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과 다른 습격 (2)
창의 크기는 정상의 범주를 넘어서 실전용이라기보다 장식용이나 의례용 장비 같았다.
가장 큰 특징은 창날과 자루 사이에 박혀있는 회색 두개골이었다. 거인의 머리를 박아놓은 듯 큼지막했고 기괴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우우우우.
창에 박힌 해골의 눈이 번쩍이며 하늘에 뚫린 구멍을 더욱 키우기 시작했다. 암울한 분위기가 퍼져나가고, 음울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젠장. 왜 저놈이!”
저 창의 주인은 에블린과 관계가 없는 놈이다.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는 모르겠다. 놈을 찾고 싶지만 일단 대피를 하는 게 먼저다.
“일리아, 이레아님.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지금 당장 후작가로 대피하세요.”
“네?”
“뭐라고?”
“설명할 시간이 없어. 이동하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후작가로 가. 곧 쏟아져 나올 거야!”
“아, 알겠어.”
“이 녀석도 부탁할게.”
일리아에게 콜린을 넘겨주고, 기린의 등에 올라탔다.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 줘야해. 일리아님도 가시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세요.”
“알겠어요.”
“가자!”
-음...
기린도 하늘의 균열에서 새어나오는 암울한 기운을 느끼고, 군소리 없이 내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저게 대체 무엇이지?
“언데드.”
기린은 저 놈들이 궁금했는지 가면서 질문을 던졌다.
-죽음에서 돌아온 시체들 말이냐?
“맞아. 다만 저 것들은 같은 언데드들보다 2배 이상 강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일단 소환한 놈의 마력이 강력하고, 저 창에도 특별한 효과가 있어.”
하늘에 박혀있는 만마의 창에는 언데드 소환에 특별한 혜택을 주는데다가 소환 중에 공격을 할 수도 없게 보호하는 효과도 있다. 흑마법사에겐 최고의 무기 중 하나다.
찌지지직!
하늘에 생긴 균열은 만마의 창의 효과가 아니라, 이 일을 벌인 놈의 대량 소환마법으로 포메라가 사용하는 어둠의 커튼의 상위 흑마법이다.
“젠장...”
만마의 창의 보호효과로 언데드들이 아래로 내려올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 있는 모든 인원은 후작가로 대비하라!”
마을의 중앙에서 도착해서 모두가 들리도록 지시를 내렸다.
“유렌님?”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전해! 전부 후작가로 대피하라고!”
“아, 알겠습니다.”
아래에 있던 기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내 지시를 전하기 시작했다.
“모두 후작가로 대피하라!”
“유렌님의 지시다! 모두 후작가로 대피하라!”
기린을 타고 마을을 돌며 대피 명령을 내리고 있을 때였다.
쿠구구구구.
마을 전체가 흔들리는 진동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지진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불길한 느낌이다.
“이거 설마...”
콰아아앙!
콰가가가!
건물들 사이사이에 거대한 뼈로 이루어진 벽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한 둘이 아니라, 마을 전체를 뼈로 만들어진 벽들이 감싸버렸다.
-저, 저게 대체 뭐냐!
“본월...”
뼈로 이루어진 벽들은 흑마법사의 소환 마법 본월이다. 다만 원래의 본월보다 크기가 3배는 커보였다. 마법의 위력이 차원이 다른 것을 보니 그놈이 확실했다.
“라스. 그놈이 근처에 있어.”
지금 언데드를 소환하고, 본월을 만든 놈은 칠죄종 분노, 라스다. 최강의 흑마법사이자 원소마법사인 그놈은 나를 지켜보며 상황을 조절하고 있었다.
후작가로 대피하라는 지시를 내리자마자, 본월을 만들어 길을 막은 게 그 증거다.
“예지의 언데드는 이놈들이 아니었을 텐데...”
만마의 창의 소유자 라스가 소환하는 언데드들의 특징은 눈이 붉다는 점이다. 예지에서 그런 내용이 없어서 라스가 이곳에 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설마 칠죄종 놈들 마이라의 예지를 이용한 건가?”
글러트니는 내게 예지능력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놈 정도라면 정보와 상황을 조작해서 마이라의 예지에 가짜정보를 끼워 넣는 것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망할 놈들!”
글러트니는 내가 에블린의 공격을 막아낼 것을 예측해서 평범한 언데드로 방심을 하게하고, 마지막에 라스의 언데드를 소환해서 모든 것을 끝내버릴 생각을 한 거다.
쩌저저적!
하늘의 균열이 더욱더 벌어졌다. 이제 놈들이 쏟아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저 숫자 말도 안 되는군. 어떻게 할 거냐.
“음...”
마을 쪽을 보니, 기사들의 오러로도 본월을 부수는데 한세월이 걸리고 있었다.
콰아앙!
후라켄이나 파에스는 본월을 부술 수 있지만 둘밖에 없다. 결국 언데드들이 소환되기 전에 빠져나갈 수는 없을 거다.
번쩍!
이레아가 주먹에 신성력을 가득 담아서 벽을 부쉈다. 역시나 성녀라 불릴만한 실력이지만 그녀는 후작가 쪽이 아니라, 내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이레아만이 아니라, 일리아나, 로디엔도 내쪽으로 오고 있었다.
“유렌님. 개똥같은 본월이 너무 많아요! 이대론 갈 수가 없어요.”
“맞아. 저 뼈들을 뚫다가 지쳐버릴 거야!”
그들의 말이 맞았다. 이미 늦어서 자칫 잘못하면 갈라져서 순식간에 당할 수도 있다.
“음...”
내겐 진화골산이 강화된 골유진왕이 있으니 언데드를 지우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지금 내 상태는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정신적으로 지쳐있다. 단전도 텅텅 비어있어 화골산도 제대로 쓰기 어렵다.
“어쩔 수 없나.”
주머니에서 세계수 선물의 씨앗을 꺼냈다. 이 씨앗은 소모된 내력을 단 번에 회복해주는 사기급 소모품이다.
앞으로의 싸움들이 더욱 거세질 거 같아 아껴두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낄 때가 아닌 것 같다.
일단 입안에 씨앗을 넣어두었다.
“후작님! 공작님!”
본월을 때려 부수고 있는 마스터들을 불렀다.
“지시대로 움직이고 싶지만 후작가로 갈 수가 없네. 계속해서 이 본월들이 나타나!”
“맞아. 부숴도 금방 재생하고 있네.”
“일단 마탑이 있던 곳으로 와주십시오. 그곳에 모여서 대책을 세워야겠습니다.”
“알겠네!”
마스터들에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그들부터 빠르게 이동시켰다.
“기린 저 앞의 벽들을 부숴줘.”
골유진왕을 쓰면 본월을 지울 수 있겠지만 일부러 아꼈다. 라스가 보고 경계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많이도 시키는 군!
콰아앙!
기린은 후라켄과 파에스일행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앞의 벽들을 벼락으로 부숴주었다. 다른 방향의 본월도 부숴서 사람들이 모두 모이도록 도와주었다.
쩌저저적!
기린의 벼락과는 다른 소리가 들렸다.
키기기기기.
드디어 놈의 소환의식이 끝났고 하늘이 쪼개지며 언데드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린다.
“아아악!”
“이, 이게 뭐야!”
“꾸, 꿈이야. 이건 꿈이라고!”
언데드들의 압도적인 숫자와 강렬한 붉은 눈, 지독한 사기에 모든 사람들의 눈에 절망이 피어났다.
“키기기기기!”
“캬아아악!”
해골, 특수 해골 병사, 좀비, 구울, 듀라한, 본 메이지, 데스 나이트까지 종류마저 다양했다.
“이 땅에 무슨 금덩이라도 묻어 놓은 건가? 이게 무슨!”
“하, 정말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군.”
계속 여유를 가지고 있던 후라켄과 파에스마저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 언데드들의 숫자와 강력한 기세는 두 마스터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키기기기기!”
“키하하하!”
“카아악!”
언데드들은 록스 자체를 멸망시킬 생각인지 후작령 전체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제 선택권은 없다.
까득.
입안에 넣어둔 세계수 선물의 씨앗을 깨물어 삼켰다.
“크윽!”
씨앗을 삼키자마자 다 마신 깡통처럼 텅텅 비어 있던 단전에 내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눈 하나 깜짝할 사이에 단전의 내공이 꽉꽉 찼다.
내력만큼은 오늘의 전투를 시작하기 전 같았다.
“유렌님...”
“어, 어떻게 해야 하죠?”
“너무 많습니다! 거기다 데스 나이트나 듀라한까지 있어요. 이걸 이길 수는...”
하급 언데드들도 위협적이지만 중간에 섞여있는 데스 나이트들을 본 기사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검을 잡은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기린 하늘로 올라가!”
-뭐?
“하늘 위로 올라가라고.”
-설마 도망치는 거냐? 널 그렇게 안 봤는데!
“개소리 말고! 빨리!”
-아, 알겠다.
하늘로 올라가서 마을을 보니 더욱 바글바글하다. 후작령 전체가 언데드로 꽉꽉 들이차 있었다.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후라켄도 파에스도 아니다.
나밖에 없다. 내가 해야 한다.
쿠구구구구.
언데드들의 소환이 모두 끝났다. 라스는 사람들이 공포에 잠긴 것을 즐기는 지, 아직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참 고마운 놈이다.
“지금이다.”
하늘에 균열이 생긴 이후, 지금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골유진왕을 극성으로 운용해서 후작령의 하늘 전체에 퍼뜨렸다. 내력이 쪽쪽 빨려나가고 다시 머리가 아파왔지만 입술을 깨물며 참아냈다.
“인...간...들을... 죽여라...”
“키아아악!”
“카아아악!”
라스의 명령이 떨어졌는지, 데스나이트가 지시를 내렸다. 데스 나이트의 손가락을 따라 언데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대 언데드들에게 길을 내어 주지마라!”
“끝까지 싸워라!”
“죽어도 버텨!”
사람들도 무기들을 다잡고 끝까지 싸울 준비를 했다. 만에 가까운 언데드와 천조차 되지 않는 인간의 맞부딪치기 직전.
“지금!”
바로 지금이 내가 생각한 언데드들을 전멸시킬 타이밍이었다.
“골유진왕.”
하늘에 띄워놓고 있던 골유진왕의 억제를 풀었다. 회색빛을 띈 골유진왕이 싸리 눈처럼 부드럽게 떨어져내렸다.
화아아아.
록스의 하늘 전체를 덮고 있던 회색빛이 땅으로 가라앉는 장면은 그 무엇보다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키이이이익!”
“캬아아악!”
당장이라도 인간을 물어뜯으려던 좀비와 구울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달그닥.
타다닥.
칼을 내리치던 해골들이 검을 떨어뜨리고, 주문을 외우던 본 메이지가 지팡이를 놓쳤다.
쿵.
쿠구구.
기마병처럼 돌진하던 듀라한들이 자신들의 머리를 놓치고 땅에 무릎을 꿇었다.
“이...게...무슨...일...”
데스 나이트들은 자신들의 상징인 불꽃의 검과 안구의 빛을 꺼뜨렸다.
고오오오.
대충 세도 일만에 가까운 언데드들이 목각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모조리 멈춰버렸다. 흡사 시간 자체가 멈춰버린 것 같았다.
-이, 이게 대체 무엇이냐.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기린은 이 모든 것을 행한 것이 나라는 것을 알고, 넋이 나간 얼굴이 되었다. 믿지 못할 것을 본 눈빛이다.
“아래로 가자.”
-아...
기린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내 말에 따라 땅으로 하강했다.
“유, 유렌님?”
“유렌. 이거 네, 네가 한 거지? 너 대체...”
“자네는 정말 알 수가 없군.”
“뭘 어떻게 한 건가? 이게 어떻게 되는 거지?”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일리아와 이레아가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고, 후라켄과 파에스도 귀신에 홀린 눈빛을 보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언데드들을 모조리 멈춰버린 나를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골유진왕...
골유진왕에 닿은 언데드는 그 즉시 움직임을 멈춰버리고 술자가 원하는 그 순간에 녹여버릴 수 있다. 역시나 화골산의 상위 독이라고 할만하다.
딱!
모두의 시선을 받으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사르르르.
후작령 전체를 둘러싸고 있던 일만의 언데드들이 전부 먼지가 되어 녹아버렸다. 그 먼지조차 사라져서 언데드들은 자신의 존재가 있었다는 어떠한 증거조차 남기지 못했다.
“미, 미친...”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마, 말도 안 돼...”
눈 깜짝 할 사이에 녹아버린 언데드를 본 사람들을 말을 잃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유렌. 너는 진짜!”
“유렌님!”
“정말 대단했어요!”
일리아와 이레아, 로디엔이 내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아무런 피해도 없이 언데드들이 사라졌다는 기쁨에 활짝 웃고 있었다.
“마법? 주술? 대체 뭘 쓰신 겁니까?”
“꿈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야. 하! 믿기지가 않는 군.”
지크와 파에스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거의 꿈을 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데드 킬러라는 말은 여전하구만. 아무리 그래도 이정도 스케일이라니. 진짜 못 당하겠어. 크하하하!”
후라켄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탄산처럼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모두가 전투가 끝났다고 생각하는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후...”
미안하지만 그들의 웃음을 깨야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뭐?”
“끝나지 않았다니?”
“언데드를 소환한 흉수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놈은...음!”
라스에 대해 설명을 하려 할 때 하늘에서 음울한 어둠의 마나가 느껴졌다.
“온 건가!”
고개를 드니,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하늘에 둥둥 떠 있었다.
[이름: 라스(Wrath)]
[특성: 칠죄종-분노(Ira)]
[호감도: -99(살해욕구) ]
[현재 기분: 사지를 뜯어 좀비의 먹이로 만들고 싶음.]
라스가 맞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고오오오오.
그놈의 옆으로 화염에 타오르는 거대한 운석이 구름을 가르고 대지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아...”
소실된 9서클 마법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록스를 뭉개기 위해 내려오고 있었다.
쿠구구구.
저건 라스도 한 번 밖에 쓸 수 없는 마법이다. 놈은 진정으로 분노를 하고 있었다.
이건 안 돼...
후라켄, 파에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저건 해결해 줄 수가 없었다.
만천화우?
천개의 흑화로 공격한다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부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흑화가 개화할 시간이 부족하다.
“끄, 끝이야...”
“이건 어쩔 수가 없군. 하!”
“뭘 해볼 마음도 생기지 않아...”
전투가 끝나서 웃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모두 자신들의 죽음을 느낀 것이다.
“젠장!”
이들은 자신을 돕기 위해 와준 사람들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방법, 방법!
머리를 미친 듯이 굴리고 있을 때 심장에서 평소와 다른 뜨거운 박동이 일어났다. 그 박동을 느끼자마자 내 눈앞에 하나의 창이 나타났다.
[소혼보주를 발동시키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