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습격 (4)
“왔군.”
포메라는 유렌의 신호를 받자마자 미리 준비해 놓았던 언데드들을 움직였다.
언데드들을 네 방향으로 소환해서 기사와 병사들이 전열을 갖추고 영지민들이 대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다음으로 성벽에서 암살자의 위협을 받는 병사들을 지켜냈다. 암살자들의 칼날을 언데드로 대신 맞아주고 그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거기다 후작가 내부에선 울음인형을 운용하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으니, 현재 가장 바쁜 사람은 포메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 주인 잘못 둔 죄로 이런 생고생을 하고 있다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포메라는 인간을 죽이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흑마법으로 인간을 구한다는 것에 고양감과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에에에에에엥!”
정원 쪽에서 울음인형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정도 소음이라니, 주인이 말했던 암살자가 맞군.”
울음인형을 설치해본 건 처음이지만, 평범한 암살자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유렌이 말했던 마스터에 오른 암살자 확실했다.
“어떻게 도와줘야 하지?”
포메라가 록스 후작을 어떻게 도와줄 지 생각을 할 때였다. 서쪽 성문 앞에서 시간을 끌던 언데드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흑마법사는 자신이 소환한 언데드의 시야를 공유할 수 있는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말 그대로 그냥 사라져버렸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번엔 동쪽? 북쪽까지!”
포메라는 서쪽에 이어 동쪽과 북쪽의 언데드까지 사라진 것을 느꼈다. 어떠한 현상도, 효과도 없이 지우개로 지우듯 사라져 버렸다.
콰아앙!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성 밖에 다시 언데드를 소환하려 할 때 제 1 연무장 근처에 있는 담이 무너져 내렸고 대기를 시켜놓은 언데드들이 누군가에게 파괴되었다.
“어쩔 수 없군.”
포메라는 외부에 소환하려던 리빙아머와 인면지주를 침입자 앞에 소환했다. 침입자의 수준을 보니, 아마 저 둘로도 버티긴 힘들겠지만 시간을 끌 순 있을 거다.
“주인이 오기 전까지. 최대한 버티길 바라는 수밖에...”
**
“보, 보인다고 했나? 내 본체가?”
본체가 보인다고 한 말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부상을 입은 것에 화가 난다고 그냥 뱉은 말이 아니다.
놈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켠 창조주의 눈에 본체와 분신이 확실하게 보이고 있었다.
본체에선 놈의 정보가 보이고 있었지만, 분신에서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으니 구별 못 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이놈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연무장 쪽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니 그쪽으로 가주세요.”
“놈은 둘인데 할 수 있겠느냐?”
“걱정 마세요. 바로 따라가겠습니다.”
“그래. 믿으마.”
작은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고 바로 움직이셨다.
“기린. 너도 따라가서 도와드려.”
-알겠다.
기린은 상황의 심각함을 이해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내 본체를 구별 할 수 있다? 그 말을 내가 믿을 거 같은 가!”
“믿기 싫으면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
마피언에게 말을 걸며, 놈의 본체 앞에 은괴작의 구덩이를 만들었다.
은괴작은 충귀은소의 강화형으로 더욱 은밀하고 강력한 독성을 지니고 있으며, 추가적인 효과를 발생시킨다.
“어차피 네놈이 죽는 건 변하지 않으니.”
“아비나 애새끼나 남을 도발 하는 데는 재능이 있구나!”
마피언이 이를 악물며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차악.
마피언의 발이 은괴작에 담겼다. 놈은 바로 발을 뺐지만 이미 중독은 시작됐다.
“무, 무슨 짓을 한 거냐!”
“네놈은 곱게 죽지 못한다. 최악의 고통과 절망을 느끼게 해주마.”
당장 마피언의 전신에 만천화우를 박아주고 싶지만, 안쪽에서도 강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멸락을 쓴 상태에서 만천화우를 쓰게 되면 내력이 다하기 때문에 이놈은 독으로 잡기로 마음먹었다.
“크윽...”
아주 조금이지만 마피언의 손끝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은괴작이 효과가 발동되기 시작한 거다. 자신의 몸에 이상을 느낀 놈이 악귀같이 인상을 썼다.
마피언은 모르겠지만 은괴작엔 적의 독 저항력을 서서히 낮추는 추가 효과가 있다.
내력을 쏟아서 절맹귀산, 해곤사창, 단장독, 와염독, 분혈작까지 만들어내고, 형태까지 변화 시켜 놈의 주변을 독으로 도배해 버렸다.
“크윽! 뭔 짓을 해도 소용없어! 이따위 잡술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마피언과 놈의 분신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예상대로 놈이 먼저 보낸 건 분신이다.
빠지지직!
뇌영을 사용해서 뒤로 빠진 후 백광환 두 발과 비수들을 동시에 날렸다.
캬컁!
마피언은 백광환과 비수들을 어렵지 않게 튕겨내고 내게 돌진했다.
쩌저적!
능력이 약화되었다고 쳐도 마스터 두 명이 동시에 달려들고 검술이 실전적이라, 공격을 피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한 번 더 약화시켜 볼까.
퍼엉!
마피언이 달려드는 순간에 자괴연을 발동 시켰다. 놈이 급히 숨을 멈췄지만 이미 자괴연을 맡은 상태다.
“연기? 죽여 달라고 아주 고사를 지내는 구나.”
마피언은 그 말을 남기고 기척을 감췄다. 자괴연으로 시야가 가려진 틈을 이용해서 자신의 특기인 은신을 사용해서 날 암살할 생각이다.
“허...”
은신을 사용한 마피언의 멍청함에 말이 나오질 않았다.
“에에에에엥!”
빈 공간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거세게 터져 나왔다.
“멍청한 놈.”
은신을 사용한 마피언을 감지해서 울음인형이 발동되었다. 울음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십이비도를 날렸다.
캬캬컁!
울음소리에 당황한 마피언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두 군데나 공격을 허용했다.
“크으윽!”
은신이 풀려버린 마피언이 팔과 다리에 박힌 비수를 뽑으며 날 노려보았다. 비수에도 독이 발라져 있었기 때문에 놈의 상처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멍청하네. 분명 겪어봤을 텐데?”
“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대체 이 울음소리는 뭐야!”
“그걸 말해줄 것 같아서 묻는 거야?”
“네, 네놈은... 어?”
마피언과 분신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놈이 마스터라 아주 늦긴 해도 독이 조금씩 발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마피언의 완전 분신의 장점이자 단점은 본체의 능력을 100% 따라간다는 점이다. 즉, 본체가 약해지면 분신도 약해진다는 소리다.
“이, 이...”
마피언이 갑자기 다리를 떨며, 자신의 팔을 붙잡았다. 죽을 것처럼 인상을 찡그리는 것을 보니 다른 독의 효과도 조금씩 발휘되기 시작했다.
“말했지. 최악의 고통을 느끼게 해주겠다고. 이제 시작이다!”
“크아아아!”
마피언과 놈의 분신이 발악을 하며 달려들었다.
곡선과 직선을 동시에 그리는 기묘한 검술이 위협적이었지만 피하기 어렵지 않았다. 마피언은 이미 독에 중독되어 능력이 계속해서 약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헉!”
마피언과 분신의 공격을 회피하며 놈의 본체에만 상처를 만들며 더 많은 독을 주입했다. 지금 놈의 몸엔 열 가지 이상의 독이 동시에 발동되고 있었다.
“우억!”
공격도 맞지 않았건만 놈의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린다. 저건 와염독에 중독된 효과다.
“끄으윽... 어떻게 되든 네놈만은 죽인다.”
마피언의 눈에 붉은 광기가 그어졌다. 놈은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분신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파아앙!
그 순간 놈의 분신이 사라지고 마피언은 처음 봤을 때보다도 더욱 강하고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었다.
챠아아앙!
마피언의 검에서 눈이 부실정도의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올랐다. 놈은 다시는 분신을 사용하지 못하는 대신 본체의 힘을 1.5배로 상승시키는 최후의 능력을 사용했다.
“죽어라!”
당연히 놈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로벤의 롱소드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게 될 것 같아?”
은빛의 롱소드가 검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를 삼각형으로 내려치는 마피언의 검을 향해 검게 물든 검을 내질렀다.
“마왕.”
잊혀진 제왕의 검 1초식, 마왕은 마피언의 푸른 오러를 아귀처럼 집어삼키며 몸을 불려나갔다.
“뭐, 뭐야 이 검은!”
마피언의 눈이 암흑에 잠긴 것처럼 검게 변했다. 놈은 자신의 검을 찢고 들어오는 마왕에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화아아악!
마왕은 밤하늘을 짙은 어둠으로 물들였고, 절망에 빠진 마피언은 흔적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하아...”
“허...”
싸움을 끝내고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뒤에서 아버지의 탄성소리가 들려왔다.
“바, 방금 그건 뭐냐? 설마 검술이냐?”
“검술이 맞는 거 같긴 한데...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검으로 사용하니 검술은 맞겠지만, 마왕은 일반적인 검술과는 뭔가 다르다. 단순히 대답할 수 없었다.
“넌 정말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구나. 검술까지 그런 경지에 오르다니. 이제 정말 따라갈 수도 없겠어. 하하.”
아버지는 씁쓸함보다도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더 커보였다. 그의 칭찬이 반가웠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대화를 할 때가 아니었다.
“일단 움직여야겠습니다. 업히세요.”
아버지를 이곳에 놔두는 것보단 같이 움직이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아서 데려가야 할 거 같다.
“네게 업힐 날이 오다니, 아까 그놈에게 감사해야 하는 건가?”
아버지는 아이처럼 웃으시며 내 등에 올라탔다.
“꽉 잡으세요.”
“그래. 잘 잡고 있다.”
이동하며 현 상황에 대한 보고를 해드렸다. 아버지는 놀라면서도 많은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어디로 가느냐?”
“제 1 연무장입니다. 그쪽에서 싸움이 벌어졌어요.”
“그, 그곳에 콜린을 보냈는데...”
“콜린이요?”
얼마 전에 녀석이 찾아와서 강해지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달라진 녀석의 눈빛이 생각나, 입술을 깨물며 속도를 높였다.
“뭐, 뭐야. 왜 벽이 저렇게...”
연무장에 도착하자마자 후작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제 1 연무장의 벽이 거인의 주먹에 맞은 듯 아예 반파되었고, 그 밑에 기사들의 시체가 찌부러진 채 던져져 있었으니까.
대충 세어도 기사들의 시체가 30명이 넘는다. 갑옷들의 모양을 봤을 때 누가 이곳에 있는지는 확실했다.
권패 오비스다.
“젠장...”
콰앙!
연무장 안쪽으로 들어가려 할 때 무언가가 벽을 부수고 튀어나왔다.
-커헉!
“기린?”
밖으로 나온 건 기린이다. 녀석은 목이 반쯤 돌아간 채 움직이질 못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이곳에 계세요.”
“유렌!”
“괜찮아요.”
아버지를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연무장 내부는 처참했다.
“아...”
은수리 기사단은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있었고, 내가 만든 결계가 깨져서 영지민들이 겁에 질러 덜덜 떠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으으...”
할아버지는 검을 부러뜨린 채로 왼쪽 벽에 박혀있었고, 콜린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오비스의 손에서 대롱대롱 잡혀 있었다.
전신의 뼈가 모두 부러졌는지, 몸이 흔들리는 모습이 기괴했다.
“크크큭. 네가 유렌 록스인가?”
“너...”
“이 쓰레기와 형제라지? 가져가라.”
오비스가 콜린의 머리를 잡고 벽을 향해 그대로 던져버렸다. 놓치면 죽을 것을 알기에 전력으로 움직여서 콜린을 잡았다.
“커헉!”
콜린의 입에서 살벌한 양의 피가 터졌다. 보통 위험한 상태가 아니다.
“혀, 형님...”
“말하지 마라.”
“형님의 말...씀대로 강자와 싸웠습니다. 아, 아버지의 말씀대로 제가 죽기 전까지 놈에게 길을 열지... 않았습니다... 전 록스...”
“그래. 잘했어. 그니까 말하지 말라고!”
“저도 록스의...”
“...자라.”
콜린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녀석의 수혈을 짚어 잠재운 뒤 뒤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놈 말이 맞아. 그런 고집을 가진 놈은 처음 봤어. 전신의 뼈를 모두 부러뜨려도 비키지 않던데? 크크.”
오비스는 즐겁다는 듯 허리까지 꺾어대며 킥킥거렸다.
콜린이 나를 비웃고 비꼬던 첫 만남에서부터 날 넘겠다고 선언했던 날, 나를 찾아와 강해지는 방법을 묻던 것까지 모든 것이 어제 일처럼 생각났다.
“자신의 주제를 모르면 그런 꼴이 되는 거다. 저 벌레같은 인간들을 지키겠다고 아주 지랄발광을 하더군. 크크큭.”
놈의 말에 내 머릿속에 있는 어떤 선이 끊어졌다.
“난 네게 고마운 게 많아. 유렌. 네 덕에 이 건틀릿도 받았지.”
오비스는 자랑을 하듯 악마가 새겨진 건틀릿을 흔들어댔다.
“매번 달라고 해도 절대 주지 않았는데, 바로 가져다주더군. 네가 위험하긴 한 가봐! 크크큭!”
기린과 할아버지가 동시에 갔는데도 오비스에게 당해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에블린이 준 저 건틀릿 덕분이었던 모양이다. 무슨 건틀릿인지 성격까지 변해버렸다.
“많이 웃어둬. 그게 네 마지막 웃음이니까.”
하늘처럼 어두운 천판을 꺼내들었다.