨은 차보였지만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택 내부와 후작님은 무사합니다. 전부 끝났어요.”
“그래. 다행이구나.”
“그, 그리고 유렌님이 말씀해주신 대로 독공을 운용했더니 몬스터들을 물리칠 수 있었어요. 처음엔...”
아이가 상을 받은 것을 자랑하듯, 페루는 자신이 뭘 어떻게 했는지 설명했다. 미소를 지으며 녀석이 말하는 것을 들어주었다.
-이 친구는...
‘전에 말씀드린 당가의 선을 이은 녀석입니다. 이제 3성에 올랐죠.’
-그래. 3성이로군...
당천위는 별말을 하지 않고 페루가 말하는 것을 듣고만 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 너무 여러 가지라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렌.
페루에게 잘했다고 말을 해주려 할 때 당천위가 나를 불렀다.
‘네.’
-잠시만 네 몸을 써도 되겠느냐?
‘...그러십시오.’
-고맙다.
당천위와 몸의 통제권을 바꿨다. 그는 통제권을 얻자마자 페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심법은 안정이 중요하다. 항상 마음을 편하고 여유롭게 만든 후 심법을 운용하거라. 급한 마음은 독이다.”
“아, 네!”
“독의 개수와 경지를 늘리기 보다는, 독을 어떻게 쓸지, 어떤 상황에 어떤 독을 써야 할지를 생각 하 거라. 그 연습이 되면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넌 잘 할 수 있을 거다.”
당천위는 다시 한 번 페루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내게 몸의 권한을 넘겨주었다.
-고맙다.
‘아닙니다.’
-혼이 뜨기 시작하는구나. 이제 갈 때가 됐다. 저 아이를 보기 위해 남아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암왕님...’
-또 볼 수 있을 게다. 그동안 잘 지내고. 내가 네 몸으로 행한 일들을 할 수 있게 노력해라.
‘알겠습니다.’
-그럼 또 보자꾸나.
당천위가 내 몸을 떠난 것이 느껴졌다.
[소혼(召魂)이 해제되었습니다.]
[당천위의 전투 경험이 천무지체에 녹아들었습니다.]
[새로운 전투 경험이 생겨납니다.]
[만천화우 - 광화가 개방됩니다.]
[광뢰가 개방됩니다.]
메시지가 뜨는 것을 본 후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