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2화 예정과 다른 습격 (182/241)

예정과 다른 습격

“마지막이라고? 이걸 보고도 그따위 말을 하는 거냐?” 

오비스가 착용한 건틀릿에 새겨진 악마의 눈에서 회색빛이 번쩍였다. 섬뜩한 느낌에 인상이 저절로 써진다. 

건틀릿에서 힘을 얻는지 놈의 오러와 기세가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놈의 광기 역시 미친 듯이 상승한다. 

[키아믹의 건틀릿]- 해방. 

마계에서 격투로 이름 높은 악마 키아믹이 봉인된 건틀릿이다. 작용한 자는 키아믹에게 영혼을 뺐겨나가는 대신 악마의 강대한 힘을 얻게 된다. 오러의 양이 끝없이 늘어나고 키아믹이 가진 전투 스킬들을 사용할 수 있다. 

“역시...” 

키아믹의 건틀릿. 

저 장비는 내가 엘루나에서 챙겼던 마검들과 같은 물건이다. 강력하고 매혹적인 힘을 주는 대신 착용자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악마의 장비가 바로 저 건틀릿이다. 

“에블린이 줬다고 했지.” 

에블린은 이곳에서 오비스를 버릴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저 건틀릿을 넘겨줬을 거다. 

이미 원작과 한참 달라졌기 때문에 그녀가 뭘 노리고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마음에 들어! 이 힘, 이 오러라면 그 검귀 놈도 때려잡을 수 있겠어! 크하하하! 그전에...” 

주먹을 부딪치던 오비스의 새빨간 눈이 빙글거리며 내게 향했다. 눈동자의 방향이 카멜레온처럼 돌아간다. 이미 악마가 놈의 영혼을 침범하고 있는 상태 같았다. 

“벌레들부터 처리하자고!” 

콰앙! 

오비스가 대지를 터트리며 내 앞으로 뛰어들었다. 눈앞에서 보지 못했다면 순간이동이라도 썼다고 생각될 정도로 빨랐다. 

쩌어엉! 

레이저처럼 일직선으로 찔러오는 주먹을 천판으로 막았다. 실려 있는 힘이 너무 강대해서 뒤로 미친 듯이 밀려났다. 

“이게 마스터의 수준인가? 처참해.” 

“후...” 

역시나 권사인지, 돌진하는 속도가 생각이상으로 빠르다. 만천화우는커녕 다른 기술을 쓸 시간도 부족했다. 

“이번엔 제대로 막아봐!” 

펑! 

오비스가 내 품 가까이 달려든 순간 자괴연을 터뜨려서 시간을 벌기로 했다. 

“잡술 따위!” 

자괴연이 터지자 오비스는 손바닥을 휘둘러 바람을 일으켰다. 손바닥일 뿐인데 태풍이 분 것처럼 자괴연이 일순간에 날아가버렸다. 

“깔려죽어라!” 

자괴연을 없애버린 오비스는 다리에 막대한 오러를 담은 후 그대로 땅을 내리찍었다. 

콰르르르! 

대지가 지진이 난 것처럼 갈라지며 땅이 해일처럼 올라와 나와 영지민들을 그대로 묻어버릴 거 같았다. 

쿠구구구. 

놈이 보낸 대지의 해일이 내 앞에 온 순간 내력을 가득 담은 발로 대지를 내리쳤다. 

콰아아앙! 

중간에서 오비스의 오러와 내 내력이 맞부딪쳤다. 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모래폭풍이 퍼져나왔다. 

“크하하하!” 

오비스는 흙먼지가 사라지기 전에 내게 돌진해왔다. 강대한 오러를 씌운 놈의 모습은 흡사 거대한 철퇴 같아서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 뒤에 영지민들이 덜덜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빠지지직! 

양손에 뇌기를 미친 듯이 모아 앞으로 펼쳤다. 원래 한 손 모은 뇌기를 터트리는 극뢰포를 양손에서 펼친 것이다. 

콰과과과! 

“크아악!” 

극뢰포 두발을 몸으로 쳐 맞은 오비스가 날아가서 연무장의 벽에 쳐 박혔다. 

“우, 우와아아아!” 

“유, 유렌님!” 

“유렌님이 이기셨다!” 

“으아아!” 

오비스가 날아간 것을 보고 사람들이 환호를 내질렀지만 내 심각한 표정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저건 그냥 날아간 것일 뿐이다. 

악마의 오러가 놈을 보호해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을 거다. 

“너!” 

“저, 저요?” 

“내 방 근처에서 일했었지?” 

“아, 네! 맞습...” 

“여기 있는 사람들이랑 밖에 있는 아버지 데리고 2연무장으로 가. 빨리!” 

뒤에 있던 하인을 지목해서 지시를 내렸다. 현재 후작령 전체에서 가장 위험한 곳은 이곳이다. 이들을 빨리 벗어나게 만들어야 나도 편히 싸울 수 있다. 

쿠구구구구. 

오비스가 쳐박힌 벽에서 거대한 오러가 모이기 시작했다. 역시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준비를 해놔야겠어. 

난 놈이 보지 못하게 먼저 하늘에 천판을 띄워놓고 그 주변을 자괴연으로 덮었다. 

콰아앙! 

놈의 오러는 주변의 벽을 모조리 파괴해버리고 나서도 더욱 불타올랐다. 악마의 힘이 점점 더 커지고 오비스는 영혼을 잃고 있었다. 

“예전의 나라면 네놈의 공격에 크게 당했을 테지. 하지만 지금은 상처조차 없다! 오러가, 힘이 계속해서 솟아올라!” 

오비스는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오러에 중독 되서 점점 인성이 사라지고 있었고, 외모도 변해가고 있었다. 이마 양쪽에 무언가가 볼록 튀어나왔다. 

힘이 쌓일수록 빠르게 악마화가 될 거다. 최대한 빠르게 그것도 단번에 끝내야 한다. 

“크크큭. 지금이라면 쓸 수도 있겠어. 너와 네 뒤에 벌레들까지 한 번에 지워주마!” 

“아아아...” 

“사, 살려...커헉.”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은 오비스에게서 나오는 기세와 오러의 압박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큭...” 

오비스가 사용하려는 건 놈이 소설의 끝에서나 사용할 최종 비기다. 주먹으로 9서클 마법이상의 위력을 내는 놈의 최종 비기 패룡이 놈의 주먹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지금이다. 

오비스가 패룡을 쓸 준비를 할 때 하늘에 띄워둔 천판을 연위결로 연결했다. 다행히 놈은 오러에 취해 자신의 머리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있었다. 

일단 연결은 됐어. 

천판으로는 단 한 번도 연습한 적 없었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다. 뒤에 있는, 이 영지에 있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여기서 끝을 내야 한다. 

지금은 할 수 있을 거 같아. 

지직. 

연위결을 운용하며 만천화우의 구결을 외웠다. 천판이 해와 달이 된 것처럼 두 개의 천화(天花)로 나뉘었다. 

지지직. 

4개, 8개, 16개... 잘 분열되던 천화가 256개가 되었을 때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내가 다루는 연위결의 한계가 넘어갔다는 뜻이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천화를 한 번 더 나눴다. 

“큭...” 

천화가 512개가 되자, 코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고, 세상이 흔들려 보이기 시작했다. 혀를 깨물며 정신을 놓지 않았다. 

“무리를 했나? 크크크. 걱정마라. 지금 바로...뭐?” 

패룡을 쓸 오러를 모두 모은 오비스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자괴연의 범위를 벗어난 천화를 발견했다. 

“이, 이건!” 

오비스가 경악한 눈으로 하늘에 떠 있는 천화를 노려보았다. 

뿌드득! 

감정이 격해졌기 때문인지 오비스의 이마에 산양과 같은 뿔이 솟아올랐다. 악마화가 거의 끝난 상태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순 없다. 

“이제 사라져줘야겠어.” 

극심한 두통을 참아내며 만천화우의 마지막 구결을 외웠다. 

“만천화우.” 

곧고, 검은 꽃이 피어난다. 하늘을 수놓은 검은 꽃잎들이 휘날리며 떨어져내렸다. 

화아아아! 

그 꽃잎 모두에 강기가 덮여있었고, 그 꽃잎 모두에 당천위가 전해준 모든 경험이 녹아 있었다. 

너무도 아름답고 광대한 광경에 오비스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오비스를 먹어치운 악마의 눈으로도 만천화우를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거다. 

“크으으!” 

패룡을 써도 만천화우를 막을 수 없다 생각한 오비스의 고개가 내게 향했다. 

“같이 죽자!” 

오비스가 내게 패룡을 날림과 동시에 놈에게 만천화우가 떨어졌다. 

놈은 마지막 발악을 하듯, 자신의 모든 오러를 둥글게 만든 후 터트려버렸다. 하지만 천화의 꽃잎들은 놈의 오러를 가볍게 뚫어버렸다. 

“아, 이, 이게 바로 무의...” 

악마화가 거의 완료된 오비스조차 반쪽짜리 만천화우를 견디지도, 막아내지도 못했다. 놈은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콰아아아! 

오비스가 죽었지만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놈이 보낸 패룡이 우리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정상이어도 막기 힘든 공격인데, 지금 난 정신력이나, 내력이나 모두 바닥이었다. 하지만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았다.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있었으니까. 

“레비타스.” 

명룡의 보의에서 튀어나온 백룡이 패룡의 대가리를 씹어 삼켰다. 놈이 마지막에 날린 최후의 공격은 무엇도 이루지 못하고 명룡에게 먹혀버렸다. 

“후우...”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바로 잠들 것 같고, 당장 쓰러질 것 같았다. 만천화우를 쓰기엔 아직 연위결의 성취와 상단전의 개방이 모자란 모양이다. 

“음...” 

오비스의 시체에 다가갔다. 놈의 몸에 박힌 천화를 회수해서 원래의 천판으로 만들었다. 이 일을 끝내자 정말 내력이 바닥이다. 

“우와아아아!” 

“유, 유레님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크흑!” 

뒤에 있던 영지민들이 내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살았다는 생각에 모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제 끝인가...” 

위빅, 마피언에 이어 오비스까지 처리했다. 

강력한 괴수와 라이칸, 다크 엘프가 있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다. 마스터 두 명에 일리아, 이레아, 로디엔이 있으니. 

“하지만 쉬지는 못하겠네.” 

할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하니, 다행히 기절만 하신 상태였다. 다만 콜린의 상태는 심각했다. 빨리 이레아에게 데려가야 할 거 같다. 

“끙...” 

콜린을 업고 밖에 나가려 할 때 아버지가 한쪽 다리를 끌며 들어오셨다. 

“유렌. 어, 어떻게 됐느냐?” 

“일단 이곳의 일은 모두 해결했습니다. 다만 콜린의 부상이 심해서 빨리 치료를 해야합니다.” 

“아...” 

“콜린은 제가 성녀님께 데려갈 테니, 아버지는 이곳에서 사람들을 봐주십시오.” 

“아, 알겠다. 빨리 가 보거라.”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가자, 기절한 기린이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 그놈 어디 갔어! 감히 나를! 

“다행이다. 너 이리와.” 

기린을 타고 가면 이레아에게 빠르게 갈 수 있을 거다. 

-지금 널 태울 때가 아니다! 아까 그놈이... 

“너 날려버린 놈 내가 처리했으니까. 아까 그 장소로 가자.” 

-으윽... 

기린 이빨을 갈면서 나와 콜린을 태웠다. 

-내,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신세타령 그만하고 빨리 좀 가자. 

-크윽... 

기린은 인상을 쓰면서도 마을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부른 사람들이 보통 강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몬스터들이 거의 정리되고 있었다. 

“저기, 저쪽으로...” 

서쪽에서 거대한 신성력 덩어리가 보인다. 저런 신성력은 이레아뿐이다. 

“성녀님.” 

“유렌님!” 

“이 녀석 좀 봐주세요!” 

“세상에...” 

이레아는 콜린의 몸 상태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떤 똥 튀길 놈이 이럴 짓을 한 거죠? 인간이 아니에요...” 

이레아는 적에 대한 분노를 신성력으로 승화시켰다. 하늘까지 닿을 것 같은 신성력이 콜린을 덮자 녀석의 어그러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우우웅. 

상태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인지 이레아는 신성력을 한참동안 유지시켰다. 

“휴우,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했겠지만, 이제 괜찮을 거예요.” 

“여러 가지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도움 많이 받았잖아요.” 

이레아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미소지었다, 

“그런데 이분은...” 

“제... 동생입니다.” 

예전이라면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했겠지만, 녀석의 달라진 모습을 봤기 때문에 이제 동생이라 말하고 싶었다. 

“이분이 콜린님이신가요?” 

“네. 알고 계셨나요?” 

“아, 조금 조사를... 아니, 어쩌다 보니 알게 됐어요.” 

이레아가 고개를 흔들며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내 얼굴을 자세히 보다가 깜짝 놀랐다. 

“유렌님. 코피가 나셨...” 

“유렌!” 

이레아가 내 코를 만지려 할 때 일리아가 달려왔다. 

“괜찮아?” 

“어?” 

“너 피났잖아!” 

“아...” 

만천화우를 쓸 때 터진 코피와 콜린을 데려오며 묻은 피로 내 몸 이곳저곳이 피투성이였다. 일리아는 그걸 보고 내가 걱정 되서 이곳까지 온 모양이다. 

“별거 아니야.” 

“정말 괜찮아?” 

긍정의 의미로 그녀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은 어떻게 됐어?” 

“일단 후작가 내부는 끝났어. 이곳도 거의 정리됐네.” 

“응. 마스터가 두 분이나 계시니, 어렵지 않게 정리되던데 역시 격이 다르더라고.” 

“휴우...” 

후라켄과 파에스가 와준 것이 정말 천운이었다. 그들 덕에 피해가 크게 줄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근데 언데드는...” 

마이라는 예지에서 언데드가 몬스터들과 나타났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타나지 않았다. 

“에블린이 물러 난 건가?” 

상황이 이상한 것을 알게 된 에블린이 후퇴했을 지도 모른다 생각했을 때 밤하늘 위로 거대한 창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콰챠챠챵! 

창은 하늘에 구멍을 내버렸고 그 구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붉은 빛이 반짝거렸다. 

“저 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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