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과 다른 습격 (3)
빠직.
유렌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바로 소혼보주를 발동시켰다. 심장언저리에 있는 무언가가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소호보주가 발동합니다.]
[연혼 대상이 소혼을 받아들입니다.]
[연혼1/3]
[소혼대상 천수암왕 당천위]
콰아아앙!
하늘을 뚫어버린 거대한 빛의 기둥이 사기 가득한 구름을 갈라버리고 유렌에게 떨어져내렸다.
고오오오오!
절망에 먹혀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씻어내듯 빛의 기둥은 광대했고 성스러웠다. 빛을 본 사람들은 잠들어버린 희망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 빛은...”
유렌을 포함한 모두를 이미 죽은 목숨이라 생각했던 라스는 빛의 기둥을 보며 뭔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등골이 오싹하고 손에서 땀이 새어나왔다.
“뭐, 뭐야!”
허공에 떠있던 라스는 잠시 균형을 잃었다.
밤하늘을 이루는 별의 그물이 해일을 맞은 듯 출렁거렸다. 어둠에 먹힌 구름이 지워지고, 죽어가던 그믐달이 찬란한 빛을 발한다. 운명을 이루는 별자리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세상의 법칙이 유렌 앞에서 어긋나고 있었다. 인세의 규율을 벗어난 무언가가 그에게 스며들었다.
쿠우우우우.
땅을 갈라버리던 빛의 기둥이 사라지고 유렌의 모습 드러났다. 그의 눈빛은 평소보다 훨씬 가라앉아 있었다.
“다시 오다니.”
천수암왕 당천위가 유렌의 몸으로 다시 한 번 이 땅에 강림했다.
“유, 유렌?”
“유렌님!”
일리아와 이레아가 유렌을 불렀지만, 당천위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떨어지는 운석을 보았다.
“이번엔 운석인가? 네 세계는 정말 별일이 다 있구나.”
-농담을 할 때가 아닙니다.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아래에 천판이 있습니다.
이번엔 기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렌은 당천위의 시선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빨리 운석을 부숴야 한다.
“조금 늦었는데?”
-네?
“몇 명은 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떻게 할래?”
-저, 정말 하실 수 없습니까?
“후후, 농이다.”
가볍게 웃은 당천위가 천판을 잡아서 살펴보았다. 앞뒤를 돌려보던 그의 입에서 탄성이 들렸다.
“좀 부족하지만 꽤나 잘 만들었구나. 나쁘지 않아.”
운석이 거의 근접했건만 당천위는 천판을 감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누가보면 집에서 감상을 하고 있다 생각할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운석이...
“만천화우를 썼구나. 반쪽이지만 첫 번째 도전이라 생각하면 나쁘지 않아. 아니, 굉장히 훌륭하다.”
어떻게 알았는지 당천위는 유렌이 미완성의 만천화우를 쓴 것을 알고 있었다.
-암왕님!
“걱정마라. 지금부터 해도 늦지 않아. 네가 쓴 흑화(黑花)는 첫 번째다. 두 번째 광화(光花)가 피어나면 속도는 중요치 않아.”
-광화?
우우우웅.
당천위가 천판을 띄웠다.
파아악!
내가 속임수까지 써가며 시간을 벌었던 개화의 과정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천판은 벌써 천개의 암기가 되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여기까진 다음에 할 수 있을 거다. 이제 그 다음을 봐야겠지.”
파아아앙!
천개의 암기에 은은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빛의 크기와 밝기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흡사 벚꽃 잎을 몇 배로 키워놓은 것 같았다.
“아...”
그 강렬한 존재감에 모두가 말을 잃었다.
“저, 저게 뭐야...”
라스는 갑자기 떠오른 검은 판이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으로 나뉘고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 잠시 숨을 멈췄다. 저 꽃잎들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마나가 느껴졌다.
“세상에...”
“아...”
일리아와 이레아는 하늘을 수놓은 빛의 꽃잎을 보고 상황에 맞지 않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유렌이 만든 저 꽃잎들이 이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해 줄 거 같았다.
“만천화우 광화.”
당천위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빛의 꽃잎들이 더욱 활짝 피어났다.
빠지지직!
광화는 천개의 섬광이 되어 운석에 쏘아졌다. 아래가 아닌 위를 향했지만 그 속도는 그야말로 빛살이었다.
광화가 운석 속으로 파고들어갔지만 운석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대로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 대지와의 높이가 7m도 남지 않았다.
“크큭!”
라스는 무표정으로 메테오를 바라보고 있는 유렌을 비웃었다. 뭔가 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너무 늦었다. 이미 운석은 땅에 닿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언데드들을 단숨에 죽인 것엔 놀랐지만 인간인 이상 메테오는 어쩔 수 없다. 저들이 살아 남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남은 인간들을 언데드...”
라스가 후작가에 남은 인간들을 죽이려 가려 할 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뭐야...”
땅에 닿아야 할 운석이 공중에서 멈춰있었다.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깜짝 놀란 라스가 메테오에 마력을 주입했다.
빠드드득.
라스가 마력을 움직여서 메테오를 움직이려는 순간 운석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균열은 메테오의 표면을 가르고 찢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귀가 떨어져나갈 만큼 거대한 굉음이 터지며 운석이 모래처럼 작은 알갱이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
화아아.
운석을 가루로 만든 광화는 벚꽃 잎처럼 잔잔하게 낙화했다.
“아...”
그 모습을 하늘에서 직관한 라스는 할 말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면 땅으로 추락했을 거다. 대체 무슨 일이 터진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고작 저 천개의 빛의 조각들로 운석을 부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운석이 부서졌어!”
“사, 살았어! 살았다!”
“우와아아아아!”
“유렌님이 운석을 뚫어버리셨어!”
자신이 살아남은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적이 앞에 있는 대도 너무 기뻐서 주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 유렌 넌 정말...”
일리아는 고개를 저으며 뒤로 주저앉았다. 몸에 힘이 다 빠진 느낌이다.
“그런 기예가 존재하다니. 인생을 헛 살은 느낌이야.”
후라켄은 운석보다도 만천화우 그 자체에 경악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무의 모든 것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도달할 수 없는 벽을 본 것 같았다.
챠자자쟝!
당천위는 광화를 회수해서 원래의 천판으로 만들 후 손에서 튕겼다.
“잘 봤나?”
-보기 봤는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제 만천화우의 걸음마를 시작했으니 어렵겠지. 열심히 수련 하다보면 알아서 될 거다. 이미 한 번 썼잖아.”
-어떻게 아셨습니까?
“만천화우를 쓰는 혈도가 이미 사용되어 있었으니, 알 수밖에 없지. 근데 넌 왜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군.”
당천위는 이미 유렌의 몸을 확인했는지 그의 실력과 내력이 늘어난 걸 알고 있었다.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저 놈부터 처리해야 합니다.
“알고 있다. 일부러 준비할 시간을 주는 거야.”
유렌이 라스를 가리켰지만 당천위는 알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황하고 있을 때 끝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럼 재미없잖아. 이 세계의 강자와 싸워볼 기회는 많지 않으니까. 후후.”
“유렌님. 지금 누구와 대화를 하시는 거죠?”
당천위는 옆에 다가온 이레아에게 말없이 미소 짓고서 땅을 박쳤다.
탁.
허공에 계단이라도 있는 듯 당천위는 뒷짐을 진채 하늘을 걸어서 올라가고 있었다.
-허공답보?
“이것도 하다보면 된다.”
-전부 하다보면 된다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하하! 진짜인 걸 어떻게 하느냐.”
당천위는 유렌과의 대화가 재밌는지 입가에 미소가 내려오지 않았다.
“저 녀석도 인간이 아니로군. 그때 본 놈과 비슷한 괴령이야.”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라스는 인간의 외형을 가지고 있는데도, 당천위는 놈이 인간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그냥 보인다.”
-아, 진짜...
“훗.”
당천위는 웃으며 올라가서 라스와 마주섰다. 라스의 눈빛에 담긴 가장 큰 감정은 당황이었다.
“너, 너는 누구냐, 아니, 무엇이냐!”
“뭔 개소리를 하는 거지? 난 유렌이다.”
“개소리마라!”
당천위는 피식거리며 유렌의 이름을 말했다. 라스는 그 모습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그의 얼굴에 힘줄이 두드러지게 올라왔다.
번쩍!
라스는 블링크를 사용해서 당천위와 거리를 두었다. 그는 곧바로 다섯 개의 화염구와 네 개의 얼음의 창을 만들어 날려 왔다.
“축지와 비슷한 이동이로군.”
-축지?
“땅을 접어 달리는 술법이다. 뭐 저런 식의 기술은 어렵지 않지.”
콰과과광!
당천위는 두 개의 비수를 던져서 화염구와 얼음의 창을 모조리 부숴버렸다. 그는 바로 라스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큭!”
라스는 다시 블링크를 사용해서 당천위와 좀 더 거리를 두려했다. 그가 사라진 순간 당천위는 비수를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날렸다.
“어, 어떻게!”
라스가 이동하자마자 본 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비수였다. 당천위는 마도서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음에도 유렌보다 빨리 라스의 위치를 찾고 있었다.
번쩍!
라스가 다시 이동을 했지만 놈의 바로 앞에 이미 비수가 도착해있었다. 이번엔 라스도 반응을 하지 못했다.
퍽!
비수는 그대로 라스의 머리를 뚫어버렸고, 그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버렸다.
“그때 그놈보다 훨씬 약하군.”
-저 놈은 말하자면 주술을 쓰는 놈입니다. 그때 그놈은 몸을 쓰는 놈이었습니다. 근데 위치는 어떻게 파악하신 겁니까?
“이 하늘 전체에 내 기감을 퍼뜨려 놨다. 놈이 나타나기 바로 직전에 감각에 잡힌다.
“크아아악! 죽여 버리겠다! 죽여 버리겠어!”
라스는 머리에 구멍이 난 채로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전신이 붉게 변하고 핏줄과 힘줄이 줄줄이 올라왔다. 인간이 아니라 괴물을 보는 것 같았다.
-저놈은 분노 할수록 강해지는 놈입니다. 빨리 처리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 그럼 바로 처리하마.”
당천위가 비수를 들어 올린 순간 하늘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겨났다. 라스가 소환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쿠구구구.
건물보다 거대한 뒷발 내려왔고, 하늘을 덮을 것 같은 뼈의 날개가 드러났다.
“크아아아아!”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두개골 속에 청염의 광화가 타오르고 있었다. 라스가 가진 최강의 소환수 본 드래곤이다.
“저거 그때 네가 말한 용 아니냐?”
-좀 다릅니다. 드래곤이 죽은 시체를 저주로 되살린 겁니다.
“강시로군.”
-비슷합니다. 화골산을 사용하면 바로 녹여버릴 수 있습니다. 화골산을 쓰십시오.
“그렇군. 화골산이라...”
빠지지직!
당천위는 대답은 그렇게 하고서 맨주먹에 뇌기를 두르고 본드래곤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앙!
전뢰상권의 일초 전사권이 본드래곤의 두개골에 터졌다. 본드래곤의 뼈가 과자처럼 부서져 내렸다.
쾅쾅쾅!
쉴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당천위는 본드래곤을 주먹으로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그의 주먹이 터질 때마다 본드래곤의 뼈가 두 개 씩 박살나서 땅으로 떨어져내렸다.
“크으윽! 하늘로 올라가!”
라스의 말에 본드래곤이 더 높은 하늘로 올라갔다. 본드래곤의 입과 허공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프로스트 브레스를 사용하려는 거다.
-암왕님. 저게 말씀드렸던 브레스입니다. 밑에 사람들이 있으니 막아야 합니다!
“그래. 걱정마라.”
파지지직!
당천위는 오른손에 거대한 뇌기를 응집시켰다. 그의 손바닥에서 축구공만한 뇌구가 생성되었다. 뇌구는 공기를 튀겨버릴 것 같은 강렬한 스파크를 만들어냈다.
콰아아아!
빠지지직!
본드래곤이 프로스트 브레스를 쏟아 부을 때 당천위의 극뢰포가 발동했다.
콰아아아앙!
천지를 관통할 두 힘이 충돌했다. 박빙이었지만 뇌기가 터지기 시작하며 극뢰포가 프로스트 브레스의 중심을 뚫어버렸다.
퍼어엉!?
브레스를 뚫어버린 극뢰포는 본드래곤의 두개골마저 부숴버렸다.
“카르륵...”
머리를 잃은 본드래곤이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당천위는 떨어지는 본드래곤의 곁으로 이동했다.
“이건 챙겨야지.”
당천위는 본드래곤의 목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빛나는 뼈를 챙겼다. 드래곤 하트였다.
“죽었는데도 내단이 있군. 이거 고아먹고 단전이나 더 키워라.”
-가, 감사합니다.
본드래곤을 만드는데 필요한 건 드래곤의 뼈와 그 거대한 육체에 마력을 유지해줄 드래곤 하트다.
‘그러고 보니...’
만일 화골산을 썼다면 본드래곤만이 아니라, 드래곤 하트도 날아갔을 거다. 당천위 덕분에 생각지도 않게 드래곤 하트를 생으로 얻어버렸다.
당천위는 그저 싸워보고 싶어서 했던 일이지만, 일이 참 잘 풀렸다.
“크아아아악!”
라스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인간의 외형이 벗겨지고 놈의 모든 힘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분노가 최고조에 이른 것이다.
우웅!
우우웅!
콰아아!
라스의 주변에 마법진이 미친 듯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공격마법이었다.
5서클 파이어 블라스터, 6서클 프로즌 오브, 7서클 썬 플레어, 7서클 라이트닝 스피어, 7서클 쇼크 웨이브에 마지막으로 발현 된 마법들은 8서클 데스 스트레인에 8서클 헤븐즈 소드였다.
강렬하고 유도 기능이 있는 대인 마법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온 마법진이 20개가 넘었다.
“저 녀석은 참 재미없게 싸우는구나.”
당천위는 지루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본드래곤을 잡자 감흥이 떨어진 느낌이다.
“피해도 클 거 같고, 빨리 끝내는 게 좋겠어.”
-맞습니다.
유렌은 당천위가 또 능력을 보자고 할까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바로 끝낼 생각인 모양이다.
“이번에도 잘 보도록 해라. 만천화우보단 약하지만 대인에게 쓰기엔 이것도 나쁘지 않음이니.”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보고 있습니다.
“후후, 너에게 밑천이 다 뜯기는 기분이야.”
당천위는 자신에게 일직선으로 쏟아지는 마법들을 보고서도 빙긋 웃었다. 그의 손엔 어느새 귀왕살이 들려있었다.
“광뢰(光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